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 오전 10:30분
광화문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
1247차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가 열렸다.
'할머니 장수하세요. 일본이 사과하는 거 보여드릴테니까'
'No War'등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적어 붙인 포스트 잇이 붙어있는 벽이 보인다.
이곳에서 대학생 행동을 하고 있는 몇몇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동석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침 아홉시 부터 저녁 9시까지 돌아가며 이곳을 지키며 매주 토요일 토요집회를 한다고 한다.
지금의 정권을 믿을 수가 없어서 이제는 정당도 창당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윽고 집회시간이 되었다. 약 20명 남짓의 사람들만이 모여있던 이곳에 점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단체로 온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처음엔 단순히 기자로써 인터뷰와 사진기록을 위해, 그리고 집회를 기록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지만
나는 어느새 고등학생들 틈에 섞여 피켓을 들고 있었다. 피켓을 들고 있는 와중에 틈틈이 기록,촬영하고
나머지는 모두 녹취, 추후기록하였다.
위안부 사건의 피해자인 김복동할머니가 자리하셨다.
할머니는 많이 늙으신듯 보였지만 눈만은 또랑또랑 힘을 주며 말씀을 이어가신다.
"김영삼 대통령은 위로금을 받을 필요가 없다. 영세민들을 아파트에 살게 해 주자. 라고 했고 김대중은 생활비를
올려주라고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그 반대에요. 박정희 대통령이 해결하지 못한 이 문제를,
그 딸인 국모께서, 우리의 마음아픈 부분을 치유해달라고 한 것이 잘못이라요.
위로금을 가지고 모든것이 용서가 되겠습니까.
돈을 가지고 해결이 되겠습니까.
나라가 힘이 없어서 끌려가서 이런일을 당하고. 목숨도 뺏기고
여태까지 사죄한번을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기자들을 모아놓고 사죄해야합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순서,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작은 소녀상을 할머니께 전달하면서 손을 잡아드린다.
할머니들이 그토록 지우고 싶어하는 그 때, 이 소녀들과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16,17의 꽃같은 나이에 그 험한 일을 겪으셨을 할머니들이 이 때만은 밝게 웃으며
아이들의 손을 토닥이셨다.
전쟁은 이 소녀들에게 어떤 아픔을 주었는가.
아니, 소녀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
학생들의 발언이 이어진다.
'어떤것이 옳은 판단인지 다시 생각하기를 바란다. '
'모든 국민이 그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 '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자신들이 적어온 종이를 작은 두손으로 꼭 쥐고 떨리는 그러나
호소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할머니들의 아픔은 민족의 아픔입니다. '
집회에 나오는 것만이 꼭 평화행동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이 곳에 어른들보다 학생들이 더 많았다는 것에
부끄러움과 크게 마음에 자리잡았다.
발언을 했던 여자고등학생들에게 다가가 어떤 이유에서 수요집회에 오게 되었는지 그 계기를 물어보았다.
그들은 파주 한민고 1학년 학생들로, 주제별 현장체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반별로 어떤 체험활동을 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그 시간을 소중하고 값지게 사용하고 싶어서
수요집회에 오는것에 모두가 동의했다고 한다. 기자이자 어른으로써 생각있는 그들의 행동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아직,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