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10/13일-17일
아르메니아는 국토 86%가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산악 국가다.
캅카스 산맥에 있어서 '캅카스의 알프스'로도 불린다
국토 평균 해발고도가 1,792m
최고봉은 서부에 있는 아라가츠산(Mount Aragats)의 4,090m 지점이다
1세기에 바르톨로메오와 타대오 두 사도가 아르메니아에 처음으로
301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언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313년에서야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정한 것은 392년이니 91년이나 빨랐다.
이렇다 보니 아르메니아 국민 90%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들이다.
아르메니아의 인구는 300만 명일 뿐이지만 정작 해외 70개국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은 600만 명이 넘어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해외 거주 인구가
본국 인구를 훨씬 초과한 나라다.
오스만 튀르크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중립을 지키려던 터키는 러시아가
연합국의 일원으로 터키 동부 지역을 침략해 오자 결국 독일편에 서게 됐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던 러시아 접경의 아르메니아 혁명세력들이
전쟁의 와중에서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러시아 편에 서서 터키를 공격했다.
이에 터키는 아르메니아 혁명위원회를 폐쇄하고 235명의 지도자를
반역죄로 구속해 버렸다. 동시에 내부의 적을 격리시키기 위해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지로 대규모 강제이주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군사적 충돌은 물론 강제이주에 따른 추위와 굶주림,
질병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르메니아 측은 150만명 사망설을, 그것도 터키 당국의 명령에 의한
조직적인 대량 인종학살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터키정부는 그것은 전쟁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인명 피해일 뿐이며,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아르메니아 무장세력에 의한 터키군인과 민간인
희생도 40만명을 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인 희생자 숫자만 해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천차만별로
최소 20만명에서 최고 200만명까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당시 터키 동부의 아르메니아 인구 규모가 150만명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희생자 수는 60만~80만명 정도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분석이다.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를 경험했던 유럽은 선거나 주요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아르메니아 문제를 들고 나와 국제무대에서
터키정부를 괴롭혔고, 터키 극우정당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아르메니아 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프랑스가 이 문제에 민감한 것은 우선 자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50만명에 달하는 아르메니아인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프랑스가
국제적으로 민감한 아르메니아 문제를 통해 터키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속셈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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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반
아르메니아의 수도이다. 1918년 수도가 되었고, 아르메니아 역사상
열세번째 수도라고 한다. 인구는 약 110만 명으로 아르메니아 인구의
1/3 가까이가 거주한다.날씨가 좋을 때 민족의 영산인 아라라트산이 보인다.
다만 이 산은 현재 터키 영토에 속해 여길 성지로 받아들이는 아르메니아는
두고두고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예레반과의 거리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 터키군이 포탄만 날려도
예레반은 불바다가 된다.따라서 아르메니아는 터키에 이를 갈면서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있다
캐스케이드 (Cascade)는 켄트로 (Kentron) 지역과 기념비 (Monument)
지역을 연결하는 거대한 계단
걸어 올라갈수 도 있으나 내부 에서 에스컬레이트로 올라가고 내려 올떼는계단으로
마지막 층 은 공사 중 단 (충분한 성금이 모이면 공사 한다고 하는데 ?)
세레반 도착 후 안개 스모그 비 때문에 argats산등 먼거리 모습은 볼수 없었음
저멀리 안개 구름 속 에 ARGATS 산
아르메니아 Aragatsotn 지방의 Saghmosavan 마을에 위치한 13세기 수도원
아르메니아 알파벳 38
Amberd는 해발 2,300m에 위치한 10세기 요새로,
아르메니아 Aragatsotn 지방의 Arkashen과 Amberd 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Aragats 산의 경사면에 있습니다.
이름은 아르메니아어로 "구름 속의 요새"로 번역됩니다
Kari 호수는 Aragats 산의 경사면에 위치한 아르메니아의 호수입.
대부분의 물은 얼음과 눈에서 나옵니다. 해발 3,185m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는 1,150m입니다
기사분이 갑자기 차를세우더니 버찌 따 갖고 와 먹어보라고
가르니 신전은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남동쪽 32km 거리의
코타이크(Kotayk) 지방에 위치. BC 3세기에 처음 건립될 때는 요새로 건립되었는데,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BC 1세기에 아르메니아의 왕 트리다테스 1세가 네로황제의
후원을 받아 태양신 미트라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재건축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과 더불어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BC 8세기 경의 유물인 용에 새긴
우라르투국의 설형문자, 그리스어 비문, 수세기 동안 아랍인과 아르메니아인들
이 이곳에 거주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들이 발굴되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신전은 아르메니아가 로마의 영토임을 선포하기 위해 트라얀 황제의 상을
신전 내부에 세웠으며, 동부 지중해 연안에서 널리 숭배하던 태앙신 미트라에게
바쳐진 신전으로서 '가르니 태양신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르메니아의 오론티트(Orontid) 왕조와 아르탁시아드(Artaxiad)
왕조 시대에는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고, AD 1세기에는 이교도 사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왕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 AD 32~51)와 가족들이 양자이자
조카였던 라다미스투스(Rhadamistus)에 의해 암살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Geghard는 아르메니아의 Kotayk 지방에 있는 중세 수도원으로
절벽으로 둘러싸인 인접한 산에서 부분적으로 조각되었습니다.
강화된 보호 상태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세반호수
세반 호수는 면적 1,243평방 키로로 제주도 보다 조금 작다.
길이 78키로 너비 56키로의 규모로 28개의 강과 2,000여개의 하천이
세반호수로 몰려든다.
세반 호수물은 다시 예레반 시내 흘러들러 흐라즈반 강에서
남동부 아락스 강과 북쪽 호수에선 카스피해로 흘러간다..
스탈린 시대 새로운 프로젝트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수위를
낮추어 생긴 토지를 농업 용지로 쓰려다 예상치 못한 환경 부작용이 발생했다.
스탈린 사후 사업 계획은 중단 되었다.공사 중단후 복원을 위해 노력한 결과 2012년 수위는 해발 1900미터 이상으로 올라갔다.
20세기 초 수위는 해발1,915미터였다.깊은 곳의 수심이 95미터.
세반호수에 는 4개의 수도원이 있었으나 셀죽 투르크와 몽골의 칩입으로 파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2개의 수도원은 1956년부터 복원한 것으로 양식은
10세기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
세반 반크 는 아쇼트왕 지배하던 시절인 974년 공주 매리암이 전쟁에
나간 남편을 위해 지은것으로 알려져있다.
남아 있는 교회 오른쪽 은 Surp AstvatsatsinCurch(Holy Mother of God Chutch)
이고 왼쪽은 Surp Arakelots Church(Holy Apostes Church)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