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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會者의 길
第五章 牧會者와 食口指導
第五節 初創期에 있었던 일
- 壯하신 분들 -
1. 아버님에게 있었던 일
1) 야목 수련회 때 있었던 일
야목 수련회 때의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저수지에 개연이 있었는데, 가시가 있어서 무섭게 생겼습니다. 그 시퍼런 가시에 독이 있어서 살짝만 찔려도 전부 다 곪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전부 다 들어가서 고기잡이를 하는데 선생님이 앞장서서 전부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이쿠, 저기에 어떻게 들어가나.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너 좋을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은 지금도 기억됩니다. 이름은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야목에서의 일이 생각나느냐고 물으면, 다시 그런 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지나갔습니다. 다시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을 해서 탕감을 한다 해도 진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진짜는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세가 등등하던 사람도 야목 수련회 말만 하면 양심은 있어서 부끄러워합니다. 양심은 참 좋고도 훌륭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것을 다 알기는 알거든요. 그것이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36-36)
2) 지방순회시 있었던 일
이번 기간에 쭉 순회를 하고 나니 목도 많이 쉬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근 세 시간, 네 시간 이상 말씀을 하고, 처음 만난 식구들과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 9시에 삼척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는데 중간에 차가 고장나서 그날 밤을 지나고 다음날 새벽 4시 40분에 도착했어요. 그러니 참석한 식구들이 얼마나 기다렸겠어요? 아주 지쳤더군요. 새벽에 모임을 가졌는데 동해변이라 경비가 심해서 오래 얘기하지도 못했습니다. 한 시간쯤 하다가 원주로 해서 춘천으로 갔다가 오늘 아침에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선생님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기도를 했을 것 같습니까? 금년에는 우리 청년 식구들이 선생님의 명령을 받아서 전도 나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공동의 사명으로 느끼고 이루어 나가기 위해 고생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대단히 힘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어려움을 대신하기 위해 기도하니 이것을 알아 달라'는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외지에 나가서 하룻밤 잠도 못 잤습니다. (11-179)
3) 선생님의 감옥 동료
내가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첫번 만난 사람들은 전부 다 어려운 자리에서 길러 왔어요. 제일 어려운 자리에서 길러 왔어요. 그게 귀하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빵 조각 하나라도 맛있는 것이 생기게 되면 그걸 안 먹고 선생님 주겠다고 싸 가지고 와서 기다릴 수 있는 이런 환경까지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눈물을 머금고 위로할 수 있는 그런 자리의 인연이 있어야 돼요. 그런 친구가 있어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목사를 중심삼고 그렇게 한번 해보라구요. 자기 교회의 교인이 천명 있으면,그 천명 교인 가운데 목사를 위해서 제일 충성하고 제일 잘 모시는 사람의 세 배만 하라는 거예요. 그것을 연구하라는 거예요. 선생님은 어느 감옥에서나 그런 친구들을 다 갖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서 나올 때 자기 아내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친척이 다 있지만 인사만 하고, 그 가정에 남아 있지 않고 나를 따라 나왔다는 거예요. 나를 따라 나왔다는 거예요.
4) 길에서 만난 병난 사람
여러분이 사람을 골라서 전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못난 사람을 대해서도 세계에 없는 동정을 함으로 말미암아 심정적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뭐냐 하면, 노량진역에 가면 생생합니다. 내가 흑석동에서 살았었는데, 상도동 넘어가는 곳에 소나무가 우거지고 그 너머에는 화초를 가꾸는 일본식 집이 있었어요. 그리로 쭉 돌아가면 논이 있고, 그 너머에 동네가 있었는데 거기에 개척전도 다니던 집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처음 본 사람인데 그 길에서 병이 나 있었어요. 그때가 3월말쯤이었습니다. 새학기로 개학이 되어 학비금을 가져왔을 때였는데, 가만 보니까 그 사람은 아들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안에 자기 딸네 집이 있다고 해서 학비금을 몽땅 털어 여비와 병난 것을 치료할 것까지 다 해주었습니다. 그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선조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구요. 내가 그때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돌아서지를 못 하겠더라구요. (56-39)
2. 목회자들에게 있었던 일
1) 어느 목회자의 이사(移徙) 경력
요전에 어떤 지역장한테서 지역장생활을 하면서 열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열 일곱 벌씩이나 이사를 다니다 보니 이제는 이사를 가게 되면 또 가나 보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옷에는 구멍이 뚫릴대로 뚫려서 얼굴 들고 나설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거 잘 됐어요, 안 됐어요? 그래도 죽지 말라 이겁니다. 쓰러지더라도 죽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죽으면 그만입니다. 쓰러지더라도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시여, 고이 잠들게 하소서' 하고 쓰러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죽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야곱이 이처럼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을 때 하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했던 것이지, 기세가 당당하고 희망이 넘치는 자리에 있을 때에 하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했을 것 같아요?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갈 곳 없어 돌베개를 베고 자는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축복이고 뭣이고 내가 왜 그랬던고 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통일교회 영신(靈神) 되려고 그러지. (웃음) (30-345)
2) 목회자들의 배고픈 생활
오늘날 지방에 있는 지역장이 밥을 굶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에서 누가 굶는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때가 가까워 옴에 따라서 통일교회 사상을 올바로 가진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새로운 결의를 해야 합니다. 희미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 이겁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하늘로부터 인계받은 영광적이고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자고로 뜻을 이루려고 수많은 선조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수난길을 앞놓아 가면서 하늘을 중심하여 인계받았던 그 뜻입니다. 그것은 역사시대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역사가 지나가더라도 그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43-56)
지금 지방교회가 어려운 줄 압니다. 어느 교회 인도자는 굶고 있다는 것도 내가 잘 압니다. 굶어라 이겁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선한 무리가 지옥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악당 같은 무리들을 회개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선생님 주의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있고 세계의 각국에서 가져올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이 맞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이 빚을 지는 입장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돈이 없어도 돈 없다는 얘기 그만 하라는 것입니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고 합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빚을 지고서라도 남을 도와주는데 누가 빚졌다고 생각하겠어요? 돈은 없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여기에 찬동해요, 안 해요? 「합니다」 여자들은? 「합니다」 한다면 어느 정도 하겠어요? 대한민국만 좋아할래요, 세계를 좋아할래요? 「세계요」 세계를 위한 길을 가려면 밑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밑천도 없이 자수성가하겠습니까? 그럴 때는 여러분이 앞장서서 가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팔겠다면 팔려 갈 거예요, 안 팔려 갈 거예요? 팔려 갈 자신이 있어요 없어요?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팔아먹겠다고 한다면 팔려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공적인 길입니다. (35-148)
3) 학생들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연
보라구요. 한국에서 개척지에 나가 전도하던 그때는 돈을 하루 벌어서 하루 살기가 힘들었어요. 하루 벌어서 한 끼 먹고 살기가 힘들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나가서 다니는데 길을 가다가 이렇게 헛다리를 딛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하면서 개척시대에 우리 전도사들이 책임자가 되어서 어떤 동네에 개척을 나갔는데, 먹을 것은 없지 일은 할 수 있지만 일한다면 '여기 일 하러 왔다'며 동네에 소문나고 핍박이 더 하겠으니 할수없이 백리 길 이상을 가 가지고 일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니 따르는 식구들이 전부 다…. 책임자가 뭐 본부에서 돈을 갖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정을 갖고 개척전도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자기의 사정을 죽으면 죽었지 절대 얘기를 안 하거든요. 그렇게 했으니 할 수가 있느냐 이거예요. 이래 가지고 6개월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나서 알아 가지고는 붙들고 통곡을 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도시락을 갖다 먹이는 운동이 생겼다구요. 그러니 그 밥을 먹어야 할 지도자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해요? 또, 밥을 주고 간 학생이 학교에 가서 밥을 굶을 것을 얼마나 생각하겠어요? 이러한 가운데서 서로서로 그걸 극복하면서 '우리는 죽더라도 뜻을 이루자' 하며 심정적 유대감에 젖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 가지고 학교에 가는 데는…. 엊그제까지, 통일교회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누구보다도 좋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던 사람이 통일교회에 들어간 다음에는 도시락을 안 가지고 오고 말이예요, 매일 점심때에는 저 혼자 교정에 몰래 숨어 있다가 교실에 오는 것이 동무들에게 발견되고 했다는 거라구요. 왜 그러냐 하면 자기 부모한테 알려지면 큰일나거든.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적으로 그런 놀음을 해야 되겠으니 믿지 않는 친구들이 어머니에게 가서 '당신의 아들딸들이 점심을 잘 가지고 다니더니 요즈음 통일교회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점심도 안 싸주니 부모들이 왜 그러냐?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다 그거 뭐 사람이 아니냐? 아들은 아들 대접을 하고 딸은 딸 대접을 해야 되는 것인데 왜 그러냐? 며 항의하는 이런 놀음이 벌어진다구요. 그러니 그 부모는 아들딸에게 '너 학교에서 도시락을 안 먹는다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라고 물어 보게 된다구요. 물어 보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부모들이 이 사실을 알고, '이놈의 자식들!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전부 다 우리 아들딸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고 착취해 먹고 피살을 빨아먹는 흡혈귀다' 하며 반대를 한 겁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전국적으로. 그러니 통일교인이 온다 하면 아들딸들의 피 빨아먹는 사람이 온다고 해 가지고, 동네에서 작당을 해 가지고 그에게 모둠매를 치질 않나, 별의별 짓을 다 한 거예요. 더욱이나 전국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양을 빼앗아 가는 이리떼들이 들어온다고 하며 전부 다 짝패가 되어서 별의별 짓을 다 했다구요, 별의별 짓을. 그러한 환경에서 그들을 지도하고 있던 통일교회 선생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어요?
자, 그러니 '저들이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통일교회의 지도자라면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이래 가지고 내 힘으로 돈을 번거예요. 내가 공장을 세우면 24시간 공장에 가서 일도 하고, 내 아이디어도 제공하고, 전부 내 손으로…. 그러면서 장래의 기반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내가 경제문제에 대해서 기반을 닦은 것입니다. (94-231)
4) 초기 개척 당시의 어려웠던 생활
우리가 한국에서 개척할 때는 일을 할래야 일할 곳이 없었다구요. 그래 굶기가 일쑤였어요. 굶는 것이 일쑤였어요. 보릿가루라든가 쌀가루를 사다가 컵에다 물을 타 가지고 그거 한 잔씩 먹고 40일을 전도 하는 놀음을 했었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것도 마음대로 양껏 먹나요? 아니라구요. 40일 금식하는 훈련이라 생각하고 한 거라구요. 그런 개척을 하고….
그러니 노동이라도 해야 되는데 어느 지방의 책임자로 간 사람이 그 부락 주변에 가서 노동을 하고 그러면 위신이 안 서기 때문에 그 지방에서는 노동을 할 수가 없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하려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다섯 시간은 걸어야 돼요. 그래 가지고 일하고 밤에 돌아와야 돼요. 20시간 내에 그런 놀음을 해야 된다구요. 가는 데 다섯 시간, 돌아오는 데 다섯 시간 걸리는 곳에 가서 노동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루의 임금이 5백 원이예요. 5백 원 받고…. 그것은 한국에서 두끼 밥값밖에 안됩니다. 두끼 밥값. 알겠어요? 하루 일한 것이 그렇다구요. 그건 매일같이 노동해도 못 산다 그 말이라구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선배들이 배후에서 어떠한 고생을 했는지 이야기를 해도 모릅니다. 몰라요. 아무리 얘기해야 이해 안 된다구요.
자, 예를 들어 말하면, 뜻의 일은 해야 할 텐데, 나가서 강연은 해야 할 텐데 배가 고프니 할 수 있어요? 그러니 할수없이, 부잣집 앞을 지나가다 개가 물을 먹고 있으니…. 여기같이 개가 무슨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구요. 뜨물 같은 걸 먹는데, 그 개의 귀때기를 붙들고 '너에게는 부잣집 주인이 있으니 내가 이걸 빼앗아 먹어도 너는 죽지 않을 것 아니냐' 이래 가지고 쫓아 버리고 그 물을 퍼먹었어요. 그러면서 일을 했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알아요? 모른다구요. 그런 것을 내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것을 목격해 가지고…. 눈으로 볼 수 없고, 가슴이 터져서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정경을 많이 보고겪은 사람인 걸 알아야 된다구요.
그런 걸 당할 적마다 선생님이 경제력을 가져야 되겠다고 얼마나…. 내가 단시일 내에 경제력을 가져야 되겠다…. 그 기반을 닦기 위해선 내가 공장에 얼마나 열성을 퍼부었는지 모른다구요. 누구도 못 따라올 만큼 열성적으로 일한 사람이라구요.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까지, 국가 기준까지 올라가는 데 있어서 고생하지만, 책임자인 나에게는 앞으로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차후 기반을 닦아 놓은 뒤의 여러분에 대한 경제적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 가지고 불철주야 노력한 사람이라구요. (89-278)
5) 어느 청년 목회자의 강의
우리 교회에는 일화(逸話)가 많이 있습니다. 전에 우리 어느 지역장이 반공강사로 어느 고장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거기에는 동네 유지들이 다 모였으며, 경찰서장으로부터 군수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은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반공사상 강좌를 책임진 선생님이 온다고 했는데 그 선생님은 안 오고 웬 더벅머리 총각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강사의 심부름꾼인 줄 알고 '임자 어디서 왔나? 강사 선생님은 언제 오시나?'라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강사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강사로 통일교회의 아무개가 온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길래 제가 아무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더벅머리 총각이 강사인 줄 몰랐던 그들은 쑥덕공론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 또래의 어린 청년이 강사라니 면구(面灸)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공문으로 초청했으니 단에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두어 시간 반 강연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들 눈이 뒤집어지는 것이었어요. (웃음) 반공강사인 우리 지역장들은 전부 20대 청년이었지요? 이런 사람들이 군수나 경찰서장의 친구가 되었으니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요즘 이만하면 출세한 것이지요? 선생님 말 듣고 행했다가 망한 적이 있습니까? (19-218)
6) 개척나간 통일교회 아주머니들
오늘의 통일교회 여러분은 살아온 생활 방향이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위하는 생활을 해 나왔어요. 지방에 나가 개척하고 남이 못 하는 걸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맨 처음에는 비웃었어요. 맨 처음엔 비웃었다구요. 아무것도 아닌 녀석이 와서 한 달, 두 달, 한 일년 하더니 교회를 만들고 부락의 젊은이들을 전부 데려가는 거예요. 50명 60명의 동네 처녀 총각을 모으는 거예요. 그런 것을 맨 처음에는 저거, 쌍놈의 자식이 와서 동네 망친다고 욕을 해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학생들을 모을 줄만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그다음엔 아주머니로부터 아저씨까지, 동네에서 똑똑한 사람들은 전부 들어가서 수가 점점 차더라 이거예요. 그렇게 되게 될 때 달리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감탄하면서 자기 생각을 한다구요. ‘과거 어렸을 때에 난 이랬는데, 야! 지금 보니 훌륭하다’하는 거예요. 훌륭하다는 겁니다.‘훌륭한 사람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때려 쫓으려고 했구나’하면서, 거기서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성하는 양이 크고 자책 하는 깊이가 크면 클수록 그것이 존경도로 변하는 것입니다. 존경도로 변하고 순응할 수 있는 도로 변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국민학교밖에 안 나온 우리 아줌마들이 시골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1년, 2년, 3년, 4년, 혼자 그것을 붙들고 고생을 했습니다. 부락에서 지금까지 남이 못 하는 일을 했다는 사실은 그 부락 전체가 아무리 반대 하더라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들보다 낫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들은 여편네와 같이 살고 가족과 같이 살면서 불평을 했는데, 저들은 혼자 나와 외롭게 살면서 부락이 반대하고 전체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소화해 나가면서 1년, 2년, 3년을 지내왔다는 사실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이거예요. 거기에서 감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아주머니 아저씨, 동네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전부 존경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감동적인 요건들을 남겼던 것입니다. (172-91)
3. 초창기 식구들의 모습
1) 전도지에서 그리운 식구를 만나던 사연
우리는 식구를 식구로서 그리워할 줄 아는 새로운 봄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옛날에는 전도 나가서 자기가 외롭게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외로운 식구를 찾아가기 위해서 서로 50리 길을 가다가 중간에서 만나던 사연도 남아 있지 않으냐? 그때는 개체를 가려 가는 때였지만, 이제는 나라를 향해서 가려 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런 때에 있어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거들랑 한 번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식구들을 열번이라도 찾아가고 싶어서 허덕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만,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정상적인 통일교회 식구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면이면 면을 중심삼고 그래야 되고 한 도면 도를 중심삼고 그래야 됩니다. 나아가 자기 도만 잘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도 전체가 잘되기 위해서는 전체의 도 앞에 본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본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자기를 중심삼고 되는 것이 아니라구요. 가정의 뜻과 부모의 뜻을 따라서 본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데에서, 가면 갈수록 빛날 수 있는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60-29)
여기 교인들끼리 떡 만나면 서로 좋다고, 그저 여기 책임자를 중심삼고 서로가 만나 가지고 밤을 지새우면서…. 옛날엔 그랬지요. 우리 청파동 본부교회에서도 옛날에는 두 시, 세 시, 네 시까지 잠 안 자기가 보통이었어요. 그렇게 훈련을 했다구요. 그래 가지고 선생님이 어디 가게 되면 보고 싶어서 아줌마도 울고, 영감도 울고, 할머니도 울고, 아저씨도 울고, 처녀도 울고, 총각도 울었다구요. 보고 싶다고 말이예요. 태양같이, 태양이라는 걸 소나무 순도, 배추 순도, 오이 순도, 무슨 찔레꽃, 무슨 꽃이 바라보듯 말이예요. 바라로는 건 마찬가지다 이겁니다.
그러한 운동이 벌어져야 됩니다. 요즈음은 교인들끼리도 티격태격도 하고, 기성교회와 싸움을 하고 모략중상도 하고 이러는데 그러면 안 돼요. 서로가 보게 되면 주고 싶고, 서로가 위하고 싶고, 그렇게 해야 돼요. 어디, 여기 그렇게 됐나요? (126-196)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형제를 버렸어요? 왜 형제를 버렸습니까? 그보다도 더 가까이 될 수 있는 형제의 인연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고차적인 내용과 고차적인 가치기준이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것을 버리고 만난 것입니다. 보다 가치 있는 것을 맞기 위해 만났으니 여기에서 육신의 형제의 정보다도 더 강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옛날에는 그랬다구요. 임지에 나가 전도할 때에, 서로가 갑·을지역에 떨어져 있으면 만났다가 헤어질 때, 보고 싶어서 서로가 바래다 주기 위해서 저기까지 갔다 또다시 바래다 주기 위해 왔다가, 갔다가 왔다가 하면서 밤을 새우는 일도 있었어요. 형제들끼리도 그런다구요. 동생이 가는 어려운 길을 걱정하면서 먹을 것이 있으면 그걸 먹지 못하고 싸 가지고 오십 리 길이 멀다 않고 줄달음을 쳐서 갖다 주곤 했어요.
그런데 현재 통일교회 교인들끼리 그래요? 그래요, 안 그래요? 형제의 정 이상의 정이 여러분들 사이에 맺어지지 않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형제 아닌 형제들이 형제의 정 이상의 정을 맺고, 부모 아닌 부모를 부모 이상으로 모셔야 됩니다. 그것이 통일교인입니다. 통일교회에서는 참부모, 참형제를 말하지요? 우리는 참부모, 참부부, 참형제를 중심삼고 참된 가정을 바라고 나왔기 때문에, 형제 아닌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형제의 정 이상의 정을 맺어야 되고, 부모 아닌 부모를 부모 이상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연된 통일식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세상을 보라구요. 지금까지 혈족을 중심해 가지고 엮어 온 인연을 두고 볼 때,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마찬가지로 '통일교회 문선생인 내가 그런 사명을 할 수 있는 길을 걸어왔느냐' 하고 자문자답해 봅니다. 그러지 못했으면 후퇴하라는 거예요. (49-229)
2) 수백리 길을 걸어서 집회에 참석한 식구들
남한 각지를 샅샅이 돌고 닷새만에 돌아왔습니다. 대전을 거치고, 전주를 거치고, 광주를 거치고, 마산으로 해서 대구를 거쳐 삼척으로, 그다음 제천을 거쳐 춘천으로 해서 돌아왔어요.
이번에 순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지금은 우리들이 싸워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지방에 있는 우리의 청년 남녀들이 대단한 결의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이번 기간의 싸움은 승리의 성과를 가져 오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슴 아프게 생각된 것은 우리 식구들이 선생님이 간다고 하는 장소에 수백리 길을 걸어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데도 여기 오기 싫어서 안 오는데, 우리 통일교회 청년은 수백리 길을 걸어서 옵니다. 광주에 가니까 저 목포에서 혹은 무안에서 2, 3일을 밤낮없이 걸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걸 볼 때 우리 교회가 목표하고 세우려는 뜻이 이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때와 한 뜻을 위해서 자기 일신의 어려움을 개의치 않고 달려들어 어떤 고난도 물리치고 움직이는 그들은 사회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 그들은 개인적인 사정에 매여 있는 사람이 아니요, 개인적인 어떤 의식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20전후의 어린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뜻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얼마나 대견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 식구들이 참 많아요.
대체로 그들은 여기 본부에 있는 청년들보다도 더 기백이 있습니다. 본부를 중심삼은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식구들, 현재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과 그들을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뜻을 따르려는 충성심에 있어 여러분들이 따르지 못할 기백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면 그들이 여러분을 밟고 넘어가 그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11-179)
3) 차표도 없이 도둑기차를 탔던 사연
여러분은 좋은 경험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반드시 일기로라도 한 장 기록해 놓고 싶은 마음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록은 여러분의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일생의 신앙노정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값진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못 해보는 것이 한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날에 지방에서 서울에 올라오기 위해 차표도 없이 도둑 기차를 탔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맨 구석 끝에 앉아 가지고 차장이 나타날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지요? 차장이 나타났다 하면 쥐새끼처럼 어디든지 끼어들어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차장이 지나갔을 때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요?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던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의 기분은 다른 세계에서 느낄래야 느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으면서 따라오다 보니까 그러한 일도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은 돈을 주고 차표를 구입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지요. 대신 이다음에 이 나라를 위해서 보다 더 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내적으로 그 이상의 것을 주어야 합니다. 자기 개인으로는 법의 처벌도 받아야 되겠지요. 그러나 법의 처벌을 받게 되어 공적인 기준에서 일을 할 때 하늘나라에서는 아무런 조건에도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생은 되었지만 그때가 좋았다는 겁니다 (30-152)
4) 애기를 업고도 백운대를 등산한 식구
우리가 가는 길은 사망으로 출발했으니 사망을 걸어 놓고 죽음을 각오하고 걸어야 한다. 가자! 사람은 누구나 피로한 것도 마찬가지고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가자! 우리는 사상기준이 다르다. 모진 바람이 불어오고 사망의 물결이 흘러오는 자리에도 가자. 일기가 나쁘고 바람이 불어오는 자리에도 가자. 과거에 백운대 등산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라. 과거에는 애기를 업고도 백운대 등산한 사람이 네 명이나 있었다. 지금은 몇 사람이나 될까? (12-13)
5) 말씀 앞에 눈물 바다를 이룬 식구들
여러분이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처음 말씀을 들으면 눈물바다를 이룹니다. 심지어는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립니다. 자기 집에 가는 것은 죽는 것만큼 싫고, 교회에 오는 것은 참 기분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것을 느껴 봤어요? 모든 것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는 것입니다. (35-67)
6) 죽도록 따라가겠다고 맹세한 식구의 실족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믿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생님 앞에 인간만물상이 모였다고 할 만큼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끔 저 평양시절에서부터 지금까지를 쭉 돌이켜보면 과거에 대했던 사람들의 여러 형(型) 이 오늘날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많은 인간상들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선생님을 따르다가 떨어졌던 사람들 중에는 현재 여러분들이 결의하고 뛰는 것보다 몇십 배 강한 결의를 했던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선생님을 죽도록 따라가겠습니다'고 할 때, 선생님은 여러분들을 몇 퍼센트 믿어야 되겠습니까?백 퍼센트를 믿어야 되겠어요, 오십 퍼센트만 믿어야 되겠어요? 「백 퍼센트 믿어야 됩니다」 그것이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백 퍼센트 믿어 주었다가 여러분들이 돌아서게 되면 백 퍼센트만큼 십자가를 내가 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밖에 소개를 못 했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소개한 사람이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몇 퍼센트 믿어야 되는가를 놓고 많은 고충이 있습니다.
과거에 선생님을 따르던 여러 사람 중에는 이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백두산 천지까지라도 선생님을 모시고 올라가서 그곳에 있는 반석을 갈아 밭을 만들고 감자를 심어 천년 한을 품고라도 선생님을 모시며, 세상이 다 변해도 자기는 변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반석을 갈아 그곳에 감자를 심어 천년 한을 품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 뜻을 위하고 선생님을 모시며 살겠다고 맹세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휘몰아치니까 2년도 못가서 그만 자기만 살겠다고 선생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 많이 들었지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맹세했지만 닭 울기 전에 세 번씩 배반한 베드로였습니다. (26-140)
7) 절대복종의 본을 보인 미국 식구
지금 한국 통일교인들이 보리밥을 먹으면 미국 통일교회 사람들도 보리밥을 먹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는 데도 침대가 뭐예요? 한국 사람 들이 마루바닥에서 잔다 하게 되면 침대를 버리고 시멘트 바닥에서 쿨쿨 잔다는 것입니다. 재미있었던 것이 미국의 49개 주를 내가 다 돌아 보았지만, 미국에 있는 젊은 놈들이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캘리포니아 대학원을 나온 녀석 이 있는데, 11개국의 말을 아주 잘하는 녀석입니다. 내가 그 녀석에게 '운전을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교회의 중진들에게도 '운전을 해라' 하면서 심부름을 시키고 죽도록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내 숙소는 1등 호텔을 얻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좋은 호텔을 얻어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 미국에 왔으니까 너희들은 그렇게 해라' 하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1등 호텔을 얻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따르고 있던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마루바닥에서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며칠이나 가나 보자 해 가지고…. 이렇게 선생님도 짓궂은 일을 곧잘 합니다. 어디 가든지 그렇게 꼭 시켜 봅니다. 그래 놓고 마지막쯤 가서 될 수 있으면 '너희들도 좋은 호텔을 같이 얻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같이 얻으라고 해도 안 얻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옛날에는 자고 눈을 퍼뜩 뜨면 선생님이 올려다 보였는데 그렇게 되면 선생님이 내려다 보인다는 거예요. 자기들이 키가 크거든. (웃음) 내려다보이니 안 되겠다는 거예요. '야, 이녀석들, 이제 됐구나…' (웃음)
이걸 볼 때, '야, 사상이 이렇게 무서운 거로구나. 내가 돈이 없다고 한하지 말자. 세상이 어렵다고 한하지 말자' 이국 땅에서 나를 보지 않고도 이런 무리가 생겨날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를 하셨겠느냐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48-117)
8) '김일성' 하면 떠오르는 40대의 한 식구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기성축복을 받은 가정인데 나이가 한 40이 넘은 사람입니다. 조용한 새벽인데 문을 두드려요. 그래서 문을 열어 주었더니 들어왔어요. 왜 왔느냐고 물으니 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심각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말해 보라고 하니까 '제가 김일성의 목을 잘라 올 테니 보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웃음)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니까 어떻게 하는 것은 그때 가 봐야 알겠지만 하여튼 보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그때 가 보아야 알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우선 가는 것이 문제이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그때 가 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됐다 이 녀석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내가 지금도 이북을 생각하고, 김일성을 생각할 때는 그 사람 얼굴이 번뜩 떠오릅니다. 요전에 내가 그에게 '지금도 가고 싶어' 했더니 '예'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웃음) 그게 됐다는 겁니다. 진짜 그럴 수 있는 때가 된다면 '너 한번 해봐라' 하고 제1호 특명, 밀명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죽지 말고 기다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일성' 하면 그 얼굴이 퍼뜩 떠오릅니다.
만일 통일교회 교인 중에 '선생님 제가 하나님과 한판 씨름을 하든가 뭐 하나님께서 그것은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도망칠 정도로 믿고 싶으니, 하나님을 좀 소개해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 하면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를 것입니다.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놀라서 도망갈 정도로 믿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1호는 무엇이고, 2호는 무엇이고, 3호는 무엇이고…' 이렇게 쭉 생각해 보라는 거라구요. 왜 그러냐? 사탄세계를 요리하려면 사탄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탄세계에서 믿지 못할 것을 가지고 요리해야 되는 것입니다. 뒤집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래서부터 뒤집어야 돼요, 위에서부터 뒤집어야 돼요? 위에서 뒤집는 것은 뒤집을 수 있다 해도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44-344)
9) 청평 개척시의 자랑스런 식구
통일교회 문선생 자신도 식구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냐? 요전에도 그래요. 주일에 아침부터 점심 저녁까지 한 열 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청평에 갔다구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식구들이 땅을 파고 있었어요. 딱 정한 날짜에 자기의 책임을 수행해야 되기 때문에 안할 수 없다는 거예요. 가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말이야, 앉아 가지고 이불을 펴고 잘 수 없으니 다리를 펴고 천막 안에 있는 이불에 떡 기대고 입을 벌리고 코를 골며 잤습니다. 그러다가 코고는 소리에 잠을 깼어요. 깨서 밖을 내다 보니 비가 억수같이 오는데 식구들이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고 리어카를 끌고 가더라구요. 그것을 보고 내가 눈물을 흘렸다구요.
이 자리에 만일 하나님이 행차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문선생이 생애를 거쳐 나오던 그 노정에 있어서, 최후의 통첩을 하던 하나님이 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런 마음이 통일교회 문선생에게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피곤해도 선생님을 보면 될 수 있으면 자기를 바라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잔다고 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은 잠자고, 우리들은 일하고…' 이런 마음이 있다면 그건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뭐 무슨 영장이 많이 나온대나? 갑호훈련이니 뭣이니 해 가지고 이럴 때 가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오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 끝나게 되면 오는 사람이 누구냐? 오는 사람이 없다면 진실된 마음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어저께 여수가 고향인 한 청년한테 23년 만에 아버지의 전보가 왔는데, 일하다가 그 전보를 척 받으면서 '사탄이 나타났구만' 했다는 말을 듣고, '그래, 사탄이 나타났으면 너는 어떻게 행동할 것이며 사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생각하고, 처음으로 가는데 돈 한푼 안 줄 수 없어서 2천 원을 주면서 갔다 오라고 보냈습니다. '이 녀석, 사탄이 나타났다고 한 주제에 어디 가서 소식이 있나 없나 보자' 했는데 이 녀석이 어저께 왔어요. '야, 이 녀석. 너는 조건이 됐다. 내가 바라는 표준 앞에, 하나님 앞에 이 건물을 다 지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이 녀석, 잘 왔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들 힘들다고 가기를 바라는데 다시 돌아온 그 사람이 정말 통일교회 사람이라구요. 그런 사람들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앞으로 일하는 사람 가운데서 갔다가 오지 않은 사람보다도, 남아서 수고한 사람보다도 더 빛날 수 있는 내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아직까지 다 시험을 못 해봤거든요? 여러분은 명령받은 자리에 못 서 봤고, 그런 행동을 하는 자리에 못 나가 봤고, 이럴까 저럴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입장에 못 서 보았기 때문에 누구를 믿어야 되겠느냐? 갔다 온 사람을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오늘 가게 되면 무엇을 사다 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사다 주지 말까요? 그 사람에게만 사다 주면 다른 사람들이 '왜, 그 사람에게만 사줘?' (웃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예요. (46-53)
10) 교회가 그토록 좋았던 식구들
통일교회 교인들이 맨 처음 통일교회에 들어왔을 때는 누구나 한바탕 좋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교회에 오고 싶어서 죽겠다. 교회 가고 싶어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교회 문을 닫아버려도 문을 타고 넘어 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교회 구석에서라도 하룻밤 자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을 쫓아내면 엉엉 울며 쫓겨 나가 가지고 대문을 닫아 놓으면 죽어도 못 가겠다고 하며 대문을 타고 넘어오는 것입니다. 대문을 타고 넘어오는 사람들은 만약 도둑놈인 줄 알고 때려서 죽였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천당으로 직행할 것입니다. (웃음)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서 밥을 먹으면 밥이 왜 그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도깨비가 붙은 것도 아니고 다른 밥과 똑같은 밥인데 별미라는 것입니다. 시금털털한 김치 깍두기도 입체적인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웃음) 교회에 와서 밥을 먹으면 맛있다는 것은 왜 그렇겠습니까? 사랑하는 부모가 정성들여 지은 밥이 맛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는 그리움이 넘쳐서 상대적 존재까지도 거기에 결실될 수 있는 자체로 있기 때문에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하고 관계를 맺어 상대적인 가치로 등장하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나타나고 맛없는 것도 맛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신경작용입니다. 그렇지요? 맛이라는 것은 신경작용에 의해서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하늘의 신경작용은 초자연적인 작용입니다. 전체를 합해 가지고 주관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나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은혜에 취해 보세요. 세상이 왕궁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시궁창 안에 들어가 있어도 그 자리가 왕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구더기들이 노는 것을 봐도 그것이 세계의 일등 무회들이 춤추는 것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보인다는 거예요.
그것은 오늘날 인간 자체의 감정 가지고는 그렇게 느낄 수 없지만, 초자연적인 감정의 주체성을 가졌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보이는 것은 모두 희열의 대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계에는 나쁜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36-118)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게 자꾸 교회에 가고 싶지요? 「예!」부모가 가지말라고 해도 밥만 먹으면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가더라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는 것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회에 가지 않으면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느낌을 가져 보았어요? 「예」
여러분을 누가 오라고 했길래 불청객처럼 이렇게 많이 와서 밥 주고 콜라 주고 잠을 재우게 합니까? 여러분은 손님입니까, 주인입니까? 주인이 손님을 푸대접하면 그 집안이 복을 받나요, 벌을 받나요? 「벌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웃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대접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무슨 대접하느냐? 말씀을 대접합니다. 선생님을 만나 한바탕 웃고 한바탕 좋아하고 한바탕 욕도 먹으면서 제일 좋은 것을 배웁니다. 욕을 먹고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제일 가깝지요? 욕을 먹고도 좋아하면 그이상 좋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이런 것 저런 것을 볼 때 선생님은 가서 쉬고 밥 한 그릇 먹는 것보다 이렇게 말씀하는 게 낫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밥을 먹이지 않아도 선생님은 가슴이 아프지 않습니다. (웃음) (26-193)
여러분, 통일교회 들어오게 되면 이상하다구요. 옛날에 재미있게 놀던 친구는 자연히 멀어집니다. 옛날에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는 것밖에 몰랐지만, 통일교회를 알게 된 다음에는 집보다도 교회에 먼저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거짓말이예요, 맞는 말이예요? 사실이야, 거짓말이야? 「사실입니다」 그것은 국민학생도 마찬가지요, 대학생도 마찬가지요, 가정을 가진 남편도 마찬가지요, 주부도 마찬가지요,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그런 거와 마찬가지로 미국 사람도 마찬가지요, 일본 사람도 마찬가지요, 영국 사람도 마찬가지요, 독일 사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65-102)
통일교회에 가면 달라붙는다는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아요? 사람은 손해 나는 길은 절대 안 가는 거라구요. 여러분이 여기에 올 때도 10원이라도 손해가 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먹다 남은 찌꺼기라도 남을 줄 알고 왔지, 손해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해도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통일교인들에게 딱 가르쳐 주기만 하면 내가 저 깊은 골짜기에 가 있더라도, 백두산 꼭대기에 가 있더라도 여러분들은 다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굴속에 가 있으면서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통곡을 하면서 늙어죽더라도 만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안 만나면 안 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가면 이익 나는 줄 알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만 못해서 욕을 먹으며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눈을 보라구요.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나? (41-237)
통일교회는 어떤 곳이냐? 소문이 나기를, '통일교회 가게 되면 문선생한테 미친다, 전기장치를 해서 흘린다' 그런 소문이 났습니다. 흘리긴 뭘 흘려요? 봄날이 찾아와 따뜻하게 되면 얼었던 눈은 녹지 말라고 해도 녹지요. 무슨 소를 잡고 제사, 천제(天祭)를 안 지내도 다 녹는 거라구요. 더 높은 사랑 앞에는 자연히 끌려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돼 있다구요. 그래서 통일교회에 나오게 되면 자기 아들딸도 다 잊어버린다구요. 그런 무엇이 있다구요. 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반대하게 되면 뭐 죽어도 보고 싶지 않다구요. 나는 여자가 안 돼 봐서 모르겠지만, 여자들에게 그런가 안 그런가 물어 보라구요. 그렇지 않으면 가짜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문제가…. 하늘을 찾아가는 길 앞에 서는, 태풍이 불어오면 밀려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 나은 사랑에는 끌려가기 마련입니다. (56-165)
4. 자랑스런 그 이름
1) 김원필님
선생님은 이북에서 여자 세 사람(지승도, 옥세현, 정달옥)과 남자 한 사람(김원필)을 복귀(전도)했다. 이러한 기대가 없으면 복귀섭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19-273)
여러분, 경리부장 알지요? 내가 경리부장(김원필)을 만났을 때, 그는 더벅머리 총각으로 19살이었습니다. 그 뒤로 4년이 지나서 23살이 되었는데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식당 보이도 시키고 별의별 일을 다 시켰습니다. 얻어다 주는 밥도 먹어 보고, 점심 대신 누룽지도 먹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밥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극적이고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26-68)
우리가 부산에서 피난생활 할 때, 원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와꾸(わく;틀)니 뭣이니 줄까지 내가 쳐 줬다구요. 내 의견이 많이 들어갔다구요. 얼굴에 코만 그리면 옷 같은 건 내가 칠했다구요. 밤을 같이 새워 가면서 그런 거예요. 열두 시부터 시작해서 하루 저녁에 초상화를 40매 까지 그렸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그거 전부 다 그리려면 선을 잡아 가지고 줄을 딱 쳐야 되는 거예요. 40매씩 가져오면 줄을 쳐서 줄을 따라서 본떠 가지고 그리는 거예요. 전부 다 줄을 쳐 주는 거예요. 한 장에 얼마냐? 3불씩이었어요, 한 장에 3불. 귀국하는 미군들의 막사에 가 가지고…. 귀국할 때 색시한테 선물 줄 게 있나? 자기 색시의 초상화를 주는 게 제일 좋은 선물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내 가지고 그 놀음을 한 거예요. 거 지금 같으면 30불 40불, 아니 한 300불 받을 거라구요, 여기 미국 같으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평균 20장 이상을 하루 저녁에 그려야 됐다 그 말이예요. 거 그릴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래 할수없이 내가 전부 다 했다는 거예요. 밤을 같이 새운 것입니다. 그리고 회사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 오게 되면 길 절반까지 나와서 내가 원필이를 기다려 가지고 데리고 들어온 거라구요. 내가 그때 원리원본 초고 쓸 때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 그 인상을 지금도 잊지 않아요. 그 미스터 김도 잊혀지지 않고, 선생님에 대해서 고맙게 했던 일, 피난 와 가지고 외롭고 서러워 같이 달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살던 일, 그 인상이 뗄 수 없을 정도로 남아 있는 거예요.
그때 미스터 김은 회사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자기 연인을 찾아오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어 했다구요. 그렇게 되어야 된다구요. ' 너좀 집에서 쉬고 있으라' 해도 '아! 저 싫습니다' 하고 선생님만 따라다녔다구요. 변소에 가서 30분만 앉아 있으면 변소 문을 두드린다구요. 변소에 가서 졸 때가 많았어요. (웃음) 그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워져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피난 나올 때도 자기 어머니와 집을 다 버리고 나왔다구요. 거기 있으라고 해도 다 집어 던지고, 선생님을 따라 나선 거라구요. 그렇게 심정적으로 인연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식구들은 지금 선생님 안 온다고, 선생님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아야 된다구요. 아들 있고, 손자 있고, 영감도 다 있는데 눈물을 뚝뚝….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에게 그런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밤에 다니면 먹을 것 있으면 뒀다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하고, 그저 화동해서 전부 다 풀어주려고 하고, 어려운 것이 있으면 내가 개척해 주려고 하고 말이예요. 그러니까 좋지요. 그러니까 따라오지요, 핍박받으면서도, 동네방네에서 야단하는데도 말이예요, 나라에서 다 추방하려고 하는데도 말이예요.
옛날에 우리는 그런 분위기였다구요. 그래 전도 나가서 사람이 전도 되게 되면 전도한 사람이 그저 보고 싶어 매일 오는 그런 분위기였다구요. (96-143)
여기 미스터김, 알지? 너, 김원필!우리 피난 나와서,피난살이하면서 취직했을 때, 네가 나갈 때 따라 나가 데려다 주고, 올 때 나가 보고 그랬는데, 우리 아들딸 대해서는 내 그렇게 못 하는 거예요. 그때 미군 병사들 초상화를 그렸는데 한 장에 3달라, 한 장에 3달라씩 받고 그려 줬다구요. 하루 저녁에 35장, 40장까지도 그렸어요. 그러려면 전부 다 내가 준비해 주어야 하는 거예요. 밤을 새워 가면서 전부 다 해 줬다구요. 내가 더 열심히, 내가 더 열심히 했다구요, 자기가 열심히 한 것보다. (웃으심) 머리 같은 것하고 옷들을 내가 다 쓱쓱 그린 거예요, 얼굴만 놔 두고. 그래 가지고 돈을 벌어서 전도 경비를 하고 전부 다 이래 가지고 개척한 것입니다.(97-222)
우리 통일교회로 보게 된다면 36가정을 세우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세제자, 천사장 가정을 대표한 3수를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3수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아담가정, 노아가정, 야곱가정 형의 36가정이 나오는 거예요.
36가정에서 대표되는 이 세 가정 가운데 첫째 가정이 김원필입니다. 역사는 아무나 그 자리에 세울 수 없습니다. 아무나 그 자리에 세울 수 없어요. 이러이러한 프로그램에 의한, 이러이러한 배후의 내용이 영적인 세계에 되어 있지 않으면 장자의 자리에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김원필이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둘째 번이 누구냐 하면 유효원입니다, 유효원. 그리고 세째 번이 김영휘입니다. (169-110)
2) 유효원님
유효원 협회장을 처음 만날 때에 심각했습니다. 몰리고 쫓기면서 부산에서 대구로, 3단계로 서울에 올라와 자리를 잡아 가지고 만날 때는 복귀라구요. 부산 맨 끄트머리에 가서, 영도에 가서…. 영도가 맨 끄트머리가 아니예요? 싸 놓은 똥과 같은 게 영도입니다. 난 그렇게 생각해요. 거기에서 제일 심각한 사람은 천하에 나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하나님은 역사하시는 겁니다. 그 유협회장도 미욱한 사람입니다. 간 사람이지만…무사도와 같은 정신이 강하고 한 가지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거기에 앉아서 녹아난 거라구요. (47-316)
여러분 봤지요? 옛날에 유협회장에게도 선생님이 공석에서 욕을 잘했다구요. 그 사람은 그것이 자랑이었습니다. 욕을 하더라도 잘 받아넘겼다 이거예요. 왱 해 가지고 '선생님이 책임자를 그렇게 책망하면 책임자가 어떻게 책임자 노릇을 해먹겠나, 위신과 체면도 못 세우고' 할지 모르지만, 선생님도 체면과 위신을 못 세우는 판국인데 이런 형국에 여러분이 위신을 세우게 되어 있어요? 누더기 보따리나 뒤적거리는 판국에 위신이 뭐예요. 이제는 선생님이 위신을 세울 때가 온다구요. (51-285)
옛날에 말이예요, 우리 저 본부에 있는 협회장이 공석에만 나타나면 내가 그저 개돼지 모양 욕을 들이 퍼붓는 거예요.'이놈의 자식아!'하고…,그래, 선생님과 제일 가깝지만 방에 들어오려면 문 밖에 서서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그리고는 '또 욕 먹자' 하는 결심을 하고 들어 왔다구요. (웃음) 그래야 이게… 선생님이 높으면 이게 높고 말이예요, 이게 되어야 돼요. (판서하신 것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심) 이게 있어야 된다구요. 이런 것이 이걸 소화할 수 있는 소화권이 된다 이거예요, 소화권. 소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무서운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이예요. 알겠어요? 욕을 하고 뭐라고 하더라도 순종하고 그 욕을 모두 소화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동참하는 거예요. 동참되어 가지고 그 선생의 직계 제자가 된다 이거예요. 그게 원칙입니다. 그렇지요? 그거 그래요? 「예」(125-82)
또 어떤 사람은 '유협회장은 통일교회 충신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는 부려먹더니 죽은 다음에는 상은 못 주나마 욕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와 유협회장과의 사이를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다년간 같이 일을 해 나왔는데 모든 것이 백점일 수 있어요? 그래서 잘못한 것을 청산해 주기 위해서 공석에서 욕을 하는 것입니다. (45-263)
선생님이 유효원 협회장을 두고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 뭐냐면, 그럴 수 있는 내용을 갖고 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는 선생님을 따라 나오는데 있어서 나를 위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선생님이 감옥에 있을 때 선생님을 많이 생각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유협회장을 생각하면 '그는 이러이러한 사람이었다'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방에 누워 있다가 새벽이면 만나고 싶은 그 정에 이끌렸고, 전해 받은 쪽지 하나까지도 생명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내연의 뒷받침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런 협회장이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33-83)
생명과 죽음을 두고 볼 때, 어느 것이 강합니까? 죽음보다 생명이 더 강합니까,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까? 사탄세계에서는 생명보다 죽음이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뜻을 알고 난 후에는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기 싫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유효원 협회장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선생님을 만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나왔는데 끝을 어떻게 맺을 것이냐?' 하고 내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유협회장은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에서는 어차피 죽어야 됩니다. 죽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한 시대를 지내지 않고는 다른 시대를 맞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4-47)
효원이가 충성하듯이 충성했노라고 걸고 구원받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10-263)
금후의 한국 사회에서는 통일교회가 문제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선생님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의 이름과 더불어 선생님에 대한 역사가 남겠지요? 통일교회 문 아무개의 전기가 남겠어요, 안 남겠어요? 「남습니다」 앞으로 일본의 역사가 없어지고 미국의 역사가 없어진다고 해도 통일교회 문선생의 역사는 남아질 것입니다. 남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문선생님이라고 썼구만요. 잘했어요.
그 역사책의 제1 페이지에는 '통일교회 문서방은…' 하고 시작될 것입니다. (웃음) 그다음에 '부산 영도를 갔는데' 하면서 유효원이라는, 절뚝절뚝하는 병신 협회장이 나올 거예요. (웃음) 그럴 거 아니예요? 그리고는 36가정이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결혼을 했는데 싸움판이 벌어졌다, 내 아버지 내어 달라고 야단을 했다 하는 것이 다 나올 것입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적인 인물들입니다. (27-258)
내가 오늘 특히 이야기할 것은 전통을 존중시해야 한다는 거예요. 통일교회에 있어서 유협회장의 공이 크다구요. 그래 진승이에 대해서도 선생님이 생각을 많이 해왔다구요. 어머니를 대해서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공은 공으로서 갚아 줄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예진이 때에도 그랬고, 인진이 때에도 그랬고, 유협회장을 생각했다 이거예요. 그거 유협회장이 잘 알 거라구요.
통일교회가 지금 폐단이 뭐냐? 간부 여러분들이 우리 종교 재단에 있어서의 유협회장의 공을 잘 기억해야 된다구요. 그것이 시일이 가면 갈수록 점점점 희박해지는 것보다 그날을 기억해 가지고…. 선생님이 그를 추도하는 날을 그만둬라 하기 전까지는 전국적인 기념날로서 추도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된다구요.
그는 국가적 시대의 활동을 못 했다구요. 세계무대의 시대까지는 못했지만 교회를 창건한 시대로부터 국가와 연락할 수 있는 그 기간-3년 전이구만-에 있어서, 교회를 개문하는 데 있어서는 제일 공로자임에 틀림이 없어요. 그런 입장에서 볼 때, 그 전통적 중심사상을 남긴 그 공로를 내가 알아주는 거예요. 또, 그가 불구의 몸인데도 내가 3년8개월 동안을 하루에 18시간 이상 매일 강의하라고 족쳐 댄 거예요. 왜? 그로 말미암아 원리를 교육시키는 하나의 전통을 하늘땅 앞에 남겨 놓기 위해서예요. 전세계의 모든 강사들이 매일같이 3년 이상 이 일을 계속하더라도, 열 몇 시간 이상의 강의를 하더라도 피로하다고 불평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예요. 하늘땅 앞에 그런 전통을 남기게 하기 위해서 불구의 몸인데도 그렇게 하게 했다는 거예요.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그때는 우리가 보리밥을 먹을 때라구요. '그양반은 참 고기를 좋아했어요. 생선을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하고 그랬는데 그때는 참 어려운 때였다구요. 수련회를 해도 밥도 못 먹고서 사는데, 거지가 들어와서 밥 좀 달라고 해서 보리밥을 주면 그 거지는 그 밥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가는 그런 시대를 지냈다구요.
그렇게 먹지 못하고 영양도 잘 충당하지 못한 가운데 강의하다 피곤 해서 누우면…. 어떤 때에는 아파 가지고 오후에는 강의 못 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를 닦아세우던 것이 생각난다구요. '네가 그럴 수 있느냐? 원리를 생명을 걸고 전해야 된다. 네가 생명이 붙어 있는 한, 한 사람도 없거들랑 공중을 보고라도 얘기해야 된다' 하면서 기합을 줄때, 누워 가지고 눈을 둥글둥글하면서도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면서 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거 일어설 때, 다리 고관절이 붙었으니 손으로 짚고 힘들게 일어서던 것이 눈에 훤하다구요. 그걸 내가 잘 아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왕지사 나라는 사람이 사후를 생각한다면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야 된다구요. (130-322)
3) 김영휘님
이번에 김영휘를 세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김영휘는 36가정에 세 아들 중에 대표예요. 세 아들의 대표라구요. 김영휘가 세 아들 가운데서도 세째라구요. 3시대가 올 수 있는 새로운 시대에 문을 열어야 할 입장에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키(KEY)를 잘 관리해 가지고 있다가 앞으로 하늘로 들어가 천국을 건설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60이잖아요? 나이가 많아서 다 틀리면 안 되니까 여기서 넘겨 줄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돼요. 그 말은 뭐냐? 새로운 교육을 하라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새로운 전통을 세워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해먹던 그런 놀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정의에 앞장서고 사리에 명철해 가지고 사탄이 좋아할 수 있는 흔적을 따라가는 환경을 정비해 가지고, 하늘이 어디 가든지 네활개를 펴고 기쁨으로써 안식처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의 천국을 만들어야 된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김영휘는 이제 그렇다구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다 무엇이든지 사랑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선생님만큼 사랑 못 했고, 나라를 선생님만큼 사랑 못 했고, 교회를 선생님만큼 사랑하지 못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을 중심삼고 그 전통을 본받아야 돼요. (149-173)
여기에 협회장이 있는데, 이 협회장은 선생님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책임을 하든 못 하든 끝까지 끌고 나갈 것입니다. 민족적인 탕감이라는 이 엄청난 일을 다할 때까지는 협회장을 앞에 내세워서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가 인격적인 면에서 결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함이 있다 해도 그것은 본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를 누가 세웠습니까? 선생님이 세웠습니다. 그러니 책임도 선생님이 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망하면 망했지 그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24-141)
김영휘는 지금 뭘해야 되느냐? 김영휘가 지금 통일교회하고 승공연합의 회장이 돼 있기 때문에 그 이름대로 된 거예요. 김영휘. 영광을 떨칠 수 있는 그 자리에 떡 서 있어요.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자리예요, 정대화가 가짜 대화가 아니고 정말 대화면 얼마나 좋아. (웃음) 거 화목띠야, 그 이름은. 그러니 협회장이 절대 필요한 거야, 정대화! 그렇다구. 요즘에는 아주 색시밖에 모른다는 소문이 났던데 그래? 김영휘! (웃음) 색시 숭배주의자가 됐다는 소문 났던데? 야, 그런가 물어보잖아? 「거기까지는 안 갔습니다」(웃으심) 거기까지는 못 갔지만 가려고…. 한 7부 능선은 넘었구만. (웃음) 좋다구, 좋아. (148-252)
김영휘! 두 장(長)이지? 김영휘 지금 그 한자(漢字) 써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영휘, 빛날 휘(輝) 자에다가 영화 영(榮)자. 아주 이름이 좋다구. 요때 한번 써 먹지요. (166-269)
여러분은 젊어서부터 통일교회에 들어와서 이제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고 있습니다. 김영휘, 60세가 되잖아? 59세지? 「61세입니다」 벌써 예순 한 살인가? (웃음) 대위 계급장 달고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어? 61세면 노인네 된 것입니다. 청년시대에 들어와 가지고 장년시대를 거쳐서 이젠 노년시대에 들어왔습니다. (172-89)
김영휘 협회장을 중심삼고 볼 때, 그는 주체고 여러분들은 대상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서 여러분이 대상이면 절대적인 대상의 자리에서 주체를 보강시켜 주어야 합니다. 주체에게 어떤 결함이 있으면 대상은 그것을 보강시켜서 절대적인 대상인 자기와 자연적으로 일체될 수 있도록 주체를 다시 창조하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한 대상 앞에는 그 주체가 불완전하더라도 반드시 완전한 주체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체가 절대적일 때에는 주체가 그 절대적인 자리만 지켜 나가면 대상도 절대적인 자리에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관입니다. 교회와 대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공사(公私)문제를 늘 생각해야 하지만 우리 자체 내에서는 언제든지 주체와 대상의 관념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33-175)
한국은 이제부터 김영휘 협회장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전히 하나 되어서 선생님을 대신해 여러분들이 한국을 책임져야 되겠어요. 「예」 선생님이 이제는 제발 염려하지 않아도 되게끔…. 영휘 알겠어? 「예」 중대한 책임이예요. 다 알겠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