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 조각의 개척자로 알려진 작가 최만린이 2020년 11월17일 별세했다. 우연찮게도 서울 구석자리 정릉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2020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개관전'이 끝나기 전에 방문해야지 했었는데, 의미가 배가되었다. 연계 프로젝트로 <오픈 아카이브: 꾸며 쓰지 않는 자서전>이 함께 진행된다.
미술관은 그가 거주했던 집이고 나는 그 집을 찾아간다. 지하철 우이신설역에 내려 10여분 걸어가야 한다. 정릉천의 바위들을 보니 개발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였다면 청량한 계곡의 모습을 지녔을 듯하다.
장릉굴다리도 지나간다. 서울에 수십년을 살아도 안 가본 동네가 얼마나 많은지 실감했다. 나에게는 이곳이 그 어느 유명 관광지보다 더 생소했다. 그냥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다.
빌라촌 사이에 최만린미술관이 있다. 아래 사진 오른쪽의 벽돌 단독주택이다. 1988년부터 1918년까지 거주한 작가의 집을 성북구가 매입하여 EMA 건축 사무소를 통해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다. 2020년 국토부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조각들이 정원에 널려 있다.
대문 반대쪽으로는 땅에서 솟아나는 송곳 모양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천장이라면 떨어져 내리는 고드름이요, 땅이면 뚫고 나오는 생명이다. 그 뒤로 상록고시원 건물이 보인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매일 최만린 작가의 작품을 내려다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하기 전에 정원을 먼저 둘러보기로 한다. 살면서 기존에 했던 습관의 순서를 바꿔보는 것도 좋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이브 58-1>(1958)와 마주친다. 그의 20대 초기작이다. 전쟁의 페허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원천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자의 자궁 앞의 가시덤불에 고난이 절절하다. 작가는 미술관으로 개관하는 그의 옛집을 들어서자마자 '이브'가 보이기를 스스로 원했다고 한다.
그 오른쪽으로 '수장고' 방이 나온다. 최만린미술관은 성북구가 매입했지만, 그는 이곳에 126점을 기증했다.
문 옆 왼쪽 벽 작품은 <D-58-1> 이브 작품을 위한 밑그림이다. 아치문 오른쪽은 <D-68-3>이다. 조각은 그냥 만드나 했던 생각이 난다. 3차원 조각도 2차원 평면 종이에 미리 그려본다.
거실에서의 층계의 독특함에 눈길이 갔다. 층계 옆 4개의 작품은 1968~1969년에 테라코타로 제작한 기(Gh'i, Vitaliy), 음(Yin), 태(Placenta), 상(Figure)이다. 초기에는 '이브'와 같이 조형적인 작품으로 시작하여 점점 형태가 없어지더니, 결국 추상으로 넘어간다.
미술관 리모델링 당시 기존의 층계와 그 나무로 된 천장은 최대한 살렸다고 한다. 천장은 기와집 지붕처럼 가운데가 올라간 굴곡을 이룬다.
'수장고' 방에 들어섰다. 그의 영상이 흐른다. "스스로가 자기를 찾아나갈 수 밖에 없었죠." 라는 멘트의 장면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방법론 측면에서 일본식 교육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음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우리나라 원로 지식인들 대부분 일본어 책, 일본어 번역서, 일본 교육방식을 경험한 자들이다.
그의 영상 옆으로 보이는 드로잉은 <D-90-1>(1990)이다. 1987년 이후 시작된 그의 '0의 시대'이다. '버림을 통한 자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아래 작품은 규범에 맞고 바를 '아(雅)'이다. 철용접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 약간씩 옆으로 이탈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곧다.
<아(雅) 77-3>(1977) 철용접
<D-73-1>(1973)
<맥(脈) 85-4>(1985)
<천지(天地) 73-7>(1973) 청동
'태'와 '맥' 시리즈는 최만린 작가의 생명의 근원 형태 탐구 작업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천(天)>(1965) 청동
<태(胎) 79-15>(1979)>
아이 밸 '태' 자이다. 위와 아래 사진은 같은 조각 다른 각도의 사진이다. 평면 회화와 달리 조각은 360도를 회전하며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위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아래 각도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다.
<태(胎) 79-15>(1979)>
과거 작가의 거실이었던 공간을 둘러본다. 그의 평생에 걸쳐 작업한 '태'와 '맥', 그리고 'O'시리즈의 변주곡(variation)이 울려퍼지고 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찰영한 아래 사진에서는 집 내부와 외부에 걸쳐 '태'에 대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울퉁불퉁한 '태'는 언뜻 그리 유쾌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설명에 따르면, '태' 시리즈는 처음과 끄이 따로 있지 않은 무한한 운동감을 나타낸다는데, 무한하려면 'O' 처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켠에는 최만린 작가의 작업 공간도 재현되어 있다.
평평한 대지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모습을 열심히 빚고 있는 최만린 작가의 사진이다.
아래 작품의 타이틀이 '원'인데 왜 원일까 했다. 동그란 원의 파괴인지, 아니면 작품 속에 원이 숨어 있는 것인지, 이것도 관객의 몫인가 한다.
<원 Circle>(1969) 청동
<일월 70-1 Sun & Moon>(1970) 석고
1층 관람을 마치고 2층 '오픈 아카이브' 공간으로 올라간다. 연계 프로젝트로 <오픈 아카이브: 꾸며 쓰지 않는 자서전>이 함께 진행된다. 아래 사진 왼쪽 벽에 걸려 있는 작품은 2003년작 <D-03-4>이다.
'꾸며 쓰지 않은 자서전'이라는 글씨가 창문에 새겨져 있다. 그가 일생에 걸쳐 자연스레 모은 예술 관련 자료들이다. 연대순을 꼼꼼하게 작성한 스크랩북이 130권이다. 역사의 승자는 기록이다^^
현재는 남아 있지 않은 그의 초기작의 사진들로 출품하여 상을 받은 작품들이다. 추상작가들의 초기 작품들은 대부분 형태가 살아 있다.
왼쪽 <어머니와 아들>(1957), 중간 <종장(終章)>(1959), 오른쪽 <여인좌상>(1961)
작가는 11월 17일 작고했다. 미술관측 설명으로는 평소 지병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고 했다. 아래는 시인 김남조가 쓴 조문이다. 최만린 작가의 처제가 탤런트 최불암과 부부인 탤런트 김민자이다.
미술관 주변에 사는 분들은 자기 집 창문에서 작가의 작품을 상시 보면서 살겠구나 생각했다. 반면에 이렇게도 생각해 본다. 익숙하면 그저 그렇기도 하다. 뭐가 특별하겠는가. 아래 사진, 미술관 정면의 화단에서 일하는 아저씨는 자신의 오늘 일에 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