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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_ 제자의 길(소설 ‘신·인간혁명’에서 배운다)]
광포(廣布)의 사명을 완수하라
대확신은 어떠한 어려움도 타개하는 힘이 된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집필 투쟁을 돌아보는 기획특집 ‘제자의 길-소설 <신·인간혁명>에서 배운다’이다. 이번에는 제8권 특집으로 전체적인 줄거리를 비롯해 연찬해야 할 불법(佛法) 철리의 관점과 소설에 그려진 주옥 같은 격려를 소개한다. 또 여상락 한국SGI 명예이사장과 김인수 이사장이 인터뷰에서 한국SGI 불굴의 광포사와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거듭 펼쳐 신뢰의 꽃을 피운 벗의 분투에 관해 말한 내용을 담았다.
출처: 소카신보
제8권
연재기간 1998년 1월 15일~1998년 8월 22일(세이쿄신문)
1998년 1월 23일~1998년 8월 28일(화광신문)
이야기 배경 1963년 5월 3일~1964년 초
목차 <포진> <보검> <청류> <격류>
전체 줄거리
후계가 일어서는 ‘본문의 시대’로
제8권은 1963년 5월 3일에 개최한 본부총회부터 이듬해인 1964년 초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도쿄올림픽을 눈 앞에 둔 일본은 크게 변화했다.
학회도 1964년 4월,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6주기를 목표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미래를 향해 더욱 크나큰 웅비를 기약하고자 “지위도, 명예도, 재산도 필요 없다. 오직 광포를 위해 뛰어서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을 완수해 가자”는 학회정신을 다시 한 번 모든 리더의 마음에 넘치게 하겠노라 결의했다. 또 조직의 포진을 강화했다. 1963년 5월에 개최한 본부간부회를 기점으로 20개 지역, 87개 총지부, 463개 지부 체제를 갖추어 최고간부인 이사장과 부이사장들이 지역을 맡아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신이치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전국의 회원을 격려하러 바쁘게 뛰어다녔다. 6월에는 아마미오시마를 처음 방문했다. 총지부를 결성하고 어떤 고난에도 목숨을 걸고 투쟁한 동지를 혼신의 힘을 다해 격려했다.
그리고 7월, 남자부간부회에 참석한 신이치는 도다 선생님의 6주기를 기점으로 학회는 드디어 본문의 시대에 들어선다고 선언했다. 이 말에 참석자는 경탄했다. 왜냐하면 신이치가 회장에 취임한 뒤로 학회는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적문의 시대’라고 한다면 ‘본문의 시대’는 어떠한 시대일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들의 가슴에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출발로 희망이 넘쳤다. 앞으로 이듬해 ‘4ㆍ2’를 향해 학회는 용약하며 계속 전진했다.
9월 1일에는 시나노마치에 새로운 본부가 완공됐다. ‘본문의 시대’를 향한 전진의 리듬은 속도를 더했다. 여기서 신이치가 말한 ‘본문의 시대’의 의미를 밝혔다. 그것은 불법(佛法) 그리고 인간주의 철리를 구체적으로 현실사회에 전개하는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300만 세대 달성’이라는 스승의 서원을 달성한 신이치가 새로운 광포의 구상을 그리고 전진하여 제자가 비상할 때이기도 했다.
이때 어느 지방에서 한 사건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 간부가 저지른 금전문제가 발각되었다. 이 사건의 경위를 들어 광포의 조직을 교란하는 마의 본질과 ‘대하의 시대’를 맞는 학회에 ‘청류’처럼 깨끗한 신심(信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결의 해’인 1964년 1월, 학회 대표가 한국 멤버를 격려하러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일찍이 일본이 저지른 비도한 침략과 지배 때문에 학회에 대한 오해가 생겨 입국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멤버들의 활동도 단속대상이 되어 중심자가 체포를 당하는 등 장마가 다투어 일어났다.
그래도 한국 동지는 지지 않고 착실하게 지역공헌에 힘써 신뢰를 얻었다. 이윽고 학회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멤버는 한국사회에 없어서 는 안 될 ‘희망찬 존재’가 됐다.
키워드 색인
· ‘현익’과 ‘명익’(86~89쪽)
· 리더의 일념(93~97쪽)
· 개인지도의 중요성(107~113쪽)
· 본적상대(156~159쪽)
· 종문의 타락(169~178쪽)
· 파사현정의 언론전(212~218쪽)
· 지침 ‘여자부에 드린다’(251~254쪽)
· 케네디 암살(308~322쪽)
나제 항구와 가까운 시오하마 해변에서 연 ‘아마미총지부결성대회’에
이케다 선생님이 참석했다. 대회 전날 총지부결성이 정해져 함석자가
기쁨에 넘쳤다.(1963년 6월 22일)
불법철리의 관점
‘기심의 마’를 감연히 타파하라
<청류>에는 금전문제로 퇴전해 학회를 반역한 간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광포사를 보면 학회에 엄니를 드러낸 퇴전자는 적지 않다.
“외도(外道)ㆍ악인(惡人)은 여래(如來)의 정법(正法)을 파하기 어려우나 불제자 등(佛弟子等)이 반드시 불법(佛法)을 파하느니라. 사자신중(師子身中)의 충(虫)이 사자를 먹는다 등 운운”(어서 957쪽)이라는 구절대로 광선유포를 파괴하는 자는 불법을 비방하는 외도나 악인이 아니라 제육천왕의 마왕이 ‘악귀입기신’하여 불제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퇴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본질은 무엇인가.
신이치는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명문명리나 사리사욕을 탐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광포를 위해 살아가고자 열심히 신심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그러한 생명은 명복(冥伏: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된다. 그러나 방심하게 되어 타성에 빠질 때, 나쁜 버릇이 튀어나와 마음은 사심(邪心)으로 물들어 간다. (중략)
신앙이란 기심(己心)의 마와 부처의 싸움이기도 하다. ‘간부로서 광선유포의 원동력이 되어 일생성불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퇴전하여 반역해 갈 것인가’는 아주 작은 일념의 차(差)이며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인간의 마음에 잠재된 방심이나 미묘한 일념의 어긋남이 퇴전하는 인(因)이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러한 ‘기심의 마’는 누구에게나 잠재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대치(對治)하는 이검(利劍)은 신(信)의 일자(一字)이니라.”(어서 75쪽) 하고 있듯이 끊임없이 신심을 연마하는 일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늘 ‘도전하는 마음’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날마다 창제와 포교 그리고 교학연찬 등 학회활동을 실천하는 일이 ‘기심의 마’에 맞서는 방법이다.
또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법을 근본의 의지로 하고 사람을 의처로 하지 않는 것)이라는 부처의 말대로 어디까지나 법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결코 ‘사람’의 언행에 분동하지 않고 묘법을 근간으로 한 사제를 바탕으로 일체를 ‘신심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덧붙여 신이치가 “모두 총명해져야 한다. 악을 놓치지 않는 눈을 가지고 악과는 감연히 싸워야 한다”고 말했듯 학회의 지도에 어긋나는 행위가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지적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경문에 비추어 고찰하며 학회가 불법을 올바르게 실천하면서 광선유포에 힘쓰면 퇴전하거나 반역하는 사람이 출현한다는 점은 필연이다.
진정한 후계의 제자로서 ‘기심의 마’에 맞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제불이(師弟不二)의 길을 감연히 나아가는 일이 바로 미래 광포를 발전시키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시나노마치에 ‘서원’의 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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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본부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세계광포 전당으로 ‘광선유포 대서원의 전당’이 당당히 우뚝 서 있다. 2013년 낙성기념근행회에 선생님은 메시지를 보내 “‘광선유포의 서원’은 ‘불계의 생명’과 일체다. 그렇기에 이 서원을 위해 끝까지 살아갈 때 사람은 가장 존귀하게 가장 강하게 가장 크게 성장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학회 창립 90주년인 2020년 11월 18일을 향해 이케다 문하인 세계 청년이 지금 ‘사제서원’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투쟁을 일으키고 있다.
빛나는 격려
무엇을 위한 승리인가
야마모토 신이치가 참석한 도쿄 회합에서 리더들이 자기가 맡은 조직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겠다고 서로 결의를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이치는 참석간부 인사에서 ‘선의의 경쟁’을 기뻐하면서 광선유포의 활동에서 승리를 거두는 의의를 말했다.
“어떤 일이라도 이기면 기쁩니다. 활동의 승리는 우리의 생명을 약동케 하고 환희에 차게 합니다. 그리고 희망과 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중략) 절복이든 회합의 결집이든 이기려고 한다면, 목표를 세우고 결의를 정하고 진지하게 창제를 면려하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또 지혜를 짜내고 용기를 내어 도전하며 끈기 있게 행동하는 길 이외에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의 과제에 승리해 간다면 그것은 커다란 공덕과 복운으로 되어 갑니다. 또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는 것이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방정식을 습득해 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활동을 통해 얻은 신심의 대확신은 인생의 어떠한 어려움도 타개해 가는 힘이 됩니다.
인터뷰 <김인수 한국SGI 이사장, 여상락 한국SGI 명예이사장>
스승의 기대에 부응해 민중을 지키는 인재로
-. <격류>에는 한국SGI의 연원이 씌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재일교포 등에 의해 한국에서도 신심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그러나 1964년 1월, 창가학회가 반국가적, 반민족적인 단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한국 정부 문교부(지금의 교육부)가 포교금지를 발표했다.
여상락 명예이사장(이하 여상락) 당시 한국에서는 창가학회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인식이 만들어낸 정보가 난무했다. 그것은 36년에 걸친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입은 비참한 상처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 벗들은 신앙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홀로 서는 정신’으로 일어선 멤버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인수 이사장(이하 감인수) 학회가 문제시 되자 형사의 감시 아래 회합을 진행하고 터무니없는 혐의를 들어 구속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원들은 학교와 직장 그리고 지역에서 ‘왜 일본종교를 믿느냐’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마(魔)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正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어서 1087쪽)라는 성훈을 가슴에 품고 ‘언젠가 반드시 학회의 정의를 선양하겠노라’ 하고 이를 악물고 견뎠다.
여상락 고난 속에서 한국의 벗은 함께 열심히 교학을 연찬해 신심(信心)을 깊이 다졌다.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이 ‘세이쿄신문’ 등에 게재된 이케다(池田) 선생님의 지침을 번역해 그것을 진지하게 읽었다. 특히 소설 ‘인간혁명’은 회원들에게 ‘용기의 원천’이자 ‘인생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학회의 진실을 이해시키자’고 정하고 모두 한마음으로 계속 분투했다.
-. 여상락 명예이사장은 1963년 스물네 살에 입회했다.
여상락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동생의 병과 취업으로 고민하던 중 당시 이웃에게서 ‘이 신심으로 반드시 고민을 이겨낼 수 있다’는 불법(佛法)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건너 온 종교’라는 사실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확신에 찬 말에 진위를 확인해보고자 거점 좌담회에 참석했다. 거기에는 한사람 한사람이 안고 있는 고뇌를 서로 격려하면서 전진하는 따뜻한 연대가 있었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회원의 모습에 이 신심으로 고민을 이겨내자고 정하고 입회했다. 기원할수록 동생의 병은 호전되고 나도 공무원으로 정부기관에 취직했다. 그렇게 얻은 확신을 가슴에 품고 학회활동에 힘썼다. 신앙으로 바뀐 모습을 보이자 가족도 모두 입회했다.
-. <격류>에는 고난을 이겨낸 한국에 이케다 선생님이 처음 방문하는 모습 등 한국광포에 ‘봄’이 찾아온다.
여상락 회원 한사람 한사람이 모범 시민을 목표로 착실하게 신심에 힘쓰는 가운데 1970년대 중반이 되자 정부가 ‘위법행위가 없는 한 활동해도 좋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조직이 무너지고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활동했기에 곧바로 단결할 수는 없었다.
김인수 1975년 1월에 개최한 SGI발족 당시 단결이 약했다는 사실이 현저하게 드러났다. 그 역사적인 자리에 한국 대표는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광선유포를 추진하려면 ‘스승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스승의 지침을 구도하며 투쟁하는 흐름을 만들었다.
또 어서에 “지자(智者)란 세간(世間)의 법(法) 이외에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 세간의 치세(治世)의 법을 깊이 깊이 심득한 분을 지자라 하느니라.”(어서 1466쪽) 하고 있듯이 ‘사회에 공헌해야 비로소 진정한 불법자(佛法者)’라는 점을 모두 함께 확인하고 전진했다. 이윽고 ‘자신의 고뇌를 이겨내는 신심’에서 ‘남을 위해 힘쓰는 신심’으로 바뀌자 한국 사회에 신뢰를 넓히는 큰 한 걸음이 되었다.
여상락 구체적으로는 모내기나 벼 베기 일을 돕는 ‘농촌일손돕기운동’, 공원이나 하천을 청소하는 ‘국토대청결운동’ 등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그 행동이 높이 평가받아 정부기관이나 각종 단체의 현창으로 이어졌다.
1990년 9월 21일, 이케다 선생님이 문화교류를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하셨다. 도쿄후지미술관 소장인 ‘서양회화명품전’ 개막식에서 미술관 창립자로서 지성들 앞에서 “귀국은 문화의 대은인입니다” 하고 선언하셨다. 선생님의 한국에 대한 깊은 경애와 한일우호를 향한 정열로 학회에 대한 이해가 급격히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다.
-. 지금 한국SGI에서는 사제공전의 역사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가.
김인수 현재 한국에서 활약하는 청년부원 대부분이 ‘신심 3세대’ 혹은 ‘신심 4세대’다. 신입회원에게도 해당하는 데 사제정신을 계승하려면 선생님의 사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상락 그러려면 소설 ‘인간혁명’ ‘신ㆍ인간혁명’을 깊이 있게 읽어야 한다. 또 우리는 ‘은사기념실’ 연수를 실시해 광포사나 이케다 선생님의 투쟁을 피부로 느끼는 자리를 만들어 사제 원점을 새기고 있다.
김인수 서울에 있는 한국SGI 본부동과 이케다기념강당 그리고 화광신문사 등을 ‘심장부’로 하여 우리나라 광포는 지금 크게 약진하고 있다.
여상락 청년에게는 철학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정의로운 ‘사제의 마음’을 후계의 벗에게 전하면서 세계광포의 새로운 시대를 향해 한국SGI는 용기 있게 계속 전진하겠다.
기획특집_ 제자의 길(소설 ‘신·인간혁명’에서 배운다-제8권-화광신문 제1287호_2019.10.0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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