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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찬양
삼상 2:1-11
요약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아 서원대로 하나님께 드린 한나가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다. 이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의 5대 원리를 발견한다.
1. 찬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2절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불과 10절의 찬양의 시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직접 간접적인 낱말이 20개 이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찬양은 하나님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찬양의 능력은 구원
1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진정한 찬양은 구원을 경험할 때 심령에서 터져 나오며(벧전1:8-9) 이는 외부적인 환경과 무관하다(합3:17, 계14:2-3). 더욱 풍성한 찬양은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더해 갈 것이다(엡1:6).
3.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라.
3-5절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대적 브닌나를 꺽어 주시고 자기를 신원하여 주심을 감사하는 내용으로 찬양이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그 내용이 된다.
4.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하라.
6-9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하나님이 속성은 곧 우리를 대하심과 관계가 되므로 찬양의 주제가 되며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할 때 기뻐하신다.
5. 하나님을 믿어 드리는 찬양을 하라.
10절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미래에 나타날 왕이신 메시야를 예언하는 예언적인 찬양으로 이 찬양의 특징은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데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는 말씀처럼 믿어드리는 찬양을 아주 기뻐하신다.
강해
오늘은 '한나의 찬양'이라는 말씀의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낳고 서원대로 하나님께 드린 한나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고 있습니다. 여기 한나의 기도에서 기도는 원문이 '테필라'로서 기도 혹은 찬가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찬양이라고 해도 옳습니다. 더욱이 내용상으로 볼 때 찬양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 찬양은 단순한 감사를 넘어 성령으로 되어진 예언적이고 구속사적인 성격을 띤 시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한나의 찬가를 신약 누가복음의 마리아의 찬가와(눅1:46-55) 사가랴의 예언(눅1:67-79)의 예표요, 구약에서는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와(출15:1-15) 사사기의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와(삿5:1-31) 뜻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의 찬가와 비교할 때 어쩌면 내용 자체가 그렇게 흡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객관적 구속사로는 사무엘의 출생은 곧 그리스도의 출생의 예표입니다. 그리고 이 찬양의 내용 역시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성취될 놀라운 구속의 역사를 암시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방향으로는 잠시 생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은 어떠해야 하는가? 한나의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의 5대 원리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찬양은 그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여야 합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한나는 주의 이름을 빈번히 부르면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가 여호와라는 용어이고, 하나님 혹은 주라는 용어도 나오고, 그 혹은 이 라는 대명사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불과 10절의 찬양의 시에서 하나님을 지칭하는 직접 간접적인 낱말을 20개 이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찬양은 하나님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찬양에는 자기의 공로나 남편의 공로나 제사장의 공로에 대해서는 조금도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찬양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구하지만 잘 되면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고 맙니다. 혹은 그래도 좀 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과 그 공로를 절반씩 나눕니다. 혹은 어떤 사람은 찬양하지만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이 아니라 자기의 목소리와 재주와 외모와 옷을 자랑합니다.
이것이 공중 앞에서 찬양하는 자의 조심할 점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찬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지는 찬양이라야 합니다. 오늘부터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고 오직 하나님만 높이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찬양은 우리의 구원이 그 기초가 됩니다.
2장 1절에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했습니다.
여기 구원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물론 이 구원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처지를 돌아보셨다는 의미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보여주는 진정한 찬양의 힌트는 구원을 경험할 때 비로소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찬송은 성령으로 터져 나오는 신령한 찬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옥에서는 찬양할 수 없습니다. 찬양은 은혜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6:4-5에서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외부적인 환경이 악해도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은 찬양하게 됩니다. 하박국선지자의 찬양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주의 심판을 듣고 창자가 흔들릴 만큼 놀랍니다. 그러나 합3:17절을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은혜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원을 감사해서 만이 아닙니다. 구원 그 자체가 찬송을 줍니다. 특별히 성화구원을 경험할 때 비로소 찬송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옵니다. 그래서 성화구원을 경험한 성도는 주를 보지 못했어도 사랑하고 이제도 보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기뻐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또 한나가 이렇게 아름다운 찬양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구원의 경험과 아울러 그는 이미 하나님을 사랑하는 깊은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문제를 신앙으로 풀 줄 알았고,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도 알았고,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질 줄 안 것을 보아 깊은 신앙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깊은 신앙에서만이 깊은 찬양이 나옵니다. 그렇지 못하면 탈랜트처럼 모양만 낼 뿐입니다. 하나님은 앵무새의 노래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마치 계14:2-3에 많은 물소리와 같도 큰 뇌성과도 같으며 거문고 타는 듯한 그 찬양은 오직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부를 자가 없었다는 말씀과 같이 고난 속에 나타난 놀라운 은혜를 아는 자만이 그 은혜를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곡조의 찬양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 아름다운 찬양을 위해서는 내 신앙부터 바르게 세워 성령의 감동으로 신령한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찬양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그 주제가 됩니다.
3-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대적 브닌나를 꺽어 주시고 신원하여 주심을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브닌나가 자식들을 낳고 얼마나 오만했는지 이 노래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브닌나가 뻐기고 다녔는지 그에게서 교만과 오만이 나오고, 무식한 용사같이 기고만장한 용맹이 나오고, 창고에 양식이 가득하듯 자기 세상으로 아는 자만이 넘쳤습니다. 그러니 한나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서러웠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대로 버려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찬양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그 내용이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찬양은 그 주제가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창조 섭리 강림 탄생 생애 고난 부활 재림 속죄 거듭남 성결 천국 성령 구원 하나님의 나라 성찬 감사 가정을 주심 교회 소명 회개 인도 보호 축복 소망 원수 마귀에서 지켜주심 기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아름다운 일들이 그 주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한 찬양자가 되려면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언제나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깨닫고 드린 한 마디의 찬양이 깨닫지 못하고 하는 만 마디의 찬양보다 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4.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찬양의 내용이 됩니다.
6-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여러 방향에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먼저 하나님의 거룩성을 찬양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유일성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같으신 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귀성 신실성 공평성 의로우심 전지성 전능성 주권성 구원성 심판성 정의성 등을 노래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속성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남이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하여 칭찬하며 기분이 좋습니다. 손자 손녀가 '우리 할아버지 최고야' 하면 어때요 더 사랑해 주고 싶지요? 어떤 분은 다 큰 딸이 이 세계에서 아버지를 가장 훌륭한 분으로 존경한다고 하니까 그렇게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빈말이라도 하나님을 나쁘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서운해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 죄 없다고 하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찬송이 되려면 그냥 찬양하거나 무조건 다 좋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하여 찬양해야 더 의미있는 찬양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는 귀한 찬양법입니다.
5. 하나님을 믿어 드림도 귀한 찬양의 내용이 됩니다.
10절에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했습니다.
여기서 한나는 미래에 나타날 왕이신 메시야를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언적인 찬양인데 이 찬양의 특징은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데 있습니다. 이 믿어 드리는 찬양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배신 당하고 버림받은 듯한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믿노라고 노래해야 합니다. 그러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그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히3:16을 보면 들으시고 격노했다고 했습니다. 그 원인은 19절에서 저희가 믿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하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지정의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감정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기분파시라고 말하면 틀린 말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틀리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나님께서는 그 무엇이라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말만이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그 어떤 목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본 받으십시다. 주님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과 업적과 모든 것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온전한 찬양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게 해드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