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 미 인 곡 (續美人曲) - 정 철-
뎨 가는 뎌 각시 본 듯도 한뎌이고. ( 저기 가는 저 부인, 본 듯도 하구나 ) 텬샹(天上) 백옥경(白玉京)을 엇디하야 니별하고, (임금이 계시는 서울과 어찌하여 이별하고) 해 다 뎌 저믄 날의 눌을 보라 가시난고. ( 해가 다 저물었는데 누구를 만나 보러 가시는가 ? ) 어와 네여이고. 내 사셜 드러보오. ( 아, 너로구나. 내 사정 이야기를 들어 보오. )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한가마난 ( 내 얼굴과 이 나의 태도를 임께서 사랑함직한가마는 ) 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새 ( 어쩐지 나를 보시고 너로구나 하고 특별히 여기시기에 ) 나도 님을 미더 군뜨디 전혀 업서 ( 나도 임을 믿고 딴 생각이 전혀 없어서 ) 이래야 교태야 어즈러이 구돗떤디 ( 애교며 아양을 부리며 귀찮게 굴었던지 ) 반기시는 낫비치 녜와 엇디 다라신고. ( 반가워하시는 낯빛이 옛날과 어찌 다르신가 ?) 누어 생각하고 니러 안자 혜여하니, ( 누워 생각하고 일어나 앉아 헤아려 보니 ) 내 몸의 지은 죄 뫼 가티 싸혀시니 ( 내 몸이 지은 죄 산같이 쌓였으니 ) 하날히라 원망하며 사람이라 허믈하랴. ( 하늘을 원망하며 사람을 탓하겠는가 ) 셜워 플텨 혜니 조믈(造物)의 타시로다. (서러워 여러 일을 생각해보니 조물주의 탓이로다) 글란 생각 마오. ( 그렇게는 생각하지 마오. ) 맺힌 일이 이셔이다. ( 마음 속에 맺힌 일이 있습니다 ) 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 ( 님을 모시고 있어서 님의 일을 내가 알거니 ) 믈 가튼 얼굴이 편하실 적 몃날일고. ( 물과 같이 연약한 몸이 편하실 적이 몇 날이 될까 ? ) 츈한(春寒) 고열(苦熱)은 엇디하야 디내시며,(이른 봄날 추위와 여름철 무더위는 어찌 지내시며) 츄일(秋日) 동텬(冬天)은 뉘라셔 뫼셧난고. ( 가을날 겨울날은 누가 모셨는가? ) 쥭조반(粥早飯) 죠셕(朝夕) 뫼 녜와 가티 셰시난가. ( 조반전에 먹는 죽과 아침 저녁 진지는 옛날과 같이 잡수시는지 ) 기나 긴 밤의 잠은 엇디 자시난고. ( 기나긴 밤에 잠은 어찌 주무시는가? )
님 다히 쇼식을 아므려나 아쟈하니, ( 임 계신 곳의 소식을 어떻게 해서라도 알려고 하니 ) 오날도 거의로다, 내일이나 사람 올까. (오늘도 거의 저물었구나, 내일이나 소식 줄 사람이 올까) 내 마음 둘 데 업다 어드러로 가쟛말고. ( 내 마음 둘 데 없다.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 잡거니 밀거니 놉픈 뫼헤 올라가니 ( 잡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높은 산에 올라가니 ) 구롬은 카니와 안개난 므스일고. ( 구름은 물론이고 안개는 또 무슨 일인고 ) 산쳔(山川)이 어둡거니 일월(日月)을 엇디 보며 ( 산천이 어두운데 일월을 어떻게 바라보며 ) 지척(咫尺)을 모르거든 쳔리를 바라보랴 (지척도 모르는데, 천 리나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으랴 ) 찰하리 믈가의 가 뱃길히나 보쟈하니 ( 차라리 물 가에 가서 뱃길이나 보려고 하니 ) 바람이야 믈결이야 어둥졍 된뎌이고. ( 바람과 물결이 어수선하게 되었구나 ) 샤공은 어디 가고 븬 배만 걸렷나니 (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렸는가 ) 강텬(江天)의 혼쟈 셔셔 디난 해를 구버보니 (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 보니 ) 님다히 쇼식이 더옥 아득한뎌이고. ( 임 계신 곳의 소식이 더욱 아득하구나 )
모쳠(茅詹) 찬 자리의 밤듕만 도라오니 ( 초가집 차가운 잠자리에 한밤중이 돌아오니 ) 반벽(半壁) 쳥등(靑燈)은 눌 위하야 발갓는고.(벽 가운데 걸려있는 등불은 누구를 위해 밝았는가) 오르며 나리며 헤뜨며 바니니 ( 산을 오르내리며 강가를 헤매며 방황을 하니 ) 져근덧 녁진(力盡)하여 픗잠을 잠간 드니, ( 그 사이에 힘이 지쳐서 풋잠을 잠깐 드니 ) 졍셩(情誠)이 지극하야 꿈의 님을 보니 ( 그 정성이 지극하여 꿈속에서 임을 보니 ) 옥(玉)가튼 얼굴이 반(半)이나마 늘거셰라. ( 옥과 같이 곱던 얼굴이 반이 넘게 늙으셨구나 ) 마음의 머근 말삼 슬카장 삷쟈 하니 (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실컷 말하려고 하니 ) 눈믈이 바라 나니 말인들 어이하며 ( 눈물이 쏟아지니 말을 어찌하겠으며 ) 졍(情)을 못다하야 목이 조차 몌여하니 ( 정회도 못 다 풀어 목마저 메이니 ) 오뎐된 계셩(鷄聲)의 잠은 엇디 깨돗던고. ( 방정맞은 닭소리에 잠은 어찌하여 다 깨었던가 )
어와, 허사(虛事)로다. 이 님이 어데간고. ( 아, 헛된 일이로다. 이 임은 어디 갔는가 ? ) 결의 니러 안자 창(窓)을 열고 바라보니 ( 잠결에 일어나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 어엿븐 그림재 날 조찰 뿐이로다. ( 가엾은 그림자만이 나를 따르고 있을 뿐이로구나 ) 찰하리 싀어디여 낙월(落月)이나 되야이셔 ( 차라리 죽어서 달이나 되어 ) 님 겨신 창 안해 번드시 비최리라. ( 임 계신 창 안을 환하게 비쳐 드리리라 ) 각시님 달이야카니와 구즌 비나 되쇼셔. ( 각시님, 달은 그만두고 궂은 비나 되십시오. ) - <송강가사> -
[해설 및 감상]
이 작품은 두 화자를 편의상 갑녀와 을녀로 상정할 때, 둘의 역할이 다르다. 갑녀는 작품의 전개와 종결을 위한 기능적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있는 반면, 을녀는 주제 구현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즉 을녀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하소연이 이 작품의 중심 내용인 것이다. 을녀는 원래 적강선의 이미지와 통하는 고귀한 신분이었으나, 지상으로 내던져진, 즉 임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이다. 그녀는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과거 지향을 내비치는 인물이다. 이는 '사미인곡'의 여인과 구별된다.
이 노래는 ‘사미인곡(思美人曲)’의 속편이다. 그러나 ‘사미인곡’보다 언어의 구사와 시의(詩意)의 간절함이 더욱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미인곡’에서는 한자 숙어와 전고(典故)가 간혹 섞여 있는데 반하여 ‘속미인곡’에는 전혀 들어 있지 않다는 점도 이를 증명한다.
특히, ‘사미인곡’의 결사는 ‘임이야 나를 몰라 주실지라도 나의 충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일방적인 연군의 소극성을 보였지만, ‘속미인곡’은 보다 적극적으로 임까지도 오래도록 구슬프게 하고 싶다고 노래하고 있다. 한편 정철의 미인곡은 김춘택의 ‘별사미인곡’과 이진유의 ‘속사미인곡’ 등에 영향을 주어 국문학사에서 미인계 가사를 형성하게 되었다.
서사(序詞) 부분에서는 갑녀와 을녀의 대화 형식을 빌려 임과 이별한 사연을 하소연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갑녀는 보조적으로 등장했으나 을녀와 마찬가지로 작자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 임과 이별한 것을 오직 자신의 탓으로 돌려 아무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말한 그 속에 작자의 충절이 잘 나타나 있고, 그것이 한 여인의 지극한 사랑으로 비유되어 더욱 문학적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더구나, 대화 형식으로 구성하여 표현의 참신성을 보인 것은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것이다.
본사(本詞)에서는 임의 일상 기거 생활에 대한 염려와 임의 소식을 알고자 산하를 방황하는 애처로운 심정과 독수 공방의 외로운 마음이 임을 이별한 한 여인의 애절한 사설로 표현되었다. 여기 나오는 ‘구름, 안개, 바람, 믈결’ 등은 당시 조정을 어지럽히는 간신배를 비유했으며, 일월(日月)은 임금을 상징하여 전체가 하나의 비유로 짜인 향기 높은 문학 작품이다.
결사(結詞)는 죽어서라도 이루려는 임에 대한 간곡한 사랑을 나타낸 부분으로, 송강의 일편단심과 충절이 잘 드러나 있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송강의 시가에서 ‘임’은 일견 군주(君主)일 수 있으나, 작품의 문맥상 꼭 군주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연인(戀人)일 수도 있다.
[요점 정리]
▶ 연대 : 선조18년~22년(1585~1589) ▶ 출전 : 송강가사(松江歌辭) ▶ 갈래 : 양반가사, 서정가사, 정격가사, 유배가사 ▶ 구성 : 서사, 본사, 결사의 3단 구성 1. 서사 : 임과 이별한 사연 및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 2. 본사 : 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독수공방의 외로움 2. (가) 갑녀의 위로의 말 3. (나) 을녀의 하소연(임의 일상에 대한 염려) 4. (다) 임 계신 곳을 바라보며 산과 강가를 방황함 5. (라) 독수공방의 애달픔 및 꿈 속에서 임과의 재회 6. 결사 : 임에 대한 간절한 사모의 정
▶ 형식 : 대화체(문답형식), 기본 음수율 3・4조 ▶ 주제 : 연군지정(戀君之情) ▶ 의의 : ① 사미인곡과 더불어 가사 문학의 극치를 이룬 작품이다. ② 순 우리말의 구사가 절묘하다. ③ 대화체로 된 가사 작품이다.
▶ 평가 ① 홍만종은 ‘순오지’에서 공명(孔明)의 ‘출사표(出師表)’에 비견할 만하다고 하였다. ② 김만중은 ‘서포만필’에서 ‘관동별곡’, ‘전후미인가’ 중 ‘속미인곡’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였다.
[참고]
[ ‘유배 가사’에 대하여 ]
유배 가사는 당쟁의 산물로서 사대부들의 가장 쓰라린 생활 감정의 표출이었다. 그 내용은 유배지에서 겪는 온갖 고초와 고독감 속에서도 임금에 대한 일편 단심은 불변하여 한결같이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유배가사들에는 작자의 패배 의식과 좌절감이 넘쳐 있기 때문에 읍소(泣訴), 애원(哀怨), 상심(傷心) 등이 주조를 이루지만, 한편으로는 체념이나 절망을 극복하고, 다시 임금께 나아가려는 의지력이 여운으로 남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 시상의 흐름 ]
이 작품 사미인곡의 후곡(後曲)으로 속편인 셈인데 사미인곡에서 못다 한 심회를 더 발전시켜 읊은 것이다. 이 작품의 구성은 전곡과는 달리 대화체로 되어 있다. 갑녀의 사설로 시작하여 을녀가 신상 내력을 슬피 말하면, 다시 갑녀가 “글란 생각마오 맺친 일이 이셔이다.”로 이어져서 연군의 회포를 읊는다. 다시 최종구에 가서 “각시님 달이야 카니와 구즌 비나 되쇼셔.”라고 갑녀의 사설로 끝난다.
이를 도식화하면 ‘갑녀→을녀→갑녀→을녀→갑녀’이다. 객관화된 자아인 갑녀가 주관적으로 절망하는 을녀를 달래기도 하고, 전곡(前曲=사미인곡)처럼 죽어서 나비가 되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낭만적이고 정적(靜的)인 낙월(落月)이 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동적인 ‘궂은 비’가 되어 벼락이라도 울려 보라는 현실적 행동을 강요하는 내용이다. 특히, 후곡(後曲=속미인곡)의 조사(措辭)는 전곡을 능가한다. 전곡의 춘하추동의 4원사(四怨詞)를 다음과 같은 단 두 구로 마무리하여 읊고 있다. “츈春한寒 고苦열熱은 엇디하야 디내시며 츄秋일日동冬쳔天은 뉘라셔 뫼셧는고.”
[ 시어의 함축성 - ‘임’의 경우 ]
송강은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 ‘미인(美人)’을 우리말로 ‘임’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미인’은 일반적으로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 군주(君主), 재덕(才德)이 뛰어난 사람, 여관(女官) 등을 일컫는다. 그런데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에서의 서정적 자아는 분명 ‘임’을 이별한 여인이므로, 여기서의 ‘미인’ 곧 ‘임’은 남성이거나 군주이다. 또한, 송강에게 ‘임’은 일견(一見) 군주일 수 있으나, 작품의 문맥은 꼭 군주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연인(戀人)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남녀의 인간적인 정감의 교류를 군신(君臣) 관계로 끌어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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