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를 세척하고 나니 세시가 넘었다. 모두 모여 송강사 차를 타고 근처 덕구 온천을 찾아갔다. 덕구 스파 월드라고 제법 큰 온천장이 있었는데 노천 온천도 있고 스파 월드인지, 뭔지 사진으로는 근사한데 입장료는 만원이고 이곳에 들어가려면 수영복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냥 입장료 6500 원을 내고 목욕탕에만 들어갔다. 네시 경에 도착했는데 한 시간 30분 뒤에 만나기로 했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 건물 밖에서 목욕 전 단체 사진을 찍고 목욕하고 나서 뽀얗게(?) 변한 모습을 다시 사진에 담기로 했다.
목욕탕은 크고 사우나는 두 개가 있었다. 옥 사우나와 자수정(보석) 사우나. 주말인데도 사람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고 샤워기나 자리 등이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어렸을 때 사람들 대부분이 공중 목욕탕을 이용하던 시절, 주말에 목욕탕에 가면 앉을 자리도 없고 바가지도 구할 수 없어 커다란 덩치의 무서운 아줌마들 사이에 눈치 보아가며 끼어 앉던 기억이 되살아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언젠가 수년 전 이천에 있던 온천장을 찾았을 때에도 겁나게 사람이 많아 선배 언니랑 기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욕탕에는 덕구 온천에 대한 선전이 가득 붙어있다. 국내 최대 유일의 유황 용출수(퍼서 올린 것이 아니고 저절로 온천수가 터져 나와 자연적으로 흐르는 것)이며 워낙 수량이 많아 물을 재사용하지 않고 아까워도 밤에는 그냥 흘러 보낸다는 것, 온천 물 그대로를 공급하며 데우지 않는다는 것 등등... 선전을 보아서 그런지 물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곳까지 오는데 계곡물을 보니 바위가 갈변한 것을 보아 온천물이 흐르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두 번째 다이빙을 다녀오고 나서 샤워하면서 머리도 감았기 때문에, 따뜻한 온탕에 두어번 들어가고 나니 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아직 시간은 4시 30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사우나를 구경하기로 했다. 옥사우나는 들어가 보았지만 자수정 사우나는 처음이다. 나는 사우나를 좋아하지 않아 오래 버티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억지로 한 3,4 분은 견디다 나왔다. 한슬은 사우나를 좋아하지만 규미는 나보다도 더 못참고 금방 나간다. 옥사우나에 먼저 들어갔다 찬물에 세수하고 몸을 좀 식혔다. 다시 자수정 사우나에 들어갔다 나와서 마무리로 온탕에 잠시 있다가 5시가 넘었길래 이만하면 되었다 싶어 밖으로 나왔다. 옷을 입고 만나기로 약속한 휴게실로 나오니 역시 우리 신랑은 벌써 나와있다.
휴게실에는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이곳 특산물이 자수정인 모양이었다. 우리 신랑은 반지를 보고 있었다. 나보고 다른 장식없이 은색에 자수정을 박은 심플한 반지가 어떠냐고 물어본다. 나는 반지는 별로 생각이 없고 대신 핸드폰 고리를 사달라고 했다. 동그랗게 깎은 자수정 두 알이 매달린 핸드폰 고리는 15000 원이었다. 지난해 병원 퇴직 기념으로 우리 직원들이 선물한 금돼지 핸드폰 고리를 핸드폰채로 지하철에서 쓰리(한슬 카페명과 발음이 같군)당한 후에 그냥 지내다가 새 고리를 다니까 기분이 좋았다. 신랑한테 좋다고 고맙다고 했다.
목욕 후 시원한 생맥주 생각이 간절했는데 여기에는 병 맥주밖에 없다고 한다. 세 병을 시켜 나누어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맨 나중에 나온 규미를 기다려 목욕 후 사진을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 잠깐 길을 바꿔 든 덕분에 죽변 읍내 관광도 하고 죽변 항까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날은 어두웠다. 저녁은 삼겹살 숯불 바비큐였는데 7시에 시작이라고 한다. 우리는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는데 사건이 발생했다. 송강사가 씨월드에서 가져온 장비를 챙기는데 BCD 두 개와 부츠 두 켤레, 장갑 두 켤레 씩이 없어졌다. 샵 바깥에 세척장이 있고 그 옆에 널어 말리는 곳에 두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 이곳 저곳을 뒤지고 다녔지만 결국 나오지 않아 주인을 불렀다. 정황을 살펴본 결과, 오후에 떠난 남서울 대학교 팀 짐 속에 섞여 들어갔을 가능성이 많았다. 주인 말이 남서울 대학교 팀 장비가 씨월드에서 가져온 것과 동일한 스쿠바프로 글라이드 500이었다고 한다. 지도교수에게 주인이 전화로 연락을 했다. 지금 천안으로 돌아가는 중인데 도중에 학생들 짐을 찾아본 후 연락을 주기로 했다. 송강사는 몹시 초조해 했다. 나는 작년 5월 팔라우에 갔을 때 떠나는 날 BCD를 잃어버린 적이 있어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찾을 때까지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다행히 저녁을 먹는 도중, BCD를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송강사는 택배로 부쳐달라고 부탁을 하고 우리도 그제야 마음이 놓여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 두 팀이 전부 모여 장기 자랑을 할 예정이었는데 장기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좁은 방 안에 19명(어떤 형제는 합쳐서 3인분 ㅎㅎㅎ...)이 끼어 앉아 소주와 맥주를 마시며 왁자지껄 떠들다가 이번 다이빙에 대한 소감을 말하기로 했다(각자에 대한 소개는 전날 저녁 먹으며 식당에서 했다). 간단히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길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다. 나는 좀 길게 말한 편이었다. 대체적으로 만나서 반갑고 왕돌초에 가지 못해 아쉽지만 좋은 다이빙이었다는 말들을 했다. 나는 남편을 잘 만나서 오픈 워터부터 해외 다이빙을 주로 하다가 우리 나라 다이빙을 해보니 너무 힘이 드는데,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즐겁게 다이빙을 하는 모습을 보니(특히 부산의 임강사는 <우리는 톨게이트를 나오는 순간 무조건 하루에 세 깡씩입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존경스럽고 배울 점이 많더라고 했다.
소감이 끝나고 경품 추첨이 있었다. 경품은 꽝이 더 적은데 꽝 다섯 개 중에 세 개에는 벌칙이 있다고 한다. 우리 신랑은 이런 거 뽑는데 소질이 없으니 나보고 자기 것까지 뽑으라고 한다. 추첨 쪽지는 임호섭 강사가 돌렸는데 임강사 옆에 앉은 내가 가장 먼저 뽑았다. 내것을 먼저 뽑고 우리 신랑 것을 뽑았는데 나는 삼번, 우리 신랑은 팔자인지 내가 뽑아 주었는데도 <꽝>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벌칙은 걸리지 않았다. 내가 받은 삼번 경품은 마레스 장갑이었다. 내 마레스 장갑이 다 해졌는데 너무 잘 되었다. 공짜로 얻는 것이 이렇게 짜릿할 수가... ㅎㅎㅎ...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서울 팀은 송강사를 제외한 여섯 명 중에 다섯명이 경품을 탔다. 우리 신랑이 우리 팀에서 유일한 꽝이었다. 이래서 우리 간장 종재기 신랑의 심기가 또 한번 불편해졌다. ㅋㅋㅋ...
벌칙은 부산 팀의 두 여성 다이버(한 사람은 부산으로 시집온 일본 분인데 아버지가 한국가서 살게 되면 이름을 혜진이라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분도 이름이 혜진이다)와 일본 혜진씨 시동생이 걸렸다. 시동생 분의 멋진(?) 춤과 두 혜진씨의 듀오를 듣고 나서 대망의 일등상 경품에 대한 추첨이 있었다. 일등 경품은 보라카이 씨월드 사박오일 이용권(비행기 제외)인데 지원자는 부산팀 막내 정환씨와 한국 혜진씨, 서울팀 규미와 한슬이였다. 추첨 방식에 대해 한참 왈가왈부를 하고 나서 카드로 가리기로 했다. 한슬이 스페이드, 규미가 하트, 정환씨가 다이아먼드, 혜진씨가 클로바를 각각 선택하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아무 카드나 뽑아서 많이 나온 패를 선택한 사람에게 상품을 주기로 했다. 카드는 부산팀 정진화씨가 돌렸다. 정진화씨를 제외하고 사람들이 뽑은 카드를 뒤집어보니 스페이드와 하트가 동일하게 5장씩 나오고 다이아와 클로버는 두장, 세 장 이랬다. 진화씨가 마지막으로 카드를 뽑았다. 뒤집어 보니 하트! 이래서 최종 승자는 규미가 되었다.
그러나 상품을 그냥 받을 수는 없는 법, 규미와 규미 남친인 장윤이까지 끌어내어 노래를 듣고(장윤이는 정말 노래를 잘한다) 우리 송강사와 임강사 노래까지 들었다. 송강사는 노래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한다. 그러나 저 얼굴에 노래까지 잘했으면 너무 바빠서 이 자리에 있지도 못할 것이다(사실 송강사는 영화배우를 해도 될만한 미모를 가지고 있다). 임강사는 노래를 하라니까 제법 패기있게 노래를 한다. 무슨 노래인지 한참 듣고 있으니 <미래소년 코난> 주제가이다. 과연 코난 엄마답다.
임강사 노래까지 듣고 나서 나는 화장실을 가는 척 슬쩍 빠져나왔다. 오전 두 번 다이빙에 목욕까지 하고 오니 노곤한 차에 맥주에 취해 자고 싶었다.
옆방에 가서 자리를 펴고 자는 척 누워있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 리조트는 말이 벽이지 옆 방에서 사람이 털썩 앉으면 벽이 다 울린다. 그러니 옆 방에서 무얼 하는지 다 들린다(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잠이 들락말락 하는데 우리 신랑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있었으면 나도 노래를 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주와 가사가 없으면 노래를 못한다. 나는 곧 꿈나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