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던 결합 'SNS+게임' - 한국서 인기있는 게임… 대부분 카톡 통해 유통… 아이템 매출 21% 카톡 몫 카톡서 하는 게임 왜 인기? - 가족·친구 등 1차집단 기반… 잘 아는 사람과 게임하고… 순위까지 매긴다는 데 매력 게임업계, 판이 바뀌다 - 앱스토어·구글플레이 외에 모바일메신저라는 새로운 유통 채널 등장 美·中업체도 따라하기 - 페이스북 "게임 배급할 것 "… 실리콘밸리 유명인사들… "카톡 경영진 만나고 싶다" 모든 위대한 창조는 연결에서 비롯된다. 스티브 잡스는 "창조성이란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 개의 작은 아이디어를 결합해야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세계 게임산업 판도를 바꾼 카카오톡(카톡)과 애니팡의 연결은 IT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연결의 사례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전 세계 SNS와 게임 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NHN 부사장 출신의 조수용 JOH 대표는 "세상에 이런 조합은 없었다"며 "한국에서 나온 위대한 발견"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톡을 통해 애니팡과 같은 게임을 즐기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선 너무나 흔해 빠진 행위다. 하지만 2012년 7월 이전까지만 해도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이 연결은 왜 위대한가?
우선 SNS 업체가 돈을 벌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
요즘 한국에서 인기 게임은 대부분 카카오톡을 통해 유통된다. 이용자가 카톡에서 게임을 즐기면서 아이템을 구매하면 매출의 21%가 카톡 몫으로 돌아간다. 이는 모바일에서 제대로 된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낸 최초의 사례로 평가된다. 지난해 카카오톡 매출의 60% 이상이 게임 배급에 따른 수수료다.
카카오톡 이용자는 1억명으로 늘어났지만, 정작 회사는 설립 이후 5년 내내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 7월 말 나온 애니팡이 터지면서 회사는 2개월 뒤에 월간 단위로 흑자를 냈고, 그해 전체 결산에서도 창사 6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카카오톡의 매출은 2010년 3400만원, 2011년 18억원, 작년 458억원으로 급증세이다.
경쟁 서비스인 라인도 카톡의 성공 방정식을 모방했다. 네이버가 만든 라인은 국내에선 이용자가 적지만 일본에선 가장 이용자가 많은(4500만명, 전 세계 2억명) 모바일 SNS로 자리 잡았는데, 역시 게임 배급 수수료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게임시장의 판도도 바뀌었다. 그동안 게임업체가 모바일 게임을 사용자에게 판매하려면 안드로이드의 구글플레이나 아이폰의 앱스토어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는데,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유통 채널이 나온 것이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도
그런데 카카오톡을 통해 게임을 팔 수 있다면 다른 물건도 팔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여기에 '카톡+애니팡' 모델의 잠재력이 있다.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 같은 거대 장터가 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다. 카톡 '선물하기'에 들어가 보라. 39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선택해 결제한 뒤 친구에게 선물하면 친구는 스타벅스 매장에 모바일에 찍힌 바코드를 보이고 커피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제품 4만여개가 판매되고 있다.
나아가 모바일 SNS가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있다. 지금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IT 업체가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건설에 도전해 왔지만 미국을 제외한 어떤 곳에서도 성공 모델이 나오지 못했는데, 카톡이나 라인이 그 효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전 세계 IT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급진전하자 세계 최대 SNS 업체인 페이스북과 중국 최대 SNS 업체인 텐센트가 '카톡+애니팡' 모델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은 게임 개발사 11곳과 제휴, 게임을 모바일에 배급한다고 7월 말 발표했다. 페이스북 내부에는 카카오 벤치마킹 전담팀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텐센트도 최근 사용자 3억명에 달하는 자사 모바일 메신저 '위챗(Wechat)'에 카카오톡을 본뜬 게임 센터를 열었다.
벤처캐피탈 회사인 케이큐브벤처스 임지훈 대표는 "요즘엔 실리콘밸리 유명 인사들까지 '카카오톡 경영진과 만날 수 없겠느냐'고 요청할 정도"라고 했다.
게임업체들과 수익 모델 함께 고민
카카오톡으로 게임을 유통하자는 발상은 언제 누가 했을까? 당시 사업개발팀장을 맡았던 반승환 현 게임사업부장은 "페이스북도 사용자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친구 관계를 통한 게임으로 성공을 거뒀으니, 카카오톡도 같은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2010년 3월 카카오톡 서비스를 개시하고 몇 달 뒤부터 직원들이 하게 됐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게임업체 쪽에서도 제휴를 타진해 왔다. "카카오톡 사용자가 폭증하자 우리와 뭘 같이할 게 없을까 하고 외부에서 제휴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게임회사가 많이 접촉해 왔습니다. 당시 페이스북에서 '징가'로 대표되는 소셜 게임이 뜨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고요."
그는 "게임 개발사들을 계속 만나면서 어떻게 수익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다듬어갔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관계자들은 2012년 4월에 초기 화면의 '설정' 메뉴를 '더 보기'로 바꾼 것도 '카톡+애니팡' 모델 탄생에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현재 '더 보기'엔 '게임하기'와 '선물하기', '아이템스토어' 등 여러 부가 서비스가 서브 메뉴로 연결되고, 기존의 '설정' 메뉴도 포함돼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메뉴 변경인데, 카카오톡 관계자들은 모바일 메신저에서 콘텐츠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열어준 일대 사건으로 평가한다.
'더 보기' 메뉴가 게임을 비롯해 여러 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 나아가 생각의 공간을 마련해 줬다는 것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카카오톡은 '더 보기' 메뉴 안에 '게임하기'를 만들고, 그 공간에서 여러 게임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또 게임은 무료로 배포하되 각종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고 그 수익금은 개발사가 49%, 카카오톡이 21%, 앱스토어·구글플레이 등 마켓이 30%를 갖는 분배 모델을 만들었다.
이런 모델을 갖고 국내 게임 개발사들을 찾아다녔지만, 메이저 개발사들은 냉담했다. "카카오톡 플랫폼에 게임을 붙여 보려는데 참여해 주세요" 하면 대부분 거절했다. 결국 중소 개발사들과 제휴할 수밖에 없었고, 7월에 선데이토즈의 '애니팡', 위메이드의 '카오스&디펜스' 등 7개 게임사의 10개 게임을 선보였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이미 싸이월드에 게임을 제공하고 있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애니팡이 카카오톡에서 터졌다. 물론 넥슨이나 CJ E&M 등 메이저 온라인개발사까지도 나중에 줄줄이 카카오톡으로 들어왔다.
폭발력
애니팡처럼 카카오톡에서 하는 게임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영걸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페이스북보다 카카오톡이 훨씬 끈끈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페이스북은 업무상 지인 같은 2차적 집단을 기반으로 하는 데 비해, 카카오톡은 전화번호를 공유한 가족이나 친구 등 1차적 집단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사람들과 게임을 하고, 순위까지 매길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빠져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마트폰은 PC처럼 필요할 때 잠깐씩 접속하는 물건이 아니다. 24시간 내 곁에 붙어 있는 물건으로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에도 얼마든지 접속할 수 있다. 이동하면서도 얼마든지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하루 중 게임에 쓰는 시간이 PC 기반 SNS 게임보다 훨씬 길 수밖에 없다.
6전 7기
카카오톡이 게임 유통으로 대박을 터뜨린 것은 6번의 수익모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끝에 찾아온 '6전 7기'의 산물이었다. 카카오톡은 2006년 회사가 설립됐는데 처음 시작했던 두 가지 서비스, 소셜 사이트인 '위지아닷컴'과 '부루닷컴'이 모두 실패했다.
2009년 말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상륙하자 회사는 스마트폰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수단 개발에 집중하는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그래서 2010년 3월 나온 게 카카오톡이었다. 사용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적자는 늘어갔다. 돈은 안 들어 오는데 관리 비용만 커졌기 때문이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카카오톡과 함께 나온 카카오수다(트위터와 비슷한 1대 다중 소통 수단), 카카오아지트(블로그와 비슷한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네 번째 도전은 앞서 설명한 '선물 쿠폰'이었다. 그러나 수익은 미미했다.
다섯 번째가 2011년 10월 시작한 '플러스 친구'다. 친구의 대상을 백화점, 브랜드, 상점으로 확대했다. 사용자가 업체와 플러스 친구를 맺으면 업체가 해당 사용자에게 메시지를 보내주는 식이다. 해당 업체에 마케팅 비용을 받는 모델이었지만 역시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2011년 말 여섯 번째 도전은 '이모티콘' 서비스였다. 웹툰 작가들이 만든 이모티콘을 사용자들이 구입해 친구끼리 대화에 사용하도록 한 것인데, 판매 금액을 회사와 웹툰 작가가 5대 5로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대박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잘 팔려나갔다. 이는 일곱 번째 도전, 즉 게임 유통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카카오톡 측은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