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덕후'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된다. '덕후'란 일본어인 '오타쿠(御宅)'의 발음을 변형시킨 신조어로, 생각해볼수록 괴이한 조어(造語)다. '덕질'이란 말로도 파생돼 널리 사용된다.
아예 일본어가 그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많이 쓰는 '코스프레'라는 용어는 일본 조어다. "의상이나 분장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연극이나 영화 혹은 발레 등"을 지칭하는 외래어 '코스튬 플레이(コスチューム·プレー)'를 '코스프레(コス·プレ)'로 줄인 말이다. 최근 자주 거론되는 '츤데레(ツンデレ)'와 '간지(かんじ)'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일본 용어들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계기는 주로 TV 방송이나 신문 등의 미디어가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TV 방송에서 유명한 진행자들이 아무런 설명이나 해석도 없이 무비판적으로 일본 외래어를 마구 사용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 일제에 의해 강요된 용어, '서거(逝去)'
우리 사회에서 '서거(逝去)'라는 말은 "명성이 높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다"의 뜻으로 존경심을 담아 사용되고 있다.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지나가다', '사라지다', '소실되다'의 의미다. 중국에서 '서거(逝去)'는 '가버린 사랑'이나 '지나간 나날들', '잃어버린 기억' 등으로 쓰인다.
일제 강점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서거'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서거'라는 용어는 성종 때 일본의 태수가 보낸 서찰에 자기들 관리가 '서거'했다고 서술한 내용만 발견된다. 즉, '서거'는 일본에서만 사용되던 용어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신문 <매일신보>와 <신한민보>는 각각 '훙거'와 '붕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순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승하(昇遐)'라고 썼다.
그런데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이 쓴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 검거에 관한 보고서'는 '6.10 만세운동'을 언급하면서 "창덕궁 주인 '서거(逝去)'에 즈음하여"라고 서술했다. 당연히 조선 국왕의 격을 낮추려는, 그리하여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격을 낮추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용어인 셈이다.
일본은 일왕의 죽음을 '서거(逝去)'가 아닌 '붕어(崩御)'로 표기하며, 왕족과 종3품 이상의 공경(公卿, 뒷날에는 무사도 포함)의 죽음은 '훙거(薨去)'라고 기록했다.
■ ‘심리적 복속'을 뜻하는 '귀화(歸化)'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현재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그 나라의 국민이 되는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귀화(歸化)'의 의미는 원래 "군주의 공덕(功德)에 감화를 받아 그 신민(臣民)이 되거나 귀속하는 것, 혹은 그 문화 체계에 감화돼 스스로 복속하는 것"으로, '귀순(歸順)' 또는 '귀부(歸附)'와 뜻이 통하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의 '귀화'는 '왕화(王化)'라는 용어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귀화'는 '감정의 동화나 복속, 또는 귀순'이라는 뜻을 내포한 감정적·주관적 범주의 용어이며, 그 자체로 봉건성이 강해 현대의 공식 법률용어로 쓰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하다. 귀화가 우리나라에서 국적 관련 법률 용어로 정착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일본에서 '귀화(歸化)'라는 용어는 한때 "천황에 귀속하다"라는, 황국사관적인 의미로 사용돼왔다. 더구나 일본에서 '귀화인'이란 "천황의 덕을 흠모하여" 일본으로 건너온 한반도인들을 지칭하는 '일본 중심적' 용어였다. 그래서 왜 이러한 용어를 한국에서 사용하는지에 의문을 품는 일본인들도 있다. 중국에서는 '귀화'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 그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의미로는 '입국적(入國籍)'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고 했다.
'귀화'나 '덕후'라는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 언어 기본과 체계가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는 '슬픈 상징'이요, 증거다.
언어의 사회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말과 글을 강제로 빼앗긴 역사를 지닌 민족으로서 말과 글의 소중함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민족 문화란 모름지기 말, 즉 언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며, 자국어의 '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서는 민족 문화와 민족정신이 제대로 발전해나갈 수 없다.
언어는 개념을 만들고, 언어생활은 사고를 규정한다. 언어란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문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다. 언어는 국가 주권의 주요 구성요소이자 사회연대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출처 : 불교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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