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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10-13(지조있는 신앙)
성경본문 : 다니엘 6: 10-13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13.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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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김홍도목사
지난 부흥회 때 박효진 장로님이 식사시간에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법무부장관이 와서 교도소 내의 고급 교도관들을 불러다가 파티를 하는데 박효진 장로님께 폭탄주를 권하더랍니다. 술잔을 안 받고 있으니까, “직속상관인 장관이 주는 이 잔을 안 받을 텐가? 명령이니까 어서 받아!” 하더랍니다. 그 술잔을 받으면 신앙이 좋다는 장로의 체면이 상하고 안 받자니 법무부장관의 추상같은 명령을 어기는 것이 되었습니다. 온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여 바라보고 있을 때 박 장로님은 잠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더랍니다. 두 손으로 잔을 붙잡고 무릎을 꿇으며 “다같이 감사기도합시다” 하며 박○○ 장관님이 방문케 하심을 감사하고 장관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하고 앞으로 건강도 주시고 지혜도 주셔서 장관직을 잘 감당케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법무부장관이 “아멘” 하고 눈을 뜨더니 “박효진 장로님 참 훌륭한 분입니다. 앞으로 아무도 박 장로님께 술을 권하지 마십시오” 하더랍니다. 그 후부터 장로님으로 더 존경하고 인정하더랍니다. 그때 만일 환경에 못 이겨 술잔을 들고 마시는 척만 했어도 장로의 체면도 안 서고 위신도 서지 않았을 것이고 전도의 길도 막혔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옥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좋은 신앙이란 바로 신앙의 지조를 굳게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봐서 지조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 핍박을 받을까봐 잔머리 굴려가며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 자기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이렇게 변하고 저렇게 변하는 사람은 결코 참다운 신앙의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다니엘이 흠 잡을 데 없는 왕의 신하로서 왕의 총애를 받으니까 이를 시기하며 미워하던 다른 신하들이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넣어죽이자”라는 금령입니다.
왕은 자기를 높여주는 법령 같으니까 그 금령에 어인까지 찍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 웬만하면 “이 한 달 동안만 창문에 커튼을 치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도하자”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니엘은 그 신앙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사자굴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해하지 못하게 하여 편히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를 모해하던 신하들과 그 처자식들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넣자마자 땅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움켜서 뼈까지 부서뜨려 잡아먹었습니다.
참 신앙이 있는지 없는지는 환난과 핍박을 받아봐야 압니다. 지조를 지키는지 못 지키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북한 공산 치하에 살면서 공산당들이 핍박을 하기 시작하자 초등학교, 중학교 때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았으나 “나, 예수 안 믿는다” 하고 신앙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년 주일학교에까지 스파이를 보내서 이름을 적어가곤 했습니다. 중학교 때 그래도 믿음을 지키고 교회에 갔다 오면 월요일부터 자아비판을 하며 학생들한테 공격을 받고, 많은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한테 얼굴이 붓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영원한 지옥에 가는 것보다 짧은 세상에서 핍박을 받다가 죽어도 천당 가는 것이 낫다는 믿음으로 신앙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그런 훈련 때문에 이단 신학과 싸우고 공산당, 빨갱이와도 싸우게 된 것입니다.
조선역사를 보면 충신열사들은 다 절개와 지조를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백제의 계백장군이나 고려의 정몽주 같은 사람은 많은 회유를 당했지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도 님 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 있으랴” 하다가 철퇴를 맞아 죽지 않았습니까? 이조시대에 문종왕을 모시던 사육신, 즉 끝까지 지조를 지키며 단종을 옹위하던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은 참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충신이란 절개와 지조를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숙주를 비롯한 생육신은 핍박이 무서워 세조의 회유에 넘어가 지조를 버리고 변절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지조를 못 지키고 변절한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주님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그 돈 써보지도 못하고 목매달아 자살하다가 곤두박질하며 창자가 터져 나와 죽을 뿐 아니라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슬피 울며 후회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조 없는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1. 영적 생활에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①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우상숭배 하는 것은 가장 큰 죄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다른 신이나 우상 앞에 절하지 않기 위해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순교한 사람이 그 얼마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 중에 제일 무섭고 엄한 계명이 첫째, 둘째 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6절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하나님이 다 미워하시지만 이 첫째, 둘째 계명을 범하는 죄는 너무나 가증하게 여기시고 격분하십니다. 마치 사랑하는 아내가 음식을 못한다든지 살림을 못한다든지 아이를 못 난다든지 하는 것은 봐줄 수 있으나 다른 남자를 사랑하거나 정을 통하는 것은 봐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을 영적 간음죄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처럼 해방을 맞이하게 하셨는데 왜 처참한 6.25 전쟁을 만나 수백만 명이 죽고 엄청난 고난을 당해야 했냐 하면 바로 신사참배, 동방요배를 한 죄 때문이라고들 해석합니다.
특히 1938년 9월 9일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평양 서문 밖 장로회 총회에서 홍택기 총회장이 “신궁요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다”라고 합리화시키고 목사들이 함께 가서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무서운 진노를 받게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할 때에 베를린에 포로가 되어 끌려 갔지만 70년 만에 예언대로 돌아온 것처럼, 2008년에는 하나님이 진노를 푸시고 축복하시사 선교대국이 될 것이 아닌가 기대를 합니다.
초대교회 지도자 Polycarp 감독은 도미시안(Domitian) 황제 때 일어난 대 핍박으로 처형되기 직전 그 지방총독이 Polycarp 감독을 존경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형식으로 한 마디만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으나 거절하면서 “86년 동안 내가 주님을 섬겼는데 그는 한 번도 나를 해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의 구세주를 모독하겠습니까?”라고 말하고 화형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초대교회 핍박 때는 죽고 사는 것이 한 마디 고백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퀴리오스 카이젤(Kurios Caiser)” 즉 “황제는 나의 주님이라” 하면 살고, “퀴리오스 크리스토스(Kurios Christos)” 즉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시다” 하면 죽었습니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고백을 하고 죽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롬10:9-10).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순교를 각오하고 들어갔던 수십 명의 목사님들이 고문과 회유를 못 이기고 지조를 버리고 하룻밤 자고나면 풀려나가고 또 하룻밤 자고나면 또 풀려나가는 것을 볼 때였다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신사참배 하면서 머리만 한번 숙이면 그 많은 고문과 고통을 안 당했을 터인데 신앙의 지조를 지키다가 순교했던 것입니다. 다니엘 3장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느브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극렬히 타는 풀뭇불에 들어가 타죽게 되었으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머리터럭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나왔습니다.
② 기도생활의 지조
크리스천의 생활에서 기도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기도를 방해하려 듭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에서 승리하려면 일정한 기도의 시간을 지키는데 목숨 걸고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굴 속에 들어가 잡혀먹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창문을 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참소하여 죽이려는 신하들에게 들켜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지조 있는 기도생활을 보시고 사자들의 입을 봉하여 구원해 주셨습니다. 조상숭배는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영적 생활에 지조가 있어야 하는데 특히 우상숭배와 기도생활에 지조를 지켜야 합니다. 규칙적으로 기도생활 하는 데는 지조를 지키는 굳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새벽에 기도하려면 밤늦도록 TV 연속극 보는 습관을 버리고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굳은 지조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죽음을 각오하고 기도의 시간과 습관을 엄수했습니다.
2. 육신생활에서 지켜야 할 지조
① 음식물에 있어서
옛날 바벨론 나라에서는 벨머로닥(Bel-merodock)이라는 우상에게 고기와 포도주를 먼저 드렸다가 자기들이 먹었는데 왕의 총애를 받던 이스라엘에서 온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독실한 신앙의 청년이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기 위해서 아예 고기와 포도주는 먹지 않고 채소만 먹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니엘 1장 8절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라고 했습니다.
환관장이 너희가 고기도 안 먹고 채소만 먹다가 얼굴이 초췌해지면 내 머리가 위태로워진다고 했으나 열흘 동안 시험해보라고 간청해서 시험해본 결과 얼굴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윤기가 나서 더욱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박효진 장로님은 제일 높은 상관, 법무부장관이 엄하게 명령을 내려 폭탄주를 마시게 했지만 신앙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지혜롭게 승리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지조를 버릴 때 하나님이 얼마나 실망하시고 슬퍼하겠습니까? 우상숭배 하거나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는다고 지옥 가고 안 가는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지조를 굽히고 변절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고 한경직 목사님은 우상숭배 한 것을 일평생 후회하며 사셨고, 제가 모시고 있던 고 조신일 목사님은 많은 자식들 때문에 순교하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사셨습니다.
② 결혼생활에 있어서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부부의 생활은 지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한눈도 팔지 말고 생각으로도 죄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엊그제 TV에서 실제 사건을 다룬 것을 보니까 변변치도 않은 한 젊은이한테 많은 유부녀들이 말려들어 돈 봉투를 주고 시계도 사주며 재미를 보는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채팅으로 연결돼서 사귀다가 많은 죄를 짓고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많은 젊은 여자들이 “따분하게 한 남자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 야식도 하고 간식도 좀 해야지”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기회가 없어서 죄를 못 짓지, 기회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지조가 없는 부부의 사랑은 언제 파탄이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자가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정조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면 자결하기 위해 은장도를 품고 다녔는데 요사이는 은장도는커녕 “내 몸을 가져 가십시오” 하는 여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으니 어찌 된 세상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지조가 없는 사람은 언제 변절하고 배신할지 알 수가 없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 후보 경선 결과를 볼 때 많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훌륭한 믿음의 장로가 있는데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는 우상숭배자(40번씩 엎드려 절하는)를 적극적으로 밀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편 15편 4절에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단 교수와 싸울 때에 근본주의자다, 극단주의자다, 흑백논리자다, 하는 비방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구속도 부활도 부인하고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만 있습니까? 가까운 친구들까지 “학자들이 그럴 수도 있지 뭐. 내버려둬” 혹은 “너 생명이 한 열 개 되느냐” 하는 등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또 반공주의로 나갈 때 극우파다, 극단주의자다, 마음이 좁다, 등등의 비난을 받지만 공산주의는 사탄의 사상이요, 공산화 되면 한국의 교회는 다 파괴되고 히틀러의 대 학살보다 더 큰 학살이 일어나고 북한처럼 거지의 나라가 되어 수백만 명 이상 굶어죽을 것이 뻔한데 어떻게 나 하나 편히 살자고 못 본 체하고 있겠습니까? 최후에 하나님 앞에 서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다 드러날 것입니다. 굳센 의지, 확고한 지조가 있어야 좋은 신앙의 사람이고 믿을만한 인격자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3절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