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밸리
길상호
눈을 속이듯 비가 지나가면
목말랐던 짐승이며 사람이며
황야를 떠돌다 죽어간 바람까지
다시 깨어나는 시간이란다
사막이 갈라진 입술로
영혼들을 하나씩 불러내는 것,
그들은 먼저 퍼니스크리크에 모여
관절마다 낀 소금부터 씻어낸 뒤
제 발자국을 찾아 흩어진단다
사막양이 모래에 박힌 뿔을 캐내
이마에 대보는 동안
돌멩이를 끌고 고단하게 걷는
바람을 만나게 될 때도 있단다
돌의 밑바닥에서 글자처럼 무늬처럼
뒤늦은 유언이 새겨지는데
누구도 그 뜻은 밝힐 수 없었단다
그저 신기루보다 조금 선명한
죽음을 만났다는 말만 전해질 뿐,
모래의 물기가 마르고 나면
사막에 나타났던 영혼들도 다시
저를 지우며 사라진단다
----{애지}, 2014년 겨울호에서
데스밸리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와 네바다주에 걸쳐 있는 죽음의 골짜기이며, 길이는 약 220km이고, 너비는 약 6∼25km라고 한다. 데스밸리는 여름의 기온이 58.3℃까지 올라간 적도 있었고, 여행자와 동물들이 가끔씩 쓰러지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그 무시무시한 죽음의 골짜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길상호 시인의 [데스밸리]는 우리 인간들의 삶의 의지와 그 욕망마저도 제거하는 ‘無에의 의지’로 되어 있으며,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경계가 무너진 그 지점에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눈을 속이듯 비가 지나가면/ 목말랐던 짐승이며 사람이며/ 황야를 떠돌다 죽어간 바람까지/ 다시 깨어나는” 곳, “사막이 갈라진 입술로/ 영혼들을 하나씩 불러”내면, “그들은 먼저 퍼니스크리크에 모여/ 관절마다 낀 소금부터 씻어낸 뒤/ 제 발자국을 찾아 흩어”지는 곳, “사막양이 모래에 박힌 뿔을 캐내/ 이마에 대보는 동안/ 돌멩이를 끌고 고단하게 걷는/ 바람을 만나게 될 때도” 있는 곳, “돌의 밑바닥에서 글자처럼 무늬처럼/ 뒤늦은 유언이 새겨지는데/ 누구도 그 뜻은 밝힐 수” 없는 곳, “그저 신기루보다 조금 선명한/ 죽음을 만났다는 말만 전해질 뿐/ 모래의 물기가 마르고 나면/ 사막에 나타났던 영혼들도 다시/ 저를 지우며 사라”지는 곳----. 이 데스밸리는 연 평균 강우량이 60mm 내외에 지나지 않으며,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러나 이 죽음의 골짜기에도 선인장은 물론, 여러 식물들과 여우, 사막큰뿔양, 까마귀, 뿔도마뱀, 쥐와 다람쥐 등의 동물들이 살고 있으며, 한 겨울에도 영상 5도에서 영상 18의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피한지로서의 최적의 관광명소라고도 한다.
산다는 것은 황야를 떠돌다가 죽어간 바람과도 같고, 산다는 것은 펄펄 끓는 듯한 시냇물, 즉 퍼니스크리크에 모여 발을 씻고 뿔뿔이 흩어지는 영혼들과도 같다. 산다는 것은 돌의 밑바닥에 새겨진 그 뜻을 알 수 없는 유언과도 같고, 산다는 것은 신기루보다 조금 더 선명한 죽음과도 같다. 산다는 것은 모래의 물기가 마르고 나면 다시 저를 지우며 쓸쓸히 사라지는 영혼들과도 같고, 산다는 것은 요컨대, 궁극적으로 눈속임처럼 내리는 비와도 같다.
태어남도 무이고, 식욕도 무이다. 성욕도 무이고, 사랑도 무이다. 돈도 무이고, 명예도 무이다. 권력도 무이고, 죽음도 무이다.
무에의 의지가 수많은 인간들과 수많은 동식물들처럼, 아니, 수많은 환영이나 눈속임처럼 자라나고, 또 자라난다.
아니, 무에의 의지가 때로는 사나운 모래폭풍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죽음의 골짜기의 펼펄펄 끓는 시냇물이 되기도 한다.
도대체 이 죽음의 골짜기에서는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죽는다는 것은 또한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길상호 시인의 [데스밸리]의 서정성은 그 모든 의지를 지우는 서정성이며,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거운 짐이 되는 그런 슬픈 서정성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