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대하여
우리는 대개 영혼불멸을 희구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자신의 영혼만이라도 영원하길 바라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이 길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길임을 잘 알기에 결국 신의 뜻에 의존하게 된다. 종교는 나약한 인간에게 희망과 꿈을 부여하고 보다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다.
바쁜 꿀벌은 슬퍼할 틈도 없다는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노년에 이르러서야 문득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운명의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사실에 전율하면서 마음은 위축되고 남은 시간의 할용에 대한 번민에 빠지게 된다.
로마 최고의 지성으로 평가를 받는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는 일명 『대(大) 카토』라고도 불리는데, 기원 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당하기 직전인 62세에 썼던 책이다. 이 책은 기원 전 150년에 당시 84세의 「대 카토」가 노년의 짐을 어떻게 참고 견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일러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토」는 자신의 경험과 책을 통해 숙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사람이 늙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비참해지거나 황량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삶을 역설한다.
늙어서도 절제할 줄 알고 까다롭지 않고 퉁명스럽지 않은 사람은 노년을 잘 참고 견딘다. 한편 무례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에게는 나이와 관계없이 인생이 괴롭기 마련이다. 너무 가난하다 보면 현인에게도 노년은 견디기 쉬운 것이 아니겠지만, 엄청난 재물을 가졌다 해도 어리석은 자에게 노년은 짐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년에 관한 최선의 무기는 학문을 닦고 미덕을 실천하는 일이다. 미덕이란 인생의 모든 시기를 통해 그것을 잘 가꾸면 오랜 세월을 살고 난 뒤에 놀라운 결실을 가져다준다. 훌륭하게 살았다는 의식과 훌륭한 일을 많이 행했다는 기억은 가장 즐거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누비며 승리의 월계관을 거머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조용하고 순수하고 우아하게 보낸 인생의 평온하고 부드러운 노년들이 있다. 저술활동을 하다가 81세에 떠난 「플라톤」, 94세에 책을 쓰고 그 뒤에도 5년을 더 산 「이소크라테스」와 107살을 채우고도 학구열이 식지 않았던 「고르기아스」 등이다.
비참해 보이는 네 가지는, 첫째, 우리를 활동할 수 없게 하고, 둘째, 우리의 몸을 허약하게 하며, 셋째, 우리에게서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가며, 넷째, 죽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 이유에 대한 답
항해를 함에 있어 젊은 사람들은 온갖 힘을 쏟아 힘든 작업을 한다. 하지만 키잡이는 더 중요한 일을 한다. 큰일은 체력이나 민첩성이나 신체의 기민성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과 판단력에 따라 이루어진다. 한창때의 젊은이들은 경솔하게 마련이고, 분별력은 늙어가면서 생기는 법이다.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그리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나이가 들어서도 아테나이에 사는 20세 이상의 성인 2만 명의 남자이름을 외웠다. 「소포클레스」는 고령이 되도록 비극작품을 썼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노년이 되어서도 학구열을 멈추지 않았다. 노년은 성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것이다. 젊은이들도 덕을 닦도록 이끌어주는 노인들의 지도를 좋아한다. 노년은 해이하고 게으른 것이 아니라 바쁘고 항상 무엇인가를 행하고 실천에 옮기려 한다.
아테나이의 입법자이자 시인인 「솔론」(기원전 640~560)은 날마다 무엇인가를 배우면서 노인이 되어 간다고 자랑했다. 나(카토)는 노인이 되어서야 그리스어를 배웠고, 「소크라테스」는 현악기(뤼라 lyra)를 배우는 일에 열중하였다.
둘째 이유에 대한 답
노년이 되어 젊은이의 체력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노인에게 적합한 것은 아직도 목소리에 광채를 잃지 않아 조용하고 차분한 연설을 할 수 있는 일이다. 노년이 되어 열성적인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사실 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노년 탓이라기보다 젊었을 때 방탕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젊어서 쾌락을 좆고 절제를 지키지 않으면 늙어서 몸이 허약해지기 마련이다.
「네스트로」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장수들 중에서 가장 고령이지만 탁월한 언변과 조언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각자가 자신의 힘을 적절히 쓰되 최선을 다하면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어깨에 황소를 메고 올림피아의 경주로를 따라 걸었던 「밀론」의 체력과 「퓌타고라스」의 정신력 가운데 어느 것을 더 바라는가?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하다. 노년에도 훈련과 절제를 통해 이전의 체력을 상당히 유지할 수 있다. 노년의 약점을 근면으로 벌충해야 하며, 마치 질병에 대항해 싸우듯 노년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운동과 체력을 강화하는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 더구나 몸만 돌볼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더 돌보아야 한다. 나아가 항상 공부와 연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노년이 언제 슬그머니 다가오는지도 모르게 된다.
셋째 이유에 대한 답
노년에는 감각적 쾌락이 없는가의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쾌락의 탐욕스런 추구는 쾌락을 충족시키도록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거리낌 없이 부추긴다는 것이다. 욕망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자제력이 설 자리가 없고, 쾌락의 영역에서는 그곳이 어디든 미덕이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이 쾌락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이성과 사고를 요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이성과 지혜로도 쾌락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것에 욕망을 품지 않게 해주는 노년에게야말로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것이다. 쾌락은 심사숙고를 방해하고, 이성에 적대적이고, 마음의 눈을 멀게 하고, 미덕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노년에 절제 있는 회식을 즐기면서 친구와의 만남과 대화를 나누는 쾌락은 많은 즐거움을 준다. 아울러 공부에 열중하는 학구열을 통한 정신적인 쾌락보다 더 큰 쾌락은 없을 것이다. 또한 농경의 즐거움보다 더 행복한 생활은 없을 것이다. 잘 가꾸어진 농토보다 더 유용하고 더 보기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년은 그것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즐기라고 초대하고 유혹을 한다.
「크세노폰」은 『가정론』(家庭論)에서 농사일을 찬양하였다. 나이가 들어 구애받지 않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농사짓는 일이다.
명망은 노년의 더없는 영광이다. 권위란 높은 관직을 역임한 뒤 노년이 되어서야 생기는 것으로, 청년기의 모든 감각적 쾌락보다 더 값진 것이다. 권위는 백발이나 주름살로 갑자기 앗아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위란 명예롭게 보낸 지난 세월의 마지막 결실이다.
노인들이 고집이 세고, 화를 잘 내고, 괴팍스럽고 인색하다고 하는 것은 성격상의 결함이지 노년의 결함이 아니다. 이들 모든 결점은 좋은 성품과 교육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것이다. 노년의 엄격함은 옳다고 보지만 매우 절제된 것이어야 하고 가혹함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노년의 탐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노자(路資)를 더 마련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넷째 이유에 대한 답
노인이 죽음은 무시되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영혼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면 죽음은 무시되어 마땅하고, 죽음이 영혼을 영생할 어떤 곳으로 인도한다면 죽음은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후에 불행하지 않거나 또는 행복할 것이라면,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죽음이 전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이미 노인은 오래 살아 젊은이가 바라는 것을 벌써 얻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수명(壽命)에 만족해야 한다. 주어진 수명이 짧다 해도 훌륭하고 명예롭게 살기에는 충분히 긴 세월이다. 노년의 결실이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죽음에 더 가까이 갈수록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드디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들어서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역시 적절한 때에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연은 다른 모든 것에도 그렇지만 삶에도 한계를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노년은 인생이라는 연극의 마지막 장인만큼 거기에서 기진맥진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생존의 수명 그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비록 짧더라도 한 점 후회 없는 삶을 선호한다. 누구라도 그저 건강을 잃은 채 단지 숨을 쉬고 있는 상태를 꺼린다. 물론 이 모든 삶의 과정은 신이 내린 운명의 길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잘 알면서도 정작 자신이 마주할 작별의 시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완벽하게 준비하고 미련을 떨치고 사라지는 사람은 적기 마련이다.
그만큼 말은 쉬워보여도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 한 평생을 마감하는 일이다. 특히, 하루하루의 삶이 후대의 기억 속에서 자랑스럽게 각인될 수 있도록 유념할 일이다. 정상적인 판단력마저 상실한 채 아까운 시간을 정체불명의 가짜뉴스로 채운다면 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노년이 되면서 일관성 있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는 이에 대한 길잡이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2025.1.25.작성/3.11.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