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떠난지 62일째 입니다. 열 입곱 수정처럼 맑고 고운 마음일 때 우린 처음 만나(중,고 동창)사랑을 하고 스물여덟에 결혼을 하고 남편 닮은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어제가 결혼 24주년 딸아이가 남편 대신 꽃다발을 안겨 주더군요. 이제 엄마 보호자는 저 라면서 아빠 대신 자기를 기대어 살아야 한다고 사람 인자처럼 삶이란 행복 반 불행 반 이라듯이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다 저는 남편을 밥 친구 술친구 등산 친구 직장생활 하면서도 사회 친구도 동창생들도 따로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하고 같이 지내는 게 젤 이었고 좋았고 나 아파 한마디가 남편이 남긴 마지막 음성입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은 의식이 없었고 현대의학으로는 할수 있는 게 없는 기적만이 가능한 입원 삼일째 담당의는 조심스럽게 뇌사로 진행 중이고 장기 기증을 생각해 주시면 숨을 쉬고 잠들기 전 잡아주던 남편 손은 여전히 따뜻하기만 한데 어떻게 금방이라도 깨어날 듯 편히 잠든 얼굴인데 나보고 어쩌라고 5일째 시간이 없노라고 결정을 해 주시라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뇌사자 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친가와 외가 가족들 누구도 결정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삼중고를 겪으면서, 왜 내게 이런 일이 그 고통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저런 모습으로(뇌사) 누워있는게 남편 뜻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생전 불가와 인연이 깊던 남편의 뜻이 아닐까요?
입원 7일째 저와 딸은 아빠의 뜻일거라고 믿고 기증서에 서약을 하고 자기 목숨처럼 사랑한 딸을 두고 나 없으면 못산다더니 어찌 갔을까요
그렇게 남편은 다른 세상으로 갔고 남편의 흔적은 그날 그대로인데 지금의 제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요 누구나 죽어요 조금 먼저 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사랑했다고 죽도록 사랑했다고, 미안하다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딸 데리고 잘 살겠노라고 헤어질 시간은 줘야 하잖아요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남은 저에게 홀로 서야 할 아무런 의미도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자라 엄마 보호자 자청하는 명문대 다니는 딸 딸 때문에라도 살아야지 싶은 맘도 들지 않네요! 못된 애미인가 봅니다. 제가 49재 지내는 날 서러워하는 저를 보고 스님 말씀이 그리 울면 영가가 오도 가도 못하고 구천을 맴돈다고 뚝 그치라고 스님이 말하네요.
남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야 떠난 사람이 좋다고. 그래 그 사람이 좋다는데 내 슬픔 참아야지 입술을 깨물어 보지만 퇴근 해 같이 올려다 보며 아름답다던 밤하늘을 언제쯤 눈물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요. 제 생에 유일한 빽(내편)을 잃어버린 텅빈 허전한 마음을 언제쯤 남편과의 추억만으로도 가득 채워질 수 있을까요. 여자들만의 공간 이어서 편하게 들고 나면서 님들의 글을 보며 공감하면서 산다는 게 거기서 거기라면 제 애기가 평범한 것 같지만 진리인 "있을때 잘해" 를 다시 한번 생각하시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