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대일과거청산 소송현황 등 일제피해자 문제해결 방안 (김은식.2005.2월)

[이국언]

대일과거청산 소송현황 등 일제피해자 문제해결 방안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위원회    김은식 사무국장

1.       들어가며

2.       최근의 대일과거청산 소송 현황

3.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4.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

5.       맺음말

1. 들어가며

 전쟁책임을 추급하려는 움직임과 전범사실을 은폐 시키고 전쟁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인류의 영원한 투쟁으로 전후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지속되어 오고 있다.

제2차세계대전 피해자 배상소송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1942년 미국법정에서 처음으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나치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제기되면서 부터로 보고있다. 전범재판이 국가 대 국가간의 전쟁책임을 추급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제2차세계대전 피해자 배상소송은 개인과 국가 또는 개인과 기업간의 전쟁칙임을 추급하기 위한 또다른 흐름이라 볼 수 있다.

 2차대전 종결 이후 서구사회는 전범재판 이후에도 전쟁책임을 추급하는 각종의 사건을 겪으면서, 유태인 홀로코스트에 앞장선 국가, 기업을 상대로 한 다종다양의 소송이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무모하게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를 향한 인류의 무한한 투쟁의 역사를 확인하는 사건들이었고, 전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서는 세계사적 흐름으로 자리메김 해 나가고 있다.

2. 최근의 대일과거청산 소송 현황

유태인들은 전후보상재판을 독일내에서, 다음 유태인법정으로, 이후 미국법정으로 확대해 나갔으며, 이러한 노력은 90년대 들어 성과를 이루어 내고 있다. 1966년 미국 법정에서 벌어진 본격적인 홀로코스트 소송의 효시는 유태인 휴면계좌가 발견되면서 스위스 은행을 상대로 한 집단 손배소가 시작되면서 부터이다. 아인슈타인의 계좌까지 발견된 이 사건은 12억 5천만불로 1998년 8월 법정밖 화해로 매듭지어졌다. 1997년 오스트리아 보험업체를 상대로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제기한 집단소송은 1999년 11월 배상에 합의하였고, 합의금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125만 달러 수준으로 추측되고 있다.

미국에서 진행되어 왔던 독일기업을 상대로 한 징용자 소송에서 2000년 7월 17일 독일정부와 기업이 50%씩 부담하여 총 100억마르크(약52억불) 배상기금을 조성하는데 역사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일본의 전쟁책임추급은 우리나라보다 일본내에서 훨씬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현재 한국인 뿐만 아니라 중국인, 대만인, 필리핀인 등이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약 80여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전후 60주년이 되는 현재까지도 조금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이 제기한 대일과거청산 소송의 상당수는 패소로 끝났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의미 있는 판결이나 해결도 이루어졌다. 위안부재판의 1심판결에서 일본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입법부작위책임을 물어 일본정부에 대해 위자료 판결이 내려졌다. 이 판결은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한 입법화운동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운동으로 발전하였고, 불행하게도 고등재판소, 최고재판소에서 연이어 패소하므로 서 일본사법부의 한계를 드러냈으나, 오히려 입법화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왔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곽기훈씨 재판은 피폭자로서의 지위확인을 받고 피폭자에게 적용되고 있는 건강관리수당의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책임을 묻는 재판이었다. 이 재판에서 일본의 사법부는 원고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였고, 1심판결에서 원고승소판결 이후 2002년 12월에 내려진 고등재판소 판결에서도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판결은 동일한 성격의 이강령씨 재판도 이어졌고 마침내 일본정부는 항소를 포기하고 피폭 생존자들에게 5년동안 지급하지 않은 수당을 소급해서 지급할  것과 향후 사망할 때까지 약 3만 4천엔의 건강관리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1972년 3월 손두진씨가 밀항을 통해 한국인 피폭문제의 실상을 고발한 이후 30년만의 쾌거이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에 대한 판결도 안전하게 귀환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일본정부가 원고들에게 위자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으나, 이 마져도 항소심과 최고재판소에서는 기각판결을 받았다.

 한편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몇 가지 의미 있는 화해해결도 이루어졌다. 일보제철 가마이시제철소에서 근무한 징용사망자의 유족들이 일본제철의 후신인 신일본제철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97년 9월 최초의 화해해결이 이루어졌다. 회사측에서는 원고들에게 1인당 2백만엔의 위자료를 제시했고, 원고들이 이를 받아들여 회사를 상대로 한 재판은 종결되었고,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후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재판에서는 2000년 7월 최종화해가 이루어졌다.

이 소송의 화해는 소송 원고 3명과 소송을 준비한 4명, 그리고 이해관계인과 단체를 포함하여 3천 5백만엔의 해결금을 지급하고 회사내에 위령비를 건립하는 조건에서 화해가 성립되었다.

 히로시마 미쯔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피폭징용자 소송은 1심에서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재외피폭자에 대해 원호법적용을 중단시킨 후생성의 위법한 조치였으며, 위법한 처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데 대하여 일본정부가 1인당 120만엔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로 이어졌다. 이 재판부는 국민징용령에 의해 동원을 했다 하더라도 이를 거부할 경우 가족을 고문하거나 감금상태에서 노예로 취급하듯 연행한 것은 명백히 강제연행에 해당하며 위법하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기업을 상대로 한 책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기업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화해해결로 매듭지으려는 움직임은 11명의 중국임 징용자들이 카지마건설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2000년 11월 동경고등재판소에서 5억엔의 (하나오카평화우호기금)을 중국의 홍십자회(한국의 적십자에 해당)에 명의신탁 하는 조건으로 화해가 성립되었다. 이 재판으로 인해 재판의 원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피해자 986명 전원에 대해 이루어진 최초의 화해로 기록되게 되었다.

 한국인 소송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비하여 중국인 관련 소송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고, 그간의 난곡불락으로 여겨졌던 국가무책임론(국가무답책론, 구 헌법하에서는 국가배상법이 없었다는 논리)이나 시효소멸이 연이어 허물어졌다. 특히, 지난해 3월 중국인강제연행니이가타소송에서 니이가타지방재판소는 일본국가와 피고 기업양쪽의 책임을 인정하여 배상명령을 내렸다. 7월에 내려진 중국인강제연행니시야마건설재판의 항소심에서도 히로시마고등재판소는 기각파결을 내린 1심재판을 뒤집어 피고 기업의 안전배려의 무위반을 인정하여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피고 니시마쯔건설에는 제3차의 화해권고가 내려졌으나 기업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9월에는 교토의 오에야마 니켈광산에 강제연행되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은 중국인 노동자 4명과 사망자 2명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닛본지킨코우교(日本治金工業)’ (동경)측이 해결금으로 2100만엔을 지불하는 조건에서 화해가 성립되었다. 하나오카화해 이후 한동안 뜸했던 회사측과의 화해로 중국인 재판의 상당수 흐름은 화해를 통한 해결로 굳어져 가고 있다.

 대일과거청산소송은 비록 더디고 지난 한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그 가운데도 의미 있는 진척들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는 점에서 진화, 발전해 나가고 있는 과정에 놓여있다 볼 수 있다.

 이미 대일과거청산 소송은 일본법정 뿐만 아니라 미국법정으로 이어졌고, 한국에서의 소송으로 확대되어 나갔다. 독일의 민간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전개해 왔던 미국의 대형 로펌들이 이제는 그 눈을 돌려 세계적인 경제대국 일본으로 그 화살을 돌렸고, 그들의 저돌적인 공격에 일본정부와 기업은 결사방어를 펼치고 있으며, 물고 뜯기는 보이지 않는 한판의 전쟁이 수면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 나가고 있다. 일본정부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대응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한국에서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를 일제강제동원피해자들이 제기하게 된 배경은 다소 복잡한 과정 속에서 추진되었다.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한 대일과거청산소송에서 1990년대말까지 한일협정에 재한 양국의 견해는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오면서 한일 양국의 견해가 180도 돌변하여 개인 청구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가 소멸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2002년 11월 나고야 미쯔비시중공업조선여자근로정신대소송에서 돌연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한 항변을 주장했다. 그 동안 일본재판부는 한일협정 자체를 근거로 청구를 기각한 판결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정부 역시 재판소나 국회를 통해서 조약에 의해 청구권의 포기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외교보호권만을 소멸시킨 것이지 직접 개개의 개인청구권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이동원 외무장관과 청구권 협정에 서명한 시이나 외상은 1965년 11월 국회 특별위원회에서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외교보호권만을 포기한 것’이라고 명언했다. 1991년 8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외무성 조약국장 역시 ‘외교 보호권을 상호 포기한 것이지, 개인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한국정부도 그동안 피해자들이 꾸준하게 제기해 온 개인청구권 소멸여부에 대한 질의에서 일관되게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1995년 9월 국회 통일외무위원회에서 공노명 외무장관이 “개인적인 청구권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고 일본측과 동일한 입장을 밝혔으며, 2000년 이정빈 외교통상부장관은 “청구권 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 등 재판을 요청할 권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확언했다.) 그러나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까지 사실상 소명 되었다는 점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다.

 한일 양국정부의 입장이 개인청구권 소멸론으로 전환되면서 일보의 재판부도 국가무책임론이나 시효소멸론이 아닌 조약에 의한 권리소멸쪽의 한결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권리회복과 피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도일한 협정에 대한 해석상의 전환이 어떠한 이유에서 벌어지고 있는 명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2002년 10월 11일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거나 준비하고 있던 피해자 100명은 한국의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한일협정외교문서를 위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판결에서 5건의 문건을 공개하라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한국정부는 일본과의 불필요한 외교마찰을 가져오고, 북일수교과정에서 일본정부가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공개를 거부했고, 항소를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가 어떻게 소멸되었고, 어느 쪽의 책임인지를 확인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국정부로 인해 침해 받고 있다는데 대하여 강력하게 항의했다.

 2005년 1월 17일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5건의 문건이 공개되었고, 그 내용의 가치를 떠나서 파장은 예상밖의 심각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칙기획단’ 과 ‘민관공동위원회’을 구성하여 대응해 나가겠다고 발표했고, 일본정부도 방어적인 차원에서 일부 문서의 공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통해 개인청구권 소멸 문제가 협정 체결 최종 단계까지 심각한 논란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일본정부는 협정으로 인하여 향후 더 이상 어떠한 창구도 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려 했을 것이고, 한국정부는 대일 민간청구권 8개항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한국 정부가 떠안더라도 추후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개별 소송을 통해 구제 받을 수 있는 길을 터 놓아야 한다는 쪽으로 협상에 나섰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쉽게도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협정 체결 막바지에 밤을 세워가면서 양측의 대립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는 점만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논의되었고 어떻게 타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의혹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교총상부가 보유하고 있는 관련 기록의 일체와 국가정보원, 재정부, 경제기획원 등 유관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관련문서까지도 공개해야 할 것이다.

(2005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