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하고 싶고 엄마도 되고 싶어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자궁근종센터 (1588-1511)
서울성모병원 자궁근종센터장
김미란 교수(산부인과)
후반의 미혼 여성인 정모씨는 어느 날 심한 복통과 함께 갑자기 배에 커다란 혹 덩어리가 만져져 어느 병원에서 자궁 근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러 전문 병원을 다녀 보았지만, 근종이 너무 크고 개수도 많아서 자궁 절제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권고를 받고 울다가 저희 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근종이 20개가 넘는 데다 빈혈도 심했고, 자궁은 또 얼마나 커졌는지, 임신 5개월 정도로 착각할 지경이었습니다. 수술하기 전날 회진 때 이 여성은 제 손을 잡고서 간절한 표정으로 “선생님,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세요.”라며 빌었습니다. 제가 놀라서 “제가 환자분을 죽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진정하세요.”라며 안심을 시키려고 했더니 “제 소중한 자궁을 살려 주세요. 결혼도 하고 싶고, 엄마도 되고 싶어요.”라며 울먹였습니다.
수혈까지 하며 6시간이 넘는 힘든 수술이었지만, 근종 28개를 모두 제거하고 자궁도 살리면서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입원할 때와는 달리 그녀는 웃는 얼굴로 퇴원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여성의 결혼 연령이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공부하랴, 취업하랴, 직장에서 살아남으랴, 여성들이 결혼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서도 임신과 출산은 여성들에게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부인과 질환이 증가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자궁 근종, 자궁내막증 등을 앓는 환자 수가 최근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혼 여성들은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여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진단을 받는 일이 허다합니다.
자궁 근종은 가임기 여성 5명 중 1명에게 생길 정도로 흔한 질환입니다. 이 때문에 그냥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미혼 여성이나 출산을 원하는 여성에게는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에 세심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환자들을 위해 서울성모병원에서는 2010년 2월 자궁근종센터를 개설했습니다. 이 센터는 산부인과학교실의 생식내분비분과, 부인종양분과 팀들이 힘을 합쳐, 그동안 자궁 근종 치료를 통해 축적해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영상의학과, 인터벤션 영상의학과, 혈액내과 의료진들과 협진으로 환자 개개인에게 맞는 최상의 치료를 제공하는 전문 센터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거대한 자궁 근종 진단을 받고서 불안감으로 바닥만 보며 한숨만 쉬던 40대의 박모씨는 병원도 여기저기 많이 다녀 본 듯, 수술에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복하지 않고 로봇 수술을 통해 직경이 12cm나 되는 근종(정상 자궁 크기의 4배 수준)을 절제하고 난 뒤 그녀의 밝고 환한 미소를 본 순간 “이 환자분이 그때 한숨만 푹푹 쉬던 그분 맞나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휴가 중 들렀던 박경리 선생님 기념관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지. 근데 그 어머니의 자궁을 확대하고 확대해 보면 그게 지구가 되고 우주가 되는 거라. 이건 곧 지구가 우리의 자궁이란 말이에요.” 썩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소중한 자궁을 잘 지키면 지구가 지켜질 것만 같았습니다.
서울성모병원 5층 수술실 교직원 출입구 앞에는 1층에서 이사 오신 성모상이 있습니다. “오늘 수술을 받는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잘될 수 있도록 꼭 도와주세요.” 이렇게 떼를 쓰면서 수술방으로 향합니다.
서울주보 2014.8.24.
http://cc.catholic.or.kr/root_file/seoul/jubo/2014년%208월24일%20주보(PDF).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