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10
"제길, 제길, 제길!"
"......"
나미의 욕탄사에도 퉁가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렇게 욕을 하고 싶지만 참고 있는 것이었다. 나
미는 계속해서 욕을 해댔고 퉁가리는 그저 자신의 앞에서 타고 있는 모닥불을 헤집어줄 뿐이었다.
"웬놈의 마족몬스터가 이렇게 많은거야? 젠장!"
"......아마 이 숲의 모든 몬스터는 마족몬스터로 변한 것 같군......"
"제길, 제길, 제길!"
"나미......"
퉁가리의 힘없는 부름. 나미는 이를 갈며 욕을 멈추었다. 퉁가리와 나미가 쓰러뜨린 마족몬스터는 숫자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말그대로 모든 몬스터가 변했다. 마족몬스터란 무차별 습격을 즐기는 놈들로.
"이유를 알아내야 겠지......?"
"물론. 이유를 알아내서 그 이유가 된 '모든 것'을 깡그리 부숴셔 가이샤님 앞에 내놓는거야. 가이샤님도 좋
아하시겠지?"
"......나미...... 요즘 잠을 적게 자서 정신상태가 별로 좋지가 않구......"
"무슨 소리야! 난 지금 멀쩡해. 아주 멀쩡하다고."
"나미......"
퉁가리는 힘없이 나미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나미는 그런 퉁가리의 모습을 보다가 검을 빼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분명 자신이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나미......"
"......미안해, 퉁가리...... 요즘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말이야......"
나미의 모습이 퉁가리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피곤할텐데 자도록 해. 오늘 밤은 내가 보초를 서도록 할게."
"하지만...... 넌 이틀내내 보초를......"
"괜찮아, 괜찮아. 아직 난 멀쩡한걸."
퉁가리는 나미를 향해 웃어주었다. 나미는 불안한 감을 느꼈지만 자신의 모은 잠을 원하고 있었다. 나미는 자
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쓰러져 자고 말았다. 퉁가리는 나미의 모습을 바라보다 웃고는 천으로 잘 덮어주었다.
웃던 퉁가리의 얼굴에 순간 오한이 지나갔다. 퉁가리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적이 나타난 것은 아니
었다. 하지만 퉁가리는 계속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퉁가리의 얼굴에 경련이 일어났다. 계속되는 피곤
으로 몸이 버티질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퉁가리는 이를 악 물었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다. 이대로는 절대 안된다. 이대로 나미를 두고 쓰러질 수는......'
이때까지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오던 퉁가리였으나 지금은 그 정신력이 받쳐주질 않았다. 퉁가리는 쓰러져
자고 말았다.
"흐음...... 오늘도 날씨가 좋구만. 오늘도 즐겁게 농사나 지어볼까나~."
한 농사꾼이 등에 곡괭이를 메고 나타났다. 이곳은 출입금지의 산. 고로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이 되
지 않는다.
출입금지의 산에는 원래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안그래도 많던 몬스터가 모두 마족몬스터로 변해버렸다. 그
들은 무차별 습격을 즐기는 놈들로 보통 인간이라면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농사꾼은 그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버젓이 곡괭이를 등에 메고 산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룰루~. 오늘도 즐겁게 농사나...... 엥?"
콧노래까지 부르며 가던 농사꾼은 앞에 무언가가 쓰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다친 몬스터라도 있으면 나서서 도와주곤 했다. 그런 그가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도와주지 않을리 없었
다.
"이봐, 이봐."
농사꾼은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볼을 찰싹찰싹 때려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농사꾼은 어
디 다친곳이 없나 살펴보았다.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 하나와 근육만 기른 갈색 머리띠의 남자 하나. 그들의 몸
은 다친곳 하나 없었다. 농사꾼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
"뭐야? 피곤이 쌓여서 잠이 오는 것 뿐이잖아."
농사꾼은 일어서서 어디 그들을 둘만한 곳을 찾았다. 근처에 자신이 쉬던 나무가 있었다. 농사꾼은 가볍게 그
들을 들어 그곳에 놓았다.
"음...... 난 농사를 지어야해서 말이야. 방해말았으면 해."
농사꾼은 웃으며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곡괭이로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농사는 황모지를 다시
개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일정하게 파는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였다. 자신이 내키는
곳으로 가서 땅을 일구어 놓았다.
그들이 누워있는 나무 뒤에서 붉은 것이 반짝였다. 농사꾼은 농사 아닌 농사를 짓는 다고 알지 못했다. 붉은
것은 붉은 눈이었다. 그것은 큰 숨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여전히 농사꾼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손이 하나 뻗어나왔다. 그것은 곧바로 붉은 머리칼의 여성에게로 다가갔다. 그 여성의 목을 향해
서......
다가가던 손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뭔가와 싸우는 듯 소란스러웠다. 보통 인간이었다
면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농사꾼은 전혀 듣지 못한것 같았다. 소란스러웠던 소리는 곧 멎었다.
농사꾼의 콧노래는 계속 되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붉은 눈이 다가왔다. 퉁가리는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부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시 재생되었다. 그리
고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퉁가리는 다시 그것을 부쉈지만 다시 재생되었다. 아까부터 계속되는 반복이었다.
크르르르르
또 다른 붉은 눈이 다가왔다. 그 붉은 눈은 퉁가리의 옆에 있는 나미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퉁가리는 처
음의 붉은 눈을 상대한다고 그것을 막지 못하였다. 천천히 그 붉은 눈은 나미의 목을 조였다.
크르르르르
어찌된 일인지 갑자기 그 붉은 눈이 동요의 빛을 보였다.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퉁가리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무엇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우선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이 녀석부터 처리해야 했다.
퉁가리는 있는 힘을 다해 붉은 눈을 터뜨렸다.
크아아아아!
붉은 눈이 터졌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해서 퉁가리의 정신을 조여오던 것이 사라졌다. 퉁가리는 자신을 도
와준 '존재'를 찾았다. 하지만 그 '존재'는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퉁가리는 나직히 말했다.
"고마워......"
"음...... 그렇게 고마울것 까지는 없고......"
갑자기 들려온 다른사람의 목소리에 퉁가리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을 찾았다. 하지만 검은 없
었다. 퉁가리는 경계의 빛을 보이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
다.
"어? 난 너의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경계를 해?"
퉁가리는 팔에 힘을 다해 그를 쳤다. 자신이 있던 곳에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 이것은 분명히 몬스터가 자
신을 유혹하는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멍한 눈으로 퉁가리를 바라보던 자는 퉁가리의 공격에 쓰러졌다. 의외의 공격이었기에 피할 수도 없었다. 퉁
가리의 일격을 맞고 살아남을 자는 이 세상에서 아마 손을 꼽으리라.
"으으윽......"
신음소리는 다름아닌 퉁가리의 입에서 나왔다. 농사꾼은 말했다.
"어? 왜 쳐?"
"다, 당신은 누구요......"
퉁가리는 방금 자신이 주먹이 저 자의 볼에 닿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아까의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약간
의 경계의 빛을 감추고 말했다. 돌변한 그의 태도에 농사꾼은 놀라지도 않고 말했다.
"아, 난 그저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사꾼이야. 전에 딸도 하나 있었지만 몹쓸놈이 와서 데려갔
지."
농사꾼의 나이는 40대정도로 보였다. 살갖이 햇빛에 타 시커멓게 변해 더욱 나이가 많아보였다. 농사꾼이 물
었다.
"그런데 넌 이름이 뭐지?"
"전 퉁촵가촵리 퉁촵가촵스라고 합니다."
"흠...... 특이한 인사법이군. 음...... 그런데......"
"앗! 나미! 나미는?"
퉁가리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막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던 농사꾼은 말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그의 이
마에서 작은 핏줄이 하나 솟아났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 처녀라면 아직 쓰러져 있다네. 곧 푹자고 일어날 것이니 걱정말고.
음...... 그러니까......"
"가,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이렇게 도와주셔서......"
농사꾼의 이마에 또 다른 핏줄이 솟아올랐다. 퉁가리는 여전히 그의 미묘한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농사
꾼의 성량이 약간 올라갔다.
"그렇게 감사할것 까지는 없네. 음...... 이제 내 이름을 말하도록 하겠네."
"네."
왠지 그가 화가 난 것 같아 퉁가리는 조심스레 답했다. 농사꾼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난 이 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늉 진이라는 사람이네."
"진...... 혹시!"
"혹시?"
늉은 재밌다는 얼굴로 퉁가리를 바라보았다. 퉁가리는 무례하게도 늉의 얼굴을 가르키며 벌벌 떨면서 말했다.
"당신이 린화의 아버지!"
"응? 어떻게 자네가 우리 린화를 아는거지? 혹시 그 몹쓸놈의 친구라도 되는건가?"
"그렇다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왠지 마이샤님이 하신 이야기와는 다른데요......"
"응? 뭐가 말인가?"
퉁가리는 마이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니까...... 마이샤 자신은 린화가 자신을 따라나올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린화가 자신을 따라왔고 린화의 아버지인 사람이 린화를 자신에게 맡긴다고 한 이야기를......
퉁가리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던 늉은 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이며 원래 마이샤가 자신의 딸린 린화를 협박을 하여 납치하다시피해서 끌고 갔고 이미
늉이 쫓아가기에는 너무 멀어져 그냥 두었다는 것이다. 퉁가리는 이 둘 이야기 중에서 어느 것을 믿어야하나 고민하다가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했다.
"그런데 마이샤님이 린화님을 얻어오신것이......"
"얻은게 아니라 납치! 그 천하의 몹쓸놈이 나의 사랑스런 딸을 납치한 거란 말일세!"
"네...... 어쨋든 마이샤님이 린화님을...... 납치한 곳이 커크리스 산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이 출입금지의
산에......?"
"아, 커크리스 산에는 농사를 지을 만한 곳이 아니어서 말이네. 그래서 이곳으로 옮겼지. 사람도 없고 몬스터
도 없고, 군대끼리의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곳에 농사짓기에는 최적이어서 말이야."
"몬스터가 없다니!?"
이것은 퉁가리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앙칼진 듯한 목소리, 바로 나미였다.
나미는 자고 있다가 자신이 뭔가 푹신푹신한 곳에 누워서 잔다는 것을 깨닫고 일어났더니 왠 침대위에서 자신
이 자고 있었다. 놀라 퉁가리를 찾으러 다니다가 늉이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늉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아가씨, 이 동네에는 나쁜 몬스터가 없다오. 다 착하고 귀여운 놈들 뿐이지. 요즘 숫자가 좀 줄기는 했지만 말이야."
왠지 늉의 말끝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며칠전에 이곳에서 마족의 냄새가 나더니......"
"마족!"
"왜들 그러나?"
마족이라는 소리에 퉁가리와 나미는 매우 놀랐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왠지 그런 소리가 나왔다. 늉은 그들
의 표정을 살피다가 말했다.
"어쨋든...... 그 냄새가 나더니 착한 몬스터들 대부분이 흉악한 기운을 내뿜더라고. 뭐...... 요즘들어 숫자가 줄
었지만...... 아마 자네들이 한거겠지?"
"네......"
"이잉~~~~, 쯧. 무조건 폭력으로만 하다니. 그들을 원래대로 돌리는 방법이 있는것 같던데 말이야."
"방법!?"
나미와 퉁가리는 놀라 동시에 외쳤다. 퉁가리는 웃으며 말했다.
"그 방법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