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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17강
내가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말씀/창25:1-26:33요절/창26:2,3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오늘 말씀은 제2대 믿음의 조상, 이삭의 인생을 결산하는 내용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므로 군더더기가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삭은 조용하지만 우물처럼 깊은 내면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과 아픔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 시간 인생 가운데 주어진 시련들을 이삭이 어떻게 극복하는지 그의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삭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기도하는 이삭 (25장)
아브라함은 이삭을 결혼시킨 후로도 계속해서 많은 자손들을 낳고 향년 175세가 되어 막벨라굴에 장사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약속대로 이삭에게도 복을 주셨고 이스마엘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었는데 리브가는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약속의 자녀인 이삭에게는 어떤 시련이나 문제가 전혀 없어야 할 것 같은데 혹독한 훈련이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식문제로 25년이나 훈련을 받았는데 이삭도 이 문제로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복 형 이스마엘도 아들을 열둘이나 낳고 든든하게 잘 살고 있는데 정작 약속의 자녀인 자신은 딸자식 하나 없는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면 이삭은 자식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21절을 읽겠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여기서 ‘간구하다’는 말은 미완료시제로 이삭이 과거부터 오래도록 기도해왔음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으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년이 지나도 기도의 응답이 없으면 기도를 중단하고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적인 생각, 나의 생각을 주장하고 고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삭에게는 20년이 다되어가도록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기도해서 뭔가가 되어가는 것 같을 때는 기도의 열정이 붙고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응답이 없고 이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기도를 20년 동안이나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이런 기도는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삭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첩을 얻거나 리브가를 구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아내를 위해 20년 동안이나 기도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이삭의 오랜 시간 인내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침내 리브가를 임신하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쌍둥이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20년이란 긴 세월, 우리의 청춘이 다 지나갈 시간인데 우리도 이삭과 같이 기도제목이 있으면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인내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약한 것 같이 보이나 가장 강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절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해 조급함이 생길 뿐입니다.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 언젠가는 반드시 비가 되어 쏟아지듯 우리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축복의 소나기가 쏟아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늦게 응답해 주시는 것일까요?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속히 응답하시기도 하시고 엄청 늦게 응답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처럼 오랜 기도 후에 응답해 주시는 것은 우리를 기도의 사람으로 빚으시고 인내와 믿음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야고보서 1장 3,4절은 말씀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실망하지 않고 끝까지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응답받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이삭의 기도로 인해 마침내 리브가가 임신했는데 쌍둥이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뱃속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리브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이때 리브가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나아가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이 뱃속에서부터 이렇게 싸우니 어찌된 일입니까?”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대답해 주십니다. 그것은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므로 리브가는 자식들에게 둔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후에 큰 아들 에서에게 갈 뻔한 축복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작은 아들 야곱에게 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의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기도하는 부부였습니다. 때로는 손을 맞잡고 가정에서도 합심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부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또 이런 부모가 자녀들에게도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가정, 기도하는 모임, 기도하는 민족을 귀하게 쓰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고자 노력하는 이들이기에 당연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고 크게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의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27-34절은 배고픔을 못 이겨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동생에게 팔아버리는 큰 아들 에서의 모습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2장 16절은 이런 에서를 망령된 자라고 말씀합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아버지를 거쳐 계승되어 온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명분을 너무나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현상은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선택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자의 명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명분, 주님의 제자로서의 명분, 캠퍼스 목자로서의 명분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배고픔 때문에, 돈 몇 푼 때문에, 순간의 세상쾌락에, 세상 출세를 위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이 계승되어 온 영적인 명분들을 우리는 쉽게 팔거나 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피부로 절실히 느끼는 문제가 경제, 즉 생계문제가 가장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에서처럼 영적인 명분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은 영적인 명분에 생명을 거는 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명분을 귀하게 여기고 목자의 직분에 생명을 걸고 어찌하든지 복음역사를 섬기고 계승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큰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이삭의 삶은 어떠합니까?
Ⅱ. 약속의 땅에 거주하는 이삭 (26장)
이삭에게도 흉년, 배고픔이라는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때에 큰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지금 이삭이 살고 있는 유대 남부 지역은 연중 강우량이 400mm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가끔은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어 흉년이 들게 됩니다. 이때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아 대개 애굽으로 피신을 갑니다. 애굽은 나일강 때문에 물이 항상 풍부해 먹을 것이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이삭도 흉년으로 말미암아 굶주리게 되어 당연히 애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무슨 방향을 주십니까? 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왜 이런 방향을 주시는 것입니까? 지금 이삭이 거주하고 있는 땅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언약의 땅입니다. 이곳은 앞으로 자손대대로 믿음의 역사를 계승할 사명의 땅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땅, 사명지를 떠나지 말고 어찌하든 믿음으로 사수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뿌리가 어디에 내려져 있는가는 시련의 때에 잘 드러납니다. 역경의 때에도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아니면 자기 유익과 현실문제를 따라 애굽으로 내려가 버리는가? 하나님은 이삭이 시련의 때에 현실문제에 무릎 꿇지 않고 분명한 역사성을 가지고 믿음 중심을 지키길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 상황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자 되길 원하십니다. 상황을 따라 사는 자는 어려움과 고난이 오면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약속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어떤 경우에도 현실문제에 굴복하지 않고 약속의 땅, 사명의 땅에서 죽고 사는 믿음을 갖길 원하셨습니다. 이삭이 자기이성의 세계를 초월해 믿음의 세계로 깊이 들어오길 원하셨고 이를 통해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깊이 만나길 원하셨습니다. 언약도, 사명도 좋지만 우선은 먹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식으로 약속의 땅을 버렸다가 사정이 괜찮아지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식으로는 믿음을 배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약속이 상대적이 되어서는 결코 복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결코 자기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그가 지금 머물고 있는 땅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확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어떤 경우에도 약속의 땅에 거주하길 원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현실이 어렵다고 믿음을 포기하고 쉬운 길, 편한 길을 택할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를 피하고, 문제를 회피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어렵고 힘든 그 문제를 통해서 나에게 놀라운 계획과 섭리를 가지고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만 우리는 우리 인생길을 선하고 섬세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믿음의 선배들은 수많은 시련과 핍박 속에서도 생명을 걸고 신앙의 명분을 고수했습니다.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란에 고 손양원 목사님의 딸 손동희 권사님의 글이 연재되었습니다.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에 갑니다. 두 오빠는 군대 가게 되었는데 군대 가면 신사참배를 해야 하고 천황을 위해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산 속에 들어가 삽니다. 나무껍질을 벗겨먹고 풀뿌리를 캐 먹으며 연명합니다. 다른 가족들은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당시 12살이던 손동희 권사님은 고아원으로 보내집니다. 권사님은 그렇게 울먹이며 어머니에게 매달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엄마아빠가 계시는데 왜 고아원에 가야해요. 우리 아버지는 예수를 믿어도 왜 그렇게 유별나게 믿어서 이 고생을 합니까?” 손양원 목사님을 비롯해서 정말 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생명을 걸고 믿음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믿음중심을 지켰기 때문에 우리 한국교회가 큰 축복을 받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조금 힘들다고 사명을 놔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며 산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좀 힘들고 어려워도 사명을 붙들고 살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년의 때가 옵니다. 무엇보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이 흉년의 때에도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약속의 땅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복을 주십니다. 복을 주시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그 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하늘의 별처럼 자손들이 번성하게 하시고 그 모든 땅을 자손들에게 주시고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사명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들은 이삭은 어떻게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이삭은 애굽으로 가고자 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 순종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다해도 막상 흉년이 든 약속의 땅에 머물고자 했을 때 이삭은 앞날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현실은 가깝고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먼 것 같았습니다. 눈앞에 먹을 것이 없어 집안의 종들도 하나둘씩 야간도주하는 마당에 정말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모든 생각을 물리치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 하나님, 그리고 자기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깊이 신뢰했습니다.
이런 이삭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십니까? 먼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 보호해 주셨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순종해 그랄에 거주했을 때 당장에 그는 목숨의 두려움을 느껴야했습니다. 그 땅 사람들의 강포가 두려워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쁜 리브가가 자기 아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자기를 죽이고 리브가를 빼앗아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비멜렉 왕이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는 애정행각을 창으로 내다봄으로 모든 것이 들통 나고 말았습니다. 이때 아비멜렉은 리브가가 진짜 누이인줄 알고 백성 중 하나가 리브가와 동침하는 죄를 범할 뻔했다며 이삭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모든 백성들에게 이삭이나 리브가를 범하는 자는 죽이겠다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특별보호령을 내리게 하심으로 이삭과 리브가를 그 땅의 강포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는 한없이 연약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같은 연약한 실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찌하든 믿음으로 살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한 점을 감싸주시며 눈동자같이 지켜 모든 환란과 위험에서 보호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삭에게 물질적으로도 풍성하게 축복하셨습니다. 12-14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므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시샘할 정도였습니다. 참으로 이삭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때가 아무리 흉년이라 해도 하나님이 일단 작정하시고 축복하시기 시작하면 흉년 중에서도 풍년이 되고 불황 중에서도 호황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여 약속의 땅에 거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왕대박을 터뜨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하고자 작정하시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축복하고자 작정하시면 하늘곳간을 활짝 열어 넘치도록 복을 부어주십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자녀와 가축들과 토지소산이 다 복을 받는다” 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쪽박 차는 인생인가? 대박 터뜨리는 인생인가는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마음자세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분명 하나님 나라입니다.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거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붙들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계승되어온 사명, 성서한국과 세계선교, 캠퍼스 미션을 감당하며 우리가 실제 거하고 있는 진주 땅이 약속의 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주에는 변변한 직장들이 별로 없어 부산과 서울 등 대도시로 떠나고자 합니다. 자신의 삶을 꾸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때로는 가족의 생활문제, 자녀 교육 문제 등에 부딪쳐 고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계속 사명의 땅에 마음을 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부르심을 굳게 붙들고 캠퍼스 미션을 어찌하든 감당하고자 하는 분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또 사명의 땅에서 인내하면, 일시적으로는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사 진정 복된 인생을 살게 하실 줄 믿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100배나 수확하며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때 팠던 우물을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그리고 텃세를 부립니다.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16).” 가나안 지역은 물이 귀한 지역이고 우물은 생명선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메워 버리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때 이삭은 어떻게 합니까? 이치에 안 맞는 행동을 한 그들과 한바탕 맞짱을 뜹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우물을 양보해 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랬더니 그랄 목자들이 와서 트집을 잡았습니다.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20).” 이삭은 이번에도 싸우지 않고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랄 목자들은 시샘이 나서 또 와서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정말 그랄 목자들은 성격이 개떡 같습니다. 중동지역에서 우물 한 번 파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우물을 파 놓으면 와서 빼앗고, 파 놓으면 와서 빼앗고 하니 얼마나 짜증나겠습니까? 그러나 이삭은 그때마다 다른 곳으로 옮겨 새로운 우물을 팝니다. 어찌 보면 이삭은 간도 쓸게도 없는 무골호인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까? 매번 손해만 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삭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잘 되는 것입니다. 새로 파는 곳마다 신선한 물이 철철 넘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이제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브엘세바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랄 왕 아비멜렉과 조약을 맺었던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 이삭이 이곳에 올라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주셨습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은 이방 땅에 들어와서 그들의 시기로 말미암아 우물이 메워지고 강탈당할 때 심히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다 대적하는 사람뿐이니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대적들로부터 이삭과 그의 후손들을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복을 주어 번성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나는 연약하고 우리주변 세상에 대적들은 많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들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까?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끊임없이 새 우물을 파야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과 만나 전략을 짜고 인맥과 돈줄의 우물을 파며 살아갑니다. 각종 새로운 정보와 지식의 우물에 목숨을 겁니다. 새로운 기술의 우물 하나 파면 대박이 터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우물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쉽게 메워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메워지지 않고 지경이 넓어 번성하게 하시는 말씀과 기도의 우물을 팔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삭이 양보하고 새롭게 우물을 팠던 것은 그가 바보여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축복하심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샘을 팔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깊은 우물을 팔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과 승리의 샘물이 펑펑 터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자신은 종이 한 장처럼 연약하고 쉽게 구겨지고 찢어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종이 한 장을 벽에 붙여 놓으면 어떻습니까? 절대로 구겨지거나 찢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견고한 벽과 같이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면 우리의 내면도 넓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승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야비하게도 시샘하면서 자신들을 떠나라고 했던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제는 이삭과 화친을 맺고자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또 29b절,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불신자의 눈에도 이삭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자임이 보인 것입니다. 이삭의 신앙은 불신자들에게도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삭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불신자들도 깊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진정한 승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시련들이 주어집니다. 그 때마다 인간적인 생각과 자기 고집으로 해결하고자 하지 말고 이삭처럼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당신을 신뢰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크신 축복과 승리의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처럼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계승되어온 약속의 땅,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을 따라 섬겨온 캠퍼스 미션을 귀하게 여기고 충성되게 감당하므로 하늘의 축복이 넘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