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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민중행동에서 발표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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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민주주의
−[국가와 혁명] 읽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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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레닌의 글을 읽는 독자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이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폭력혁명, 프롤레타리아독재, 중앙집권주의 등의 주요개념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한 마음의 한구석에는 오랜 세월 한국 사회를 짓눌러온 반소⋅반공 이데올로기와 국가보안법의 저주가 도사리고 있다. 좀 더 복잡한 문제도 그러한 불편함 속에 뒤섞여 있다. 소련과 동구 현실사회주의체제에 대한 서구의 부정적 시각, 특히 체제 붕괴 이후 널리 퍼진 사회주의적 변혁전망에 대한 회의감이 그것이다. 이 회의감 역시 충분한 현실인식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노동계급 내부 계층분화 및 서열구조의 고착화, 이에 따른 노동계급의 단결 및 정치투쟁의 답보상태 등에 그 근거를 두고 있어 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자본축적의 위기에 따르는 대량해고, 전쟁, 환경재앙 등등 자본이 고통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는 방식의 현실적 중대성 및 필연성을 고려하면, 자본주의적 지배관계를 신성시하고 그 대안에 대한 논의를 배제하기보다, 진지하게 실질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자본주의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레닌의 글들 역시 유일무의의 정답으로 삼고 물신화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처음부터 금기시하는 것도 이성적이지 못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레닌의 글들에서 배울 것은 배우고 비판할 것은 비판한다는 자세로 분석적⋅주체적으로 읽고 대안의 구체화를 위해 활용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레닌이 긴밀한 연관 속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을 오늘의 관점에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가와 혁명]은 레닌 정치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집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1917년 2월 혁명 이후의 결정적인 시점에서 혁명과 소비에트체제의 성격을 본질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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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폭력을 혐오하고 평화를 사랑한다. 그런데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엥겔스를 끌어들여 폭력혁명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폭력혁명의 역할에 대한 엥겔스의 역사적 평가는 폭력혁명에 대한 진정한 찬사라 할 만하다.” “프롤레타리아국가에 의한 부르주아국가의 대체는 폭력혁명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국가50) 레닌은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지 무모한 테러리스트도 무분별한 폭력애호가도 아니다. 따라서 그가 폭력혁명을 강조하는 현실적 근거와 폭력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와 혁명]이 나온 때는 10월혁명 전야이기도 하지만 1차대전, 즉 제국주의 전쟁이 한창 진행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제국주의 및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레닌의 비판적 평가는 단호하다. 그에 따르면 제국주의 전쟁은 오랜 기간 약소민족들을 착취하고 억압해온 열강들 사이에 ‘약탈품 분할이나 재분할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이다.(국가21) 제국주의 전쟁을 통해 독점자본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급속히 전환한다. “국가는 막강한 자본가 동맹들과 갈수록 더 긴밀히 결합하여 근로대중에게 점점 더 엄청난 압제를 가하고 있다. 선진국들−그 전선이 아니라 후방−은 노동자들을 가두어놓는 군사감옥으로 변해가고 있다.”(국가20) 이제 군주국만 아니라 가장 자유로운 공화국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를 억압하기 위한 국가기구’가 매우 강화되고 있고 ‘관료기구와 군사기구’가 전례 없이 성장한다.(국가66) 이런 관점에서 레닌은 이 시기 공식적 사회주의 정당 지도자들이 ‘조국의 수호’니 ‘공화국과 혁명의 수호’니 하는 구호로 ‘자기네’ ‘부르주아지의 약탈적 이익에 대한 옹호를 은폐’한다고 비판하며, 그들을 ‘사회배외주의자들’이라고 규정한다.(국가36)
여기서 레닌이 말하는 폭력은 직접 눈앞에서 벌어지는 물리력 행사에 국한되지 않고, 식민지 민족들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노동자 대중에 대한 국가기구 내지 관료기구의 억압과 압제 등을 포괄한다. 이러한 억압과 착취는 얼마든지 그럴듯한 명분과 법적 제도적 근거를 갖추고 정당성을 표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 억압체제에 맞서는 저항과 해방운동도 폭력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레닌의 논의에서 폭력은 동일한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경우 폭력은 기존의 억압적 착취적 지배관계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무너뜨리고 궁극적으로 계급적 지배관계 자체를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냐에 따라, 부정적으로 평가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누군가 관성에 따라 폭력을 거부하자고 외칠 때에는 그것이 어떤 성격의 폭력인지, 즉 기존의 지배관계를 고수하기 위한 폭력인지 아니면 그것을 바꾸려는 폭력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레닌은 국가가 노동자 민중에 대한 억압기구로 기능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고 본다. 즉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의 국가는 늘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기 위한 특별한 기구’였고 이것이 ‘본래 의미의 국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기 위한 폭력을 레닌은 이렇게 요약한다. “물론 착취자인 소수가 피착취자인 다수를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것과 같은 일이 성공하려면 극도의 무자비함과 야수적 억압이 요구되며 또한 피바다가 요구된다. 인류는 노예제, 농노제, 임금노동의 상태하에서는 이러한 피바다를 헤치고 지나가야 한다.”(국가152)
프롤레타리아트가 소수 착취자, 즉 부르주아지의 ‘무자비한 야수적 억압’과 ‘피바다’에서 벗어나 궁극적으로 지배관계가 없는 평등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르주아지의 불가피하고 필사적인 저항을 제압하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위하여 모든 노동하는 피착취대중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도 ‘국가권력, 집중화된 권력조직, 폭력조직’이 필요하다.(국가57) 그러나 이때의 억압과 폭력은 ‘피착취자인 다수가 착취자인 소수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억압을 위한 장치이자 특별한 기구인 ‘국가’는 아직까지 필요하지만 그것은 이미 과도적 국가로서는 더는 본래 의미의 국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제의 임금노예인 다수가 착취자인 소수를 억압하는 일은 이전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고 단순하며 자연적이어서 노예, 농노, 임금노동자들의 폭동을 진압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피를 요구할 것이고 인류에게 훨씬 적은 대가의 지불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국가152-153)
레닌의 이러한 셈법은 원론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 가지 변수를 추가해서 계산해야 한다. 즉 소수 착취자들은 지배적인 사고⋅감각⋅욕구의 생산자들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흔히 상당수의 피착취자들을 자신의 우군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따라서 소수 착취자들을 억압하는 일이 ‘이전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고 단순하며 자연적’인 것이 되려면, 피착취 대중의 사고⋅감각⋅욕구 혹은 자발성을 바꾸는 준비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때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조직적 의식적 운동을 통해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레닌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전위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전체 계급, 곧 광범한 대중들이 전위를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적어도 전위에게 우호적인 중립을 취하고 적을 전혀 지지하지 않는 입장에 서기도 전에, 전위만으로 결전을 치르는 것은 멍청할 뿐만 아니라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다.”
원론적 타당성은 혼탁해 보이는 현상태를 헤치고 나아갈 결정적 지침이 될 수 있다. 다수를 상대로 하는 소수의 폭력을 거부하고, 그러한 폭력을 중단하기 위한 폭력의 불가피성과 정당성 을 인정한다면, 폭력혁명에 대한 엥겔스의 찬사나 이를 부각시키는 레닌의 논지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동의는 원론의 실현을 위한 현실적 준비작업에 동참한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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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맑스주의와 담을 쌓고 사는 현대인들은 레닌이 전제하는 국가 개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오늘의 민주주의 국가는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기 위한 특별한 기구’라기보다, 오히려 법⋅제도⋅경찰⋅군대를 통해 개인이나 집단의 범죄적 폭력, 혹은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여길 것이다. 국가가 이런 측면을 지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측면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레닌은 자명해 보이는 그러한 사실에 머물지 말고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도록 요구하는 셈이다. 즉 그러한 사실의 밑바닥에서 계급 간의 화해를 확인하고 흡족하다고 여길 것인지, 아니면 계급 간의 갈등 및 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파악하고 그 극복을 위해 싸워야 할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계급갈등과 그에 따른 억압의 현실을 인정한다면, 레닌의 다음 주장에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에 따르면, 국가는 지배계급의 기관이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관이며 계급 간의 갈등을 완화해 그러한 억압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에 프티부르주아 정치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질서란 계급들 사이의 화해이지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억압이 아니다. 즉 갈등의 완화는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지 억압자들을 타도하기 위한 일정한 투쟁수단과 투쟁방법을 피억압계급들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국가30)
이런 관점으로 보면 자본주의 국가가 예컨대 다양한 복지제도나 강력한 누진세 등을 통해 계급갈등을 완화하더라도, 이는 노동계급과 자본권력의 화해와 지배관계의 소멸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을 견딜만한 수준으로 조절해 자본주의적 지배관계를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는 것이다. 그러한 완화 조치들은 자본축적의 위기 속에서 언제라도 철회되고 계급갈등은 다시 첨예화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사회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계급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실’을 은폐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효과적으로 잠재’우는 이데올로기들에 맞서,(국가33) 국가의 본질은 ‘계급지배의 도구’라고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수긍하지 않고, 민주공화국은 보통선거 등을 통해 계급지배도구라는 성격을 탈피했다고 반박할 수 있다. 레닌은 다시 엥겔스를 끌어들여 이러한 생각을 논박한다. “또 한 가지 강조해야 할 것은 엥겔스가 보통선거권을 아주 단호하게 부르주아지의 지배도구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엥겔스는 분명히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장구한 경험을 고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통선거권은 ‘노동계급의 성숙도를 재는 척도다. 오늘날의 국가에서 보통선거권은 보통선거권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국가39)
엥겔스가 민주공화국도 지배계급의 지배도구라고 보는 근거는, 여기서도 여전히 ‘사회의 공복’인 공무원과 그 기관들이 사회 위에 있는 주인으로 된다는 데에 있다.(국가132) 무엇보다 엥겔스가 주목하는 것은 자본과 정치권력의 유착관계다. “엥겔스는 민주공화국에서 ‘부는 자신의 권력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한층 더 확실히 행사한다’라고 적고 있다. 한편으로는 ‘관리들을 직접 매수하는’ 방식으로(미국의 경우),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와 증권거래소의 동맹’ 방식으로(프랑스와 미국의 경우).”(국가38)
레닌은 엥겔스의 지적을 러시아 현실에 직접 대입한다. “오늘날 제국주의와 은행의 지배는 모든 민주공화국에서 부의 전능함을 유지하고 실현하는 이 두 가지 방법을 특별한 기술의 경지로까지 ‘발전’시켰다. 예컨대 러시아 민주주의 공화국의 처음 몇 개월 동안, 즉 ‘사회주의자들’−사회혁명당원과 멘셰비키−과 부르주아지의 이른바 밀월관계 동안, 연립정부 내에서 팔친스키씨는 부르주아지와 그들의 약탈행위 및 군수품 보급을 빌미로 한 국고횡령을 제어하기 위한 모든 수단의 행사를 방해해왔는데, 그후 내각에서 사임한 팔친스키 씨(물론 그 자리에는 또 다른 팔친스키가 들어왔다)가 자본가들로부터 연봉 12만 루블의 자리를 ‘보상’으로 받았다면 이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직접적 매수인가 아니면 간접적 매수인가? 정부와 신디케이트의 동맹인가 아니면 ‘단지’ 우호적 관계일 뿐인가?”(국가38)
같은 물음을 우리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매수의 생생한 증거인 삼성 X파일은 왜 파묻혔는가? 매수가 단지 우호관계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친재벌 정책 수립을 위한 것인가? 삼성장학생들은 국가기구 속에서 어떤 정책들을 관철시키고 있는가? ‘촛불혁명’ 이후 대한민국은 이제 삼성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버렸는가? 레닌은 민주공화국의 지배적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부’의 전능함이 민주공화국에서 더 확실한 이유는 그 전능함이 정치적 메커니즘의 개별적 결함이나 자본주의의 열악한 정치적 외피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로서는 가능한 최선의 정치적 외피이다. 따라서 자본은 이 최선의 외피를 (팔친스키나 체르노프, 체레텔리 등을 통하여) 획득하고 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인물이나 제도나 정당이 아무리 교체되더라도 아무런 동요도 없을 만큼 견고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권력을 확립한다.”(국가38-39)
보수 여당을 진보 야당으로 교체해도 자본권력은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매수의 범위는 소수 정부요인에 한정되지 않고 노동계급 상층부로, 언론과 전문지식인들로 광범하게 확대되고, 노동계급과 여타 민중의 단결을 막는 분열⋅회유⋅무력화 정책이 능수능란하게 구사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서 레닌의 다음과 같은 비판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현대의 임금노예들은 자본주의적 착취와 조건으로 인해 궁핍과 빈곤에 몹시 짓눌려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신경 쓸 여지도 없고’ ‘정치에 신경 쓸 여지도 없으며’, 따라서 모든 일이 통상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될 때에는 주민의 다수가 공적 생활과 정치생활에서 배제되어 있다.”(국가148) “극소수를 위한 민주주의, 부자들을 위한 민주주의,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이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기구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어디서나, 즉 선거권의 ‘사소한’, 아니 사소하다고 이야기되는 세부조항(거주 횟수에 의한 자격 제한, 여성 제외 등)만이 아니라 대표기관들의 기교에서, 집회권에 대한 실제적 방해에서(공공기관은 ‘빈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간 신문들의 순전히 자본주의적인 조직 및 그 밖에 우리의 눈길이 미치는 도처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수많은 제한을 볼 수 있다.”(국가149)
이제 선거권의 ‘사소한’ 세부조항들이 해소되고 빈민들도 다양한 민주주의적 권리를 누리고 있으므로, 레닌의 비판은 철 지난 옛이야기라고 안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민중이 정치적으로 여전히 소외되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대의제를 전제한다면, 노동자 민중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존재감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의회와 정부기구들에서 노동자 민중의 대표는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묻는다면, 레닌의 비판이 사태의 핵심을 찌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처럼‘협소할 수밖에 없고 빈자들을 슬며시 배제하며, 따라서 철두철미하게 위선적이고 허위에 찬 민주주의’(국가149-150), 노동자 민중을 주요 정치적 결정에서 배제하고, 자본축적을 제일원리로 삼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자본독재라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4
독재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자신도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선뜻 옹호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정치현실이다. 이러한 분위기 탓인지 국내의 몇몇 맑스 연구자들은 맑스가 추구한 미래사회는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었다고 주장하고, 이에 근거해 구소련 등의 현실사회주의체제에 대해 청산주의적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맑스 자신은 분명히 그와 다르게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놓여 있다. 이에 상응하여 정치적 과도기가 있게 되는데, 이 시기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국가147, 고타385-386) 엥겔스 역시 “파리 코뮌을 보라, 이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였다”(내전297)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맑스주의를 계급투쟁 이론에 국한하는 것은 맑스주의를 삭감하고 왜곡하는 것이며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독재까지 인정하는 사람만이 맑스주의자이다.”(국가68-69)
맑스주의자 여부를 떠나, 자본의 전방위적 지배 곧 자본독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너머의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추구한다면, 또 자본권력 스스로는 작은 기득권조차 포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했다면, 그래서 자본권력을 범사회적으로 제어할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그리하여 다수 노동자 민중을 착취대상으로 삼고 생존을 위한 소외노동의 전쟁터로 내몰아온 자본독재를 역사박물관으로 보내고자 한다면, 사회의 절대다수인 노동자 민중이 지배하는 국가, 프롤레타리아독재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독재는 자본주의적 착취자들 내지 자본권력의 저항을 제압하고 권력을 노동자 민중이 독점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 점에서 계급지배 도구로서의 국가라는 성격은 남아 있다. 다른 한편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는 노동자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즉 소수를 위한 자본축적의 효율성이나 지속성 따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권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체제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부자를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처음으로 빈자를 위한 민주주의,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가 되는 그런 민주주의를 엄청나게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억압자, 착취자, 자본가의 자유에 대해 일련의 제한을 가한다.”(국가150) 이 점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분리되지 않는다. “이 시기의 국가 역시 불가피하게 새로운 종류의 민주적(프롤레타리아트와 무산자 일반을 위한) 국가이자 새로운 종류의 독재적(부르주아지에 대한) 국가여야 한다.”(국가70) 달리 말하자면 “인민의 절대다수를 위한 민주주의 그리고 인민의 착취자⋅억압자에 대한 폭력적 억압, 즉 그들을 민주주의로부터 배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민주주의가 겪게 되는 변화이다.”(국가151)
현실적으로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이러한 과제를 얼마나 철저히 수행할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정권교체가 자본권력의 유지에 타격을 주지 않듯이, 프롤레타리아독재체제에서도 권력을 장악한 소수가 자본독재를 대신하여 노동자 민중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예컨대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당독재 혹은 일인독재를 떠올릴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위험을 의식하고 그것을 막는 방안으로 파리코뮌의 의의를 검토한다. 그는 파리코뮌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평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엥겔스는 「프랑스 내전」의 1891년 서문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노동계급이 일단 지배권을 획득하면 낡은 국가기구를 가지고는 해나갈 수 없다는 것, 이제 막 쟁취한 지배권을 또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지신들을 억압하는 데 이용되어온 모든 낡은 억압기구를 폐지하여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대의원들과 공직자들을 누구나 예외 없이 어느 때라도 소환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예방조치를 취해야만 한다는 것을 코뮌은 처음부터 인정해야만 했다.”(국가132, 내전295) 여기서 폐지되어야 할 주요 ‘낡은 억압기구’는 상비군⋅경찰⋅관료다. 레닌은 이 폐지될 국가기구들 대신에 “여전히 국가기구이기는 하지만 좀 더 민주주의적인 국가기구를, 즉 무장한 노동자 대중이 모든 인민을 포함하는 민병대를 형성하는 식의 국가기구를 수립”해야 한다고 본다.(국가166)
아울러 레닌은 사회의 심부름꾼이 주인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파리코뮌이 취한 방책들의 의의를 높이 평가한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온갖 종류의 교제비와 관료의 모든 금전상 특권을 폐지하고 모든 국가 공직자의 보수를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인하하는 등 맑스가 강조한 코뮌의 조치들이다. 바로 여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억압자의 민주주의에서 피억압계급의 민주주의로, 특정 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특수한 권력’으로서의 국가에서 인민의 다수, 즉 노동자와 농민의 일반적 권력에 의한 억압자의 억압으로의 전환이 매우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국가82) 파리코뮌의 이러한 조치를 레닌은 다음과 같이 응용하기도 한다. “전체 국민경제를 우편 사업 조직과 같이 조직화된, 무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제와 지도하에 있는 기술자, 감독, 부기 계원 및 모든 공무원이 ‘노동자 임금’ 이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당면 목표이다. 이것이 국가이며, 이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국가의 경제적 기초이다.”(국가92)
이러한 조치들이나, 대의원들과 공직자에 대한 선출 및 소환제는 프롤레타리아독재(민주주의)의 확대과정에서 얼마든지 실현가능해 보인다. 또 파리코뮌이나 러시아혁명기의 소비에트를 돌아보면 ‘무장한 노동자 대중’이 낡은 국가기구를 대신할 역사적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핵미사일을 비롯해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을 갖춘 오늘의 상비군을 무장한 노동자 대중 또는 민병대로 대신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오늘날 노동자 대중의 ‘무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현실사회주의국가들도 결국 자본주의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상비군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지, 상비군을 끊임없이 양산해온 제국주의적 전쟁산업 자본을 제압할 방법은 무엇인지, 등등의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구체적 답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난제다.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제국주의적 자본권력을 제압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획기적 성장이 이러한 난제의 해결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풍요로운 평등사회를 향해 도약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취하는 가장 중요한 조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불가능하도록 자본가들로부터 생산수단을 수탈하여 사적 소유를 폐기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수탈을 위한 방식은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할 수 있으며, 노동자 민중이 적극 동참할 만한 그 구체적 경로를 밝히는 일 역시 오늘의 당면과제다. 그러나 맑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지적했듯이, 생산수단이 사회 전체에 속하게 되더라도 아직 자본주의의 태반이 남아 있는 초기 단계에서는 완전한 평등이 구현되지 않는다. 물론 그래도 자본주의적 착취의 소멸을 통해 평등의 조건은 결정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레닌은 이 사회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그린다. “여기서는 모든 시민이 무장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의 피고용인이 된다. 모든 시민은 전체 인민을 포괄하는 하나의 국가 ‘신디케이트’의 피고용인과 노동자가 된다. 문제는 그들 모두가 노동의 기준을 정확하게 지키며 평등하게 노동하고 평등하게 보수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계산과 통제는 자본주의에 의해 극도로 단순해졌다. 즉 감독과 기록, 기본적인 사칙연산, 해당되는 영수증 발급 등과 같이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극히 단순한 사무가 되었다.”(국가167)
레닌은 이러한 사회를 ‘평등하게 노동하고 평등하게 임금을 받는 하나의 사무실, 하나의 공장’이 될 것이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 경멸감을 품고 자유와 다양성을 외칠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도 이러한 상태를 최종 목표라고 보지는 않는다. “자본가들을 타도하고 착취자들을 제거한 후 프롤레타리아트가 사회 전체에 보급하게 될 이 ‘공장적’ 규율은 결코 우리의 이상이나 최종 목표가 아니며, 단지 사회에서 비열하고 추악한 자본주의적 착취행위를 근본적으로 일소하고 그리하여 한층 전진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국가168) 레닌의 최종 목표도 맑스가 설정한 공산주의의 높은 단계, 즉 분업에 대한 종속 및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대립이 사라지고, 노동이 생활의 제1차적 요구로 되어 사회가 자신의 깃발에 ‘누구나 능력에 따라, 누구에게나 필요에 따라!’라고 쓸 수 있는 단계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러한 단계의 풍요로운 삶에는 자연과의 행복한 관계 형성, 이제까지 인류가 겪어온 고통들에 대한 공감 능력의 증대 등도 포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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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민주주의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즉 “민주주의는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가 아니라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여러 단계 중 하나일 뿐”이며 “단지 형식적 평등만을 의미할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국가165) 또한 민주주의도 궁극적으로는 소멸하리라고 본다.(국가152)
그러나 레닌은 민주주의 및 민주공화제의 중요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파리코뮌의 주요 조치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공직자가 예외 없이 선출되며 어느 때나 소환될 수 있다는 것, 그들의 보수를 보통의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러한 단순하고 ‘자명한’ 민주주의적 조치에서 노동자의 이익과 농민 대다수의 이익은 완전히 일치하며, 동시에 이러한 조치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교량 역할을 한다.”(국가84) 여기서 레닌은 변증법적 양질 전환의 사례를 확인한다. “민주주의는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완전하고 철저하게 수행될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전화하며, 국가(특정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특수한 권력)에서 더는 고유한 의미의 국가가 아닌 어떤 것으로 전화한다.”(국가81-82)
파리코뮌을 떠나서도 레닌은 민주주의의 기능을 변증법적으로 파악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 사이의 평등, 즉 국가구조 결정과 국가 관리에서 모든 사람의 평등한 권리에 대한 형식적 인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민주주의가 특정한 발전 단계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적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를 결속시키며 그들에게 상비군과 경찰과 관료제라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설사 부르주아 공화주의적 국가기구라 해도−를 타도⋅분쇄하여 지구상에서 절멸시키고 그 대신 여전히 국가기구이기는 하지만 좀더 민주주의적인 국가기구를, 즉 무장한 노동자 대중이 모든 인민을 포함하는 민병대를 형성하는 식의 국가기구를 수립할 가능성을 준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국가166)
레닌은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만일 실제로 모든 사람이 국가 관리에 참여한다면 자본주의가 더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전은 그 자체가 ‘모든 사람’이 국가 관리에 실제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조건들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전제조건에 속하는 것은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실시된 바와 같은 완전한 보통교육이며, 또한 우편, 철도, 대공장, 대상업, 은행업 등의 거대하고 복잡하고 사회화된 기관에 의한 수백만 노동자들의 ‘교육과 훈련’ 등이다.”(국가166-167) 이런 관점에서 그는 “민주주의를 철저히 발전시키고 이러한 발전형태를 탐구하며 이러한 형태를 실천함으로써 시험하는 것 등−이 모든 것은 사회혁명을 위한 투쟁의 주요 과제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국가134) 물론 오늘의 보통교육이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전제가 될지, 아니면 자본권력을 강화하고 임금노예를 대량양성하는 데에 머물지는 교육내용 및 교육과정,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전개과정 및 변혁운동의 발전에 의존할 것이다. 이때 운동 과정에서부터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을 운동의 중심 원리로 삼는 것은 운동의 사활이 달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레닌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참조할 수 있다. “ “사회주의는 민주주의 없이는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1)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할 수 없고, (2) 일단 승리한 사회주의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행하지 않으면 승리를 견고한 것으로 만들 수도, 또 인류를 국가의 소멸로 이끌어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양질 전환의 논리를 레닌은 도처에서 구사한다. 다음 지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민주주의는 단지 형식적 평등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생산수단 소유와 관련해 사회의 모든 성원의 평등 즉 노동 평등, 임금 평등이 실현되자마자 곧 인류 앞에서는 형식적 평등에서 실제적 평등으로, 즉 ‘누구나 능력에 따라, 누구에게나 필요에 따라’라는 원칙의 실현으로 전진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다.”(국가165)
이처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레닌은 민주주의를 의회주의와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는 선출직 공직자가 남아 있는 한 사회주의에서도 관료제도가 남아 있으리라고 보고, 파리코뮌 식의 ‘원시적’ 민주주의 대신 관료제와 결합된 의회주의를 옹호한다.(192-193) 이에 맞서 레닌은 다시 파리코뮌을 불러낸다. 즉 파리코뮌이 입법과 행정을 동시에 담당했던 사실을 근거 삼아, 레닌은 의회제를 탈피하는 길은 “대표기관들을 수다 떠는 장소에서 ‘일하는’ 단체로 바꾸어놓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국가86-87) “대의기관이 없는 민주주의란 생각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르주아사회에 대한 비판이 빈말이 아니라면,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전복하려는 노력이 진지하고 진심 어린 것이며 멘셰비키나 사회혁명당원, 샤이데만이나 레긴, 상바, 반데르벨트처럼 노동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 구호가 아니라면, 우리는 의회제 없는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국가89)
의회제 없는 민주주의 혹은 의회를 일하는 단체로 바꾸어놓는 민주주의는 ‘원시적’ 민주주의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은 이 ‘원시적’ 민주주의의 사회주의적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상한다. “사회주의에서는 ‘원시적’ 민주주의의 많은 것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에서는 문명사회의 역사상 처음으로 주민대중이 일어나 투표와 선거뿐만 아니라 일상적 행정 사무에도 자주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통치하게 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 곧 익숙해질 것이다.”(국가193)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통치’하는 사회, 나아가 ‘통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 익숙해진’ 사회, 계급지배 도구로서의 국가와 아울러 민주주의조차 필요 없어진 사회는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 어쩌면 언제까지나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척도에 근거해 현실사회주의를 자본독재와 동렬에 놓거나, 사회주의 자체를 공상과학이나 정치범죄의 영역으로 몰아넣는 것은 자본권력의 악의적 선전에 공손히 말려드는 짓이다. 그러기에는 자본주의적 지배관계가 너무 험악하지 않은가. 자본주의 자체가 끊임없이 생산하는 모순과 대중적 고통과 위기가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의 원천이 되고, 풍요로운 평등사회에 대한 꿈을 강요하지 않는가.
2020.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