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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거인, 세상을 떠나다 말론 브랜도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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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2.0 2004-07-1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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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론 브랜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무대와 스크린에서 상대를 노려보는 그 눈빛으로 사람들을 압도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반항적인 젊음의 아이콘을 연기한 그가 <대부>의 겉으로는 인자하지만 속은 냉혈한인 마피아 보스 할아버지로 나올 때도, 나이로는 딸 뻘인 마리아 슈나이더와 땀을 뻘뻘 흘리며 실제 정사에 가깝게 실연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불우한 중년 남자 폴을 연기할 때도, 그가 품은 카리스마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그는 뭘 하든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흡입력을 품고 있었다. 배우 폴 뉴먼은 그런 말론 브랜도의 저력을 가리켜 "말론 브랜도가 힘 안 들이고 하는 일을 나는 죽을 힘을 다해야 겨우 해낸다. 나는 그게 참을 수 없다"고 투덜댔다. 심리학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그 유명한 메소드 연기학파의 수재로서 브랜도는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등의 배우들로 면면히 이어져온 현대 미국 영화계의 연기파 배우 중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인물이었다. 브랜도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하는 동안 영화 속의 인물로 사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고 이는 그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으며 연기로 돈을 벌면 늘 배우가 아닌 다른 일로 도피했다. 그렇게 해서 쌓인 전설을 뒤로하고 브랜도가 사라졌다. 지난 7월 1일 브랜도는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의 없는 반항의 대변자
말론 브랜도의 삶은 극적이었다. 그 자신이 자기 주변을 극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어린 시절 강인하지만 술주정뱅이에 난봉꾼이었던 아버지와 시적이지만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말론 브랜도는 배우로 성공하는 걸 꿈꿨던 다감한 어머니를 사랑했으나 어머니가 인생에 실패한 후 술에 절어 사는 걸 보며 세상의 의도적인 반항의 흔적을 남기며 자랐다. 그는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재담꾼이었으나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였고 여러 번 퇴학과 전학을 되풀이했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사관 학교에 들어갔으나 다시 퇴학당한 브랜도는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뭔가 뜻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가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었고 어쩌면 어머니의 소망을 대신 이루겠다는 마음도 약간은 있었는지 모른다. 심드렁하게 시작한 이 배우 생활은 그에게 삶의 전기를 마련해줬다. 스텔라 아들러가 운영하던 뉴욕드라마스쿨에서 금방 두각을 나타낸 브랜도는 아들러의 추천으로 엘리아 카잔을 만나게 됐고 순탄하게 성공 가도를 달렸다.
무대와 스크린에서 브랜도는 기성 가치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게으르고 불손한 에너지를 머금고 있었고 그걸 눈여겨본 당대 최고의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엘리아 카잔은 그를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출연시키려 했다. 그때 브랜도는 막 이름을 날리던 젊은 배우였으며 버는 돈을 즉시 써버리는 방종한 생활로 자신의 야생마 같은 에너지를 탕진하고 있었다. 카잔은 테네시 윌리엄스에게 브랜도를 추천했고 직접 만나보라고 권했다. 카잔에게서 버스비를 빌린 브랜도는 그 돈으로 끼니를 때우고 여자 친구와 함께 히치하이크를 하며 이틀 만에 테네시 윌리엄스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케이프의 별장에 도착했다. 윌리엄스는 브랜도를 만나자마자 수도 배관이 고장 났다고 투덜댔으며 마침 배관공으로 일한 적이 있는 브랜도는 묵묵히 집안 곳곳의 배관을 점검하고 고쳐주었다. 일이 마무리되자 윌리엄스는 브랜도에게 희곡을 읽어보라고 말했다. 브랜도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주요 대사 몇 구절을 외었다. 윌리엄스와 그의 친구들은 흥분했고 윌리엄스는 브랜도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인공 스탠리에 맞게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브랜도는 윌리엄스에게 차비를 빌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게 브랜도 전설의 제2막이었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500회 공연을 기록할 만큼 큰 성공을 거뒀지만 브랜도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은 그의 주변 삶을 늘 복잡하게 만들었다. 연극에서 브랜도와 함께 공연한 여배우 제시카 탠디는 무대 뒤에서 잔인한 장난을 밥먹듯이 치는 브랜도에게 아주 자주 살의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브랜도는 실제 삶에서나 무대와 스크린에서 동일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기성 가치에 대해 늘 심드렁했고 예의와 격식, 권위를 조롱했다. 그의 이런 태도는 거꾸로 그의 주변에 아낌없이 뭐든 나누어준다는 생활방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방종과 매혹이라는 기이한 매력을 그에게 심어주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듯이 구는 브랜도의 신조는 전후 미국 사회에선 가히 폭발물 같은 충격을 주었다. 풍요의 시대라고 불려지는 1950년대의 미국은 도시 근교에 중산층 마을이 생기고 청소년들이 차를 타고 데이트를 즐기는 번창을 구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어디서도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없는 균일화된 시대이기도 했다. 삶은 표준화됐으며 모두 그 규격에 맞춰 살려고 열심이었다. 이렇게 사회에 팽배한 개성 없는 무감각에 분노하는 이들은 젊은이들 뿐이었다. 그 잠복해 있는 열기에 브랜도의 존재는 불을 질렀다. 연극으로 출세하고 그가 경멸해 마지않는 할리우드에 와서도 브랜도는 금방 스타가 됐다. 영화로 옮겨져 비비안 리와 공연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브랜도의 그 야생마 같은 에너지가 스크린에서 더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줬고 청춘 폭주족의 이야기를 다룬 <와일드 원>에서 브랜도는 훗날 제임스 딘이 열심히 모방하게 되는 청춘의 아이콘을 수립하게 됐다.
<와일드 원>의 한 장면에서 브랜도는 카페의 예쁜 여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시시덕거리기 시작한다. 그가 하는 행동은 동전을 카운터에서 앞뒤로 굴리는 것뿐이다. 여종업원이 동전을 잡으려 하면 그는 뒤로 동전을 미끄러뜨린다. 여종업원은 쩔쩔매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상대에게 매력을 느끼고 끌리게 된다. 그녀가 묻는다. “당신은 뭣 때문에 그렇게 반항하는 거에요?” 브랜도가 답한다. “뭐든지 말만 해봐.” 대다수 장면을 즉흥으로 연기한 <와일드 원>에서 브랜도는 ‘대의 없는 반항’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정서를 강력하게 길어 올렸다. 역시 <와일드 원>의 한 장면에서 폭주족을 비난하며 경찰이 “너희들을 이해 못하겠어. 너희들은 스스로 뭘 원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얻을지 모르는 것 같아”라고 말할 때 브랜도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앉아 있다. 강고하게 보이는 턱을 꽉 다물고 그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세상이 잘 돌아가지 않지만 그게 뭔지 이해하지 못하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세상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청춘의 반항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배우 직업을 경멸한 대배우
브랜도는 이후로도 늘 그렇게 살았다. 1950년대에 브랜도가 출연한 대다수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할리우드는 브랜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브랜도의 돌출 행동을 묵인했다. 그 와중에 브랜도는 엘리아 카잔의 연출작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화에서 감독들과 충돌을 일으켰다. <데지레>에 출연할 당시 헨리 코스터 감독과 촬영장에서 곧잘 대놓고 싸웠으며 <젊은 사자들>에서는 원작자 어윈 쇼와 인물 해석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이 방자한 젊은 스타는 꽤 명망 있는 작가에게 "인물 창조는 배우인 내가 하는 것"이라고 태연하게 응대했다고 알려진다. 낭만적인 소외자의 이미지로 당대 청춘의 표상으로 군림했던 브랜도의 반항기는 천방지축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갔다. 1962년 <전함 바운티호>를 찍을 때 브랜도의 즉흥 연기를 빙자한 변덕스러움에 질린 거장 캐롤 리드는 감독을 그만뒀으며 대신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유명한 베테랑 루이스 마일스턴이 현장에 들어섰으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브랜도의 변덕으로 마냥 제작이 지체된 <전함 바운티호>가 흥행에 실패하자 브랜도의 할리우드 경력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직전 브랜도가 직접 연출한 <애꾸눈 잭>이 고만고만한 반응을 얻는데 그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브랜도는 공공연히 "연기는 거지 같은 짓"이라고 천명했고 할리우드는 더 이상 이 말썽꾸러기 배우 겸 감독을 꿈꾸는 스타를 용납하지 않았다.
1960년대 내내 브랜도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 시기에 브랜도가 출연한 대다수의 영화가 소규모 예산의 독립 영화였고 그중에는 쓰레기 같은 영화도 들어 있었다. 브랜도는 돈 때문에 영화에 억지로 출연했고 경력은 곤두박질쳤다. 존 휴스턴의 <황금 눈에 비친 모습>이나 아서 펜의 <체이스>, 질로 콘테고르보의 <번!>과 같은 걸작도 이 시기의 출연작에는 들어 있었으나 불우하게도 주류에선 인정받지 못했다. 브랜도가 애착을 갖고 연기한 <체이스>는 전통 서부영화의 플롯을 현대 도시로 옮겨와 정의가 실종된 현대 미국의 윤리를 묻는 문제작이었으나 폭력의 복합적인 의미를 탐구했던 대다수 장면, 주로 브랜도의 위대한 즉흥 연기가 돋보였던 장면이 흥행을 원하는 제작자의 일방적인 편집으로 잘려나갔다. 누가 봐도 브랜도는 구제불능의 한물 간 배우처럼 보였다. 1968년 작 <약속>에 브랜도를 출연시켜 그의 재기를 도모하려 했던 은사 엘리아 카잔은 브랜도가 <번!>의 출연을 위해 자신의 제의를 뿌리치자 분연히 이제 제자로 거둘 수 없다고 통보했다. 브랜도는 그걸로 끝나는 듯이 보였다. 대신 브랜도는 그 와중에 흑인 민권 운동에 관심을 보이며 열심히 활동했고 제3세계의 기아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LA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었던 그의 저택은 자유주의 성향의 배우들의 집합처였고 브랜도는 늘 이들과 토론으로 날을 지샜지만 정작 좌파 진영에선 그의 이런 행동을 스타 배우의 허영기로 폄하했다.
1960년대 내내 트러블메이커로 악명이 높았던 브랜도를 두고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자기를 조롱하는 코미디언’이라고 썼다. 그런데 거장은 죽지 않는다는 신화를 확인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싸구려 영화에만 출연해 거의 배우로서의 수명이 끝났다고 세인들이 생각하던 그 시점에 갑자기 브랜도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출연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브랜도는 어울리지 않게 스크린 테스트까지 받아들일 만큼 열성을 보였다. 영화사 간부들은 결사 반대했지만 감독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브랜도의 출연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 브랜도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는 또 한번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출연한 것이다. 베르톨루치의 <순응자>를 숭배했던 브랜도는 불과 33세의 애송이 감독인 베르톨루치에게 자신의 배우 인생에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해줄 도박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 영화에서 브랜도는 비정상적인 성 체위의 연기를 하고 심지어 엉덩이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브랜도는 <탱고> 출연이 끝난 후 베르톨루치를 "망할 자식"이라고 욕했다. 브랜도는 즉흥 연기로 유명하다. 베르톨루치는 브랜도의 즉흥 연기술을 영리하게 부추겨 극중 인물인 폴에게 브랜도 자신의 유년기 체험을 투영시키도록 이끌었다. 영화 중반에 폴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은 실제로 브랜도가 겪었던 일이다. “영화 스타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 연기는 거지같고 지루하고 어린애 같은 짓이다. 어떤 때는 자신이 발가벗겨졌다는 비참함을 느낀다. 난 돈을 벌면 다시는 영화에 출연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이제 돈도 벌었으니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겠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끝난 후 브랜도는 남태평양에 섬을 사서 은거했다. 코폴라 감독의 78년 작품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쿠르츠 대령으로 나와 전율스런 연기를 보여준 것을 비롯해 <슈퍼맨>, <백색의 계절>, <프레쉬맨> 등의 영화에 잊을 만하면 나타나면서 브랜도는 전설이 됐다.
즉흥 연기의 기적
굴곡 많은 삶의 경력과 복잡한 사생활에 따른 여러 추문을 제쳐두고 브랜도를 평한다면 결국 그의 전설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그의 불가사의한 연기력이다. 엘리아 카잔의 대표작인 <워터프론트>에서 브랜도는 펀치 드렁크 증상을 보이는 전직 권투 선수 테리 멀로이로 나와 결국 부패한 조합 간부들을 고발해 영웅이 된다. 이 영화는 매카시즘 파동 때 동료 공산주의자들을 밀고한 엘리아 카잔과 시나리오 작가 버드 슐버그가 하고 싶었던 변명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영화였다는 것이 훗날 밝혀졌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거대한 권력과 개인의 고독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절대적인 진실성으로 묘사하는 브랜도의 연기 덕분에 고전으로 남는다. 이 영화에서 브랜도와 공연한 에바 마리 세인트는 당시 20대 초반의 풋내기 배우였으며 오디션 때 너무 긴장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브랜도는 그녀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제의했다.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은 잘 어울렸다. 감정이 격해진 에바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브랜도는 끝이 보이지 않게 막막한 장면에서 정확한 감정의 실마리를 잡아내는 데 탁월했다. <워터프론트>의 한 장면에서 브랜도는 에바 마리 세인트와 서툰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그녀에게 장갑을 떨어트리라고 제안했다. 에바 마리 세인트는 그대로 했다. 브랜도는 장갑을 집어 들어 자기 손에 꼈다. 브랜도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장면은 그 두 사람이 그대로 헤어지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매우 추운 날씨였기 때문에 에바 마리 세인트는 장갑을 돌려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대 최고의 연기 지도자였던 엘리아 카잔은 브랜도의 이런 현장 즉흥 연기를 장려했다. <워터프론트>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말론 브랜도와 그의 형 역인 로드 스타이거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찍을 때 브랜도는 각본의 대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평생 이용한 형에게 털어놓는 감정이 정확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브랜도가 즉흥 대사를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화가 나 있었던 시나리오 작가 버드 슐버그는 노발대발했다. 그때 카잔은 다시 즉흥 연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말론 브랜도는 이 장면에서 일생 일대의 명연기를 보여 준다. 그는 자신을 협박하는 형에게 거의 애원하는 듯한 어조로 형을 책망하면서 형이 겨눈 총을 부드럽게 밀어낸다.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들릴 듯 말 듯 울 듯 말 듯 오래 품고 있었던 인생의 원망을 토로하는 그 감정은 말론 브랜도 그 자신의 과거 삶에서 뽑아낸 고통스런 감정의 변형이다. 브랜도는 이 장면을 찍고 감정적으로 탈진해 곧바로 현장을 떠났으며 그런 그의 행동에 격분한 상대역 스타이거는 브랜도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
브랜도의 인물 묘사의 관건은 그의 눈이다. 이 영화에서 브랜도는 비스듬히 주위를 바라보는 눈길로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알기도 귀찮다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그의 이런 눈길 아래 내부적으로는 격렬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는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일부러 둔감한 심리적인 귀머거리다. 그랬던 그가 애인 에바 마리 세인트와 형 로드 스타이거에게 일어난 비극을 접하고 서서히 분노를 폭발시킨다. 부도 노동조합의 폭력배들이 고리에 걸어 매달아놓은 형의 주검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브랜도는 간신히 형의 몸에 손을 대고 주검 옆의 벽을 손으로 짚지만 눈으로 주검을 보지는 못한다. 이 힘들게 누르는 표정과 몸짓 하나 하나는 심리학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엘리아 카잔의 액터스스튜디오 판 연기의 절정이었다. 이때 브랜도는 자신의 체험을 기초로 등장인물의 감정 깊숙한 곳에 내려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극한의 분노로 자신을 학대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성장기를 보낸 그에게는 많은 분열, 고통, 수치심이 있었다.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그는 즉흥연기로 자신을 시험하는 가운데 그런 감정을 응집력 있게 끄집어낸다. 보는 사람에겐 대단한 구경거리였지만 당사자인 그 자신에게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역겨운 짓’이었던 것이다.
불멸의 연기로 평가되는 <대부>에서 브랜도가 해낸 것도 바로 그 경이적인 집중력이었다. 브랜도는 이 영화에서 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니라는 캐릭터의 역설을 창조했다. 영화 첫 장면에서 강간당한 딸의 복수를 청하는 이웃의 부탁을 들어주라고 아랫사람에게 지시를 내린 후 브랜도는 “우리는 살인 청부 업자가 아니야. 남들이 뭐라 하건 말이야”라고 말하는 도중에 장미의 향기를 맡는 행동을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브랜도는 살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정하게 고양이를 쓰다듬곤 하는 마피아 보스 돈 콜레오네로 영화 연기의 정상을 장식했다. 영화의 말미에 죽기 직전 돈 콜레오네가 아들 마이클과 정원에서 한담을 나눌 때 브랜도는 "딱 한 번 돈 콜레오네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을 듣고 싶다"고 감독 코폴라에게 제안했다.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돈 콜레오네는 인자한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아들 마이클을 위로한다. 마이클이 "아들이 만화책을 본다"고 말하자 그는 "그 애가 만화책을 본단 말이지"라고 되풀이한다. 이 장면에서 브랜도가 연기한 늙은 보스의 품격은 할아버지의 인자한 자부심과 자기 시대를 보내버린 군주의 쇠퇴를 동시에 강조했다.
인간으로는 천사, 배우로는 괴물
말론 브랜도가 스크린에서 보여 준 연기는 어떤 인습에도 구속되지 않고 어떤 틀도 만들지 않은 채 현장에서 그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물의 생명력에 비밀이 있었다. 말론 브랜도는 현장에서 대사를 외우지 않기로 유명했다. <지옥의 묵시록>을 찍을 때 브랜도는 불과 1주일 동안 출연해 1백만 달러를 받는 계약인데도 4~5일 동안 즉흥 연기를 하면서 허송세월했다. 광분한 감독 코폴라는 고래고래 소리쳤지만 브랜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실제 삶에서 사람들은 다음 말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않은 채 말하기 때문에 연기도 그 패턴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찍을 때 브랜도는 각본상의 인물보다 촬영 중인 인물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영화 속의 인물을 그리기를 그만두고 말론 브랜도에게 숨어 있는 걸 꺼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말론의 마스크를 벗기고 싶어 했고 결국 벗겼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끝난 후 말론 브랜도는 베르톨루치가 자신의 치부를 스크린에 끄집어내어 치욕을 안겨줬다고 주장했으나 사석에서 베르톨루치에게 미소를 띠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나를 정말 알아냈다고 생각하나?” 베르톨루치는 훗날 말론 브랜도가 인간으로서는 천사였으며 배우로서는 괴물이었다고 회고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그 유명한 즉흥 연기 장면에서 중년 남자 폴을 연기하는 말론 브랜도는 자신의 어린 시절 체험을 끄집어내 고백을 한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에 사나웠고 창녀를 품으러 다녔고 술집에서 싸움질이나 하는 남성 우월주의자였지. 아버지는 강인했어. 어머니는 아주, 아주 시적이었고 하지만 역시 술주정뱅이였어...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고는 어머니가 체포되었던 것뿐이야. 벌거벗은 채로... 우리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지. 농사 짓는 동네였어...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갔는 데... 어머니가 없는 거야. 감옥 같은 데로 간 거지... 매일 아침과 밤에 우유를 짜야 했어. 그건 마음에 드는 일이었어. 그런데 한번은 여자 애를 데리고 농구 시합을 구경하려고 정장을 했어... 아버지가 이러는 거야, 너 젖 짜야 하잖아? 내가 아버지에게 말했지. 대신 좀 짜주실래요? 안 돼 어서 가서 젖이나 짜. 난... 서둘렀어. 신발을 갈아 신을 시간도 없었지. 그 바람에 소똥이 잔뜩 묻은 구두를 신고 갔지... 차에서도 소똥 냄새가 났어... 그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 금방이라도 코에 소똥 냄새가 어른거리는 듯한 이 고통스런 기억의 시연을 통해 말론 브랜도는 스스로 인물을 창조하는 위대한 배우의 면모를 증명해 보인다.
실제 영화 속의 그 순간을 살며 응축했던 그 감정의 살은 연기 기술로 얻어진 것만은 아닐 것이다. 브랜도가 20세기 최고의 배우로 추앙받는 것은 자기 내부의 그 고통과 대면할 수 있는 그 용기, 그걸 감당하느라 바쳤던 에너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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