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가 줄지어 섰다. 가로세로 폭 맞추어 집을 호위하는 듯하다. 묘목으로 뿌리 내려 스무 해를 더 살아온 나무는 청년기 같다. 키보다 품이 더 넉넉한데 사월이면 가지마다 두꺼운 수피를 열어 새순을 내민다. 그때마다 유난 떠는 꽃샘바람 탓에 주춤거리며 녹빛의 봄을 차린다. 봄이 후끈해지면 감꽃이 핀다. 노랗고 작은 별 모양으로 초록 잎사귀 사이에 총총하게 열린다. 꽃은 땅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수줍게 내려다보지만 살짝 말아 올린 네 장의 꽃잎 속으로 벌이 대롱을 박기도 한다. 그토록 앙증맞은 꽃이 눈물처럼 후드득거릴 때 나무 아래에 서서 귀를 기울이면 도란도란 별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감꽃은 며칠 반짝 핀 뒤 손톱만 한 열매에 자리를 내준다. ‘잘 커라, 잘 익어라’ 나무가 우듬지를 뻗쳐 기도라도 하는가. 동글납작한 열매는 나날이 단단해지면서 햇빛과 바람뿐 아니라 새소리 빗소리까지 불러들인다. 하지만 약하여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은 생명의 원리인지라 꼭지의 힘이 부족한 열매는 비늘이 털리듯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떨어진다는 건 세상에 책임을 진다는 거다. 열매가 시련을 겪으며 영글어지는 것도 세상의 이치다. 오뉴월 장마는 작물에 개똥장마지만 한여름 억수장마와 태풍은 수난이다. 득달같이 달려와 나무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가 하면 모다깃비와 합체하여 뿌리까지 통째 뽑겠다며 날뛰기도 한다. 이때 열매는 안간힘으로 꼭지를 물지 않으면 도사리가 되고 만다. 맺었다고 다 영그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숱한 시련을 이겨내야만 익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여름이 수굿해지면 감나무에 물이 든다. 그때 두툼해진 잎과 여물어가는 열매가 기다림이 절박해진 가슴처럼 함께 붉어진다. 감은 겉만 붉어지는 것이 아니다. 속까지 주황물을 채우며 다부지게 익어간다. 곶감을 만드는 감은 물이 제대로 들고 속이 단단해야 제격이다. 그러기에 물든 잎이 나무의 발등을 덮기 시작하면 열매를 딴다. 곶감이 되려면 먼저 껍질을 깎아 걸이에 걸어 덕장으로 옮긴다. 조금이라도 무른 것은 일찍이 대열에서 밀려난다. 미처 갈라진 꼭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말리는 동안 곰팡이가 슬어 눈을 부릅뜨고 살펴야 한다. 이때부터 덕장 안은 꽃불이 켜진 듯 환해진다. 주저리주저리 걸린 감은 계곡을 타고 온 차고 건조한 바람에 몸을 맡긴다. 밤낮으로 바람의 손길이 어루만져 주지만 제대로 피어나려면 밤마다 쏟아질 듯 펼쳐지는 별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모든 과일은 익는 게 숙명이다. 감도 그 소임으로 붉어진 속살이 몰캉해지도록 만고풍상을 달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익고 또 익어 홍시가 되면 모든 번뇌는 버리고 정리正理를 깨달은 성자처럼 세상에 보시한다. 마지막에는 삶의 완성인 듯 흙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곶감을 만드는 감은 익기 전에 따므로 감의 입장에서 보면 원하지 않은 생이라 할 수 있다. 내 목숨도 내 뜻대로 못 하면서 곡진 세월에 대가조차 왕배덕배 할 수 없다. 그게 미치도록 환장할 일이 아닌가. 더구나 피부를 도려내는 아픔까지 겪어야 하여 억울하기 짝이 없을 거다. 살이 깎여 매달렸어도 떫은맛을 한동안 물고 있는 걸 보면 감의 입장이 헤아려진다. 그래도 질박한 태생이 다행인지 얼었다가 녹기를 거듭하며 미움과 원망을 내린다. 감은 마르면서 다시 핀다. 덕장에서 달포 동안 된서리를 받아들이며 겉의 수분은 날리고 속으로 단맛을 재운다. 농부는 감이 이루지 못한 숙명을 위안하며 다음 생이라도 소환하는 듯 부드러운 손길로 몇 차례 매만져준다. 그러면 표면에 하얀 가루분이 핀다. 감은 그렇게 갖은 원망을 다 내려서야 곶감으로 승화한다. 곶감이 되어서도 한 번 더 피어난다. 베어 물면 문양 같은 분이 입안에 퍼져 혀를 감싼다. 겉은 쫀득하면서 속이 촉촉하여 씹을수록 달달한 향도 낸다. 그렇게 맛으로 또 핀다. 꽃으로 분으로 맛으로 세 번 피었기에 여한도 미움도 원망도 없지 싶다. 사람도 생애 여러 번 피어난다. 어릴 적에는 재롱으로, 나이 들어서는 꿈으로 핀다. 권력과 재력으로 피기도 하여 나름의 향을 낸다. 나 역시 부모 형제의 그늘에서 꿈을 키우다가 비바람에 등을 떠밀리며 여기까지 왔다. 인생의 가을까지 살아왔지만 삶이 잘 익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여 인생의 가을볕을 받으며 한 번 더 나를 피울 수 있길 소망한다. 전원에 묻혀 감 농사를 짓다 보니 농사야말로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 순리를 거스르면 꽃을 피울 수 없고, 일손을 멈추면 열매를 거둘 수 없다. 얼마나 더 살아야 뽀얀 인생의 맛을 낼 수 있을까. 부질없음에 매여 사느라 눈이 어두워져서야 내려놓기를 연습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여긴다. 삶이 가뿐해지면 나만의 꽃을 피우지 않을까. 인생의 꽃이 가장 향기로운 걸 알기에 다시 피어날 나의 계절을 기다린다.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무슨 시련이 남았는가. 얼마나 더 견뎌야 겸연쩍더라도 태어난 숙명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곶감은 집착과 원망을 못 버리는 늘그막 인생의 귓전에 진언을 하사한다. 억울함도 원망도 미련도 다 내려놓은 곶감, 다시 피어 더할 바 없이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