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여러 사람들의 발제와 의견을 듣고 나면 짧았던 내 생각에 대해서 돌아보게 된다.
이번 영화 가타카 역시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게되는 것 같다.
우리는 누구인가?
-육체와 정신-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인 CSI의 대사중 "DNA is WHAT we are , not WHO we are"이라는 대사가 있다.
평범한 드라마의 한 대사이지만 듣자마자 이 대사에 대하여 동의하든 하지 않든 단순한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항상 외우고 있다.
육체적인 요소가 인간의 존재를 완벽하게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 대사가 떠오른 것은 이러한 점에서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육체와 정신. 어느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로서 더 중요하고 또 그 근거는 무엇이며
이 밖에도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하는 기준과 요소들은 다른 것이 없는지 너무나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논하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고민하고 정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며 따라서 신체적인 요소를 정신적인 요소보다 은근히 아래의 것으로 치부했던 시각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비판해보았다.
만약 육체가 생물학적으로서의 인간 그 너머를 나타내지 못한다면
어렸을 적 작고 여린 내 모습과 지금의 커버린 성숙한 내 모습이 별 다를 것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신체가 자란 것은 부피가 늘어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변화에 따라 우리는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사회적으로 요구받음과 동시에
그에 걸맞는 교육을 받고 사고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4살짜리 꼬마를 만나면 우리는 그 꼬마에게 할 수 있는 질문과 또 기대할 수 있는 대답이
한정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작고 어린 신체적인 모습을 감지하고 그에 맞는 정신력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내 모습과 오늘의 내가 같다고 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신체적인 변화와
그에 따르는 내면의 변화까지 같이 일컫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육체의 모습은 우리가 서로를 인식하는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서 어쩌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은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거나 더 고귀한 것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해보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인간을 규정짓는 요소를 고려함에 있어서 육체 또한 정신 만큼이나 주요한 요소가 되며
육체가 정신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크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꿈이 있는 사람, 그 꿈을 꼭 이룬 삶 만이 가치있는걸까?
Boys be ambitious! 라는 유명한 영어 격언이 있듯이 우리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꿈을 가지고
야망을 가지고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미덕을 칭찬해왔다.
꿈이 없는 사람은 무기력한 곧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무모해보이기만 했던 꿈을 이룬 에단호크는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성공적인 엔딩을 보이지만
쥬드로는 꿈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으로서 자살로 마감한다.
꿈이 있는 그래서 꿈을 현실화 한 사람은 우리가 칭찬해야 하고 본 받아야 할 상으로 여겨지지만
그 반대인 사람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안타깝게, 그래서 본 받지 말아야 할 상으로
영화는 비춘다.
하지만 여기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교과서적인 결말에 대하여 수업시간에 한 학생이 의문점을 제기하자
나 역시 뒷통수를 맞은 기분으로 정말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꿈을 이룬 실패한 자는 가치가 없는, 살아갈 이유가 없는 존재인가? 라는 의문이 들자 많은 고민들과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목표, 좀 더 확장하면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꿈이라는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루고자 하는 얻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듯 하다.
그렇지만 개인의 능력에 따라 또 그 목표의 실현가능성 정도에 따라 사람들은 실패를 하기도 하고 성공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성공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 보다 더 값진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일정한 생산량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산해 내야만 하는 기계가 아니므로 그렇게 단순하게 'yes' 라고 답할 수 없다.
인간이 존엄성을 지니는 이유가 그 자체로서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듯
그 목표를 이루고 못 이루고를 떠나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꿈을 향해 일련의 노력을 하는 과정 또한 삶의 한 부분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확실히 하고 싶은 점은 과정이나 결과냐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통해 어느 것이 더 값진 것이냐를 논하려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일련의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가치관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삶으로서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있어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면
작은 목표지만 그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나
큰 꿈을 향해 아둥바둥 사는 사람이나
그 꿈이 작든 크든 그리고 꿈을 이루었든 못 이루었든
모두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나름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결국 삶에 있어서 꿈이 어떤 역할을 하고 무슨 방법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든 그 것이 가지는 의미는 각 개인에게 달린 것이다.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집 앞 정원을 가꾸며 오손도손 사는 평범한 시골의 가장이나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매 번 떨어져도 꿋꿋하게 선거에 나오는 후보나
어느 삶이 가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있어서 그 삶은 모두 의미를 지는다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