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497
천자문114
동봉
0393지킬 수守
0394참 진眞
0395뜻 지志
0396찰 만滿
-진실함을 지키므로 마음이 차고-
(사물만을 따라가면 뜻도변한다)
0393지킬 수守
수구섭의신막범守口攝意身莫犯
여시행자능득도如是行者能得道
입을 잘 지키고
뜻을 잘 조섭하며
몸을 함부로하지 말라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능히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
ㅡ 원주 치악산 구룡사 심검당尋劒堂에서 ㅡ
문공文公의 자리에 올랐던 사람으로
쭈시朱憙Zhuxi(1130~1200)가 있었습니다
그는 난쏭南宋의 정치인이자 철학자며
신유학으로 불리는 송학宋學의 권위자입니다
쭈시를 공자 맹자 노자 장자처럼
성 뒤에 높임말 자子를 붙여
쭈즈朱子라고까지 올려놓았습니다
신유학을 받아들인 삼봉 정도전으로부터
정암 조광조를 거쳐
퇴계 율곡에 이르기까지
조선조 많은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은
공자 맹자보다 쭈즈를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런 그가《明心寶鑑》<存心篇>에서
짧지만 꽤나 유익한 말을 남겼습니다
수구여병守口如甁
방의여성防意如城
심불부인心不負人
면무참색面無慙色
입 지키기를 병처럼 하고
뜻 단속하길 성처럼 하라
남에게 마음 빚이 없으면
부끄러울 낯이 없느니라.
절에 들어오기 8년 전에 읽은 귀절인데도
내용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75년 3월도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치악산 구룡사에 올라가
당시 총무였던 삼현 스님에게
내 더벅머리를 통째로 맡겨버렸습니다
스님은 누각 옆 반송 너럭바위에 나를 앉히고
T자형 양날 면도기를 집어들어
아예 한 쪽을 따내버리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스님이 내게 한 말씀이
위에 글 '수구섭의신막범' 등이었지요
게다가 해설까지 곁들였습니다
삼현 스님의 법설을 들으며 삭발하는 동안
해그림자는 점점 짧아져가고
시원하께 깎여나간 맨머리를 어루만지며
수각水閣에서 머리를 감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수섭막守攝莫이었습니다
지키고 조섭하고 하지 않음이었습니다
입을 지키고 뜻을 거두고
몸을 함부로 하지 않음이었습니다
사실 수행자가 입과 생각과 행동을 떠나
따로 무엇을 다스리겠습니까
그런데 만41년이 훌쩍 지나가고
다시 몇달이지만 이론만 그러할 뿐입니다
수행은 되려 당시만 못한 게 확연합니다
지킬 수守 자는 부수 집 면宀 자에
작은 세계, 마음의 세계 마디 촌寸자입니다
이 '마디'는 앞의 '마디 절節'의 마디와
전혀 다른 마디라 할 것입니다
절節의 마디가 물리의 세계라고 한다면
이 촌寸의 마디는 실존實存의 세계입니다
실존이란 직역하면 '실제로 있다'이지만
정신세계를 얘기할 때 주로 쓰입니다
물질 세계는 외부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지만
마음은 외형처럼 바뀌는 게 아닙니다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일지라도
열반의 세계 곧 깨달음은 적정寂靜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입만이 아니라
뜻도 지켜야 하고 몸도 지켜야 합니다
조섭한다는 것은 뜻만이 아닙니다
입도 조섭하고 몸도 조섭해야 합니다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몸뿐이겠습니까
입도 뜻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지요
따라서 지키고 조섭하고 하지 않음은
언어와 마음과 행동에 고르게 해당합니다
0394참 진眞
참이란 거짓이 아닌 사실 그대로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이며
귀에 들리는 그대로의 소리이며
코 끝에 풍기는 그대로의 내음이며
혀 끝에 와 닿는 그대로의 맛이며
손끝에 느껴지는 닿음 그대로입니다
정신의 세계도 그냥 꾸밈 없음일뿐이지요
어떠한 변화匕에도 흔들림 없고
어떤 가림막乚으로 가리더라도 드러나고
온갖八 방향方에서 살펴目 보더라도
참 존재는 여일하다 하여 진眞이지요
참 진眞 자의 다른 글자真가 있습니다
변화匕를 뜻하는 머릿글이
팔방을 포함하여 위 아래를 뜻하는 세계
시방의 십十으로바뀌었습니다
가림막乚은 눈目을 올려놓는
성스러운 테이블로 바뀌었습니다
참의 중심은 봄目입니다
위 아래 사방 팔방에서 살펴보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이 다름아닌 진真입니다
변화란 사물의 본 모습無常입니다
사물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변화란 없어짐이 아닙니다
정형화된 틀Frame이 없을 뿐입니다
생겨나고生 사라지는滅 세계가 아니라
모습을 달리할 뿐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생겨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일정한 모습常이 없을無 뿐입니다
지킴이 영어로 디펜드Defend라면
무엇을 지킨다는 뜻일까요
지켜야 할 목적어가 무엇이겠습니까
참되고 실다움眞實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不死의 세계입니다
나고 죽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스스로 그러한 대자연大自然이며
프로퍼티Property 곧 자산資産입니다
이 자연의 자산으로 진실을 넘는 게 있을까요?
0395뜻 지志
대승불교 경전 가운데서
양대 불교문학을 들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법화경과 화엄경입니다
법화경은 본이름이《묘법연화경》으로서
모두 7권 28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엄경은 80권본 60권본 40권본이 있는데
본이름이《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
경전에 따라 경전의 부피가 다르고
구성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법화경도 그렇지만 특히 화엄경은
액자구조Frame Structure 문학입니다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가 쓴 소설에
유명한《데카메론Decameron》이 있습니다
데카메론의 특징이 액자구조 문학이지요
이야기 속의 이야기 ㅡ
다시 그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조
이를 우리는 액자구조라 부릅니다
그런데《묘법연화경》도 그렇지만
실로《대방광불화엄경》은 분명합니다
액자구조 문학이 맞습니다
화엄경이 철학 종교가 아니라 문학이라고요?
화엄경이라는 전체적 액자Frame 속에서
선재동자와 쉰 세 분 선지식의 만남은
진리를 논하는 그러한 아름다움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나누는 얘기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게 내 느낌입니다
뜻 지志 자가 간직하고 있는 '뜻'도 좋으나
나는 뜻 지志 자의 또다른 뜻인
프레임Frame을 좋아합니다
지志는 프레임입니다
생각의 프레임입니다
마음의 프레임입니다
슬기의 프레임입니다
사랑의 프레임입니다
아픔의 프레임입니다
슬픔의 프레임입니다
진리의 프레임입니다
진여의 프레임입니다
열반의 프레임입니다
기전체紀傳體 역사에서
제왕의 일을 기록한 본기夲紀와
많은 사람의 전기를 차례로 벌여서 기록한
열전列傳을 제외한 기록물을 지志라 합니다
여기에는 하늘의 세계와 땅의 이치
예절과 음악
사랑과 미움
시와 문학
전쟁과 평화
예술과 스포츠
삶과 죽음
정치와 형벌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록물들을 지志라 합니다
중국에는 사대기서四大奇書가 있습니다
곧《三國志演義》를 비롯하여
종교 문학《西遊記》가 있는가 하면
사랑의 서사시《金甁梅》가 있고
사적事跡 소설《水湖志》가 있습니다
'水湖志'는《水滸志》라고도 이름하는데
같은 내용을 달리 표기한 것입니다
어찌 같은 이름에 다른 표기가 있었을까요
사투리地方語 때문이거나
필사본이 대세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들 사대기서를 비롯하여
조선 인종 때 홍만종(1642~1725)선생이
보름만에 쓴 문학평론집《旬五志》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자긍심을 갖고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명저입니다
시놉시스Synopsis를 공개하라고요?
한 번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중국의 사대기서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의《순오지》가 모두 지志입니다
이 말은 이들 '지志'의 책을 읽을 때
지志가 뜻하는 프레임 구조의 틀에서 읽어가면
어쩌면 재미가 배는 더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법화경과 화엄경
서유기와 수호지
야한 이야기의 성인소설 금병매가
보카치오의《데카메론》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뜻 지志 자는 마음 심心 자가 부수며
선비 사士 자는 소릿값입니다
뜻 지志 외에 '기치 치志'로도 새깁니다
같은 뜻 다른 글자로는
뜻 지旨
뜻 지㫖
뜻 지恉
뜻 지㫑(때 시时/時와 같은 자)가 있습니다
0396찰 만滿
삼수변氵이 들어간 것으로 보아
사람이 잔뜩 모인 게 아니고
물건이 가득 참도 아니며
방앗간에 참새가 가득히 모인 것도 아닙니다
기본 의미는 물이 그릇에 가득 차고
술이 잔에 가득 차고
호수에 물이 찰랑찰랑함입니다
소릿값 만㒼 자는 좌우가 평평함인데
스물 입廿 자는 수평을 가늠하는
물이 담긴 수평호스Hose에 해당합니다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똑같이 열 십十자로
물의 높이를 맞추는 호스 그래프지요
아래에 놓인 수건 건巾자는
수건의 의미도 있지만
호스 그래프Hose Graph에서
아래로 길게 연결된 막대丨를 통해
역시 빈틈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래로 튼 입구冂 양쪽으로
들 입入 자를 가득차게 그려넣은 것은
넓은 공간冂 아래서 위丨까지
빈틈없이 물이 차올랐다는 뜻입니다
나중에는 물 뿐아니라
빈 공간 없이 꽉꽉 차는 것을
일컫게 되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차다, 가득 차 있다, 가득하다, 그득하다
풍족하다, 만족하다, 흡족하다, 이르다
미치다, 꽉 채우다, 교만하다, 아주, 전혀
모두의, 중국 만주滿洲의 줄임말
제 돌이 꽉 찬 것을 나타내는 말(만19세) 등
수진지만守眞志滿
서우쩐찌만Shouzhenzhiman
나는 염불 외듯 욉니다
진실함을 지키므로 마음이 차고
진실함을 지키므로 마음이 차고
진실함을 지키므로 마음이 차고etc.,
지志=마음의 틀Frame of mind
아! 마음에도 틀Frame이 있구나!
05/11/2016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