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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성령
제목 : 또 다른 보혜사(保惠師)
성경 : 요14:16-17
찬송 : 188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00524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닐까요? 우리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양성 판정 받은 환자들이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격리”일 것입니다. 물론 확진자와 접촉을 한 사람은 음성 판정을 받아도 최소한 2주 정도는 자가 격리를 실시해야 합니다. 이 수칙을 어기면 안 됩니다. 외부와 접촉을 하지 못하고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병원에 입원한 분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절’입니다. 어떻게 보면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지요. 교제나 소통이 단절되고 관계가 끊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절을 극복해 보려고 SNS 활동에 박차를 가합니다. 저도 한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열정을 가지고 활동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다가 보니까 너무나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페북 같은 것을 하다 보면 전혀 알지도 못한 사람들이 친구요청을 해올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친구가 만 명쯤 된다면 단절된 느낌이 없을까요?
그러나 어떠한 모임이나 SNS로도 이 깊은 단절을 메울 길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절의 근원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단절은 우리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이 아닙니다. 이미 인류가 에덴동산에 있을 때 시작된 것입니다. 단절을 낳은 것은 죄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 삶을 파괴하려는 원수는 바로 마귀입니다. 죄가 하는 일은 언제나 같습니다. 쪼개고 깨며 끊어 놓는 일입니다. 죄가 개입되면 그렇게 친한 친구 사이도 원수로 바뀌고, 가정도 깨어지며 공동체가 주저 않고 맙니다. 사회를 망가뜨리고, 사회의 통합과 하나 됨을 깨뜨리는 가장 무서운 것도 바로 죄입니다. 문제는 죄가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람이 되지 못하고 하고, 누려야 할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며, 성취해야 할 삶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무력화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SNS나 어떤 사랑의 노력이나 어떤 화해의 제스처도 이 깊은 단절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죄가 갈라놓은 단절을 원천적으로 붙여 놓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강력본드 같은 분이 있습니다. 죄와 마귀가 깨뜨린 것을 복구함으로써 인간이 인간되게 하고, 인간이 누려야 할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하며, 인간이기 때문에 해야 할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시간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3문 : 성령께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 첫째,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그분은 또한 나에게도 주어져서 나로 하여금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며 나를 위로 하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성령을 믿는 것과 내 삶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성령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 삶이 전혀 그분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다면 성령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신천지나 이단들의 교주들이 자신을 ‘보혜사’로 칭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그들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보혜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들도 늙고 병들고 죽을 인생이 아닙니까? 그들은 절대로 보혜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그것’이 아니고, ‘그분’입니다. 그분은 기운이나 신비한 느낌이나 어떤 신적 파워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이 가지신 그 권능과 본질과 영광에 있어서 동일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왜 헷갈리느냐 하면 성령은 성부, 성자와 같은 분이셔서 성경에서 그 명칭이 자주 혼용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은 14: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로 오시겠다고 한 ‘내가’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속에 계실 분이 바로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오리라, 성령이 오시리라” 예수님은 성령님과 자신을 동일한 존재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사실 보혜사라는 말은 참 어려운 단어입니다. ✔‘지킬 보(保), 은혜 은(惠), 스승 사(師)’, ‘지키시고 은혜를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희랍어 원문으로 보면 이 단어는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σ)-‘곁에’라는 뜻의 ‘파라(παρα)’와 ‘부르다’를 뜻하는 ‘클레토스(κλητοσ)’ 가 합쳐져서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위로자’, ‘돕는 자’, ‘격려자’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 이름 속에 이미 성령의 역할을 담겨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도하시고 가르치시며 돕고 권면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항상 성령 충만을 노래하듯 말합니다. 성경에는 성령 충만에 대한 말씀이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나옵니다. 사실 성경은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나오는 성령은 누구신가? ✔한마디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靈)이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감화력이나 능력이 아니고 성부, 성자와 함께 동등한 인격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믿는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마음을 움직이시며, 믿음이 자라도록 힘을 주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분별하도록 하시며, 모든 믿음의 일들, 헌신, 전도, 사랑, 기도 등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초대교회에 첫 번째 사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밭을 팔아 일부를 떼어 놓고 일부만 가지고 와서 베드로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한 것입니다. 바나바가 밭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내어 놓자 모든 사람들이 바나바를 칭찬하며 인정하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여 밭을 팔았지만 아까운 마음이 들어 일부를 숨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성령을 속인 것이었습니다.
✔행 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는 정확하게 성령님을 하나님과 같은 영광과 권능과 지위를 가지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실까요?
이 사실은 단지 우리가 믿고 따르는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매일의 삶에 결정적인 ‘관계’와 상관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두 가지 주특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주특기 : 묶기(combine)
보혜사 성령님은 깨지고 쪼개지며 나뉜 것을 하나로 붙이고 묶으며 연결하는 주특기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이 어떻게 발휘됐는지를 살펴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의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그 다음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2절). 한쪽에는 전능의 하나님이 계시고, 다른 한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텅 빈 세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은 하나님과 공허하고 혼돈한 세상 사이를 연결함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게 하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온 우주 만물 중심에 서서 하나님의 통치 동역자로서 세상을 다스리고 지배하며 관리할 그분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은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이것은 단지 흙덩어리였을 뿐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진흙을 가지고 인형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흙덩이의 콧구멍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산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기라는 말은 ‘네샤마’라고 하는데 그 의미가 ‘호흡, 숨’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1:2절에 나오는 신(神)이라는 말은 ‘루아흐’라고 하는데 ‘숨, 바람, 영’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성령의 바람을 불어 넣으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본드가 되어 흙덩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르는 복음송 가운데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라는 가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음 받은 특별한 피조물인 인간이 타락했을 때, 그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아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기 위해 반드시 인간이 되셔야 했고,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의 몸에서 나셔야 했습니다. 마리아라는 한 처녀와 아들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는 연결자가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의 능력과 예수님 사이를 연결하신 분도 성령님이셨습니다.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임하셨고 예수님의 전 생애는 그 성령의 동력으로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고넬료에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러니까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신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룬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연결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승천하셨고 열흘 후인 오순절에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예수님 자신의 영이십니다. 성령이 이 땅에 강림하심으로 시공간을 초월해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죄를 위해서라는 것, 죄에서 벗어날 길을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없다는 것을 듣게 하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령의 외적 소명 혹은 외소(外召)라고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게 된 것 자체가 성령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동역자로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이 힘들어지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여러분에게 들은 그 복음이 생각나서 교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귓가에도 안 들어오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가 되도록, 그래서 그 복음에 자기 인생을 맡기도록 누가 내면의 작업을 합니까? 바로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내적 소명 혹은 내소(內召)라고 부릅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의 성장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날마다 우리가 육적 삶을 떠나 성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이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령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과 우리를 연결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주십니다.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붙이고 묶으시는 분이기에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로 묶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금년도 우리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엡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교회가 하나 되지 않는 이유는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계시면 절대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주특기 : ~수 있게 하심(enable)
보혜사 성령님은 단순히 찢어진 조각을 묶는 것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결합시키고 연결하심으로 ‘~수 있게’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할 수 있게 하신다. 될 수 있게 하신다. 가질 수 있게 하신다. 누릴 수 있게 하신다.” 영어로 하면 ‘enable'입니다. 아무리 좋은 최신형 냉장고가 있어도 전원과 연결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전원과 플러그를 연결하는 이유는 동력을 얻어 작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성령님은 혼동과 공허 속에 있는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함으로 세상을 만드셨고, 흙덩어리에 불과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성령님은 타락한 인간을 구하실 수 있는 구세주가 되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예수님 십자가 죽음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고 연결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글자 속에 들어 있는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은 연결하셔서 우리가 서로 보살피고 지켜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며, 교회 안에 은사를 주셔서 우리 각 사람이 서로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설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셨다는 것은 단순히 정신 현상이 아닙니다. 그분의 실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분의 실체를 받아들인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은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만 가능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구원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 즉 죄인이었다고 믿습니까? 그 확신은 성령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여러분의 죄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그것 역시 성령님이 하신 일입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믿어지십니까? 누가 부인해도 나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신으로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믿고 사십니까? 이것도 역시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 증거입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 충만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
✔성령 하나님은 묶고(combine), 힘을 주는(enable) 전문가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제일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짓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고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미 구원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짓는 가장 큰 죄는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도 그분을 무시하고 스스로 하나님 행세를 하며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육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다른 말로, 성령 충만하지 않는 것이 성도가 짓는 가장 큰 죄입니다.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성령 충만은 신비한 느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영, 성령께 굴복하고 내 마음대로 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은 제가 더 잘 알아요. 성령님은 저리 비키세요.” 성령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갑 안에 어떤 손이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장갑은 의의 병기도 될 수 있고 악한 병기도 될 수 있습니다. 장갑 안에 살인범의 손이 들어간다면 그 장갑은 살인 도구로 전락합니다. 장갑 안에 은행 강도의 손이 들어간다면 강도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장갑 안에 간호사의 손이 들어간다면 환자를 치료하는 도구가 됩니다. 또한 장갑 안에 주부의 손이 들어간다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의의 병기가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이 들어가실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미션을 수행하는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이 심긴 작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연결하는 일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