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22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3)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의 평화를 구하는 사람의 복
(찬송 시편122편-악보는 가장 뒷면에)
2022-3-21, 월
맥락과 의미
시편 122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세 번째 감사 시편입니다.
120편, 세상을 뒤로하고 성전으로 떠나는 마음
121편, 주님의 보호 아래 예루살렘까지 여행하는 과정
122편, 마침내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옴
성도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듯이 “너”라고 부릅니다.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사랑하는 예루살렘을 위해서 평화를 구합니다.
1. 여호와의 성에 도착한 기쁨(1-2절)
2. 여호와의 성 - 찬송과 재판(3-5절)
3. 예루살렘 - 평화의 도시를 위한 축복(6-9절)
이 시편은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완성되어 우리가 노래합니다.
4. 새로운 성전: 그리스도와 교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1. 여호와의 성에 도착한 기쁨(1-2절)
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이 여행을 시작할 때 동료 성도들이 하는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120편에서 고백한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거짓으로 비방하고 넘어뜨리려는 여호와의 집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드릴 제물과 여행 경비를 준비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며 떠났습니다. 여기서 기쁨은 “하나님께 제사 드렸을 때의 기쁨”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신명기 12:7,12; 16:15). 그 기쁨을 믿음으로 누리며 하나님을 뵐 것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올랐습니다.
2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성전을 항한 어려운 순례의 여행을 잘 마치고 성문 안에 들어서서 이렇게 외칩니다. 떠날 때에도 기쁨이 있었지만 그 어려운 여행길을 마쳤을 때에는 더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하였을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성 - 찬송과 재판(3-5절)
예루살렘 성문에 들어선 순례자는 3-5절에서 하나님의 집이 있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도시의 외관, 그 안에서 드리는 예배, 그리고 직분자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친히 다스리심을 노래합니다.
3 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예루살렘은 산 위에 있는 성인데도 매우 잘 짜여있음을 봅니다. 이 도시는 높은 곳을 평평하게 하고 건물들과 성벽을 하나로 연결하여 만들었습니다. 짜여있다는 것은 ‘연합’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성막의 천막을 만들 때 10개의 천을 하나로 연결한 것에 쓴 말입니다(출애굽기 26:6).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연합하여 예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천막이 아니라 건물로 된 성전이지만 성막이 천으로 연결되어 하나가 된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 전체가 하나로 조화를 이룹니다. 예루살렘을 예루살렘답게 하는 것은 백성이 하나로 예배하는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4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그곳으로 지파들(이스라엘의 12지파들)이 올라가네, 여호와의 지파들이”(직역). 그곳으로 12지파가 하나가 되어 올라갑니다. 그 지파들은 민족의 혈연으로 하나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지파”입니다.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시려고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 앞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지파들이기 때문에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의 전례”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세 번의 명절(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법을 주셨습니다(출애굽기 23:14-16; 34:23; 신명기 16:16). “전례”는 구약성경 다른 곳에서 “증거”라는 말로 많이 나옵니다. 특히 성막(성전)의 안쪽 공간(지성소) 안에 있는 “증거궤”라는 말로 나옵니다. 천들을 하나로 연결한 성막(출애굽기 26:6)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언약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지만 특별히 그 증거궤 위에 임재하신다고 그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증거궤 위에 임재를 나타내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목적으로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고통도 많았을 것입니다. 각자 환경은 다 달랐습니다. 그러나 다 하나가 되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 찬양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한 백성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에 찬양합니다. 인생에 여러 고통이 있었지만, 이렇게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감사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편 150:6).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5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앞서 4절에서 “그리로”와 “거기에”는 같은 단어입니다. 예루살렘의 중심, 성전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다.” “왜냐하면 거기에 정의(재판)의 보좌들이 앉아 있다”(직역). “심판의 보좌(정의의 보좌)”는 성전에 있는 “증거궤”의 두껑(은혜를 베푼다는 뜻에서 ‘시은소’라 부름)을 말합니다. 증거궤의 두껑 위에는 그룹이라는 천사가 붙어 서있습니다. 천사의 날개 사이를 여호와의 보좌라고 합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백성을 의롭게 다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다스리십니다.
여호와의 집 안의 여호와의 통치 보좌를 갑자기 “다윗의 집의 보좌”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지파를 여호와의 지파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여호와의 집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여호와께 순종하여 다윗 왕조의 왕들이 왕의 보좌 위에서 다스립니다. 왕들은 여호와의 증거궤 안에 있는 십계명의 내용에 따라 다스려야 합니다. 율법을 항상 읽으면서 여호와의 통치를 이룹니다(신명기 17:17-18).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제사장의 섬김을 통해 언약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경배를 받으십니다. 왕궁의 왕의 섬김을 통해 언약 백성을 의롭게 다스리십니다. 이 복을 받은 백성은 성전에서 감사합니다.
3. 예루살렘 - 평화의 도시를 위한 축복(6-9절)
성도들은 다 함께 여호와께 감사한 다음, 6-9절에서 다 함께 기도하자고 말합니다. 기도이기도 하지만 축복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평안(평화, 샬롬)을 세 번이나 말하면서 평화를 구하자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샬롬)의 기초”라는 뜻입니다.
6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다스리는 공동체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정의도 평화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주는 선물을 백성의 기도를 통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예루살렘은 그냥 한 장소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백성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모든 백성과 함께 공동체로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성도들만 “하나님의 공동체(교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성도들에게 “형통함을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면서 축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형통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7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이 기도는 “내 형제와 친구(이웃)”를 위해 하는 기도입니다. 예루살렘 가운데 있는 평화는 사실은 “나의 형제와 나의 친구(이웃)”가 평화를 누리도록 하는 기도입니다.
8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예배하는 공동체는 서로를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마음의 평화도 있지만 모든 삶에서의 평화입니다. 개인 만의 평화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구원과 건강, 물질적 복, 관계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8절은 성도들을 위하여 예루살렘의 복을 구했는데, 9절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예루살렘의 복을 구합니다.
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예루살렘)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예루살렘에 복(좋은 것)이 있기를 구하는 것은 거기 성전에서 예배가 바로 드려지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 나의 형제들, 나의 친구들(이웃들)”,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께 예배를 바로 드릴 수 있기 위해 예루살렘이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누리는 평화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이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이 이 평화의 목적입니다. 은혜와 평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간절한 마음입니다.
성도가 다 함께 드리는 이 기도와 축복은 대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드리는 축복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은혜를 주시고 ... 평강(평화) 주시기를 원하노라.”
믿고 복종할 일
이 시편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성전이 되셔서 우리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예수님께로 나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용서 받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므로 새로운 성전입니다. 교회로 모여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의 충만을 받읍시다(에베소서 5: 18-20).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우리는 영롱한 빛을 내는 보석처럼 된 자들입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용서 받으며 깨끗하게 됩시다. 그 큰 사랑을 베푸신 성전 되신 그리스도를 사랑합시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매일 자기를 부인하며 거룩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자라갑시다.
나는 개인으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의 한 부분으로 잘 짜여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내 형제, 내 친구”인 성도들은 다른 빛깔을 내는 보석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기고(빌립보서 2:3), 평안(평화)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킵시다(에베소서 4:3).
그리스도께서 이미 평화를 만드셨고 의로운 왕으로 다스리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이 축복을 성도들을 향하여 선언합시다. 이 기도를 드립시다.
<새로운 성전이신 그리스도와 교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1) 참 평화를 회복하신 참 성전 예수 그리스도
이 찬양을 받으셨던 하나님은 사람이 되어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의 모범을 보이시고 예루살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물론 성 또한 파괴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예루살렘을 여러 번 방문하여 “평화에 관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누가복음 19:41-44).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지 않았고, 여호와의 집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성전이신 그분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나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반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성전이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예수님은 사흗날에 참된 성전을 세우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요한복음 2:19-21).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왕으로서 마귀와 죄의 세력을 정복하셨고 온 세상을 정의롭게 다스리십니다. 제사장과 왕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찬송하던 구약 성도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참된 제사장이요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참된 성전인 된 교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진 새로운 공동체 교회를 한 몸으로 만드셨습니다(에베소서 2:13, 17).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는 이 고백, 곧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물리적인 반석이 아니라 신앙고백과 복음 위에 새롭게 새워진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시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신약의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에베소서 2:14-22).
구약의 성막이나 예루살렘 산성이 조밀했던 것은 교회가 연합되어 있는 것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아래서 “한 몸”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합니다(에베소서 4:16).
시편 122편으로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던 구약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연합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는 함께 모여 “시와 친미와 신령한 노래도 서로 화답하며 주께 노래하며 찬송”합니다(에베소서 5:19). 가정, 직업, 세속 사회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와 평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교회는 언덕 위의 집처럼 세상 가운데서 아름답게 빛납니다.
3) 완성된 도시
이 땅의 교회를 성숙시키는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새롭게 하여 이 땅에 세우십니다. 계시록 21:10 이후에 나오는 황금길로 이루어진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성이 아니라 바로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입니다(21:2,3). 그리스도 피로 깨끗해지고 성령님을 통해 거룩하게 된 여러분과 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보석의 색이 각기 다르듯이 신자는 각각 자기의 색깔이 있습니다. 루비와 사파이어는 모양과 색이 다르지만 서로 합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구성합니다.
이 하나님의 도시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친히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계시록 21:22).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21:3)이 완전해집니다. 땅의 성전은 좋은 것이지만 죄인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사람이 사는 땅과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도시는 죄가 없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광의 빛으로 우리는 보석같이 각기 다른 광채를 나타낼 것입니다.
그 영광의 도시에 들어가 살 사람들이 바로 여기 이 땅에 있는 교회의 성도된 저와 여러분입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에베소서 5:26-27) 하십니다.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대로 지금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날에 완성될 영광은 지금 이 땅에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계속 만들어가십니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교회의 예배에서 성도와 함께 기쁨으로 감사하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내게 더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
오늘 기도할 제목
-경남서부노회 80개 교회(조직29, 미조직47, 기도소4)가 말씀과 기도로 성장하도록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의 은혜를 누리며 찬양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도록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중요 단어와 흐름: 예루살렘, 여호와, 집, 평화가 각각 3번
122편에는 네 단어가 각기 세 번씩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여호와”, “집”, “평화”, 이렇게 네 단어가 각각 세 번씩 사용되면서 시 전체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집”과 관련해서는, 1절과 9절에 “여호와의 집”이 나오고, 시의 중간인 5절에 “다윗의 집”이 나옵니다. 그리고 시의 흐름을 보면 1-2절, 3-5절, 6-9절로 나누어서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예루살렘”이 그 중 첫 부분의 마지막에 나오고, 3절과 6절에서는 첫 부분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온 순례자가 그 성의 여러 면을 노래하고 있는 것을 이러한 구조를 통해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어들을 중심으로 122편을 읽으면 그 의미를 더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 3절, 잘 짜여진(바하르)
“잘 짜인”이란 말은 원래 성막을 만들 때 여러 조각을 하나로 “연결”(출애굽기 26:6,9,11)하는 것에 쓴 말입니다. 대제사장의 옷인 에봇을 만들 때 천을 “이어지게”(출애굽기 28:7) 하는 데 씁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는 하나님을 모신 그룹 천사의 날개가 “연하여”(접촉하여) 있는 데에 씁니다(에스겔 1:9,11). 이렇게 하나님께 경배하는 성막(성전), 대제사장, 천사들은 여러 개가 하나로 연합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통해 교회와 천사들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러 세력이 군사적으로 연맹하여 “다” 모이고(창세기 14:3), “교제”하고 “연합”(역대하 20:35,36,37)하는 것에 씁니다. 율법을 말하면서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은 여호와와 “어울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시편 9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