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상병을 추억하며
어느 날, 아침. 그날도 다름없이 수제비를 끓이고 얻어 온, 이제는 쉰 냄새가 조금씩 나는 김치를 반찬으로 해서 맛있게 먹고 색이 검게 변해가는 양은 냄비와 같은 색깔의 수저 뿐인, 이름하야 설거지를 가볍게 하고, 검게 물들인 미군용 점퍼와 6 개나 주머니가 달린 국방색 바지를 입고 낡은 군화를 신었다.
오른 손에는 형법 판례집과 형법 각론이 들어있는 캔바스 천으로 만든 검고 낡은 롤빽을 들고...
애기 손바닥 만한 연초록 잎을 막 피워내기 시작한 마로니에가 늘어선 이른 봄의 동숭동 도보길을 걸어갔다.
우측 개천을 흐르는 맑은 물 위로는 화사한 봄 날의 아침이 흥건하였다. 바람은 적당히 싱그럽고 상쾌하였다. 늘 이른 아침에는 넉넉해지는 시간이었다. 우측에 난 세느강 위의 미라보 돌 다리를 건너 정문을 막 지나 운동장에 들어서자 그 날은 다름을 느꼈다.
바로 앞에 두 대의 군용 찦차가 서 있었고, 그 주변에 양복을 입고 검은 안경을 쓴 4명의 건장한 넘들이 서성대는 것이 보였다.
내가 들어서자 그들은 거침없이 나에게로 걸어왔다.
“너 XXX이지?”
그들은 몽따쥬를 내 얼굴 앞에 들이밀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튀고날 틈도 없었다. 그 넘들이 나를 애워쌌다. 나는 정중치 못하게 대하는 그들에게 신원조사를 받고 쥐 터지며 어디론가 끌려갔다. 나 보다 일찍 와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병신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원래 걔들은 그랬다. 나는 조금 덜했고...
그리고 근 10일 뒤, 뺑뺑이 돌리기가 내 앞에 섰다. 군대냐? 감옥이냐? 양자택일의 운명적 갈림길에 섰다.
아~ 나는 당근, 군대다! 라고 외쳤다. No another way였다. 나는 군대가 감방보다 당연히 좋은 걸로 알았다.
중X 정XX. 검은색으로 칠한 유리문 앞 계단에서 어머니와 친구들과 눈물이 범벅이된 채 이별을 하고 까만 찦차에 실려 뺑뺑이로 선택한 군대로 향했다. 꿈에도 전혀 그려보지 못했던,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논산훈련소 (연무대)앞에 차는 서고, 나는 노예 인계 인수식 같은 절차를 거쳐 청춘 나들목인 정문을 넘어갔다.
이 정문을 넘었기에 나는 군인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이렇게 나는, 대한민국의 육군, 자랑스러운 (이제서야) 군인이 되었다.
“야! 이 넘들아! 밖앗해(태양)라도 좀 보자!”
사정하고 싶었지만, 파리리 돌아가는 눈들을 보자 기가 팍죽었다.
아~ 내 뺑뺑이여~~~
“야! 거기 서있는 장정! 뭐하고 있나? 빨리 집합하라!!! 이제 너는 사회인이 아니다. 장정이다 임마!!!”
“알았다 임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 파리리한 눈 빛 땜에...
그렇구나. 내 인생의 한 막은 내려지고 새로운 막이 올랐구나.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좋다. 이왕하는 것, 수석으로 마치겠다 ㅎㅎㅎ
아~ 너는 여기서도 정신 못차리는 구나.
니는 희망이 아득한 장정이다
국가의 보배 新 장정이다. 이너마~
맞다. 새 무대에서는 계급과 짠밥이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또, 아~ 저쪽 하얗게 칠해진 5개동의 나무건물 벽에 삐딱하게 서서 둘러 쳐진 철조망 울타리 사이로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 넘들을 바라보는 수 많은 눈 눈 눈들.
그 님자들이 장정 위의 대기병이라는 걸 기간병의 이리저리 휘 모는 호각 소리에 어지러워하며 알았다.
*대기병 시절*
검고 적당히 긴 너무나 멋진 머리카락 전부를, 앞 머리카락 조금도 남기지 않고 전부를 무지막지한
브루도자에게 다 밀려 버렸다.
내 의사는 완전 무시되었는데, 폼이 어떻느니... 하는 입도 벙긋 못했다. 핑 도는 눈물.
“이 넘아! 이게 내 비상금이여~ ㅋㅎㅎㅎ”
가발 제조 공장에 팔면 족히 받을... 거금 2천원을 차용증 없이 날려 버렸다.
아~ 아까워라 ㅋㅋㅋ
비슷 비슷한 넘들 수 백명이 훈련소 밖 수용소에 몰아 쳐 넣어졌다.
이름하야 ‘대기병’
그 밤, 나는 초장부터 놀랐다.
황홀한 감동~
그건 순식간에 일어나는... 차라리 예술이었다.
억압과 두려움과 아지못할 공포로 찰라를 한 순간에 긋는...
우리...
넘들의 예술...
너그는 모른다.
한쪽 침상에 30명씩 60명이 바로 누워자면 좋을 공간에
한쪽 침상에 70명씩 140명이 단 한번의 ‘취침’ 구호와 단 한번의 ‘취침’하는 복창 연습으로...
전혀 불가능하였다. 전혀...
내무반장의 희끄무리 하고 야시시한 눈빛과 함께 두 번째 ‘취침’하는 구호가 떨어짐과 동시
그 불가능한 좁은 공간에 140명의 귀신 같은 대기병은 한 점의 흔들림 없이 누웠다.
아아아~~~ 이름하야 ‘칼잠’
나폴레옹이 두 눈을 부릅떳다. 불가능은 없었다. 이곳에도...
나는 처음 배우기 시작하였다.
군대에서는 ‘불가능은 없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라는 대한민국 육군의 행동진리 제1장을 체험으로.
나는 알았다.
군대에서도 진리를 앎에 대한 숨막히는 흥분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흥분으로 잠 못잔 멍청한 대기병이여...
니 앞날이 걱정스럽다 ㅎㅎㅎ
사역을 마치고 먹은 듯 만듯한 점심 식사 후 달콤한 휴식 시간, 메드골드가 하나 있는 피엑스(PX) 작은 문간을 꽉 차게 막는다.
며칠째 긴 사각으로 뚫어진 벽 출구 옆에서 정신 나간 넘이 빈손으로 그냥 가길 기다렸다. 택도 없었다. 그 메드골드!!! 결국은 먹어보지 못했다. 비상금도 브루도자로 차용증 없이 날렸고... 돈이 없었다. Money talks! 그때 알았다. 말 할 수 없었다. 근데 눈물은 와 나오더노?
대표
그래 좋다! 보안병 차출에 계속 도전했다. 신원 조회로 연기 또 연기 그리고 연기...
결국은 최 장기 대기병 고참이 되었더라 ㅋㅎㅎㅎ. 45일 고참 대기병.
그리고 마침내 군번을 받았다. 1245XXXX. 지금 보니 디게 빠른 군번이네 ㅎㅎㅎ.
*훈련병 시절*
오늘도
‘동이 트는 새벽 길에 고향을 본 후 외투 입고 총을 메면 마음이 가벼워...’
군가를 악으로 꽥꽥 대며 내 맴이 성한 맴이 아닌 채 조식을 먹었는지 기억도 없이 뻘건 논산 야산에
빡빡기로간다. 연병장 옆에 허드러지게 핀 하얀 아카시아 꽃은 와 그리도 순녀를 닮았노?
냄새 마져 그리움이더라.
그 그리움 가슴에 담고 호각 소리 따라 이리 딍굴 저리 딍굴. 눈콧물이 붉은 흙과 범벅이 되어도 닦을
틈이 없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눈땀(눈물과 땀)은 채찍같이 흐르고 난리다.
그렇구나. 감빵이 군대보다 좋은 걸 와보니 알겠구나 ㅋㅋㅋ.
잘못 찍었구나. 잘못 찍었어! 내 뺑뺑이 물리도~~~
*자대로*
드디어 논산 훈련소 졸업이다. 야호!!!
그런데, 강경훈련소로 또 빠졌다. 넘들은 부러워 하더라. 강경후반기 마치면 동해사령부,
부산 항만사령부,
둘 중 하나 후방부대로 배치된다고...
그래. 이 넘들아~ 메드골드 마이묵고 전방으로 빠져 푹 고생해라. 내 나중에 면회가마 ㅎㅎㅎ.
진짜 후반기 교육! 장난아이데~ 옆 막사에 전투경찰 넘들. 하사관 학교생들. 야들 우리 넘들이 불쌍하다며 혀를 차더라.
시부랄 넘들아! 그래도 끝나면 군복 네지끼내서 입는 후방 해안사령부로 간다. 임마들아!!!
6~7백원 되는 월급 쪼개서 모아 아지노모도가 든 조미료 그 뭐야? 백설 XXX더라. 하여튼 그것 사서
교관 식사때 넣어 맛 돋구어 줘서 압박을 낮추기도 하였다.
어휴~ 강경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 ㅎㅎㅎ.
국방부 시계는 돌아서 또 졸업식. 끝나자 말자 따블빽 메고 강경에서 논산역까지 걸어갔다. 산속을 돌고 넘고
물 건너 개울 건너 마침내 논산역.
휘파람 불며 반겨 전송해 주는 사람 없이 창가에 앉았다. 이제 종착역이 강능이야? 부산이냐? 만 남았다.
아~호~ 조은거~~~
자대로 가는 기차를 탄 것이다.
조치원 역이더라. 한 넘이 큰소리로 말했다. ’조치원역에서 남으로 간단다!!!’
시부랄, 낙동강이 아니고 한강을 넘더라.
‘야! 어찌된거냐? 왠 한강이냐? 한강이 낙동강 아래로 이사왔냐? 말 좀해라!!!’
드디어 서울 안의 용산역에 도착하여 대기실에 죽치고 기다렸다. 돈으로 말하는 넘들은 가족상봉으로
난리치더라.
한 넘, 두 세넘 그리고 두 세넘... 점 점 옆이 넓어지더라. 전쟁도 없는데... 벌써 전사냐?
‘따블빽 메고 따라와!’
‘시부랄넘아. 예비 사령부 요원이다. 잘 다뤄라. 알았냐?’ 하고싶은 말이 입안에 머물더라.
지도 뭔가 불안한지...
나는 모르는 다른 5명과 함께 검은 트럭에 올라 탓다. 호로를 쳐서 어디로 가는지 방향 짐작이 안되더라. 무릎 위에 올린 따블빽 위에 머리 박고 잤다. 눈을 뜨니 트럭은 한 넘 한 넘 떨어뜨리고 자꾸 북으로
가더라.
‘야! 시부럴넘들아! 여기가 낙동강이가? 강능 태백평원이가? 그만 좀 가자!’
내가 탄 트럭이 그 무시 무시한 임진강 다리. 니비교 다리를 건너뿟다. 완전 무장한 넘들이 손 흔들더라.
‘니는 죽었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