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39〉마음을 돌이킨 그 자리가 정토요, 극락
지옥과 극락
마음 청정하면 自性의 서방정토(西方淨土)
깨달은 사람 어디 있더라도 같아
전철이나 정류장 주변에서 ‘**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내 관점에서는 얼토당토 않는 말이지만, 그들의 세계관이거니 무심히 지나친다.
17세기 선사인 일본의 하쿠인(白隱, 1685~1768)은 청정한 스님으로 존경받는 분이다. 어느 날 한 무사가 스님에게 찾아와 이런 질문을 하였다.
“스님, 지옥과 극락은 정말 있는 것입니까?”
“바보 같은 놈, 죽어봐야 알지. 낸들 어찌 알겠나. 어느 장군이 자네를 무사로 썼는지 한심하군.”
무사는 스님의 모욕적인 발언에 화가 치밀어 발끈 화를 내며, 스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스님께서는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자네가 잔뜩 화가 나 있는 그 상태가 바로 지옥이라네.”
스님의 말에 무사는 깨달은 바가 있어, 칼을 내려놓고 스님께 용서를 구했다. 하쿠인이 말했다.
“지금 자네가 나를 용서한 그 너그러운 마음 상태가 극락이라네.”
공간적인 장소가 바뀌어야 극락이 있고,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불문하고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극락이 되고, 지옥이 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유심정토(唯心淨土)를 내세우고 있다.(타방정토설도 있지만, 이점은 배제한다.)
혜능의 <육조단경>에서는 “범부들이 청정한 자성(自性)을 모르기 때문에 제 몸 속의 정토를 알지 못하고 동방(東方)이니 서방(西方)이니 하면서 찾고 있다. 깨달은 사람은 어디에 있더라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수행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집에 있어도 청정한 도량이요, 청정도량인 사찰에 머물러 있어도 수행에 마음 두지 않고 번뇌로운 마음이라면 혼탁한 지옥이다. 지옥과 극락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혜능은 “마음이 청정하면, 곧 이것이 자성의 서방정토(西方淨土)이다”라고 하였다.
<유마경>에서도 “청정한 불국토를 건설코자 한다면, 먼저 그 마음을 청정히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험악한 지옥에 머물지라도 마음이 청정하면 그 자리가 극락이요, 극락에 있을지라도 그 마음이 괴롭고 불만족스러우면 지옥인 것이다.
설령 감옥에 있더라도 그곳을 수행도량으로 여긴다면, 청정한 불법도량이다. 이렇게 실천한 스님이 있는데, 중국의 본환(本煥, 1907~2012)이다. 스님은 허운(虛雲) 선사로부터 임제종 법맥(44세)을 받은 분이다. 본환은 1958년부터 1980년까지 22년간을 감옥에서 보냈으니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셈이다. 출옥 후 한 기자가 스님께 이런 질문을 하였다.
“20여년을 옥중에서 어떻게 보냈습니까?”
“출가자에게 처처가 도량 아님이 없습니다. 감옥은 나의 수행처였습니다. 감옥은 수행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습니다.”
본환스님과 정반대의 경험을 한 분이 있다. 세계적인 명상가로 알려진 아잔브라흐마 스님이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고 한다. 주최 측에서 스님께 대접한다고 5성급 호텔에 머물게 했는데, 스님은 호텔이 매우 불편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서 만족하고 행복하면 바로 그 자리가 극락이요, 최고급 호텔에 머물러 있어도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우면 바로 지옥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해야겠는가! 그대가 서 있는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의 마음을 전환해보라. 마음을 돌이킨 그 자리가 정토요, 극락이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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