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2016년 11월호) ‘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비나 시크리 前 장관의 ‘비폭력 평화주의’②
용기! ‘비폭력의 용기!’를
‘대화할 수 있는 자’가 ‘용자’
△인도의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가 재래식 물레로 옷감을 짜는 모습.
⑥ 인류는 ‘갈림길’에
반세기 전, 연이은 폭력이 해결되지 않자 간디는 목소리를 높였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도덕적으로 짐승보다 나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바야흐로 인류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이라는 ‘정글의 법칙’이냐, 아니면 비폭력이라는 ‘인류의 법’이냐,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 지금 세계는 좋은 기회를 손에 쥐고 있다. 새로운 역사를 열 기회다. 다음과 같이 선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우리는 이번 테러 사건을 ‘인류의 법’에 대한 도전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같은 ‘정글의 법칙’에 따르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무력으로 해결하기보다 아랍 세계와 위대한 대화를 시작할 것을 선언한다. ‘증오의 큰불’에 기름을 붓기보다 일찍이 없었을 만큼 ‘대화의 홍수’로 불을 끄고 세계를 윤택하게 하는 길을 선택하겠다.
이 참극은 21세기 첫해에 일어났다. 이 2001년을 우리는 ‘아랍 세계와 대화’하는 원년으로 삼고 싶다. 그것이 이러한 비극을 근절하는 유일한 최선의 선택이며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올바른 길이라고 믿는다.”
만약 이렇게 선언하고 실행한다면 후세의 역사가는 분명히 극찬할 것이다. 대악(大惡)이 일어나면 대선(大善)이 온다. 그러나 대선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대선을 가져오는 것은 언제나 용기다.
지금 ‘비폭력의 용기’ ‘대화하는 용기’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듣는 용기’ ‘복수심을 억누르고 이성에 따르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다.
⑦ 국제사회에도 ‘법치’를
그리고 범행자에게는 유엔이 중심이 돼 ‘테러리스트를 국제적인 법정에서 심판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국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을 체포해 정식으로 재판 절차를 밟아 판결하고 형을 집행한다.
피해자가 직접 범인에게 복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보복으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가 된다. 그것이 오랜 시간을 거쳐 인류가 정비한 ‘법에 따른 지배’다. 그래서 ‘법치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도 국제사회만이 그러한 절차 없이 느닷없이 ‘죽음에는 죽음’이라는 복수를 인정하는 것은 이상하다.
예전부터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설립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이것은 국제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불러오는 ‘제노사이드(집단살해)’, ‘인도(人道)에 대한 죄’, ‘내전도 포함한 전쟁 범죄’, ‘침략죄’ 등을 재판하는 상설 법정이다.
이미 존재하는 ‘국제사법재판소’가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데 반해 ‘국제형사재판소’는 개인의 형사책임을 추궁한다.
나는 지금까지도 ‘국제창가학회(SGI)의 날 기념 제언’ 등에서 이 구상에 지지를 표명했는데 지금도 ‘조속한 설립을’ 주장한다. 참고로 미국도 일본도 설립 조약에 비준하지 않았다.
⑧ ‘비폭력 국가’는 가능하다
우아한 사리(인도나 파키스탄의 힌두교 여성이 입는 옷) 차림의 시크리 장관이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국가 간에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국민과 국민 사이의 이해’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인도문화관계평의회는 바로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 ‘문화 교류’를 위한 단체다.
창가학회의 ‘인도청년문화방문단’도 시크리 장관에게 크게 신세를 졌다. 공항까지 마중 나오셨고, 단원 한 사람 한사람과 악수하며 환영해주셨다.
“장관은 참으로 빛나는 여성입니다”라며 한 여성 단원은 감동했다. “장관이 있는 곳은 환하게 빛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제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완벽하게 자신을 컨트롤하는 사람”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델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외무부에 들어간 수재로서 지금은 말레이시아 대사를 역임하고 있다.
나는 시크리 장관에게 “아무쪼록 ‘정신 대국 인도의 빛’을 일본에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아소카, 간디, 네루전’을 실현했다.(1994년)
아소카 대왕은 전쟁의 잔혹함을 눈으로 직접 보고 불교에 귀의해 “무력 지배가 아닌 법(다르마)에 따른 지배여야 한다”고 말한 고대의 성왕(聖王)이다.(기원전 3세기경)
“비폭력 국가가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에 간디는 “가능합니다. 실례로 아소카 왕이 다스린 국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례는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시크리 장관은 “간디의 비폭력도 근원은 불교이니까요!”라고 말씀하셨다. 네루 초대 총리는 간디의 직제자이다. 1957년에 일본에 오셨을 때는 폭력화되는 세계를 우려해 “수소폭탄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더 큰 폭탄이 아니라 자비정신이라는 폭탄입니다”라고 강연하셨다.
우리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이 ‘원수폭금지선언’을 발표하신 지 한 달 뒤였다.
⑨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용자’
‘아소카, 간디, 네루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도 쪽에서 제시한 ‘치유의 손(힐링 터치)’이라는 전시회 주제가 처음에는 얼른 와 닿지 않은 일본인 실무진도 있었던 것 같다. ‘치유’라는 말이 지금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탓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큼 ‘비폭력’의 핵심을 건드린 주제도 없다. ‘폭력’은 ‘거칠어진 마음’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오만함이 물집처럼 부풀어 오른 마음. 무력감에 초조해져 날카로워진 마음. ‘인생의 의미’에 대한 목마름으로 메말라버린 마음. 열등감으로 움츠러들고 바싹 말라버린 마음.
상처받은 자존심이 분노를 폭력으로 발산하려고 자세를 취한다. 사람을 때려눕혀야 쾌감을 느끼는 폭력 문화가 퍼지고 대중 매체로 증폭된다.
간디에게 배운 미국의 인권 지도자 킹 박사는 “영혼이 거칠어진 사람은 비폭력을 실천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달빛이 미친 듯한 더위를 치유하듯 월광의 나라 인도의 빛이 평화의 정신을 퍼뜨려주기를 나는 바랐다.
치유 받아 평화로워진 마음에서 ‘겸허함’이 생겨나고, 겸허함에서 ‘듣는 마음’이 생겨나고, ‘듣는 마음’에서 ‘상호 이해’가 생겨나고, 상호 이해에서 ‘평화로운 사회’가 생겨난다.
시크리 장관은 환경 문제에 관한 심포지엄에서도(1992년) ‘환경에 대한 존경심과 인간이 지녀야 할 겸허함이 해결의 열쇠’라고 발언하셨다. 비폭력은 최고의 겸허함이고 최고의 용기다.
네루 총리는 “스승 간디가 가르친 내용의 핵심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증언하셨다. “강자는 보복하지 않는 법이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용자(勇者)이다.” 이것이 마하트마의 가르침이다.
⑩ ‘미래는 여성의 것’
△한국·네팔·중국 등의 불교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법화경-평화와 공생의 메시지전’에 전시돼 있는 인도와 그리스에서 통용된 메르난도스 1세 주화(앞면). 서울 구로구 한국SGI글로리홀 특별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는 12월 2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 개회식에는 네루 집안을 대표해 소냐 간디 씨가 오셨다. 네루 총리의 손자인 고(故) 라지브 간디 총리의 부인이다. 돌이켜보면 라지브 간디 총리도 자폭 테러에 희생돼 돌아가셨다.
총리와 일본에서 만난 나는 총리의 평화에 대한 비원(悲願)을 부인과 이야기하며 부인이 총리의 유지(遺志)를 다기지게 이어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인도에서 처음 뵈었을 때보다 웃는 얼굴이 더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냐 간디 씨도 그렇고, 시크리 장관도 그렇고 이 전시회도 많은 여성에게 신세를 졌다.
나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디는 ‘(폭력이 야수의 법칙이고) 비폭력이 인간의 법칙이라면 미래는 여성의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이다.
아소카 대왕은 ‘무력주의’를 ‘평화주의’ ‘문화주의’로 180도 전환했는데 ‘그 배경에는 대왕 부인의 영향이 있었다’고 인샤협회의 알 타리브 소장이 말씀하셨다. 문화관계 평의회의 크마르 부장관과 함께 대화했을 때였다.
소장도 여성인데 “아소카 대왕의 부인이 먼저 불교도가 돼 왕에게 영향을 줬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인 덕분에 대왕은 처음으로 평화와 비폭력을 생각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⑪ 타고르의 ‘일본에 보내는 경고’
끝으로 시인 타고르의 ‘일본에 보내는 충고’를 써두고자 한다. 인도문화관계평의회의 원류는 타고르의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1924년 타고르가 중국에 갔을 때였다. 인도인 친구가 동행한 일본인에게 물었다. “일본은 왜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지 않는가?”
일본인은 직접 대답하지 못하고 같이 있는 독일인에게 물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타고르는 일본인의 이런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서양이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일본인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서양에서 얻은 “교과서를 통째로 외우고 있을 뿐이다.”
이 생도는 ‘힘의 신봉자’인 교사의 몸짓을 흉내 내고 있다. 말투를 흉내 내고 있다. 그리고 “만점을 받아 등을 두드려주면 우쭐한다.”
타고르는 일본인이 자신들의 ‘동양 문명의 평화주의’를 미련 없이 버리고 ‘서양의 미숙한 생도’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사실 서양이 미망(迷妄)에서 깨어나도록 함께 일해 줬으면 했는데 말이다.
일본인은 그저 서양이라는 버스를 놓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초조해할 뿐이다. 그 결과 자기 나라가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타고르의 충언은 지금 다시 하늘에 울려 퍼진다. “그(일본인)는 상호 파괴의 악순환 속에 맹렬한 기세로 독일과 프랑스를 궤멸로 몰고 가는 적개심의 무서운 의미를 알지 못한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것은 그로부터 9년 뒤였다.
월간중앙(2016.11) 비나 시크리 前 장관의 ‘비폭력 평화주의’②.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