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 약칭 YS, 1927년 12월 20일(음력 12월 4일) ~ , 경상남도 거제군 장목면 출생)은 대한민국의 정치가·서예가·종교인으로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이다. 1954년 26세에 3대 국회 민의원에 당선되어 대한민국 역사상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당수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김영삼 초산 테러 사건 등의 탄압을 받았다. 1979년 10월에는 YH 무역 여공 농성 사건 이후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유신정권은 이 발언을 문제삼아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을 일으켜 부마항쟁을 촉발했다. 1983년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을 기해 23일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6월 항쟁 이후에는 통일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협의회을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했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타협없는 투쟁으로 인망을 얻었으나 1990년 3당 합당에 참여하여 재야 인사들의 비판을 받았다. 1993년, 대한민국의 문민정부 제14대 대통령(1993년 2월 ~ 1998년 2월)에 취임하여 32년만의 민간인 정권을 수립하였다.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 목사 김홍조의 아들, 본관은 김녕(金寧)이다.
예술인과 작가들의 반정부와 사회비판을 전면 허용하였고,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수감된 박노해, 김남주 등의 시인들을 석방하였으며, 군부 정권에 의해 기소된 마광수 등의 예술인들을 석방하여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웅변과 단편 연설에 능하였으며,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 도입, 차명 부정 계좌 단속 및 처벌,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명문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등 비롯해 조선총독부 철거를 추진하였고, 신군부, 하나회와 관련단체 해체, 대한민국 국군 내 사조직을 해산하고 정치군인들을 처벌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와 처벌,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및 5∙18 민주화운동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군사 정권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였다. 임기말 IMF 구제금융 요청으로 한때 위기를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