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뿌리를 찾아서>
아름다운 풍광과 포구를 지닌 재송동
재송직화와 재송포, 수영강과 영화의전당
재송마을은 장산 아래 울창하고 넓은 송림을 등지고 앞으로는 수영강이 흘러 아름다운 산수에 쌓인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으로 주민들의 인심이 유달리 순박하였던 곳이다.
이 마을은 수영강과 송림 사이의 농지를 이용한 농사를 짓고 넓은 송림을 이용한 반농반림(半農半林)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강 건너편에 좌수영이 있어 국가 소유의 토지인 둔답이 있었고 사창(社倉, 조선시대 각 고을에 곡식을 쌓아두던 곳집)이 있었다.
재송포는 재송마을 앞 수영강변에 자리 잡고 있었던 포구이다. 지금의 충렬로와 동해남부선 철로 아래까지 옛날에는 배가 드나들었다고 하며, 이 재송포 주변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수영강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토사로 메워지면서 포구의 흔적마저 사라져버렸다.
재송마을은 부녀자들의 베 짜는 길쌈이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밤에 베틀 윗머리에 등잔불을 이 집 저 집에서 밝혔으니, 수영강 건너편 좌수영성에서 바라볼 때면 소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여름밤의 반딧불처럼 보여 장관이었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수영 8경 중 1경인 재송직화(栽松織火)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스즈키(鈴木)가 복숭아, 포도, 배 등을 재배한 과수원이었다. 그러다 1934년 하자마는 과수원을 구입하여 골프장을 조성하였다. 그 당시 회원이 130여 명으로 해운대 온천장과 10여 분 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다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고 1940년 태평양 전쟁을 위한 후방 병참 비행장으로 수영비행장을 건설하게 된다.
지금은 APEC나루공원의 아름다운 풍광과 영화의전당의 화려한 야경과 대조를 이루며 각각 해운대 15경과 야경 10선의 하나로 손색이 없다.
/ 이광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