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 : 次成先生瞻謁夷齊廟韻 (차성선생첨알이제묘운)
- 성삼문 선생의 백이숙제묘 방문 후 지은 詩의 운자를 빌려
叩 馬 揚 鷹 有 是 非 (고마양응유시비) 만류해도 정벌에 나선 것은 시비있으나
洙 門 片 字 是 增 輝 (수문편자시증휘) 공자님의 가르침은 더욱 더 빛이 나도다
古 來 貴 達 無 多 廟 (고래귀달무다묘) 옛부터 귀하게 된 이들 묘당에 많지 않고
千 肉 還 須 遜 一 薇 (천육환수손일미) 몸이 천 갈레로 상해도 고사리 사양하리
(지은 이)
이항로 (李恒老, 1792~1868), 字는 이술(而述), 號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세 살 어린 나이에 천자문을 공부했고, 여섯 살 때에 십구사략(十九史略)을 읽고,
이에 대한 글을 지었다고 한다.
공은 일찌기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그 후에 조정에서 학덕이 높은 선비에게
내리는 벼슬을 여러 차례 받았으나 대부분 사양하고, 학문과 후학 양성에 진력하였다.
한 때는 대원군으로 부터 신임을 받고 조정에 나아갔으나, 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멀어졌다.
그러나,
공은 당대에 후학들로 부터 존경받는 스승으로서 문하에서 최익현과 유중교 같은 제자들이 배출
되었다. 이러한 공의 학문은 정통성리학에서의 이(理)를 중시하며 학문의 세계를 정립해 나갔다.
아울러, 조선 왕조 말기의 위정척사론 (衛正斥邪論)의 사상적인 토대를 이루었고, 나아가서 민족
운동의 실천적인 지도 이념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위에 소개한 공의 시는 성삼문 선생의 백이 숙제에 대한 고사를 소재로 지은 한시의 운자를 빌려
자신의 소회를 표현하였다. 이 시에는 또한 성삼문 선생을 추모하는 작자의 마음도 드러난다.
화서(華西) 이항로 선생께서 차운한 성삼문 선생의 원시(原詩)는 다음과 같다.
當 年 叩 馬 敢 言 非 (당년구마감언비) 그 해 말머리 두드리며 감히 아니라 말해
大 義 堂 堂 白 日 輝 (대의당당백일휘) 당당한 의로움 저 밝은 태양처럼 빛나네
草 木 亦 霑 周 雨 露 (초목역점주우로) 풀과 나무 주나라 비와 이슬에 자랐거늘
愧 君 猶 食 首 陽 薇 (괴군유식수양미) 수양산 고사리 먹은 것 주군께 부끄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