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근…행동 튀어도 먹튀 없다 |
‘6년 40억6,000만원.’ 지난 11월25일 정수근(26)은 프로야구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역대 FA 최고액 기록을 세우며 3년연속 꼴찌에 빠진 롯데에 ‘구세주’를 자임하고 나섰다. ‘그라운드의 개그맨’,‘야구계 최고의 익살꾼’으로 불리는 정수근이지만 그 뒤에는 눈물겹도록 힘들었던 지난 나날들이 있다.
▲월급이 1만5,000원?
“이걸로 어떻게 살았는지….” 정수근은 90년 후반기 몇 년간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날은 월급이라고 받아든 봉투에 한 장짜리 수표 같은 것이 들어있더란다. 돈도 아닌 것이 흰 종이(가계수표)에 ‘1만5,000원정’이라고 쓰어진 것이 그달 월급의 전부였다. “차라리 지폐로 돼 있으면 몇 장이라도 되건만. 한 장짜리로 받아드니 마음이 더 허전하더라고요.” 육사 출신 아버지가 전역 후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가 당시 돈벌이를 하고 있는 유일한 아들에게 보증을 서게 한 것이 몇 년을 두고두고 피눈물나게 했다. 연봉 1억원을 돌파한 2000년에도 집에 가져가는 월급이 고작 36만원. 아내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담벼락이 문제더냐
정수근은 밝은 성격과 달리 자신에게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혹독하다. 하루는 그날 자신의 플레이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미칠 지경이었던 적이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음악을 크게 들어봐도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해보려해도 별 무소용이었다. 터질듯이 답답한 마음에 한참을 달리다 동네 어귀에 접어들었을 때 눈앞에 보이는 담벼락을 향해 돌진했다. “쿵!” 차 앞부분이 다 부서졌지만 그때서야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속이 좀 풀리는 듯했다. 한 번은 세워둔 차를 그대로 받아버린 적도 있다. 이런 ‘범죄’를 저지를 만큼 자신의 플레이에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성격.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한 올해는 좀 나았어요. 지난해 2할3푼을 오갈 때는 정말 견딜 수 없더라고요. 분이 풀릴 때까지 생각하고 뛰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게 프로 아닌가요?”
▲운이 좋은 놈이죠
정수근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운이 지독히 좋은 놈’이라고 되뇌며 뛰고 또 뛴다. 95년 덕수상고를 졸업하면서 고려대에 입학할 뻔했지만 운대가 맞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학에 갔더라면 이런 대박은 꿈도 못 꿨을 거예요. 저는 행운아죠.”
또 99년 지금의 3살 연상의 아내 서정은씨를 만나 결혼 승낙을 받으면서 환호성을 질렀지만 막상 주머니에는 돈 한푼 없었다. 있는 돈은커녕 빚만 한가득 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소속팀이던 두산 사무실로 무작정 찾아갔다. “저 결혼해야 되는데 2,000만원만 빌려주세요.” 이렇게 간신히 결혼에 골인했을 때를 회상하며 “어떡해서든 제가 마음먹은 대로 되더라고요”라며 밝게 웃었다. 2년 전 처음 내 집 마련을 할 때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장만했는데 지금은 두 배 넘게 뛰어 싱글벙글. “어휴,저는 하는 것마다 어쩌면 이렇게 운이 좋은지….”
▲아… 감독님!
“김인식 감독님은 제게 아버지예요. 아니 아버지 이상의 분이시죠.” 정수근은 김인식 전 두산 감독 이야기를 꺼내자 말을 잇지 못했다. 정수근은 경기수의 ⅔ 이상을 뛰어야 FA자격이 주어지는 규정 때문에 자격획득의 문턱에서 살얼음판을 걸었다. 그러나 김감독의 한 타석 한 타석 배려로 89경기를 채워 대박을 터뜨리기에 이르렀다. 정수근은 “매타석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했어요”라며 “김감독님에 대한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부산은 제2의 고향
정수근은 “벌써부터 부산이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말할 만큼 부산의 매력에 쏙 빠졌다. 계약을 한 뒤 두세 차례 부산에서 열린 행사에 들렀을 때도 반겨주는 시민들 덕분에 입이 함박만해졌다. 정수근은 “부산 시민들 한분 한분을 보면서 몇 번이고 다짐했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저를 반겨주신 만큼 반드시 좋은 플레이로 되갚겠다고요. 구도 부산에 다시 한번 야구바람을 불어제치겠다는 숙제는 꼭 풀겠습니다”고 말했다.
정수근은 올시즌 왼엄지(6월)와 오른허벅지(8월) 부상으로 주춤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혹자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쏙 들어가도록 멋진 플레이를 선보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정수근은 “제가 터뜨린 대박을 부산의 4강 대박으로 반드시 되갚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정수근 프로필
▲생년월일:1977년 1월20일 ▲키·몸무게:178㎝·67㎏ ▲출신교:성동초-건대부중-덕수정보고 ▲가족관계:아내 서정은씨(29) 아들 호준(4) ▲입단:95년 두산(9년차) ▲2003년 연봉:1억8,000만원 ▲2003년 성적:89경기 타율 0.321(262타수 84안타) 17타점 15도루 ▲통산성적:1,060경기 타율 0.280 373도루 ▲수상경력:4년연속(98∼2001년) 도루왕,골든글러브 2회 수상(외야수,99·2001년) ▲FA계약 내역(만원):계약금 12억6,000+총연봉 19억원(2년마다 차등지급)+플러스옵션 6억원(마이너스옵션 9억원)+4년 뒤 자유계약자격 포기 보상금 3억원=최대 40억6,000 |
정수근 일문일답 |
―쏠 사람한테는 다 쐈나.
▲쏘는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문제다. 식사 한끼 하는 건 문제도 아니지만 술 한잔이 빠지질 않다보니 몸이 부대낀다. 그만 쏴야겠다. 더 이상 쏘라고 좀 하지 마라.
―대박의 조짐이 있었나.
▲계약을 앞둔 어느 날 아내가 점을 보고 왔는지 ‘서울에서 가장 먼 남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얘길 했다. 특별한 꿈 같은 건 없었다.
―로또는 사봤나.
▲딱 두번 사봤다. 가족끼리 재미로 사는 거지 뭐 그게 정말 되리라는 기대는 안한다. 2개 맞은 게 최고의 성적이다.
―재테크는.
▲3∼4층짜리 상가 하나 사고 싶다. 여기저기 흘러나갈 돈이 너무 많아 이러다간 깡통 찰지 모르겠다. 얼른 사야겠다.
―쉴새없이 까부는 게 힘들지 않나.
▲솔직히 튀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는가. 이것도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내 기분을 올려주고 주변 사람들이 좀더 내게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됐다. 앞으로도 쉴새없이 까불 것이다.
―내년 목표는.
▲수치로 목표를 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정말 욕먹지 않을 만큼 잘할 자신 있다. 팬을 위해서,또 진정한 ‘거인’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할 것이다.
―FA 이후 인생은.
▲2009년 말 한번 더 대박을 터뜨린 뒤 35세쯤에 현역시절을 마치고 싶다. 이후엔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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