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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기도 (The Holy Spirit and Prayer)
성 경 : 로마서 8:26-29
온전하게 한결같이, 묵묵히 충성하시는 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는 대전에 있는데 그 교회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교우가 천 몇 백 명이 되어 장로님 중에 박사 아닌 분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며칠 전에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이제 아버님마저 소천하시고 나니 고향의 의미가 없어졌어요. 해마다 가는 고향에 이번 설에는 가지 않았더니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어요. 영적인 고아도 이럴 거에요.”
설이 되면 해마다 빠짐없이 달려갔던 고향인데, 아무도 계시지 않으니 고향의 의미가 없어졌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늘 오는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항상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떠나가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의미가 없어질 일이 없습니다.
비방할 일이 많고 비판할 일이 많아도 교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그 눈으로 누가 왔는지,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리는지, 어떻게 충성하는지 다 살피십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차이가 너무 큽니다. 그렇지만 죽은 사람보고 아무도 개나 돼지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가치가 없습니다.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느끼지도 못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사람의 값을 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종교도 종교입니다. 우상을 섬기든 무엇을 섬기든 종교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런 종교는 생명이 없으니 가치가 없습니다.
백화점의 마네킹은 좋은 옷을 입고 귀한 모습으로 사람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생명이 있습니다. 왜입니까? 성령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생명입니다. 성령은 70년, 80년 살다가 가는 생명이 아닙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하고 음란하고 더러운 사람이라도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아멘!”하십시다. ‘아멘’ 하는 것은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빌립보서 3장 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라는 말씀대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이 서울이나 부산, 창원에 있어도 그것은 곧 없어지는 임시적인 것이고, 영원한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family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천국 시민으로 사는 것, 그 정도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서 17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들은 상속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예수님의 것인데,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니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것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도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천국 시민으로 도장 찍어 주신 다음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가만히 계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떠나가지도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고 하나님의 자녀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해도 떠나가지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떠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성령을 주시면서 “얘가 잘못하거든 나오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거기에 있으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영원히 계십니다. 영원히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갈 때 손님으로 그냥 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같이 우리를 돕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The comforter, The counselor, 위로자, 상담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못해도, 사고를 쳐도 끝까지 우리를 안아주고 도와주시는 성령님은 어머니와 같습니다.
존 칼빈은 “성령님은 어머니같이 성도를 따뜻하게 돌보고 돕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미지는 심판이나 채찍질로, 어머니의 이미지는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아버지도 자식을 사랑하고 이해하지만, 뜨거운 정은 어머니가 더 강합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싫어해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며 자기 고집대로 삽니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자식이 싫어하는 것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세상이 어지러운 때라 희한한 어머니도 가끔 있지만, 대체로 어머니는 자식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한 동물학자가, 부성애와 모성애 중 어느 쪽이 더 강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해보았답니다. 뜨겁게 달군 강철판에 울타리를 친 다음 거기에 어미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를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답니다.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을 치던 원숭이들이 조용해져서 뚜껑을 열어 보니, 어미 원숭이는 타 죽었고, 새끼 원숭이는 어미 원숭이를 밟고 살아 있었답니다. 그 다음에는 뜨거운 강철판에 아빠 원숭이와 아기 원숭이를 넣었다가 뚜껑을 여니, 아빠 원숭이가 아기 원숭이를 밟고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원숭이와 사람의 심성이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식이 사고로 두 눈을 잃게 되면 먼저 눈을 빼주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신장이 상해도 제일 먼저 신장을 떼어주기 원하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안아 주고 도와 주시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알려 주십니다.
저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에 교회에 와서 계속 연구실에 있습니다. 집이 가깝지만 오고가는 시간이 아까워 아침을 먹으러 가지도 않습니다. 교회에 전화가 와도 받지 않습니다. 전화를 받으면 깊이 묵상하고 있던 영적인 분위기가 깨져 손해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제 아침에도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 있었는데, 아침 8시 40분쯤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전화를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데, 어제는 자꾸 ‘전화를 받아야 돼.’하는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일어나 전화를 받았더니, 오늘 밤부터 시작되는 집회 때 설교를 하실 손인식 목사님의 전화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양곡교회입니다.”
“아니, 지용수 목사님 아니세요? 어찌 목사님께서 직접 전화를 다 받으세요?”
손인식 목사님께서 제게 중요한 부탁을 하시기 위해 전화를 하셨는데, 만일 제가 그때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목사님께서 우리 직원들이 출근할 때까지 20분 정도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제가 전화를 받지 않는데, 어제 아침에는 저도 모르게 받았던 것은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셔서입니다.
며칠 전에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머리를 깎으러 동네 목욕탕에 있는 단골 이발소에 갔습니다. 이발료가 칠천 원인데 저는 늘 만 원을 줍니다. 그러니 제 머리를 얼마나 정성들여 깎아주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머리는 20분 정도 깎아 준다면 제 머리는 30분 정도 깎아 줍니다. 그날 머리를 깎은 다음에 목욕탕에 가서 냉탕에 앉아 있는데, ‘기도 준비해라. 오늘 네가 기도해야 된다.’하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날 오후에 중요한 모임이 있었지만, 그 모임에서 제가 기도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갑자기 기도해야 된다는 감동을 받고 기도 준비를 했는데, 그 모임에 가니 제가 기도를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모르는데 성령님께서는 아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참 신비롭습니다.
나는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해야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나는 식당을 어떻게 경영해야 할지 몰라도 성령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니 늘 성령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아이디어는 완벽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내놓은 아이디어로 자기가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사인 한 아버지가 자기 아이디어로 아들을 도와주다가 그 때문에 아들은 물론 자기도 낭패를 당했습니다. 검사는 머리가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아이디어로 스스로를 어렵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큰 수박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마다 수박을 도둑맞으니, 이 사람이 ‘이 농장의 수박 중 어느 하나에는 농약을 주입했음. 따먹고 죽어도 책임지지 않음. 주인백’이라고 크게 써서 울타리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니 누가 수박을 훔쳐 가겠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 수박 농장의 울타리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농장의 수박 중 두 통에 농약이 들어 있음. 하나는 주인이 알고 하나는 도둑이 앎.’
그런 글이 붙어 있으면 누가 그 농장에서 수박을 사 먹겠습니까? 주인은 자기의 방법으로 해결될 줄 알았는데, 상대방이 한수 위였습니다.
그런데 한 의료 선교사님은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답니다. 그 선교사님이 원주민들을 섬기면서 병원 앞마당에 파인애플을 많이 심었는데, 원주민들이 자꾸 그것을 캐 갔답니다. 선교사님이 온갖 방법을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는데 성령님께서 주시는 아이디어로 ‘이 파인애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써 놓았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들이 캐 가지 않았답니다. 그들이 조금만 아파도 하나님의 것을 훔쳐 가서 아픈 것은 아닌가 하고 겁이 나서 가져가지 않은 것이랍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아이디어가 최고입니다. 우리의 어떤 문제든 성령님께서는 그 답을 갖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우십니다.
본문 26절에『이와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님께서는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후 통성기도를 시작할 때, 저는 “하나님, 우리가 기도할 때 교우 한 분 한 분을 성령으로 도와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누구와 대화를 잘 하려면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부부의 마음이 통하면 싸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마음을 모르고 말을 주고받으니 상처를 주고받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마음이 서로 다르니 분쟁과 아픔과 갈등과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 아십니다. 우리는 빌 바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다 아시는 성령님께서는 이렇게 저렇게 구하라 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일본에 큰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동생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동생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그러면 안 됩니다. 형제가 어렵게 살면 도와주어야 합니다. 조카의 공부도 시켜주어야 합니다. 잘 사는 형제가 형편이 어려운 형제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형제가 아닙니다.
그 부자 형은 구두쇠였지만 그의 부인은 어질고 착해서, 자기 남편이 시동생을 도와주지 않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시동생에게 돈을 주며 말했습니다.
“도련님, 형님이 좋아하는 술은 ○○이고, 좋아하는 음식은 ○○이니 이 돈으로 사 오세요.”
부인은 그날 밤에 남편의 기분을 좋게 한 후 애교를 부리며 말했습니다.
“여보, 도련님이 늘 당신 생각을 하면서도 형편이 여의치 못해 한 번도 마음을 못 썼답니다. 그래서 이번에 큰마음 먹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 왔답니다.”
그리고 고급 술과 음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을 동생이 사 왔어?”
형이 그 술을 한 잔 마시니 기분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놈이 이제야 철이 들었구먼.”
철이 들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구나.’하고 철을 아는 것이 철이 드는 것입니다. 철이 들어야 ‘이제 내 나이가 인생의 여름이구나. 곧 가을이 오고 낙엽이 지겠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는 부자인데, 도련님은 어렵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좀 도와줍시다.”
“도와주지. 어떻게 도와줄까?”
“집 한 채 사주고, 장사 밑천이라도 대 줍시다.”
부인은 남편이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을 때는 무엇이든 쉽게 들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동생을 도와주기 위해 연출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도 잘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쉽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을 잘 아십니다. 어떻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가를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서 하나님의 것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셔도 우리가 기도를 하지 않으니 친히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로마서 8:27)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왜 탄식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시간에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기도하지 않으니 ‘저렇게 기도하지 않다가는 함정에 빠지게 될 텐데…….’하시며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또 성도가 처한 상황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아픔은 엄마의 아픔이 되듯이, 여러분과 저의 아픔은 성령님의 아픔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탄식하며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또 죄가 관영한 세상에 사는 우리가 이리저리 유혹에 넘어지는 것을 보고 험한 세상 때문에 탄식하시면서 “하나님, 세상이 악해서 아무개가 실수했으니 용서해 주세요.”하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우리가 기도에 게으르거나 신앙에 낙심하거나 혹 교회를 떠나도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계속 기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고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혹 교회를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성령님께서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한 청년이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사춘기 때 세상에 빠져 술과 방탕에 자신의 몸을 던졌습니다. 어머니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심하게 반항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다리가 아파.”
“네가 주일을 지키지 않고 교회에 가지 않아서 그래.”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병원에 갔더니 골막염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병이 너무 심해 잘못하면 다리를 잘라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청년이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불효했습니다. 주일을 범했습니다. 제 다리를 자르지 않게 해주시면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며 살겠습니다.”하고 기도했는데, 놀랍게도 골막염이 다 나았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서 공부한 후 위대한 목사님이 되었는데, 그 청년이 바로 우리나라를 은혜의 바다로 만든 이성봉 목사님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님들이여, 철부지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힘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살다가 어려우면 결국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교회에 나왔던 사람은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하고 돌아옵니다.
세계적인 설교가 저드슨도 목사님의 아들이었는데 방탕했습니다. 그런데 대학 시절에 여행 중 허름한 여관에 들어갔다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관에서 잠을 자는데 옆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 후에 곧 조용해졌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여관 주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함께 그 방에 들어가 보았더니 한 사람이 목매어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도 저렇게 끝날 수 있지 않는가? 내 인생의 끝도 저렇게 비참하면 어떻게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하나님을 찾고 새사람이 되어 위대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데밍 여사는 런던 백화점을 돌다가 한 옷 가게에서 옷을 팔고 있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는 순간, ‘하나님의 딸이 지금 하나님을 떠나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사는 그 가게에 들어가 그 아가씨에게 맞을 만한, 아주 비싼 옷 한 벌을 사서 아가씨에게 주며 말했습니다.
“아가씨가 이 옷을 입으세요. 그리고 낡아서 못 입게 될 때 제게 돌려주세요.”
데밍 여사가 고급 옷을 사서 자기에게 주니 아가씨가 깜짝 놀랐습니다.
“손님, 이 옷은 손님께서 사신 것인데 다 낡아서 못 입게 될 때 돌려 달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가씨, 내 느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오래 전에 예수님의 보혈로 아가씨를 샀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자신이 낡아서 못 쓰게 될 때나 예수님께 오려 하고 있군요.”
그러자 아가씨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제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다음에 처음 들어보는 말이에요.”
아가씨가 그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신 성령님의 기도 응답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일에는 돈을 아끼면 안 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마음도 쓰고 돈도 써야 됩니다. 지난주에도 여러분이 헌금하신 봉투를 보며 기도하다가 “아버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카가 교회에 오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저희 병원의 외과 과장님을 등록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 제목들을 보았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살펴 주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본문 28절 말씀대로 역경이나 순경이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세미나 강사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그가 강연하러 가서 보니, 강연할 때 신는 하이힐을 비행기에 두고 내렸습니다. 할 수 없이 비행기 안에서 신었던 운동화를 신고 강단에 올라가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는 시간에 굉음이 들리면서 유리창이 깨지고 총탄이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엎드려!”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조금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뒷벽에 그의 키보다 3cm 높이 총탄이 박혀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하이힐을 신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의 하이힐은 굽이 7cm이었으니 말입니다. 그가 비행기 안에 구두를 놓고 온 것이 그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었습니다.
그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혹 구두를 잃어버려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고가 날 것을 그만큼 해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아주 섬세하십니다. 큰 일만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도 도우십니다. 사람을 구원하고 전도하는 일만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중에서도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위기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미국의 치킨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닭고기가 많이 남아 주인이 종업원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가지고 가게 했습니다. 아가씨도 랩으로 싼 닭고기를 가지고 식당 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날 손님들이 늑장을 부려 버스를 놓쳤습니다. 집까지는 길이 먼데 택시비도 없어서 걸어갔습니다. 너무 늦은 밤이라 ‘주여, 무사히 가게 해 주세요.’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칼을 뽑아 들이대며 “입 닥치고 따라 와!”라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리 용기 있는 사람이라도 꼼짝 못하는데, 어린 아가씨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 남자를 따라가면 폭행을 당할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속으로 ‘주여! 주여!’하는데, ‘닭고기를 먹어라. 닭고기를 먹어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폭행을 당할지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닭고기를 먹어라.’하는 음성이 세 번이나 들리니, 아가씨는 덜덜 떨면서도 랩을 풀어 닭고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먹을 정신이 있었겠습니까? 먹지도 못하고 그냥 들고 가는데, 골목길에 앉아 있던 큰 개 두 마리가 닭고기 냄새를 맡고 쫓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아가씨가 닭고기를 던져 주니 개들이 아주 맛있게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틈을 타서 아가씨가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었답니다.
여러분, 치킨 레스토랑의 주인이 종업원들에게 닭고기를 가지고 가게 한 것도 우연이 아니고, 닭고기를 먹으라는 음성이 들렸던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발톱 하나까지 생각합니다. 옷 하나, 신발 하나까지 다 마음을 씁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을 잘 압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알듯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가 발톱을 깎았는지, 깎지 않았는지를 아십니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것을 자기는 몰라도 성령님께서는 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본문 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아들의 형상을 닮도록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미리 정해 놓으셨는데, 그 정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 합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합니다. 대통령은 어디에서나 같은 말씀을 하셔야 되고, 무게 있는 말씀을 하셔야 되고 국가를 생각하는 말씀을 하셔야 됩니다. 걸음걸이도 대통령다워야 되고, 웃음도 대통령다워야 됩니다.
설교하는 사람은 설교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이발소에서 이발을 할 때도 설교하는 사람답게, 물건을 살 때도 설교하는 사람답게, 운동을 할 때도 설교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한 할머니가 새벽기도하고 나오면서 이웃집 수박 밭에 들어가 수박 한 통을 뚝 따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천하의 모든 것이 주의 것인 줄로 믿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 수박을 집에 갖고 가서 자르니 잘 익었더랍니다. 그러니 할머니가 또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이 수박으로 증거하시네요.”라고 하더랍니다.
김해의 한 집사님은 교회에서 기도하고 나와서는 신발 가게에 들어가 고무신 한 켤레를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켰답니다. 주인에게 뺨을 왕복으로 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 부끄러워 교회에도 나오지 못했답니다. 전도사님이 심방을 갔더니, 그 집사님이 “괜찮아요. 주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하더랍니다. 남의 가게에 들어가 신발을 훔치다 맞아 놓고 어찌 그런 말을 한단 말입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렸으면 기도하고 예배드린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린 기도와 예배가 생활로 이어져야 됩니다. 직장에서 기도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기도하는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마치고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앞에 차가 막혀 있습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빨리 가야 하는데, 앞 차의 운전자는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나옵니까?
“제기랄! 남의 사정도 생각해야지.”
그러다 5분을 더 기다리면 어떻게 됩니까? 열이 올라서…….
어떤 분이 ‘교회 주차장마다 은혜가 가득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배 시간에 받은 은혜를 주차장에 다 쏟아버리고 가니 주차장에 은혜가 꽉 차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동차가 잘 빠지지 않아도, 은혜를 받고 기도한 사람이라면 ‘아, 인내를 훈련하시는구나.’하며 주기도문을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활에, 매사에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격차가 심한 자녀가 아니라, 맏아들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도 닮지만 형제끼리도 서로 닮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닮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닮은 흔적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다운 것입니다.
성령님은 어머니 같으십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것, 헝클어진 것도 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답게 살도록 우리의 생활을 이끌어 주십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
왜 사과나무입니까? 사과를 맺으니 사과나무입니다. 왜 배나무입니까? 배를 맺으니 배나무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에 민감해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고, 성령님의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성령님의 기도로 응답을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생활해서 귀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다운 삶을 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양곡교회 지용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