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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 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서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자 화 상 (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쉽게 씌어진 시 (詩)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學費) 봉투(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참 회 록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이십사년일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프랑시스 잠',‘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또 다른 고향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白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
간(肝)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龍宮)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병 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
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
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
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소 년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 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
을 들여다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 보
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
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
의 얼굴은 어린다.
십자가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아우의 인상화 (印象畵)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띤 손을 잡고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걸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오줌싸개지도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못 자는 밤
하나,둘,셋,넷
.................
밤은
많기도 하다.
한난계 윤동주
싸늘한 대리석 기둥에 모가지를 비틀어 맨 한난계
문득 들여다볼 수 있는 운명한 오척육촌의 허리 가는 수은주
마음은 유리관보다 맑소이다.
혈관이 단조로워 신경질인 여론동물
가끔 분수 같은 냉 침을 억지로 삼키기에
정력을 낭비합니다.
영하로 손가락질할 수돌네 방처럼 칩은 겨울보다
해바라기가 만발할 팔월 교정이 이상곱소이다.
피끓을 그 날이-
어제는 막 소낙비가 퍼붓더니 오늘은 좋은 날씨올시다.
동저고리 바람에 언덕으로, 숲으로 하시구려-
이렇게 가만가만 혼자서 귓속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는 아마도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하늘만 보이는 울타리 안을 뛰쳐
역사 같은 포지션을 지켜야 봅니다.
눈오는 지도 (地圖)
順伊가 떠난다는 아츰에 말못할 마음으
로 함박눈이 나려、슬픈것 처럼 窓밖에
아득히 깔린 地圖우에 덥힌다。
房안을 도라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壁
과 天井이 하얗다。房안에까지 눈이 나
리는 것일까、정말 너는 잃어버린 歷史
처럼 홀홀이 가는것이냐、떠나기前에 일러
둘말이 있든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거리、어느마을、어
느집웅밑、너는 내 마음속에만 남어 있는
것이냐、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작고
나려 덥혀 따라갈수도 없다。눈이 녹으
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욱을 찾어 나서면 一年열
두달 하냥 내마음에는 눈이 나리리라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불을 켜두
는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그것
은 낮의 延長이옵기에――
이제 窓을 열어 空氣를 밖구어 드려야
할턴데 밖을 가만이 내다 보아야 房안
과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
고 오든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
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
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이
제、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
니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길 새로운길
문들레가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길은 언제나 새로운길
오늘도……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간판 (看板) 없는 거리
停車場 푸랕에
나렷을때 아무도없어、
다들 손님들뿐、
손님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看板이없어
집 찾을 근심이없어
빨가케
파라케
불붓는文字도없이
모퉁이마다
慈愛로운 헌 瓦斯燈에
불을 혀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어진사람들
다들、어진사람들
봄、여름、가을、겨을、
순서로 돌아들고、
태초(太初) 의 아츰(침)
봄날 아츰도 아니고
여름、가을、겨을、
그런날 아츰도 아닌 아츰에
빨―간 꽃이 피여낫네、
해ㅅ빛이 푸른데、
그前날밤에
그前날밤에
모든것이 마련되엿네、
사랑은 뱀과 함께
毒은 어린 꽃과 함게
또 태초(太初)의 아츰(침)
하얗게 눈이 덮이엿고
電信柱가 잉잉 울어
하나님말슴이 들려온다。
무슨 啓示일가。
빨리
봄이 오면
罪를 짓고
눈이
밝어
이가 解産하는 수고를 다하면
無花果 잎사귀로 부끄런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겟다。
새벽이 올때까지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요。
다들 살어가는 사람들에게
힌 옷을 입히시요。
그리고 한 寢台에
가즈런이 잠을 재우시요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요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 올게외다。
무서운時間
거 나를 부르는것이 누구요、
가랑닢 입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呼吸이 남어 있소。
한번도 손들어 보지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이 마치고 내 죽는날 아츰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닢이 떠러질텐데……
나를 부르지마오。
바람이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가、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理由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理由가 없을가、
단 한女子를 사랑한 일도 없다。
時代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작고 부는데
내발이 반석우에 섯다。
강물이 작고 흐르는데
내발이 언덕우에 섯다。
슬픈族屬
힌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힌 고무신이 거츤발에 걸리우다。
힌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힌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눈감고간다
太陽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었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었든 눈을 왓작떠라。
힌그림자.
黃昏이 지터지는 길모금에서
하로종일 시드른 귀를 가만이 기우리면
땅검의 옴겨지는 발자취소리、
발자취소리를 들을수있도록
나는총명했든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것을 깨다른다음
오래 마음 깊은속에
괴로워하든수많은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모통이 어둠속으로
소리없이사라지는힌그림자、
힌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든 힌그림자들、
내모든것을 돌려보낸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黃昏처럼 물드는 내방으로 돌아오면
信念이 깊은 으젓한 洋처럼
하로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뜻자。
사랑스런追憶
봄이오든 아츰、서울 어느쪼그만 停車場에서
希望과 사랑처럼汽車를 기다려、
나는푸라트․에 간신한그림자를터러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것도없이
나래속을 속、속、햇빛에빛워、날었다。
汽車는아무새로운소식도없이
나를 멀리 실어 다 주어、
봄은 다가고―― 東京郊外어느조용한下宿房
에서、 옛거리에남은나를 希望과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汽車는몇번이나 無意味하게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기다려 停車場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어있거라。
흐르는거리
으스럼이 안개가 흐른다。거리가 흘러간다。
저 電車、自動車、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가? 定泊할 아무港口도없이、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실고서、안개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모통이 붉은 포스트상자를 붓잡고、
서슬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속에 어렴푸시빛
나는 街路燈、꺼지지 않는것은 무슨象徵
일까? 사랑하는동무 朴이여! 그리고 金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날아츰 우리 다시 情답게 손목을잡
어 보세」 몇字 적어 포스트속에 떠러트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金徽章에 金탄추를
삐엿고 巨人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配達夫、
아츰과 함께 즐거운 來臨、
이밤을 하욤없이 안개가 흐른다。
봄、
봄이 血管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돌、시내가차운 언덕에
개나리、진달레、노―란 배추꽃、
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 처럼 피여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처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높기도 한데……
못자는밤、
하나、둘、셋、네
………………
밤은
많기도 하다
慰勞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病院 뒤ㅅ뜰
난간과 꽃밭사이 사람발이 잘 다찌않
는곳에 그믈을 처놓앗다。 屋外療
養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어서
치여다 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마리 꽃밭에날어들다 그믈에
걸리엿다。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작고 감기우기만한
다。 거미가 쏜살같이가더니 끝없는끝
없는실을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어버
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쉬엿다。
나(歲)보담 무수한 고생끝에 때를잃
고 病을 얻은 이사나이를 慰勞할말이
――거미줄을 헝크러 버리는 것박에
慰勞의 말이 없엇다
八福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히가 永遠히 슬플것이오。
산골물
괴로운 사람아 괴로운 사람아
옷자락물결 속에서도
가슴속깊이 돌돌 샘물이 흘러
이밤을 더부러 말할이 없도다。
거리의 소음과 노래 부를수없도다。
그신듯이 냇가에 앉어스니
사랑과 일을 거리에 맥기고
가마니 가마니
바다로 가자、
바다로 가자、
薔薇病들어.
장미 병들어
옴겨 노흘 이웃이 없도다。
달랑달랑 외로히
幌馬車 태워 山에 보낼거나、
뚜―― 구슬피
火輪船 태워 大洋에 보낼거나、
푸로페라소리 요란히
飛行機 태워 成層圈에 보낼거나
이것 저것
다 구만두고
자라가는 아들이 꿈을 깨기前
이내 가슴에 무더다오。
달같이
年輪이 자라듯이
달이자라는 고요한 밤에
달같이 외로운 사랑이
가슴하나 뻐근히
年輪처럼 피여나간다。
「고추밭」
시드른 닢새속에서
고 빨―간살을 드러내 놓고、
고추는 芳年된 아가씬양
땍볕에 작고 익어간다。
할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밭머리에서 어정거리고
손가락 너어는 아이는
할머니 뒤만 따른다。
코쓰모쓰
淸楚한 코쓰모쓰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넷 少女가 몯견디게 그리워
코쓰모쓰 핀 庭園으로 찾어간다。
코쓰모쓰는
귀또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쓰모쓰 앞에선 나는
어렷을적 처럼 부끄러워 지나니、
내마음은 코쓰모쓰의 마음이오.
코쓰모쓰의 마음은 내마음이다。
異蹟
발에 터분한 것을 다 빼여 바리고
黃昏이 湖水우로 걸어오듯이
나도 삽분 걸어 보리 잇가?
내사 이 湖水가로
부르는 이 없이
불리워 온것은
참말異蹟이 외다。
오늘따라
戀情、自惚、猜忌、이것들이
작고 金메달처럼 만저 지는구려
하나、내 모든것을 餘念없이、
물결에 써서 보내려니
당신은 湖面으로 나를불려내소서。
사랑의 殿堂
順아 너는 내 殿에 언제 들어왓든것이냐?
내사 언제 네殿에 들어갓든것이냐?
우리들의 殿堂은
古風한 風習이어린 사랑의 殿堂
順아 암사슴처럼 水晶눈을 나려감어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
우리들의 사랑은 한낫 벙어리 엿다。
靑春!
聖스런 촛대에 熱한불이 꺼지기前、
順아 너는 앞문으로 내 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우리窓에 부닥치기前
나는 永遠한 사랑을 안은채
뒤ㅅ 門으로 멀리 사려지련다。
이제.
네게는 森林속의 안윽한 湖水가 있고、
내게는 峻儉한 山脉이있다。
비오는밤.
솨― 철석! 파도소리 문살에 부서저
잠살포시 꿈이 흐터진다。
잠은 한낫 검은고래떼처럼 살래여、
달랠 아무런 재조도 없다。
불을밝혀 잠옷을 정성스리 여매는
三更。
念願。
憧憬의 땅 江南에 또洪水질것만시퍼、
바다의 鄕愁보다 더 호젓해 진다
어머니、
어머니!
젖을 빨려 이마음을 달래여주시오。
이밤이 작고 설혀 지나이다。
이아이는 턱에 수염자리잡히도록
무엇을 먹고 잘앗나이까?
오날도 힌주먹이
입에 그대로 믈려있나이다。
어머니
부서진 납人形도 슬혀진지
벌서 오램니다
철비가 후누주군이 나리는 이밤을
주먹이나 빨면서 새우릿가?
어머니! 그어진손으로
이울음을 달래여주시요
街路樹
街路樹、단촐한 그늘밑에
구두술 같은 헤ㅅ바닥으로
無心히 구두술을 할는 시름。
때는 午正。싸이렌、
어대로 갈것이냐?
□시 그늘은 맴 돌고。
따라 사나이도 맴돌고
遺 言
후어―ㄴ한房에 遺言은 소리없는 입놀림。
――바다에 眞珠캐려 갓다는 아들
海女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맏아들、
이밤에사 돌아오나 내다봐라――
平生 외로운 아바지의 殞命、
외딴집에 개가 짖고、
휘양찬 달이 문살에 흐르는밤
窓、
쉬는 時間마다
나는 窓역흐로 함니다。
――窓은 산 가르킴。
이글이글 불을 피워주소、
이방에 찬것이 설임니다。
단풍닢 하나
맴 도나 보니
아마도 작으만한 旋風이 인게웨다。
그래도 싸느란 유리창에
해ㅅ살이 쨍々한 무렵、
山峽의午後
내 노래는 오히려
섫은 산울림。
골자기 길에
떠러진 그림자는
너무나 슬프구나。
午後의 瞑想은
아―― 졸려。
毘盧峯
萬象을
굽어 보기란――
무렆이
오들오들 떨린다。
白樺
어려서 늙엇다。
새가 나븨가 된다
정말 구름이
비가 된다。
옷 자락이
칩다。
바다、
실어다 뿌리는
바람 좇아 씨원타。
솔나무 가지마다 샛춤히
고개를 돌리여 뻐들어지고、
밀치고
밀치운다。
이랑을 넘는 물결은
폭포처렴 피여오른다
海辺에 아이들이 모인다
찰찰 손을싯고 구부로、
바다는 작고 섧어진다。
갈메기의 노래에……
도려다보고 도려다보고
돌아가는 오날의 바다여!
瞑 想
가츨가츨한 머리갈은 오막사리 처마끝、
쉿파람에 코ㄴ마루가 서분한양 간질키오。
들窓같은 눈은 가볍게 닫혀、
이밤에 戀情은 어둠처럼 골골히 스며드오
悲 哀
호젓한 世紀의달을 딿아
알뜻 모를뜻 한데로 거닐과저!
아닌 밤중에 튀기듯이
잠자리를 뛰처
끝없는 曠野를 홀로 거니는
사람의心思는 외로우러니
아― 이젊은이는
피라미트처럼 슬프구나
소 낙 비
번개、뇌성、왁자지근 뚜다려
머―ㄴ 都會地에 落雷가 있어만싶다。
벼루짱 엎어논 하늘로
살같은 비가 살처럼 쏫다진다。
손바닥 만한 나의庭園이
마음같이 흐린湖水되기 일수다。
바람이 팽이처럼 돈다。
나무가 머리를 이루 잡지 몯한다。
내敬虔한 마음을 모서드려
그女子
함께핀 꽃에 처음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젓슴니다。
오날도 가을바람은 그냥붐니다。
길가에 떨어진 불근 능금은
지나든 손님이 집어갓슴니다。
夜 行
正刻!마음이 앞은데있어 膏藥을붗이고
시들은 다리를 끟을고 떻나는 行裝、
――― 汽笛이들리잖게 운다。
사랑스런女人이 타박타박 땅
을 굴려 쫓기에
하도 무서워 上架橋를 기여넘다。
――― 이제로붙어 登山鐵道、
이윽고 思索의 포푸라
詩라는것을反芻하다 맛당이反芻하여야한다。
――― 저녁煙氣가 놀로된 以後.
휘ㅅ바람부는 햇 귀뜰램이의
노래는 마듸마듸 끟어저
그믐달 처럼 호젓하게슬프다、
늬는 노래배울 어머니도 아바지도 없나보다
――― 늬는 다리가는 쬐그만보해미앤、
내사 보리밭동리에 어머니도
누나도 있다。
그네는 노래부를줄 몰라
오늘밤도 그윽한 한슴으로 보내리니――
[출처] 윤동주의 시 모음|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새벽 3시 26분에 사망한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그가 1943년 12월에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하면서 기념 시집을 내려던 계획이 좌절..
후배 정병욱에게 육필 시집(19편)을 맡긴다. 윤동주가 사망한 후 그의 후배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가 마음을 모아 세상에 내놓았다.(정음사, 1948년)
육필시집 19편 + 일본에서 지은 시5편(절친 강처중에게 송부한 것)+ 동생들이 보관하던 것7편)
신촌 연세대학교 내 핀슨홀 2층에 윤동주 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당시에 윤동주가 기거하던 기숙사가 있던 건물이다.
위의 사진은 윤동주가 사용하던 책상과 책, 모자, 책가방 등... 책상에 앉아 두어시간 그를 생각했다. 마음이 아렸다.
나로 하여금 시를 알게 하고 시인이 되도록 동기력을 주었던 윤동주. 그의 기숙사에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19편의 시를 육필로 써서 3권을 만든다. 한 권은 자신이, 한권은 은사 이양하 교수에게, 한 권은 후배 정병욱에게 맡긴다.
후에 정병욱이 일본에 학도병을 끌려가면서 고향 노모에게 맡긴다. 전남 광양시 섬진강가 그의 집 마루밑에 숨겨졌던 시집이다.
박아지(정병욱의 노모)는 항아리에 넣고 보자기로 싸서 마루밑에 숨겨 두었었다. 그것이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윤동주 시의 일부 19편이다. 정병욱의 노모도 정병욱도 아름다운 영혼들인 것 같다. 일본에게 발각되면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는 우리글로 쓰여진 윤동주의 시집... 민족말살 정책으로 우리 글과 말, 이름까지 창시개명시키려 했던 일본의 칼날 밑에서도 무사히 보관되었던 보물.
일본은 윤동주의 신체적인 생명을 뺏을 수는 있었지만, 그의 시 사랑과 민족혼(우리 글로 시를 썼던 자존심과 나라,민족에 대한 자존심)만을 빼앗지 못했다.
연대
일본인 오무리 마쓰오 교수에 의해서 발견된 윤동주의 묘( 용정) 이다.
우리 한국에서 1948년에 윤동주의 유고시집(31편)이 나오고, 62편이 증편되어 1955년에 또 한번 그의 시집이 나오긴 했지만,
우리 한국에서는 그 때까지도 윤동주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한국인들과 세계에...
그의 시를 더 많이 사랑하고 세계에 알리기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이었다.
윤동주를 죽인 것은 일본의 칼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탐미주의자들이 그의 시를 사랑하기 시작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북간도까지 가서 그에 대한 자료를 발굴해 내고, 그의 묘지도 발견해 내었다.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의 젋은 여자들이 해낸 일이다. 사진 속의 윤동주의 미남 얼굴에 매료된 일본 여자들... 요즘도 장동건이라든지 한국의 영화배우에게 빠져서 일본여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의 영화가 일본에 수출되곤 한다는데,,, 이러한 한류열풍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밖에서부터 발굴되어 유명해지기 시작한 윤동주.... 그제서야 부랴부랴 한국에서도 윤동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부끄러운 일일른지도 모른다. 자기 자식, 자기 가족, 자기 친구, 자기 후손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가 밖에서 칭찬하고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니 그때서야 윤동주는 우리 나라의 시인이라고 자랑하기 시작한다는 것이....
예술가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는 우리나라의 풍토... 예술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어 보이는 우리의 한면을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본인들에 의해서 윤동주는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43년에 루스 베네딕트라는 미국의 인류학자가 쓴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윤동주는 일본의 칼에 의해 죽었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일본의 국화에 의해서 세계에 부각되었다.
윤동주와 기숙사에서도 북아현동 하숙방에서도 종로구 누상동 하숙방에서도 서소문 하숙방에서도 19개월 동안 같은 방을 썼던
후배 정병욱.... 그는 후에 우리나라 고전문학과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었다.
부산대학, 연세대학, 서울대학에 교수를 역임하다가 60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는 어느 수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 세상에 태어나서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은
윤동주 시인의 육필 시집을 잘 지켰다가 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라고...
윤동주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철창을 붙잡고 " 조선아, 조선아 ~~"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 물탱크를 개조하여 그가 갇혔던 감옥을 재현해 놓았다. 햇빛 한줌 들어오기 힘들었던 곳...
그곳에서는 윤동주에 관한 영상과 시를 낭송해준다. 잠시 앉아있는 동안에도 너무 추웠다. 어둡고 춥고 외롭고 고통스러웠을 그의 수감생활 19개월... 그는 막도동에 시달렸으며, 밤마다 의문의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생체실험에 우리의 윤동주가 이용되었다는 것..
결국 그는 27년 3개월의 짧은 생을 감옥에서 마감한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아! 가슴이 먹먹해 온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그의 시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그의 시를 사랑하며 암송하며 가슴 절여하고 있지 않은가? 7개국어로 번역되어 80여개국에 그의 시집이 널리 퍼져있다. 세계인들 누구라도 그의 시를 읽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일본 제국주의 칼날에 스러져간 우리의 윤동주. 그러나. 그는 불사조처럼 시와 함께 다시 살아 우리 후손들과 전세계인들의 가슴에 큰 울림이 되고 있다. 누가 윤동주를 죽였는가? 누가 윤동주를 죽었다고 하는가?
시를 사랑하는 그의 글벗, 강처중과 후배 정병욱, 동생 윤일주 윤혜원의 정성으로 그의 시집은 세상에 남겨졌다.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캄캄한 섬진강가 마루밑에서 1943년부터 몇년 동안 숨죽이고 있던 윤동주의 시집. 세상 밖으로 나와 세계인의 가슴으로 파고들고 있지 않은가?
위대한 일을 해낸 정벽욱 교수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의 재료를 발굴해준 착한 일본인들에게도.... 일본의 제국주의 칼날과 탐미주의자들의 이중성. 그 또한 주목할 일이리라.
윤동주의 생가는 북간도 명동촌에 있다. 그의 기념관과 함께... 그의 묘는 북간도 용정에 있다. 거기에 다녀오고 싶다고 마음만 간절했었다. 그런데, 내 서재에서 나와 서쪽으로 7분정도만 가면, 그가 다녔던 연세 대학(연희 전문)과 그의 시비가 있다는 것을...
동쪽으로 7분정도 가면, 통인시장 옆골복 끝에 누상동 그의 하숙집(3개월간 기거)터가 있고, 부암동에 그의 문학관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부암동 문학관을 두번이나 갔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명함을 제시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규제가 심했다. 항일저항시인 이상화와 한용운을 써서 월간 [순국]에 연재했고, 이번에 윤동주에 대해서 쓰려고 취재차 왔다고 설명을 해도 사진 촬영을 금했다.
그 다음날 다시 갔다. 명함도 챙기고 한용운에 대해서 써서 발표했던 책자도 함께 가지고.갔다.
그제서야 "글이 언제 나오느냐? "고 오히려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1주일 내내 윤동주 시집을 몇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현대시를 전공했는에 윤동주를 모를 리 없지만, 좀 더 깊게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잘 쓰고 싶은 욕심... 결국 새벽까지 잠을 아끼며 공부를 거듭하여 원고지 39장의 수필을 마무리했다. 입안이 두군데나 헐어버렸다. 이것이 글쓰는 고통이다. 그러나. 재미있고 재미있다. 펜이 칼을 이긴다는 평범한 격언을 실감나게 해준 시인, 윤동주. 나는 그에 대해서 아린 마음과 그의 감수성과 자존심에 경의을 표한다. 어떤 시인들은 변절을 하여 은사금을 받기도 하고, 신사참배도 했다고 하는데... 85세까지 살면서 모대학 교수를 하며 저서를 84권을 남겼다고 하는데, 친일을 했다고 얼마나 비난을 받고 있는가? 자신의 자존심과 우리글을 고집한 윤동주... 아마도 그에게는 독립운동가인 외삼촌, 김약연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더욱 순전한 마음을 고집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안중근에게 탄약과 총과 독립자금을 대주었던 독립운동가, 김약연 - 외삼촌에 대한 일을 모를 리 없는 윤동주. 그는 어릴 때부터 그것을 보고 자랐으리라. 그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민족에 대한 사랑이 뼛속까지 강하게
뿌리 박혀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1939년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했던 '달을 쏘다'라는 산문에도 강하게 나타나 있는 저항정신. 그리고, '십자가'나 ' 또 다른 고향''슬픈 족속'과 같은 시는 항일과 저항정신이 매우 짙다. 일본땅에서 우리글로 쓴 '쉽게 쓰여진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공시간, 우리과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윤동주는 저항시인이라기 보다는 자아성찰시인이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그 말씀도 맞는 말이다. 그 시대에 시대를 고뇌하지 않은 지식인이 몇이나 될까? 그는 시대를 고뇌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을 비유와 이미지 상징으로 시를 썼다. 아무리 감추려해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저항의식은 시에 농후하게 녹아있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는 저항시인이었다고,. 서정성이 진한 저항시. 그 시대에 우리글로 된 시집을 내려고 한편 한편을 육필로 직접 써서 세권을 책을 만들어 낸 것만 보아도 그의 기개는 충분한 애국이다. 목숨을 건 애국."육찹방은 남의 나라~~~ 나는 이대로 침전하는가?"라고 '쉽게 쓰여진 시'에서 그가 울부짖는 절규 하나만으로도 그는 저항시인이다. 황국신민화를 꿈꾸며 조선어 과목까지 조선에서 폐지시켰던 일본, 창씨개명까지 시켰던 일본 땅에서 우리글로 쓴 다섯편의 시. 그것만으로도 그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던 애국자였던 것이다. 1941년 11월 21일(대학 4학년) 때 쓴 '서시'에서 처럼 그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의 고뇌하는 지식인. 아픈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그의 괴로움이 묻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별헤는 밤'(194. 11.5.)도 '서시'도 모두 누상동 하숙시절, 인왕산 자락을 산책하면서 썼다고 하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나는.
아주 가까이에 그의 흔적이 서려 있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나는.
내 서재를 사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그의 흔적을 가슴 아파하면서, 시를 더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오늘 자책하는 맘이 들고 있다.
시를 사랑하여 죽었던 시인, 윤동주. 그러나. 죽지 않은 윤동주... 그에 대한 사유로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아파하며 가슴 절여하며......
그의 기운이 많은 문학도들에게 아름다운 별로 더 높이 떠오르길 기원하며 이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