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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와 부활 (누가복음 12:22~28)
염려하지 말라고 주님이 말씀. 그런데 우리가 왜 염려? 주님 말씀에 처음 다가오는 느낌은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나? 초등학생도 염려 많다. 염려는 거의 인간의 숙명.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취지?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실 때 ㅇㅋ 알겠습니다 염려 안할게요 이렇게 나서게 되면 예수님 본래 취지 영 모르고 오해하는 것. 아주 표면적으로만 예수님 말씀 대하는 것. 그렇게 말씀하신 뜻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성령의 비침 가운데 성령을 보는 새로운 세계
바꿔말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일은 염려함? 아프리카에서 3만원 가지고 한달 사는 가족들. 바짝 말라 죽어가는 아이.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 생계를 염려? 굶어죽어가는 북한 수용소. 우리는 남의 일은 염려하지 않는다. 내 인생 내 것이라 할 때만 염려.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이유. 네가 네 인생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내 인생 내꺼야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킴? 내 몸은 내거야 내가 아니면 누가 챙겨주나. 자기 인생에 대한 주인의식 그것이 우리를 끝없이 염려하게 만들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게 만든다
내가 아니면 내 노후 누가 책임? 국가? 국민연금 고갈.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갑자기 까마귀? 왜? 그 까마귀는 자기에 대한 자의식이 없다. 까마귀는 내가 아니면 누가 내 새끼 먹일까 이런 염려걱정 근심으로 사는게 아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창고 없다 골방도 없다. 하나님이 주신 자생적인 생명의 본능으로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은다. 머리가 나빠서 장소를 잊는다. 다람쥐든 까마귀든 자기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다.
아담과 하와 선악과 먹고 가장 큰 비극. 자기 인생을 자기가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것. 어 내가 벗었네? 여러분은 왜 여러분 인생 괴롭힘? 거울 볼때마다 디게 못생겼네 고쳐야되겠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실은 에덴동산에서 끝없이 하나님이 챙기고 있었는데. 그 의식이 사라져버린 것. 내가 내 인생 챙겨야 된다는 다급한 마음으로 인생 산다. 타인의 인생은 알 바 아님. 최소한 내 인생은 지켜야 된다는 의식이 우리를 평생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게 한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바꿔말해 왜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고자 하느냐? 왜 네가 네 자식의 주인?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깔창?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을 왜 염려? 네 몸의 키를 늘리는 일도 못하면서.
마태복음. 머리카락 하나 희고 검게 못하는 주제에. 주제파악 안되는 것. 염려하지 말라. 염려의 근본은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고자 하는 것이고, 네가 내 인생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는 자체가 끝없이 너를 몰아붙인다.
선악과는 먹었겠다, 안목은 하나님처럼 높아져버렸는데.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았는데 내 현재 모습은 너무나 밑에 떨어져있다 생각하니 이 갭이 너무 커서 인간을 괴롭힌다. 내가 나를 용서못한다. 벗고있는 내 초라한 모습. 본인이 본인을 자학 우울증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시는 것 네가 네 스스로 네 인생 주인이 되어 컨트롤 하려는데 24 까마귀 말씀.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까마귀조차도 하나님이 기르신다 하물며 너희가 얼마나 귀하냐. 너희는 누구?
그토록 가치있게 보신다는 너희는 누구?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까마귀조차 내가 돌보는데 너희들은 까마귀보다 얼마나 귀하냐. 내가 지금 너희를 돌보고 있다는 뜻.
우리는 질문한다. 주님 우리를 돌보시는게 이모양 이꼴입니까? 왜냐면 선악과를 많이 먹었기때문. 벌거벗고 다니는 자체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선악과 먹은 다음부터는 벌거벗은 내 모습 내가 맘에 안들어 하나님은 참 예쁘다 하는데. 끝없는 갈등
아이들 키울 때 예쁘다. 애들은 뭐가 맘에 안드는지 말이 많다. 자기 얼굴 보고 항상 만족해하는 사람 있을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창조의 모든 날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는데 선악과 먹은 후부터는 모든게 불만. 왜 옷이 없지? 가려야 되고
부부사이에도 가린다. 비밀통장. 김구라 집 금고가 따로. 가계부 꼼꼼. 집사람이 안쓴다. 부부사이에도 금고가 필요. 밖에 보이는 금고 마음의 금고. 사람은 다 문제가 있다 알고 가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기르시는 너희들이 얼마나 더 귀하냐 도대체 무엇이?
너희가 귀하다는 취지 깨닫지 못하면 평생 내가 나를 바라보는 안목으로 그 부끄러움으로 인생이 흘러간다. 하나님이 귀하다 말씀하시는 취지? 부활절 계란 삶고 떡 해먹으면 부활절 정신 살아남?
부활절의 의미? 예수님이 죽음에 갇혀있지 않고 살아났다는 것. 예수님이 살아계시면 활동이 있다. 살아계신 주의 활동하심에 접촉이 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우리만의 안목에 갇힌 채로 인생 산다. 우리 세계에 갇혀산다. 선악적 안목의 세계. 무엇을 봐도 내가 바라볼 때 부끄러운 것. 선악과 먹었다는 뜻은 저주. 무엇을 가려도 자신이 부끄럽다. 이게 저주.
부자가 되면 안 부끄러울까? 부자되고 대통령 되도 부끄럽다. 부자랑 결혼하면? 선악과 먹었다는 것은 영원한 부끄러움. 무엇을 해도 가릴게 필요하다. 그게 선악과 먹은 인간의 저주. 주님이 살아있다는 것. 살아계심의 활동에 접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저주, 선악과로부터 따라나온 저주에서 빠져올 수 없다.
목사님들이 경쟁적으로 금식하는 이유. 부끄러움 때문. 그걸로 가려볼까. 안가려진다. 살아계신 주님의 활동 내용은 무엇? 식물인간처럼 가만히 있는 존재 아니고. 살아있다면 활동이 어떻게 드러남?
부활하신 주님의 활동성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민족 이스라엘.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을 때 끊어진 경수로부터 약속의 말씀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민족. 애굽에서 다 죽일 때 그 죽음 속에서 빠져나온 민족.
살아계신 주님 활동의 결과물 이스라엘.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 본인들이 아브라함 후손이라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 말씀 니들 아버지는 마귀다. 육적인 혈통 거절. 독서토론 중구난방 다양. 남녀 주신 목적 거룩한 민족 얻기 위함? 그럼 남녀 없이는 거룩한 민족 만들 수 없음?
우리가 아는 남녀 개념 결혼에 대한 얘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실체. 거기서부터 나오는 그림자 예표. 결혼 자체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아냐. 다시말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 보여주는 그림자로 남녀가 만나 결혼하고 사는 것. 그 외에 다른걸 끄집어내면 실체를 벗어나는 다른 억측.
거룩한 민족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세례요한 말했다. 너희들이 아브라함 후손이라 떠벌이지 말라. 하나님은 이 돌멩이들로도 아브라함 후손 만들 수 있다. 하나님 입장은 굳이 남녀 생물학적 두 존재 필요하지 않아 다만 그리스도와 교회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
굳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결혼 가운데서 이스마엘은 육적으로 줬지만 사라의 경우 경수를 끊어 생물학적 방법으로는 잉태불가한 상황에서 약속의 말씀으로 이삭을 낳게 하신다. 남자여자 결혼 왜 필요? 거룩한 민족 때문? 말라기에서 말하는 정결한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마리아로부터 예수가 태어나는 과정을 위해 마리아가 필요.
다들 내가 이스라엘이라 주장할 수 있다. 교회 일원이라 주장.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 생성된 교회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앎? 다 우리는 교회라 주장. 부활절 기념하고 계란 깨먹으면? 부활하신 주님의 행하심에 의해 만들어진 영광스런 교회 특징? 죄에 대한 관점이 바뀐다.
죄가 무엇? 많은 사람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다윗은 살인 간음 다 함.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 죄라고 생각. 다윗의 고백. 분명 간음 살인죄 했지만 내가 주께만 범죄했다. 왜?
죄에 대한 관점이 바뀐다는 말은 다윗의 말 시50 고백. 내가 모친의 죄악 중에 출생.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발견하게 된 새로운 죄에 대한 관점. 나는 그냥 죄인으로 태어난 것. 지금까지 인간의 생각. 나의 행위로 말미암아 죄가 된다.
다윗이 그 사건 이후 깨달음. 나는 날 때부터 죄인이었다는 사실. 우리가 뭘 해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는 죄인. 바꿔말해 존재 자체가 죄인. 새삼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다. 새삼 안지었다가 뭘 해서 내가 죄인 되었네 그런 개념 아냐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다.
존재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행함과 상관 없이 우리를 지옥 형벌에 던져넣어야 합당. 여러분에게 세월이 갈수록 새로운 발견 되길. 그게 바로 교회. 요나의 표적에 의해서만 나오게 되는 것.
요나의 표적. 현재 우리 살아있는 목숨을 더 윤택하게 도와주기 위한 표적 아냐. 병들었다. 병들다 보니 삶의 질이 떨어져. 그 병든 것을 주님께서 기적적으로 고쳐주심으로 내 삶의 질이 나아졌다? 지금 있는 내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한 기적들을 베푸는 게 주께서 원하시는 원래 취지 아냐.
가난한 자에게 돈 주는 표적. 배고픈 자에게 오병이어. 다 현재 우리 빈약한 삶을 채우는 표적을 행하셨는데 그런 기적을 원함? 신문. 부동산 투자 전설적 인물 북극곰. 지금도 자기 신분 숨겨. 익명 활동. 무릎에서 들어가서 어깨에서 빠진다. 십년 이상 묵혀두지 않을거면 투자 하지 않는다. 티끌모아 태산은 아니라 하더라도 티끌모아 흙언덕 만들어라.
그런 이야기를 보다보니 역시 돈이 필요하다 머리를 쓰게 된다. 커피 안마셔야지. 신문을 펼치면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얘기한다. how to live in this world. 그런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예수를 바라본다. 예수님 저도 돈 좀 벌게 해주세요. 이번에 분양권 받게 해주세요. 과일박스 보내신 권사님. 기도해주세요 이번에 아파트 두 개 사놨는데 값이 안올라간다. 기도가 왜 필요? 지금 산 아파트 값이 안 올라가니까.
동일한 사고방식으로 예수 바라본다. 예수님은 그들을 다 물리치고 한마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부자 되기 위해 예수 부르는 것을 악하다 음란하다 평가. 그것을 구해서 악한 것 아니고 날 때부터 악했다. 근본이 상놈 죄인
주님이 하신 말씀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은 요나의 표적 뿐. 십자가의 죽으심. 왜 십자가의 죽으심만을 말씀하심? 죽음이 아니고서는 안되는 문제. 날때부터 죄인이었기 때문. 한두개 어질러져있으면 치우면 됨. 요나의 표적이 굳이 필요한 이유. 부동산 잘 되고 아픈 병 낫고 가난한 자 부자 되고. 불의한 자 경건하게 해준다고 풀릴 문제 아냐. 날 때부터 죄인 죽음으로 밖에는 답 없다
다윗. 내가 실수한 부분만 주님이 와서 수정해주면 되지 않겠나 생각. 밧세바 사건 후 나 자체를 바꿔야 될 문제. 존재론적으로 내가 죄인임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존재라 생각.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왜? 본인이 만들어놓고.
바퀴벌레 비유. 바퀴벌레 나오면 즉결처분. 우리 존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존재론적으로 바퀴와 같다는 사실. 못 받아들인다. 우리는 내게 양심 있고 선한 의지 있다보니 하나님 뭐 원하십니까?십일조? 감사헌금? 부활절.. 하나님원하시면 드릴게요. 그렇게 나온다.
마치 하나님이 뭔가 받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바퀴벌레가 빵 가지고 왔다면. 그게 아무리 깨끗한 빵이라 하더라도 바퀴 손에 들리는 순간 잡아죽여야.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어디에 손을 대도 부정.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 미다스 왕처럼.
우리가 죄인이라는 의미 자체를 오해. 우리는 의인이었다 죄인이었다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고 생각. 부활한 새로운 피조물은 우리는 자체로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게 우리를 편하게 한다. 새삼 의인 되려고 설칠 필요 없는 이유. 우리는 뭘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죽어 마땅한 죄인.
우리에게 주님께서 뭘 요구하시지 않는다. 바퀴벌레 수십마리 모아놓고 훈련시키는 사람 없다. 화염방사 쏴버리고 싶을 것. 우리가 죄인이란 의미. 부활하신 주님 앞에 선 구원받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님 생명만 진짜 생명이고 우리 생명은 생명 아니다 바퀴벌레 목숨과 같은 것
그래서 정결하신 예수 피가 필요. 못박혀 죽으신 것. 내가 전적으로 존재자체가 죄인이라는 걸 모르는 자는 내가 범죄한 영역에만 예수 피 바르는 것이 족하다 생각. 내가 무슨 생각 한대도 다 부정한 영역. 한편 속편하다. 네가 뭘 하든 너는 죄인.
그럼 어쩌라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피 예수님 죽으심이 필요. 다른 답은 없다. 예수 십자가 피로 우리에게 입히신다. 그러면 까마귀가 자기 자의식 없어서 내가 내 조생 챙겨야 된다는 인식 없다. 까마귀 증거보다 우리가 더 귀하다는 것은 우리를 통해 예수님십자가 증거하기 때문.
어떤 식으로? 우리가 인생 살면서 뭘 열심히 한다. 내가 내 인생챙겨야 되니까. 내가 내 행함으로 말미암아 내 삶을 지탱한다는 생각은 이미 선악과 먹고 타락한 보편적 인간의 생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살아계심에 접촉하는 순간. 지금 내가 산 것은..
내가 살아온 내 모든 삶의 근원 내 노동 아니고 십자가 예수님 은총으로 흘러들어온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과 접촉된 사람. 그 사람만이 예수 모든 말씀이 그리운 말씀 새로운 말씀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교회 왜 나옴? 예수 그리스도 살과 피를 나누기 위해. 실제 모여서 빵과 피를 나누면? 실제적으로 남는 것은 말씀 통해 구약이든 어디든 예수님의 살과 피 자체가 공급 안되면 살과 피 공급하는 것 아냐. 예수 믿으면 잘 됩니다 형통합니다 좋은 관계...
지금 네가 살아가는 것은 네 인생 지탱하는 네 행함으로 있는 것 아니고. 매일 무엇을 먹을까 네 목숨을 위한 염려 아니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와 무슨 상관? 막 여인들이 새벽 일찍 예수님무덤으로. 왜?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 사랑 때문.
가보니까 예수님이 살아났어 여기 계시지 않아 라는 말을 들음. 우리가 누구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천국은 예수님이 계신 곳. 요양원에 간 외할머니. 사람이 집. 외갓집인 이유는 외할머니가 있기 떄문. 외할머니 없으면 외갓집 아니다. 천국이 왜 천국? 거기 아들되신 예수님이 있기 때문.
예수님이 계신곳이 그 어디나 천국.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 사랑 없으면 그 사람은 신자 아니다. 천국백성 아니다. 천국 백성이면 예수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어떻게 표현?
아내에 대한 그리움. 아내와 걸었던 길. 옛날에 했던 말들. 예수에 대한 그리움이란 것은 어떻게 구체화? 그립다는 것은 또 한번 그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 그 웃음 보고 싶은 것. 예수에 대한 그리움이란 것은 주의 목소리 듣고 다시 한 번 주님과 얘기하고 싶은 것.
일본 영화 오겡끼데스까? 묻고 답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 잘 지내냐. 주님에 대한 그리움이란 것은 주의 말씀 듣고 싶은 것. 누가 부활하신 주님에 의해 만들어진 천국 백성? 주님 얘기 듣고싶은 것. 교회 왜 나옴? 주님 얘기 듣고 싶은 것. 부동산 얘기 들으려면 북극곰. 주식 얘기 들으려면 워런 버핏.
부활절. 주님이 살아났다는 증거? 주의 말씀을 통해 우리 실상 드러내시고 실상 위에 입혀지는 예수 그리스도 피의 이야기가 항상 들려지는 그 자리가 부활하신 주님 만나는 자리. 살아있는 주님이 하시는 일. 다윗이 날 때부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끝내 입증하는 쪽으로 몰아가심.
다윗이 시 50 마지막에 한 말 주의 은택으로 시온을 세워달란 기도. 내 인생과 나라라는 것은 주의 은택으로만 세워지는 나라. 내 힘으로 세우려 애썼던 나라가 사실은 내 염려로 세운 나라 아니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주의 은택으로 세워달라 기도.
내 인생이 주의 은택으로 세워진 인생임을 그 때 보게 된다. 그렇게 쉬지 않고 애쓰고 염려하고 힘쓰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컨택하는 순간 우리는 내 염려 걱정으로 키를 한자 더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염려로 내 인생세우는 것 아니었구나 부활하신 주님의 무조건적 용서와 사랑으로 내 인생 흘러왔따는 사실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께 영광.
빌2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 자기 피로 나를 값 주고 사신 예 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고백. 내 인생의 주인이신 주님이 자기 피를 흘려 만들어온 인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이...
신보라. 예수 그리스도 피만을 자랑한다. 예수 그리스도 피의 은총으로 개그우먼 하고 옷 입고 살아왔다는 사실. 피에 다 묻히는 인생. 그럴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 내가 내 인생 주인 아니고 주님에 의해 알게 될 때...
염려하지 말라 말씀 대하면서 결론. 우리가 염려 안할 수 없다. 우리 몸은 아직 안 바뀌었다. 아직 이 몸을 가지고 주님이 하실 일이 있다. 끝없이 염려하고 지가 지 주인인것처럼. 바로 그런 네 몸 때문에 에수 십자가 사건 발생되었다. 증거하기 위한 용도로 아직 하자많은 이 몸뚱이를 입고 살아간다.
지금 염려 안하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아냐.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시지만 항상 우리는 염려한다. 그렇게 무시하고 안 듣는다. 마지막에는 나 살아보겠다고 예수를 십자가에 찔러죽이는 몸을 입고 살아간다. 이 결함을 통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죽으심의 취지가 증거.
성경에는 이미 구원되었다 영화롭게 되었다 과거형인데 왜 아직 우리 몸은 부실? 이 몸을 갖고 구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나? 이미 완벽히 이뤄진 주님으구원 자체를 우리 부실한 몸을 통해 증거. 그렇게 이 몸이 부실하기 때문에 주님이 주신 것. 내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러한 죄도 감당했다, 그 사실 증거하기 위해 아직 우리 몸의 덜 빠져나온 죄의 요소 잠복된 채로 살게 하심.
앞으로 인생 살며 더 많은 죄 튀어나올 것. 그 죄가 튀어나올 때마다 이미 완료된 주님 구원의 완료성 볼수 있길. 이러한 죄도 주님이 용서하신 거구나. 이미 용서하신 주님의 죄의 항목을 하나씩 펼쳐보이는 것. 그렇게 우리 삶이 끝없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증거하는 용도로만 살아갈 수 있게 되길.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내 몸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했다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깨어나는 모든 순간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의 은총만 새롭게 피어날 수 있도록 긍휼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