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내리는 비는 언제나 노랗다. 비 맞은 가로수 은행잎이 찻길과 인도에서 차가운 바람에 쓸려 다닌다. 환자가 위급하니 빨리 오라는 병원의 연락을 듣고 달려올 때 눈에 띈 풍경이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떨어진 은행잎이 처연하도록 노랬다는 사실이다. 그 노란 빛만 남기고 겨울을 그렇게 지나갔다.
그는 늦가을 은행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 조리개를 돌려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그도 한 그루 은행나무였다. 찰깍거릴 때마다 피사체는 렌즈 속에 갇혔다. 사진 속의 나무는 때가 되면 그에 의하여 죽지 않는 그림이 되었다. 그림이 완성되면 그는 언제나 “이 작품은 어때?”하고 나에게 물어오곤 했다. 그림을 볼 줄 아는 상대에게 베푸는 배려이고 예의였다. 그가 화가였고 나는 그의 아내였다.
그날도 내 발길은 화실로 향했다. 평소 출입을 꺼려하던 나였지만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노란 나비 떼가 달려들었다. 캔버스에서 연이어 날아오른 나비 떼가 내 치맛자락에 무리 지어 매달렸다. 그 느낌만으로도 직장에서 쌓인 하루의 피로가 일순간에 씻겨졌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팔짱을 끼고 이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이전과 달리 흡족한 미소를 띠며 캔버스와 나를 번갈아 봤다. 그의 키가 유난히 더 높아 보였다. 지난해 해인사에서 주워 책갈피에 끼워둔 은행잎을 훔쳐보았을까? 감정을 내색하지 않는 그였는데, 내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소소한 취미까지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멀대 같은 그를 바라보았을 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를 함께 마시는 동안 나를 위해 그린 그림 앞에서 내내 행복에 젖어 들었다. 그림 속 나비 세례를 받은 날은 그가 병원으로 걸어가기 1년 전이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가정 살림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대학 학비도 덤터기로 씌워졌다. 우렁각시마냥 홀로 35년 동안 가정을 책임졌던 내가 부러웠던 사람은 무명작가 시절 담배 한 갑의 돈을 받고 그림을 그려주고 쌀을 바꾸어온 어느 유명 화백님이었다. 진한 갈색 톤을 즐겨 사용하는 남편의 캔버스에서는 매년 사계절이 바뀌었지만 내겐 춘래불사춘(春來不仕春)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에게 화가의 명성이 찾아왔지만 내 직장 생활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이 어느 날 “만약 아내와 글쓰기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주저 없이 글을 선택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농담으로 여기며 웃었지만 나는 무릎을 쳤다. 30년 전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그의 등 뒤에서, 나와 그림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그림이라 대답했다. 동료 화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를 조강지처로 치켜 주었지만, 뒷바라지만 하는 세컨드가 나의 실상이었다. 한번은 쌀독을 박박 긁고 있는 나를 위로한답시고 근사한 초상화 한 점을 그려주기는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캔버스를 안고 있는 날이 더 많았지만, 예술가를 내조한다는 보람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할까?
4년 전 어느 날 그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했다. 그간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라고 덧붙였다. 눈가가 붉어진 채 나는 켜켜이 먼지가 쌓인 노트를 다락방에서 끄집어냈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랬던 그 남자가 자신이 말한 책임을 다하기도 전에 은행잎이 떨어지는 늦가을에 홀연히 떠나버렸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감기몸살이 그와 나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 가버린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일 년 가까이 화실에 들리지 않았다. 은행잎이 가지에 조금 남아있는 11월 중순 무렵, 화가인 아들은 미술대전 공모 작품에 막바지 붓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예술가라면 당연히 지녀야 할 아들만의 작품 세계를 인정하면서 재능이 물려 진 것을, 대견해 했다. 완성되어가는 아들의 작품을 흐뭇하게 바라볼 때면, 그와 나는 유쾌하게 웃곤 했다. 지금의 아들은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는 듯 보였지만, 밤낮으로 함께했던 예술의 동반자가 곁에 없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지, 가끔 붓질을 멈추곤 했다.
한번은 여유가 생기면 스케치 여행을 함께 떠나자고 했다. 그의 등을 지켜보는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은 채 던져준 말이다. 이제는 그 말도 그리움 속에서만 시도 때도 없이 그렁거린다.
남편의 작업실 문을 열었다.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새시 문소리가 끼이익 정적을 가른다. 케니지의 절절한 색소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화실 가득했던 원두커피의 향기도 풍기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던 그의 움직임도 없다. 오직 세 개의 이젤에 기대어 있다. 오늘 나는 그의 등 뒤가 아니라 그림과 마주하고 앉았다.
그림이 여전하다. 은행잎이 나비 떼마냥 붙어 있다. 날아올라도, 날아올라도 나비 떼가 줄어들지 않는다. 무수한 은행잎 나비가 나뭇가지를 가리고 있다. 그림 앞에 선 그가 마치 영원히 당신과 함께할 거라며 속삭이는 듯하다.
이제 봄이 멀어지고 여름이 지나면 그가 떠난 늦가을이 온다. 그때면 은행나무 잎이 무수히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내 은행나무에서는 변함없이 노란 추억이 날아오를 것이다. 오늘처럼 그때도 나의 남자가 된 그와 내가 마주 서겠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그려준 그림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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