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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상상력으로 표현된 문장의 얼굴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감각으로 바라본 시적 대상은 하나의 세계로 존재한다. 때로는 사람으로 때로는 대 자연의 사물성으로 시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유를 파동 하는 진원이 된다. 곧 계절의 이름을 알리며 6월이 다가온다. 자연은 이 시점을 특별하게 6월이라 구분하지 않는 데 사람은 갖가지 형상을 다르게 기억하려 한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여름 초입이 그렇듯이 이른 풀꽃들은 다 지고 드문드문 찔레꽃과 아카시꽃이 하얗게 무리처럼 피어난다. 기척 없이 탁란을 부려 둥지를 탐한 뻐꾸기도 간간이 목청을 돋울 채비를 하는 여름은 그렇게 찾아온다. 어제보다 짙어진 신록이 서서히 그늘을 넓힐 것이다. 그늘이 될 만한 곳을 찾아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중에는 흘러간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필자도 새롭게 만난 시들과 매번 느끼고 고뇌하는 시간을 시름해야 한다. 이번 호에 만난 시인들(이용헌, 정경수, 황형철, 배선옥, 신혜정)의 시적 상상력과 결부된 형상언을 실재보다 더 깊이 있게 드러내 말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멈칫거려지는 필자의 심정은 온갖 집중 이후 얻은 결과가 작아 부끄러울 때가 많다.
해방 전 이북에서 살았다.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왔다.
전쟁이 터지자 서울에 그대로 남았다.
전쟁이 끝나자 인공치하 부역했다고 감옥에 끌려갔다.
죽을 고비 몇 번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죽지 못해 닥치는 대로 일만 하며 살았다.
가족들 친구들 얼굴도 다 잊었다.
남은 건 깊게 파인 주름과 흉터뿐인 팔다리.
할아버지 인생이 억울하지 않아요?
아무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 나라가 원망스럽지 않아요?
아무 말이 없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보고 싶은 얼굴 없어요?
할아버진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떠났다.
영정으로 쓸 얼굴 사진 한 장 없었다.
경찰이 유품을 살피다가
해진 담요 밑에서 그림 한 점을 발견하였다.
수없이 덧그린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전쟁 통에 헤어진 첫사랑의 얼굴이었다
(<얼굴의 힘>, 이용헌)
홀로 세상에 남겨진 사람이 독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를 특정할 수는 없다. 이용헌 시인의 시 <얼굴의 힘>은 우리가 잊고 사는 과거의 아픈 역사의 실체를 담고 있다. 이 시는 6·25 남침으로 인해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온 할아버지의 시간 속 서사를 내러티브 한 문장으로 진술한다. 해방이 되기 전에는 이북에서 살았고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와 살았다. 그때 전쟁이 터졌고 피난을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서울에 남게 되었다는 데 이것이 죄가 되었다. 인공 치하에 서울에 남아 부역을 했다며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후에도 잘 풀리지 않는 삶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더 감당해야 했다. 이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나라가 책임져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을까? 죽자 살자 닥치는 대로 살아온 할아버지였다. 그런 통에 가족과 친지들 연락도 다 끊겼고 가물거린 기억을 더듬어 찾으려 해도 그마저 이룰 수 없는 기가 막힌 세월을 살아왔다. 할아버지는 힘든 삶을 영위해 가면서도 어떤 희망이란 것도 가질 수 없었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떠났다./ 영정으로 쓸 얼굴 사진 한 장 없었다./ 경찰이 유품을 살피다가/ 해진 담요 밑에서 그림 한 점을 발견하였다./ 수없이 덧그린 누군가의 얼굴”만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유품 중에서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전쟁통에 생 이별을 한 첫사랑의 얼굴이었다. 할아버지는 영정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지만, 꿈에도 못 잊을 사랑한 사람을 사무친 그리움으로 세상에 남겨 둔 것이다. 전쟁은 죽은 자에게 참담함을 살아남은 자에게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단단하게 마른 살과 뼈가 미라처럼 불후의 시간을 견딘다
바람이 비탈의 눈을 쓸고 가는 겨울날 오후
길이 있어도 갈 길은 아득하고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조차 보이지 않는다
꿈꾸는 것이 죄가 되었던 시대
한세상 사무치게 살다 간 자들의 넋은
다 여기로 와서 몸을 바꿨으니
한 천 년은 죽은 듯이 살고
한 천 년은 산 듯이 스러지지 않는 저 주목들의 군락
마음에 이는 불길 어쩌지 못해
오늘도 북풍의 산길 떠도는 사람아
이곳에 당도하거든 차라리 침묵하라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80년대의 나날들에 대하여
금지된 시집처럼 왠지 부당했던 지난날의 실패에 대하여
꽃답게 죽지 못했던 너와 나의 청춘에 대하여
한겨울 천년 전사들이 불침번을 서는 등성이마다
이루지 못한 한때의 꿈은 다시 격렬하게 내연內燃하여
하늘은 끝내 얼지 않는다
온몸에 수의壽衣를 두른 채
산정을 오르는 일생일대의 순례처럼
주목들이 일제히 바람 불어가는 쪽을 가리키며 서 있다
-(<함백산 주목 ㅡ P에게>, 정경수)
강원도에 있는 함백산은 1,573미터의 고산이다. 산 능선에 “단단하게 마른 살과 뼈가 미라처럼 불후의 시간을 견딘다/ 바람이 비탈의 눈을 쓸고 가는 겨울날 오후” 형해만 남은 주목을 본다. 언제까지 버텨 줄 지 모를 처연한 모습조차 견뎌야 할 생이다. 죽어서도 산 것처럼 살아야 하는 주목이 사람이 못다 전한 말을 몸으로 전하고 있다. 그래서 ‘주목은 살아서 천 년 죽어서도 천년 을 산다’고 했다. 그 세월이 이천 년이니 세상 살아서 죽어서 볼 것 못 볼 것을 죄다 본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비탈을 오르거나 건너야 할 가쁜 생이 온통 난간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 난간에 선 주목이나 사람이나 모질게 불어오는 생의 바람은 한순간도 가만두질 않았다. 수없이 난간을 버팀 삼아 발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모진 애를 썼을 주목이었다. 그 함백산 가파른 비탈을 묵묵히 오르며 산 아래에서 치고 올라온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주목을 보며 사람 사는 생도 저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6·25 남침의 승기를 잡은 듯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밀려 태백 능선을 따라 패퇴해을 때도 주목의 형해는 묵묵히 그들을 지켜봤을 것이다. 주목은 죽은 병사의 혼백을 나침반 삼아 북으로 향한 행군의 시간을 기억한다. 자칫 앞선 병사의 발자국을 잃지 않으려 눈 부릅뜨고 불침번을 서듯 따라나선 행로를 기억한다. 산자의 목소리도 사라져 없는 함백산에 죽어 천년을 채우려는 듯 뼈만 앙상히 남은 비탈을 묵묵히 걷는다. 그리고 자신의 몸(주목)에 말을 새겨놓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80년대의 나날들에 대하여/ 금지된 시집처럼 왠지 부당했던 지난날의 실패에 대하여/ 꽃답게 죽지 못했던 너와 나의 청춘에 대하여/ 한겨울 천년 전사들이 불침번을 서는 등성이마다/ 이루지 못한 한때의 꿈은 다시 격렬하게 내연內燃하여” 얼마나 치열해져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80년대의 격랑도 그렇게 흘러갔고 그 산에 형해가 되어 서 있었다.
꽃이 귀한 계절에 피었지만
마냥 웃을 수 없어
장마도 태풍도 견디고 뙤약볕쯤 아랑곳없이
높은 담을 타고 피랑도 건너고 마는
집념을 너는 알까
그때 온몸에 찌릿한 근육통 말이야
한여름 뜨겁게 살다 가면 그만인 듯
창창한 꽃봉오리를
과감히 떨구는 결심은 무섭고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고비를 넘고
깜깜 절벽에 몸을 던지기도 하는
아찔한 생각 붉게 번져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게임도 아닌데
집이 집을 받치며
층층이 올라가는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기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넝쿨
다름 아니겠니
우리는,
-(<능소화 핀 언덕 마을-통영>, 황형철)
시간의 얼굴을 생각해 본다. 낮과 밤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 광활한 시간을 더께처럼 이고서야 한 번의 기회로 피어나는 꽃이다. 그런 “꽃이 귀한 계절에 피었지만/ 마냥 웃을 수 없”다는 화자의 심정은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는 또 다른 이면을 알려한다. 넝쿨성 식물인 ‘능소화’는 줄기에 거칠지 않은 버팀 발을 아기 손처럼 내밀어 꼼지락꼼지락 담을 타고 오른다. 그 작은 힘들이 갖는 집념은 기어이 오르고 말겠다는 신념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몸을 투사한 투지는 성한 곳이라곤 없이 충혈되어 있다. 그래서 온몸이 붉어 꽃마저 아린 듯 붉은 능소화를 피우는가? 그 능소화가 고통을 견딜 수 있던 것은 언제나 무섭도록 내려다보며 기다려 주던 절벽 같은 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올라야만 하는 절박함을 다해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담을 오른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고비를 넘고/ 깜깜 절벽에 몸을 던지기도 하는/ 아찔한 생각 붉게 번져” 생의 소망을 찾아 정진할 것이다. 능소화가 한 시절 꽃으로 필 수 있었던 것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거저 이룬 것이 아니라 온몸을 다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우리가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세상사를 되돌아본다면 그것 또한, 한 세상 잘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알려주는 주는 통증일 수 있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나의 영토는 늘 우기였다. 날마다 비가 내렸고 풀들만 자라나 영토를 넓혔다. 나는 동그란 발뒤꿈치에 반짝이는 발톱을 가졌지만 그대에게 보여준 적 없다. 나의 발은 늘 목 긴 장화 속에 들어있어 때때로 맨발일 때도 진흙에 묻혀 있었다. 그대는 나의 발은 한 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으므로 저녁이면 우물가에서 발을 닦으며 오래도록 네모난 발톱을 혼자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엔 밀입국자처럼 그대의 마음으로 스며들어본 적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때를 기다리며 오래도록 학습했던 지명은 이미 사라져 새로 생겨난 사거리에서 돌아갈 길 너무 까마득해 눈물지었지만 기왕에 그대는 그런 곳이려니 미워하지는 말자고 다짐 했다. 다만, 사랑이니 하는 말은 붙이지 않기로 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배선옥)
1연의 첫 문장에서 도발적인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나의 영토는 늘 우기였다.”라는 말이 시선을 훅 끌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생육에 좋은 기후는 습한 환경은 아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동안’에 명랑해진 날보다 습한 기후처럼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는 의미로 들려왔다. 그래서였을까? 그들 마음에 사랑이 새록새록 자라지 않고 잡풀들만 무성해진 것이다. 그럴수록 둘의 관계는 냉랭해졌고 처음 만났던 설렘과 들뜬 마음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처럼 식어버렸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깊어질 사랑을 위해 발톱을 동그랗고 다듬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았고 더는 당신을 위해 발톱을 다듬을 일이 없어졌다. “나의 발은 늘 목 긴 장화 속에 들어있어 때때로 맨발일 때도 진흙에 묻혀 있었다. 그대는 나의 발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므로 저녁이면 우물가에서 발을 닦으며 오래도록 네모난 발톱을 혼자 들여다보았다.”라는 상처 깊은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에서 ‘동그랗다’와 ‘네모 난’에서 사랑의 파국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우린 누군가를 사랑하며 매일을 살아간다. 현실에서 사랑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녹록지 않은 여러 상황이 겹칠 수 있다. 누군가와 언제부턴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지다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 관계가 된다. 그 관계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절대적인 사랑으로 진전되는 듯하다 가도 서로가 알지 못한 ‘무관심’과 ‘냉랭함’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다 서로를 더는 이해하지 않게 되면서 사랑의 공동체에서 개별적인 삶으로 분리하여 자신을 에워싸 버린다. 이제 당신과 나 사이에 사랑으로 존재했던 지명도 그 안 거리도 더는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2연 “어느 날엔 밀입국자처럼 그대의 마음으로 스며들어본 적 없다고는 할 수 없다.”라며 모든 것을 다 지울 수 없었다며 독백처럼 되뇐다. 마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여운처럼 쓸쓸해져 배회하는 슬픔들이 얼굴을 내밀곤 한다. 이 시를 통해 사랑과 연민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환상을, 손에 잡힐듯한
미래를 보는 자에게는
무연함이 필요하다
붙잡으려는 집요함
눈을 감고도 바라볼 수 있는
다른 차원의 감각
모래벌레여, 물에 목마른 자여
모든 것을 삼키고도
영원한 갈증인 너는
물에 닿는 순간
치명상을 입는구나
물과 모래는 서로를 끌어당긴다
생각하고 예견하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비난하고 데서
멈추지 않은 채
폭주하는 것들!
비행기에 앉아
달리기를 하는 사람처럼
상상은
방향이 없고
멈추지 않으며
푹푹 발이 빠지고
소문은 무성하게
풀대신 자라난다
거대한 모래벌레가
지나간 자리
뒤에 남은 바람이
알갱이로 씹힐 때
우리는 씹다 만 껌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환상을, 손끝에 닿았던
감촉에 대해 이야기하지
어떤 전쟁도
어떤 평화도
시작하지 말 것
물에 빠진 감각처럼 틈이 없을 것
다른 감각들이 피어나지 눈을 감고
이미 지나간 모래를 상상하지
무연함이
오래된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을 바라보네
-(<꽃의 기원>- 아라키스의 잊혀진 문서 중>, 신혜정)
“환상을, 손에 잡힐듯한/ 미래를 보는 자에게는/ 무연함이 필요하다”라고 화자는 말한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를 바라볼 때 아늑한 마음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사물에 이름을 붙인 것의 기원은 언제부터였을까? 그중에서 식물의 성장과 변화에 따라 피어나는 형상을 꽃이라 이름 붙여 부르게 된 기원도 궁금하다. 누군가에 의해 명명된 이름이 꽃으로 호명하게 된 것도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인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아름다운 가치를 지닌 사물을 바라볼 때 ‘꽃보다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그것의 문장적 의미는 사물성으로 형상화된 꽃의 가치가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다는 뜻을 의미한다. 이 시의 상상력은 지구 공간을 초월한다. 꽃의 출현을 지구가 아닌 소설 속의 행성에서 찾는 것인지 모른다. 그 행성에 존재한다는 “듄( Dune)”은 수시로 형체를 이동하며 변화하는 모래 언덕이다. 그 모래 언덕을 하나의 형상으로 붙잡아 두려 할 때 그 존재는 순간 사라지고 없다. 듄이 사라진 순간 생명체의 이름들도 잊히거나 소멸하여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모래 벌레’만이 존재한다.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서 생명의 지속성은 무엇으로도 담보할 수 없다. “모래벌레여, 물에 목마른 자여/ 모든 것을 삼키고도/ 영원한 갈증인 너는/ 물에 닿는 순간/ 치명상을 입는구나”라며 그렇기에 물에 대한 갈망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그토록 갈망하던 물에 닿는 순간 치명상을 입는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지구로 돌아와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그것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같다. 그 욕망을 이루고 나면 또 다른 욕망이 마음속에 똬리를 틀기 때문이다. 끝없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인의 탐욕이 부른 갈등의 격화와 전쟁의 참담함도 그에 버금가는 것이다. 그 긴 피로와 고통 속에서 갈망하는 평화는 어디에선가 고개를 내밀고 피어나는 꽃과 같다. “물에 빠진 감각처럼 틈이 없을 것// 다른 감각들이 피어나지 눈을 감고/ 이미 지나간 모래를 상상하지// 무연함이/오래된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을 바라보네”라며 마지막 연에 다시 올라온 ‘무연함’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린 욕망에서 아득해질 때에서야 다른 존재적 의미에 다가갈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