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인연
영어를 전혀 못하는 스페인 남자.
스페인어를 전혀 못하는 한국인 나.
산티아고 순례 12일 차인 5일전
6시가 안되어 배낭을 꾸리고 알베르게를 나가려는데
문이 잠겨있어 조그만 원탁 테이블 위에 놓여진
빵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는데, 문제의 그 스페인 남자가
밖에서 테이블과 의자로 막은 듯한 옆 문(오른쪽)을 열어주는 게 아닌가
감사 인사 전하고 먼저 걸어 가는데, 아직 어두워
마을을 지나자 까미노 사인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을까 걱정.
길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 오길 기다리자
5분 뒤 한명이 헤드램프를 켜고 걸어오는 것 발견
자존심에 들키지 않으려고 나무 뒤에 숨었다가
약 20미터 후방에서 살살 쫓아감
30분 더 걸으니 다음 마을에 도착했고
날이 밝자 아까 그 스페인 남자임을 확인
모른 체하고 같이 동행하여 걸음
도로에서 샛길로 까미노 사인이 있는데, 그는 큰길로 가려해
사인을 보라고 손짓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마트폰 길찾기를 보며 자기를 따르라는 손짓
그의 행장은 프로답게 배낭을 잘 꾸렸고
스틱도 없이 두팔을 흔들며 걷는 모습과 스페인 사람이라
망설이다 그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함께 동행
한참을 가도 사인은 보이지 않고, 앞에도 뒤에도 순례자는 안보임
그때부터 그도 당황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길찾기를 확인하고
누군가에게 전화하며 두리번 거리기 시작
20분쯤 가자 지나가는 차를 세우더니 스페인 말로 이야기 하는데
오던 길을 되돌아 가던지
산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가리키며 넘으라는 뜻으로 보임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식으로 그만 졸졸 따라감.
그때부터 그 남자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나는 허덕이며 따라감
마을이 나오자 또 어디로 갈지 헤메는데 마침 경찰차 발견.
한참을 이야기 하더니 방금 지나온 길에서 산으로 올라 가라 함
이때부터 등산시작.
내가 못 쫓아가면 기다려 주길 수 차례
1시간 걸려 산을 넘어감
경찰차는 길을 가르쳐주고 10분 후
확인 차 우리를 쫒아 옴. 고마운 경찰
산을 넘자 멀리 다른 길에서 오는 순례객이 보임
그는 그곳을 가리키며 안도의 한 숨과 함께
나에게 보라며 엄지척
나도 웃으며 고맙다 인사
실은 미웠지만...
그는 담배를 피워 물더니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쏜살같이 앞서 걸어감
오늘의 깨달음: 사람을 믿지 말고 싸인을 믿어라
우리도 길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길을 잃지 않는다
숙소에 도착 밥을 먹고 있는데
누가 건드려서 보니 그 남자.
한 명의 여자와 함께
둘 다 영어를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 답답
그 여자를 소개 하는데 알아 듣지 못하자
자기 손가락 약지를 가리켜서
그녀가 약혼한 여인인 줄로 생각
(나중에야 와이프임을 알게 됨)
자기는 하루 40킬로 이상 걸을 것이라 함.
그래서 이제는 만나지 못하겠구나 생각
다음날 숙소에 도착 마을 구경하는데
그가 벤치에 앉아 누군가와 영상통화 중
옆에 앉자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자기 부인과 자녀라고 하며 애들한테 이야기하라 함.
아이들은 영어를 함
하와유 하더니 나보고 어디서 왔냐 이름은 뭐냐
몇 살이냐 등 간단한 대화후 가족들과 영상 인사
통화 후 40킬로 걷는다면서 왜 여기까지 밖에 안왔냐 하자
어제 부인을 만나 같이 보내고,
그녀는 오늘 자동차로 집에 가고, 자기는 늦게 출발했다나
그런데 다음날 숙소에 도착하니
그가 까페에서 스페인 사람들과 음식을 먹고 있어
어찌된 일인가 물으니
잠시 쉬는 중으로 10킬로 더 간다 함.
그래서 이번이 정말 이별일 거라 생각, 기념사진을 찍음
그런데 이게 웬일
다음날 숙소에 도착하니 같은 숙소에서 그를 발견,
그는 오늘 20키로도 채 걷지 않은 것임
벤치에 앉아 카톡하며 또 가족들과 인사를 시킴
자기들도 기이한 인연이라 생각하는지?
저녁에 자기 전에는 한술 더떠
내일 5시에 같이 출발하자고 함
자기는 나보다 10킬로 더 간다며
믿어야 할지, 정말 헤어지고 싶지만
자꾸 만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내일을 기대하며~~
첫댓글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더위에 지치지 마시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