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는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와 함께 ‘친일문학 다시 읽기’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우리 사회의 적폐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친일잔재 청산이 필수적이고, 그 첫걸음은 친일문학의 실체를 대중이 정확히 아는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친일문인과 그 작품을 다시 읽음으로써 민족정기가 바로 설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대장정에 들어갑니다. (편집자)
[문학뉴스 연중 캠페인- 친일시 다시 읽기 10]
아세아(亞細亞)의 피
김기진
1
오오 이날! 인류의 역사에 영원히 빛날
소화昭和 십육년 십이월 팔일!
‘제국은 오늘 새벽에
서태평양 바다 위에서
미, 영 두 나라와 전쟁상태에 들어갔다’
아침의 라디오가 이 뉴스를 전할 때
진정 그대여, 혈관이 터질 듯 전신이 긴장하지 않던가?
길거리에서도, 전차 가운데서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주 보면서-
‘해냈구나! 기어코!’
‘마니랄馬尼剌, 향항香港, 신가파新嘉坡, 호놀루루까지!’
‘아! 시원하다! 체증이 떨어지누나!’
‘인제 안심이다 가슴이 후련하다!’
호외를 들고서 이같이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빛!
오오 드디어 동양의 하늘에 검은 구름 걷히어졌네
마침내 ‘선전포고’다!
미, 영의 두상頭上에 폭탄의 비를 퍼부어라!
얼마나 오래 전 일본국민이 이날이 오기를 기다렸을까
왼손에 십자가 오른손에는 칼
성서와 아편을 한몸에 품고서
태평양 동쪽의 언덕언덕을 구석구석을
기만! 통갈恫喝! 회유懷柔! 착취搾取! 살육殺戮! 강탈!
끝없는 탐욕의 사나운 발톱으로 유린蹂躪하여 오던
오! 저 악마의 사도를 들몰아낼 때가 왔다
극동의 해가 찬란한 해가 뚜렷한 일장기가
아침 하늘에 빛난다 이글이글 탄다
황공하옵게도 조서詔書가 내렸다! ‘선전포고’다!
일억의 국민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기약하지 않고 일치一致해 버렸다
2
동양인의 백년의 숙적宿敵에게
우리의 귀한 생명을 던지고 심판할 날은 드디어 왔다
페리의 흑선黑船이 동경만東京灣에
검은 그림자를 나타낸 이후로 팔십년-
일로전쟁日露戰爭 이후로만도 이십년의 세월-
더 가까이는 만주지나사변의 십년전부터 오늘날까지
저들에게서 받은 오만傲慢, 방자放恣, 무례無禮, 횡포橫暴의 가지가지-
참을 수 없는 굴욕을 견디고 은인자중隱忍自重하던
최후의 분통의 포문을 깨치고서
튀어나가는 탄환은 선혈鮮血의 덩어리다!
동양인의 영혼과 영혼이 뭉쳐진 덩어리다!
성길사한成吉思汗의 철갑부대鐵甲部隊가
구라파歐羅巴의 대륙을 응징케 한 지 몇 세기-
그 후로 동양의 역사에 일찍이 어느 나라가 한번
백인의 나라에 철통 같은 호령과 함께
응징의 화살을 쏘아 본 일이 있었던가?
이제 아세아 십억의 인민을 대표해서
우리의 절실切實한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토와 재산의 강탈을 목적하지 않는
성전聖戰의 북은 하늘 높이 울렸다
나가자! 태평양의 금기錦旗 날리는 곳으로
– 매일신보 1941.12.13
(김기진 1903~1985)
해설
친일을 한 문인을 기념해서 만든 문학상으로 시에는 대표적으로 미당문학상과 노천명문학상이, 소설에는 동인문학상과 무영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춘원문학상 등이 있다. 그 외 상 이름에 장르를 특정한 것으로 팔봉비평문학상과 육당학술문학상 등이 있다. 김기진의 호를 딴 팔봉비평문학상은 유족의 출현으로 1990년에 한국일보사가 제정하였으며, 2017년까지 28회 시상했다. 상 이름에 ‘비평’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시와 비평에 주어지는 조연현문학상과 다르고, ‘비평’에만 주어지는 대상 집약적이라는 점에서 문학의 전 장르에 주어지는 모윤숙문학상과도 다르다.
시인이면서 학자였던 육당에서 학술 쪽이 강화되었듯, 시인이며 비평가였던 팔봉에게서 시가 배제되고 비평이 선택된 것은 그만큼 그의 비평능력이 더 우세(?)했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 1988년에 발간된 『김팔봉문학전집』(문학과지성사刊)이 각각 『이론과 비평』, 『회고와 기록』, 『해조음/청년 김옥균』, 『시ㆍ소설ㆍ비평』, 『논설과 수상』, 『시평과 수필』로 구성된 것을 보더라도 그는 양적으로도 무게중심이 산문, 그 중에서 비평 쪽으로 기울어진다.
비평가의 주된 무기는 논리다.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비평정신의 근간으로 삼고, 이를 한 편의 비평문이나 한 권의 책, 저서 전체를 관통하는 논리적 일관성으로 밀고나간다. 그 연장선에서 논리는 한 생의 사유체계와도 가지런하게 연계된다. 사람에 따라 점진적인 발전이나 퇴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논리적 체계는 좀체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관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김기진은 1920년대 박영희와 더불어 카프(KAFF)의 실질적ㆍ이론적 지도자였다. 그가 당시 한국 문단의 조류였던 유미주의와 병적 낭만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내세운 이론은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조선민족의 해방이었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는 황국신민화와 대동아 건설이라는 기치를 수행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하수인이 되고 만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는 일본과 조선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으면서 적국인 미국과 영국으로부터의 아시아 해방이라는 논리로 친일을 정당화하였다. 프로문학의 자리에 황도문학이 들어앉은 것이다. 그 가공할 행적 중의 하나가 위에 소개된 「아세아亞細亞의 피」다.
1부에서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의 포문을 연 “소화 십육년 십이월 팔일”(1941)의 감격을 노래하고 있다. 파죽지세로 “마니랄馬尼剌[마닐라], 향항香港[홍콩], 신가파新嘉坡[싱가폴], 호놀루루까지!” 함락되는 과정에서 “일장기”의 ‘태양’은 “극동의 해”로 격상된다. “동양의 하늘”과 동양의 “일억의 국민”이 “일장기” 아래서 “일치해” “기쁨이 넘치는” 이유는 “태평양 동쪽의 언덕언덕을 구석구석을” “탐욕의 사나운 발톱으로 유린하여 오던” “미, 영 두 나라”, 곧 ”“악마의 사도를 들몰아낼 때가 왔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2부는 일본의 에도 시대에 쇄국정책을 펼치던 일본의 개항을 촉구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려고 “페리의 흑선이 동경만에/검은 그림자를 나타낸”(1854) 과거로부터 “일로전쟁”(1904), “만주지나사변”(1931)을 거치는 동안 일본이 겪었던 “굴욕”을 “동양인”의 것으로 확장한다. 아울러 1부의 진주만 습격을 “성길사한成吉思汗[징기스칸]”의 “철갑부대가/구라파의 대륙을 응징”한 역사적 사실에 비유하면서 “성전聖戰”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나가자! 태평양의 금기錦旗 날리는 곳으로”라는 이 선동의 한마디를 하기 위해 시는 자못 웅변조로 비장하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고 있다.
그는 이 시에서 역사적 사실을 열거하며 작금의 상황을 합리적 진실로 보이게끔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야심찬 노력을 경주하며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첫째, 일반화 전략이다. “길거리에서도, 전차 가운데서도/모르는 사람들끼리 마주 보면서/‘해냈구나!/ 기어코!’/(중략)/호외를 들고서 이같이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빛!/오오 드디어 동양의 하늘에 검은 구름 걷히어졌네”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에 대하여 우리 국민의 모든 개개인이 “혈관이 터질 듯 전신이 긴장하는” “일치”된 기쁨을 누린다고 하였으나 이러한 동일화는 가능하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둘째, 후안무치 전략이다. 한일합병 이래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잃은 우리나라가 아무리 일본의 강압적 통치권 아래 있다 하여도 “황공하옵게도” 일본천황이 내린 “선전포고”의 “조서詔書” 앞에 “일억의 국민”이 조아려야 한다는 자기비하적 망상을 피식민지의 지식인이 펼칠 수 있는 걸까. 여기에서 ‘일억’은 조선의 2천6백만과 당시 일본의 인구를 합산한 수다. 소화력昭和歷을 바탕으로 “페리” 사건 등 일본의 역사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없다.
셋째, 역사 왜곡 전략이다. “일로전쟁”이나 “만주지나사변”, 그리고 진주만 습격으로 촉발된 태평양전쟁 등은 한반도를 온전히 차지하고, 태평양의 지배세력이 되고자 유럽식민지를 강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들이다. “저들에게서 받은 오만, 방자, 무례, 횡포의 가지가지”는 우리를 포함한 피해 당사국의 것이지, 가해국인 일본의 것이 아니다. 영국이 “성서와 아편을 한몸에 품고서” 공격한 것은 중국이지 또한 일본이 아니다. 징기스칸 역시 “구라파의 대륙”을 “응징”했다기보다 침략한 것이었다. 그는 필요에 따라 가치전도를 불사하면서까지 이 전쟁을 “우리의 절실切實한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하여/영토와 재산의 강탈을 목적하지 않는/성전聖戰”이라고 포장하고 왜곡했다.
넷째, 영웅화 전략이다. “미ㆍ영”과의 전쟁을 정당화ㆍ적대화하기 위해 “일억의 국민”과 “아세아 십억의 인민” 속에 조선을 위치시키고, “이제 아세아 십억의 인민을 대표”하는 대표성까지 부여하면서 전쟁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것은 “동양의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일로서 “백인의 나라에 철통 같은 호령과 함께 응징의 화살을 쏘”는 정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어이없게도 “우리의 귀한 생명을 던지”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일본 절대화 전략이다. “튀어나가는 탄환은 선혈鮮血의 덩어리다! 동양인의 영혼과 영혼이 뭉쳐진 덩어리다!”에서 ‘탄환’은 ‘선혈’로 ‘뭉쳐진’ 총알이고,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이며, ‘동양인의 영혼’이기도 하다. 곧 「아세아의 피」를 의미한다. 그가 차마 민족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참을 수 없는 굴욕을 견디다” 적에 대한 “분통의 포문을 깨치고서” “응징”에 동참하는 정서적ㆍ문화적 공동체인 ‘민족’(“일억의 국민”)에 ‘피’를 덧바름으로써 이 모든 악의 주체인 일본을 민족의 개념을 상회하는 절대적 존재로 신성화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는 어떠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시적 논리도, 선동시詩 의 근간인 비평적 논리도 무시한 채 급하게 씌어져 진주만 공습 이후 닷새 만에 <매일신보>에 발표되었다. 승리를 예감하며 한껏 도취되어 있지만, 그러나 6개월도 되지 않아 미드웨이해전을 기점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욕망은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1943.8.1.), 「나도 가겠습니다」ㆍ「가라! 군기軍旗 아래로 어버이들을 대신해서」(1943.11.6.) 등을 발표하던 그의 기백은 전쟁의 양상과 함께 기울고 만다.
전쟁말기에 발표된 「보도정신행 1」(매일신보, 1944.2.20)에서 “석유가 없긴 해도 달이 밝잖은가/새끼도 가마니도 전쟁에 쓰이나니/이까짓 추위쯤이야, 그 마음이 장하오”에서와 같이 처량해지고 말았다. 연이어 「의기충천」(매일신보, 1944.10.19.)이란 시를 써보지만, 짙어가는 일본의 패색을 더는 가릴 수가 없었다.
김기진은 태평양전쟁 기간 중에 친일시 11편을 발표함으로써 14편을 발표한 노천명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당시 40대의 원숙한 나이에 이른 그는 황국신민화와 대동아 공영이라는 허위의식을 시로, 수필로, 비평으로, 기사로, 강연으로 채우려고 동분서주했다. 누가 봐도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친일 문인이 아닐 수 없다. 팔봉비평문학상은 그의 어떤 정신을 기리려고 만든 문학상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영숙
시인ㆍ문학평론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