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제4강] 호모로기야(Ὁμολογία)와 크라테오(Κρατέω): 배도의 안개를 찢는 대제사장 신앙고백의 군사적 결착
(본문: 히브리서 4장 14절 - 5장 10절)
히브리서 4장 14절부터 5장 10절까지의 서사는 구약 아론의 레위 제사 제도가 가진 본질적 한계와 반복성을 기독론적 완성으로 타파하고, 승천하사 지성소 보좌에 좌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무궁한 제사장적 중보 직무를 대변증하는 히브리서 기독론의 척추입니다. 당시 유대파 수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 의식과 대제사장의 가시적 권위에 미혹되어 옛 구습으로 회귀하려는 사상적 표류를 겪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그 모형적 종교 장치들을 말씀의 검으로 해체합니다. 사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완벽하게 체휼(동정)하신 성자의 참된 인성을 논증하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구원의 근원을 최고의 지성적 필치로 주해합니다.
1. 아르키에레우스(Ἀρχιερεύς)와 크라테오(Κρατέω): 하늘 보좌를 뚫고 오르신 대제사장과 소명의 결착
사도는 구약의 모든 제사장을 뛰어넘어 하늘 성소의 원형으로 진입하신 그리스도의 초월적 지위를 확정하며 포문을 엽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아르키에레우스)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호모로기야) 굳게 잡을지어다(크라테오)" (히 4:14)
"큰 대제사장이(아르키에레아 메간, ἀρχιερέα μέγαν) 계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를(호모로기야스, ὁμολογίας) 굳게 잡을지어다(크라토멘, κρατῶμεν)!"
원어 '아르키에레우스 메가스(큰 대제사장)'는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종교 지도자에게도 부여된 적 없는 우주적 칭호입니다. 지상의 대제사장은 일 년에 단 한 번, 피를 가지고 땅의 장막 지성소에 들어갔으나, 우리 주님은 시공간의 모든 차원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실재가 계신 하늘보좌 자체로 '승천(디에르코마이 투스 우라누스: 하늘들을 통과하여 오르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청중을 향해 명령합니다. "우리에게 위탁된 '신앙고백(호모로기야)'을 목숨 걸고 '굳게 잡으라(크라테오)'!" 원어 '크라테오'는 군사가 전투 중에 적에게 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혹은 절벽에 매달린 자가 밧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전 존재의 악력을 다해 '강권적으로 꽉 움켜쥐어 고정하는 군사적 사투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앙은 정황의 흔들림에 따라 느슨하게 타협하는 관념이 아닙니다. 피터 오브라이언(Peter O'Brien)의 정교한 주해처럼, 사명자는 승천하신 아들의 주권(호모로기야) 위에 소명의 손아귀 힘을 꽉 쥐어(크라테오) 고착해야 합니다. 세상의 평판 앞에 소명의 권위를 스스로 타협하려는 천박함을 도끼로 치고, 오직 하늘 보좌에 계신 대제사장의 실재만을 선포합니다.
2. 쉼파데오(Συμπαθέω)와 파레시아(Παρρησία): 연약함을 체휼하신 대제사장과 거침없는 발언권의 돌격
사도는 성자의 초월적 신격에 이어, 그분이 육신을 입고 역사 속에서 직접 겪어내신 참된 인성의 가치가 어떻게 성도의 완벽한 피난처가 되는가를 변증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쉼파데오)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파레시아) 나아갈 것이니라(프로세르코마이)" (히 4:15-16)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쉼파데사이, συμπαθῆσαι) 못하실 이가 아니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파레시아스, παρρησίας) 나아갈 것이니라!"
원어 '쉼파데오(동정하다, 체휼하다)'는 한낱 멀리서 바라보는 감상적 동정심이 결코 아닙니다. 이 단어는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과 박해의 무게 한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가, 그 아픔을 전 인격과 육체로 똑같이 느끼고 공유하는 실체적 고난 동참'을 뜻합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코리스 하마르티야스) 분이지만, 인간이 당하는 모든 한계와 핍박의 시험(페이라조)을 온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책감과 위축의 사슬을 끊고 왕의 보좌 앞으로 '프로세르코마이(군사적으로 돌격하여 나아감)' 해야 합니다. 사도가 제시하는 무기는 '파레시아(담대히)'입니다. 원어 '파레시아'는 고대 그리스 민주 사회에서 오직 노예가 아닌 '자유 시민만이 가질 수 있던 절대적인 언론의 자유, 거침없는 발언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의 정죄 아래 기죽은 종교적 죄인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피를 힘입어 왕의 면전에서 내 청구서와 사정을 거침없이 쏟아놓을 수 있는 천상 시민의 당당함(파레시아)을 가졌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yn Lloyd-Jones)의 포효처럼, 십자가의 은혜는 신자의 영혼 속에 세상이 감당치 못할 군사적 당당함을 심어줍니다. 정황을 핑계 대며 머뭇거리는 나태함을 도끼로 박살 내고, 오직 보좌의 법정적 확신만을 찔러 넣습니다.
3. 메트리오파데오(Μετριοπαθέω)와 히스transition(Ἵστημι): 인간 제사장들의 한계와 법정적 교체
사도는 5장으로 진입하며 구약 레위기적 대제사장들의 합법적 자격 규정을 논증함과 동시에, 그들이 지닌 근본적인 연약함과 한계를 예리하게 해부합니다.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메트리오파데오)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히 5:1-2, 4)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메트리오파데인, μετριοπαθεῖν)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원어 '메트리오파데오(용납하다, 오래 참다)'는 감정을 극단으로 터뜨리지 않고 이성적·도덕적 한계 안에서 '온유함으로 적절하게 제어하고 다스리는 상태'를 뜻합니다. 인간 대제사장이 죄인들을 메트리오파데오 할 수 있었던 원인은 그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도 연약(아스데네이야)에 휩싸여(페리케이마이: 옷을 입듯 죄악된 한계에 꽁꽁 둘러싸임) 날마다 자신을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한계 유한적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칼레오)에 의해서만 그 직무에 세워질(히스transition) 수 있었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통찰처럼, 인간 제사장 직분은 그 자체가 완전함이 아니라 참된 제사장을 바라보게 만드는 한시적 모형이었습니다. 직무의 도덕적 위선과 계급적 권력으로 군림하려는 가짜 장로와 종교 리더들의 기만을 말씀의 도끼로 사정없이 쳐부수고, 오직 하나님이 임명하신 영원한 직분의 정통성만을 논증합니다.
4. 클라우게(Κ라우γή)와 아르키에레우스( can 멜기세덱): 통곡의 눈물로 순종을 마스터하신 영원한 멜기세덱 반차
저자는 제4강의 장엄한 최종 결론을 짓는 대명령을 방포하며, 그리스도의 겟세마네 통곡과 십자가의 고난이 어떻게 아론의 계통을 영구히 파열시키고 멜기세덱의 영원무궁한 직무를 복원해 냈는가를 선포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클라우게)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아르키에레우스)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히 5:7-10)
"심한 통곡과(클라우게스 메갈레스, κραυγῆς μεγάλης)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아르키에레우스, ἀρχιερεύς)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성자의 제사장직 인장은 철저한 고난 속에서 벼려졌습니다. 원어 '클라우게(통곡)'는 감정의 조잡한 연출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쟁터에서 치명상을 입은 군사가 부르짖듯, 혹은 산고를 겪는 여인이 내지르듯 존재의 심연이 파열되며 터져 나오는 비장한 영혼의 부르짖음'을 뜻합니다. 아들은 육체에 계실 때(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테스 사르코스 아우투) 심한 통곡(클라우게)과 눈물로 제단 위에 자신을 제물로 올리는 순종(후파코에)을 완벽하게 마스터하셨습니다.
이 고난(파데마)을 통해 온전하게(텔레external) 되신 성자는 마침내 레위의 장부적 아론 족보를 찢어 발겨 버리고, 오직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아르키에레우스 카타 텐 탁신 멜키세데크)'으로 우주 법정에 공인되셨습니다. D. A. 카슨(D. A. Carson)의 명쾌한 논증처럼, 기독교의 구원은 한낱 종교적 시스템의 유지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통곡의 순종으로 구원의 근원(아이티오스 소테리야스 아이오니우)이 되신 그리스도의 영원무궁한 제사장적 주권 아래 내 삶을 전적으로 예속시키는 것뿐입니다. 기복주의적 종교 유희에 취해 사명의 눈물을 잃어버린 현대 교회의 천박함을 말씀의 도끼로 처단하고, 오직 멜기세덱의 영원한 보좌 권세만을 선포하며 히브리서 제4강의 장엄한 성벽을 완벽하게 완수해 냅니다.
[5줄 최종 요약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