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수삼년간 침묵하던 개인/단체/정당의 분노가, 전국을 불타오르고 광장을 뒤덮고 있다.
어느 하나 "카더라" 통신은 아주 재미난 팩트가 되어
방송을, 광장을. 택시기사 구전을, 목소리큰 아줌마 아저씨 구전이 되어
나라를 불사를 기세로 광장을 덮으려 한다.
이 일차적인 책임은 검찰의 구속영장에 명시된대로 최순실 그리고 공동정범 대통령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엄연한 팩트 하나
최순실과 그 일단의 무리의 국정개입, 농단
그리고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대통령의 개입했다는 정황증거..적어도 미필적 고의는 확인 되었으니
확인되어 심판받아 마땅하고 유일한 팩트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에 대해 “지금 검찰의 모습은 다리가 부러져 거동할 수 없게된 사자에게 떼로 달려드는 하이에나”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SNS에서 “검찰은 항상 그래왔듯 정권 말에 자신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해야 할 이유를
국민에게 보여줄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라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쌩쌩하던 국감 때는 아무리 수사를 다그쳐도 한가롭더니 대통령 사과 담화 이후
득달같이 달려드는 검찰의 이중성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지금 이런 현상은 검찰뿐 아니다.
가관인 것은 언론이다.
일본인, 정확하게 일본 강성노조회원들이 광화문에 와서, 박대통령 하야하라고 원정와 외쳐대도 조용하다.
한일군사정보 보호협정에 대해서는 매국협정으로 특보하면서도
그 일본넘들이 아무 관련없는 넘 나라 지도자를
우리 땅 한 가운데서 저리 당당하게 물러나라 외치는 데도..
춘천의 모 국회의원이 촛불기간 사우나 갔다고 난리다.
아니 그러면 5주 동안 목욕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
5주동안 전국 사우나 목욕한 국민들 모두 언론으로 부터, 저주 받아야 할 태세다.
목욕 횟수 곱만큼 저주받을 각오하고, 자수하여 광명 찾아야 한다..언론에...
시대상황에 걸맞지 않게 회식한 사람들
결혼식같은 즐거움을 맞은 분들
큰 웃음 한번이라도 지은 분들은 심각한 국내상황을 받아드리지 못한 죄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여...
광화문에 걸린 플랭카드를 보라
이석기 이정희를 다시 국회로!!!
성과제 도입불가!!!
쌀 전량 수매!!!
장애인 등급제 폐지!!!
(그려 지금부터는 요밑 박원식 동기가 쓴 얘기여 )
‘광장’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또 하나의 신화 ‘광장 민주주의’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고 있다. ‘광장’에 대한 분주한 신격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가 5주 연속 열렸다. 언론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광장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며 민중의 흥분을 전했다. 이 광장에서는 초등학생조차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외쳤다. 아이는 그렇게 쉽게 영웅이 됐다.
반복되는 촛불집회 덕에 많은 사람들이 광장과 민주주의를 엮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광장 민주주의’라는 말도 유행이다. 민주주의는 정말 광장에서 성숙할 수 있을까? 광장과 민주주의는 공생하는 관계일까.
‘광장-민주주의‘의 이질감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은 폭력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광장에서의 투쟁이 필요 없음은 물론이다.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 1987년의 6.10 항쟁은 광장에서 이뤄졌다. 6월 항쟁이 그래도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그 때는 광장이 아니라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당시 광장에서의 폭력을 제한적으로나마 정당화한다. 하지만 지금은 ‘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지도자를 바꿀 수 있다. ‘광장 민주주의’는 정당화될 여지가 없다. 오히려 그 자체로 형용 모순이다. 광장에서의 투쟁이 제한적으로나마 정당하게 인정되는 것은 정권의 평화적 교체가 불가능할 때뿐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의 민주주의는 광장이 아니라 투표소에서 이뤄진다.
민주주의 선진국 영국‧미국에서의 광장
그런데 한국 언론은 유독 투표소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광장을 사랑한다. 최근 전 세계 핫이슈였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의 보도 행태를 보면 그렇다. 영국은 오랜 논의를 거친 끝에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미국은 ‘악동’으로 묘사되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한국 언론이 정반대의 예측을 하며 헛발질을 한 것은 문제였다. 하지만 예측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진짜 문제는 후속보도를 하면서부터다.
많은 언론이 이 결과를 보도하면서 다소 엽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국민 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일부 영국인들이 재투표를 하자며 길거리에서 항의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서는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며 길바닥에서 시위하는 이들을 확대 보도했다. 정작 새로 선출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라고 명확히 못을 박았다. 또 우리가 트럼프의 당선을 ‘믿지 못하는’ 동안 이웃의 아베 신조는 발 빠르게 트럼프를 만났다. 우리는 영국과 미국의 ‘광장’에 주목했지만,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에서의 광장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광장,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ㅋㅋ)
무엇보다 광장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광우병 파동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광장에 모이는 ‘대중’도 완전과는 거리가 멀다. (나를 포함한) 당시의 대중은 광우병 선동 앞에 최소한의 이성마저 완전히 상실한 채 휘둘렸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는 1차 선동에 대다수가 넘어갔다. 힘을 잃어가자 한미FTA를 체결하면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식으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계속된 2차, 3차 선동도 성공적이었다. 민주주의 제도가 살아있는 국가에서의 광장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못했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광장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
민주주의를 위해 절제는 필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절대 선(善) 인가. 그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가장 쉽게 설명하면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다수가 선이자 질서가 되는 민주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은 형태가 바로 전체주의이자 파시즘이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다. 알맹이는 자유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극단에 파시즘과 같이 위험한 요소가 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택했다. 이는 지금까지는 민주주의가 그래도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가장 적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광장에서든 어디에서든 개인의 자유를 압살해버린다면 민주주의도 악(惡)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절제다. 일반 국민이 가진 것은 ‘하야권’이 아니라 ‘투표권’이다. 광장의 본질은 무절제한 폭발력에 있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성숙하지 않는다.
첫댓글주최측은 왜 일본, 북한이 간섭해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동류라서 그러는 것인지, 광우병도 그렇지만 우리 시민 정치 수준은 아직 선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치고, 하야외에도 다양한 불만이 함께 있는 것은 사회의 불만을 배설할 길이 없었다는 것, 시간과 돈은 있는데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만한 시간과 장소가 부족한 현실을 반영한 것 아닐까. 그 와중에 타켓트가 제대로 걸린 것이고 보인 것이지. 그것을 바르게 이끌어 주고 가르칠 교육' 언론, 법치가 개판되어버린 것이고.
만인의 투쟁, 인생사입니다. 우리는 흡족한 정의를 바랍니다. 그러나 결과는 힘있는 자가 승리합니다. 지금은 언론, 시위대, 검찰, 야당이 힘이 있습니다. 정의는 없어도 힘은 불의(역기능)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맛있는 먹이감이 보이니까요. 몰립니다. 우리는 관객으로서 아니 진짜 주인으로서 그 역기능을 보고 말하고 있답니다. 공감합니다. 저도 항상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 역기능은 먼 훗날 역사속에서 다시 보이지요. .그 때,...다면, 걸하고.
첫댓글 주최측은 왜 일본, 북한이 간섭해도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도 동류라서 그러는 것인지, 광우병도 그렇지만 우리 시민 정치 수준은 아직 선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치고, 하야외에도 다양한 불만이 함께 있는 것은 사회의 불만을 배설할 길이 없었다는 것, 시간과 돈은 있는데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만한 시간과 장소가 부족한 현실을 반영한 것 아닐까. 그 와중에 타켓트가 제대로 걸린 것이고 보인 것이지. 그것을 바르게 이끌어 주고 가르칠 교육' 언론, 법치가 개판되어버린 것이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11.28 15:31
만인의 투쟁, 인생사입니다. 우리는 흡족한 정의를 바랍니다. 그러나 결과는 힘있는 자가 승리합니다. 지금은 언론, 시위대, 검찰, 야당이 힘이 있습니다. 정의는 없어도 힘은 불의(역기능)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맛있는 먹이감이 보이니까요. 몰립니다. 우리는 관객으로서 아니 진짜 주인으로서 그 역기능을 보고 말하고 있답니다. 공감합니다. 저도 항상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 역기능은 먼 훗날 역사속에서 다시 보이지요. .그 때,...다면, 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