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동거 (隨筆)
影園 / 김인희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그의 첫 모습은 온몸이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털로 덮여있었고 작달막한 키였다. 새로운 일터에 출근하는 첫날 나를 보고 심하게 짖어서 당혹스러웠다. 내게 업무 인계하는 선배에게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몸을 밀착하여 애교를 떨면서 내게는 으르렁거리면서 좀처럼 가까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석양에 기대어 땅거미를 초대하는 저녁에 퇴근할 때 선배의 차를 쫓아가면서 서럽게 짖으면서 배웅하고 내 차가 지나갈 때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날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만났다가 헤어지면서 우리의 어색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에 대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어요. 배가 홀쭉해서 굶주린 것 같아 사료를 주었더니 좋아했어요. 그리고는 아예 여기서 눌러 지내는 거예요. 아마도 우리 사무실 근처 캠핑장에 캠핑 왔던 가족이 잃어버렸나 봐요. 어쩌면 일부러 버리고 갔을지도 모르고요. 더러 애완동물을 키우던 사람들이 캠핑장에서 일부러 버리고 간다는 기사를 보았던 기억이 있어요. 사람을 보면 달려오고 애교를 떠는 모습을 보면 애완견으로 길러졌을 가능성이 커요.”라고 선배가 말했다.
선배가 업무인계를 끝내고 출근을 하지 않으면서 그의 하루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무실의 창가에 내 자리가 있어서 수시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업무를 보는 일상이었다. 우리는 겨울이 떠나갈 즈음 산비탈 응달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처음 만났고 자색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렸을 때가 돼서야 조금 가까워졌다. 목련꽃잎이 하염없이 떨어지던 날 그는 빗자루를 들고 꽃잎을 쓸어내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우물쭈물했다.
요즘은 아침에 출근할 때 경계의 소리로 짖지 않으나 퇴근할 때는 여전히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다. 나 역시 그에게 살갑게 다가가지 않고 말없이 바라보다가 돌아서곤 했다. 그와 나 사이에 가까워질 이유가 없었고 애써 사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까이하지 않고 그만큼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4개월 동안 아침에 만났다가 저녁에 헤어지는 동안 시나브로 친숙해지고 있었다. 한낮 수은주의 높이가 30℃를 웃돌고 있다. 사무실 창가 바로 앞에 있는 목련나무의 무성한 잎이 만들어 주는 그늘이 마냥 좋은가 보다. 그 그늘을 독차지하고 늘어지게 누워있는 그를 보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옆으로 바짝 다가앉아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았다. 누운 채로 내게 몸을 맡기고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의 목덜미를 안마하듯이 한 손으로 조물조물 만져보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편안하게 있더니 이내 몸을 내 쪽으로 돌리고 만져달라는 시그널을 보낸다. 배를 만지면서 “날씨가 무척 더워졌지? 더워서 여기 시원한 그늘에 누워있는 거야? 더 더워지면 어쩔 테야?”라고 말하면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와서 비누로 여러 번 손을 씻으면서 실소를 머금었다. 그가 풀밭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해충들이 그의 몸에 붙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쓰다듬을 때 털의 감촉이 끈적끈적했던 느낌이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그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물에 젖은 손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애완견을 키우는 지인을 떠올렸다.
지인은 애완견이 침대에 올라와서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지인은 잠잘 때도 침대에서 애완견과 같이 잔다고 했다. 자주 목욕을 시키고 애완견과 산책한다고 했다. 장거리 다녀와야 할 때도 애완견을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지인의 애완견과 내 옆을 맴도는 그는 어찌하여 상반되는 운명(?)이 되었을까.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내겠다고 먹었던 내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만나서 일정한 시간을 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면 인연이라면 인연일 게다. 아직도 내 손 끝에 그의 끈적끈적한 털의 감촉이 남아있다. 그를 목욕시킬 방도를 찾아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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