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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영적인 권위(눅20:1-8)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오시자마자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청결을 하셨어요. 성전청결은 어느 시대에나 부담이
가는 일입니다. 성전이 청결의 대상이라면 그 시대는 영적인 타락의 시대-영적
어둠의 시대(dark age)입니다. 중세 시대만 영적 암흑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
까? 지금 한국교회는 어떤가요? 우리교회는 어떻습니까? 주님이 언제 오셔도,
우리교회는 청결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알 수 없어도, 주님은 이미
다 아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유대 종교인들과의 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
습니다. 주님의 성전청결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충돌이었어요. 유대 종교인들이
결집하여 주님을 죽이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성전청결을 하면 자신이 엄청난 고난당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전지전
능하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일을 너무 잘 아셨어요. 주님은 이 일 후에 어떻
게 될 줄을 아시면서도 끝내 성전청결을 행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은 참
선지자이시며 메시아이십니다. 주님은 고난이 두려워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피
하지 않으셨어요. 이렇게 사셨던 주님은 세상의 빛이 되시고 소금이 되셨습니
다. 세상은 고난을 피해 가는 것을 지혜롭다고 합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너
무 지혜로워서 주님처럼 진리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처럼 고난 받는 대
가지불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주님처럼 참 선지자
가 되지 못했습니다.
2. 홍정길 목사나 이동원 목사 등 복음주의를 대표했던 목회자들이 은퇴 후 이
사실을 고백했어요. 사회정의와 진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교회성장운동에만
매진했다고. 주님과 달리 참 선지자가 되지 못한 한국교회는 빛을 발하지 못했
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어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습니다. 마5:13 주님의 말
씀대로.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타락은 지혜로운 거짓 선지자들이 진리를 선
포하지 않고 침묵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가 타락하기 전에는 고
난당하는 참선지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이 진리를 선포하며 빛과 소금역할을 다
했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서 기대도 되는 곳으로 인식했습니다. 교회든 성
당이든간에요.(구교-신교 할 것 없이)
특히, 명동성당과 김수환 추기경께서 이 역할을 잘해주셨습니다. 세상은 김수환
추기경을 바보라 불렀습니다. 그는 지혜롭지 못한 신부님이셨습니다. 그는 가난
한자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어요.
독재 정권의 하수 역할을 하던 경찰이 명동 성당에 진입했을 때 이들을 체포
하려면 나를 먼저 밟고 가야 할 것이고, 그 다음은 신부들을 밟고 가야 할 것
이고, 그 다음에는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지혜롭지 못
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은 대한민국이 낳은 참 선지자, 참 성자, 참 목자이셨
습니다. 이런 삶은 개신교 성자라 불리는 한경직 목사가 흉내 낼 수 없는 모습
이었어요. 한경직 목사님은 정직한 사랑의 사도는 되었지만-이것만으로도 참
훌륭한 목사님이셨지만, 세상이 그를 향해서 기대도 될 만한 선지자는 되지 못
했어요.
3. 홍정길, 이동원 목사와 더불어 복음주의를 대표했던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는 생전에 사회정의에 외면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것은 예
언자적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 자기는 그런 은사가 없다고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대형교회를 일군 목회자이지만, 참 부끄러운 말을 남겼습니다. 무책
임한 말이었어요. 그의 관심도 교회성장밖에 없었던 탓이죠. 한국교회는 1990년
대 전까지는 그래도 교회가 고난을 당해도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1990년 이후에
는 급격히 교회가 세속화되었어요.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타락하고 말았을까요?
개 교회성장과 부흥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이에요. 지난 30년 사이 교회는 거대한
기득권층을 형성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대통령도 나왔고, 국회의원수도 많이 늘었고, 대기업 총수들
도 있고, 교회자체도 일부 대형화 되며 왜만한 기업과 같은 교회도 있습니다.
교회성장이 되면서 교회는 세상이 더 이상 신뢰하고 기댈만한 곳이 되지 못했
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심은 대로 거둔 것입니다. 1990년대 이후 예수
님처럼 진리를 선포하고, 사람들을 품어주는 참선지자들이 점점 사라졌기 때문입
니다. 예수님이 성전청결을 하시자 유대종교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
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4.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주님의 권위에 대해서 물었어요. 주님의
가르침의 능력과 권위는 백성들이 이미 인정했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
로들도 깜짝 놀랄 만큼 인정하였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시비를
걸었습니다. 권위, 엑수시아는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네가 메시아처럼
성전을 청결하고, 가르치고, 병을 고치는 능력의 권위가 누구에게서 온 것이
냐? 또 하나는 자기들의 권위와 비교해서 너는 우리처럼 배우지도 못했고, 성직
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을 하느냐고 비웃은 것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에
서 유대 종교인들을 향해서 감히 선지자적인 메시지를 선포한 선지자가 없었
습니다.
그들의 부정부패한 모습을 알고 당하면서도 감히 그들의 권위에 도전한 이가
없었어요. 영화 베테랑을 보셨나요? 악역을 맡은 주인공-재벌 3세의 만행이
이어지죠.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고, 하는 일마다 제 맘대로 하며 온갖 죄를
저지릅니다. 경찰이나 언론도 이 재벌 3세 행동에 엄정하게 대처하지 못하고요.
이때 열혈형사 황정민이 등장하지요. 막무가내 재벌3세를 체포하려고 뛰어듭니
다. 재벌 눈치를 보는 동료 형사들과 갈등을 빚으면서. 자신을 체포하려고 뛰어
든 열혈형사에게 하는 재벌3세가 말합니다. ‘알량한 형사 주제에 뒤 감당이나
하겠냐’고. 죄나 짓는 철없는 아이가 법을 집행하는 경찰에게 하는 말이 기가
막히죠! 주인공 형사가 한 방 날립니다. 죄는 짓지 말고 삽시다-죄 지으면 반드
시 너를 체포해서 형벌을 받게 하겠다고. 열혈형사가 막무가내인 재벌3세를 체
포하는 것을 영화가 끝나죠. 일개 형사가 불의를 척결하고자 뛰어든 영화, 신
나잖아요. 13,414,200명이나 보았습니다.
5. 예수님이 당시 무소불위의 권세를 행사하던 유대 종교인들 앞에서, 성전에
오시자마자 가차 없이 성전청결을 행하셨습니다. 유대종교인들이 당황하였어요.
그들이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도대체 네가 누구인데 뒤 감당도 못할 일을
하느냐? 말이나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들에게
답한 말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질문한 이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셨기에 그들이 아무 대응을 하지 못하고 물러갔을까요? 3-4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
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주님은 자신의 권위에 대해 말하지 않고, 세
례 요한의 권위에 대해 너희가 말해보라고 역질문을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미 헤롯 왕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권위는 아직까지 유대인
들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권위가 무엇이었습니까?
영적인 권위입니다. 영적인 권위는 하늘부터 옵니다. 세례 요한이 선포한 말씀에
성령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사람-선지자였어요. 요한은
거칠게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독사의 자식(사탄의 자식)들아 하며...
유대인 청중들은 그의 거친 설교를 들을 때 그에게 돌을 던지거나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 청중들은 요한의 회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초청에 따
라 물가로 나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6. 예나 지금이나 세례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신앙고백을 해야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구든지 예수를 주시
라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자만이 예수님을 주라 부르
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어요. 주라는 말은 구주(savior)라는 말도 있지만, 내 삶
의 주인(Lord)으로 모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처음 구원받을 때는 구주가 되시
지만, 구원받은 이후는 내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구주:주인, 10:90이 되어야) 예
수님은 세례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냐,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냐고
유대 종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들이 답을 하면, 주님께서도 답을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답을
해야 했어요. 그들 사이에 토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세례 요한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를 잘 알았습니다. 자기들과 같은 제사장 출신이었기에, 세
례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한의 권위를 인정하면 예
수님의 권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진퇴양난이었습니다. 토의 결과는 5-6
절,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 하여 그를 믿
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고 하고.“ 예수님의 기가 막힌 질문
에 그들이 할 말을 잊었습니다. 주님의 지혜는 놀랍고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도 않고, 그렇다고 땅에 속한
것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주님은 자신이 권위 자체이시고, 사람들에
게 권위를 주시는 분-권위 수여자(giver of authority)이심을 밝히셨어요.
7. 그들이 내린 결론은 7절,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종교인들이 정직
하게 답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답을 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답변에 능했
습니다. 실제로, 유대종교인들은 정치인들이었습니다. 모양은 종교인이었지만
실상은 정치인들이었어요. 산헤드린 공의회는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기관
이었습니다. 7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오늘날 국회와 비슷한 기능입니다. 70명의
대부분이 종교인들이었어요. 그들은 막강한 권세를 행사했습니다. 당시 유대종
교인들의 문제는 그들에게 영적인 삶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와서 유대 전역에 영적 대부흥을 일으킬 때에도 그들은 냉담했습니다. 요한을
통한 영적 부흥은 유대 역사에 400년 만에 임한 것이에요.
요한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어요.
백성들은-민중들은 요한의 메시지를 들을 때 그대로 믿고, 죄를 회개하는 세례
를 받았습니다. 언제나 백성들은 순진합니다. 문제는 종교 지도자들이 이 모든
영적 부흥의 때를 스스로 외면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교만하고 타락했는가
를 주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답답한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를 우리가 나누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앞서고 백성들이 뒤따라야 하는데 거꾸로 되었어요. 물론 이
런 모습이 당시 이스라엘 역사에서 처음이 아닙니다. 오늘 한국교회 목회현장
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광경이에요. 저도 전통교회에서 어처구니없는 모
습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8. 그들이 차라리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책임은 면할 수
있었죠. 그들이 차라리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영적인 지도자가 먼저 깨어 있어야 했는데, 무지한
사람들보다도 못했으니 말입니다. 종교인들이 정치인들이나 되고 만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영적인 권위를 보면서, 오늘 우리교회와 한국교회가
영적인 권위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고 촉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에게 놀라운 영적인 권위를 주셨습니다. 요한이나 예수님은 대형교회 목
회자가 아니었어요. 영적인 권위는 교인수나 재정이 많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수가 많지 않았어요. 제자 수는 적었지만, 온 이스
라엘이 요한과 예수님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영적 권위를 인정했어요.
영적인 권위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영적인 권위
를 주실까요? 이것을 행하면 한국교회가 주님이나 세례 요한과 같은 영적인 권
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으면 사회가 부패합니다. 교회가
타락하게 되는 것은 그 교회에 말씀이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성전청결
을 하시고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이 없다는 것은 설교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설교 없는 예배는 있겠습니까? 설교는 하지만, 사람의
말 뿐이요. 세상풍속, 세상 이야기, 세상 성공 스토리 등 하나님 없는 이야기만
난무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의 이야기, 하나님
의 나라만 말씀하셨어요.
9.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라고. 천국복음을 가르치시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
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어요. 사
람들은 병을 고치는 주님의 능력에만 놀란 것이 아니고, 주님의 가르치심에 놀
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능력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완전한 인격을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영적 권위는 주님처럼 능력(실력)과 인격을 겸해서 갖춰야 따릅
니다. 예수 님은 완전한 하나님-완전한 사람이세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
위가 그에게 있었어요. 오늘 한국교회의 영적 권위는 주님을 닮으면 됩니다. 주
님을 닮을수록 우리가 주님처럼 될 수는 없지만, 영적 권위는 회복되고 교회는
생명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되찾으면, 사회의 부패도 사라집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사회도
건강하게 변해요. 교회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기 때문입니다. 눅9:1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며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습니
다. 예수님은 권위의 수여자이시고 우리는 그의 권위를 받는 수혜자가 되었습니
다. 권위는 능력이나 역량을 말합니다. 또 허가를 받아 소유하는 자격을 의미합
니다. 우리는 권위를 주신 주님과 친밀한 교제 관계에 있을 때 권위가 보존될
수 있어요. 주님과 교제가 멀어지면 권위도 사라집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영적 권위를 거둬 가실 수도 있습니다. 사울 왕과 같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져 살면.(자기 멋대로 사는 인생)
10. 권위는 한 번 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발전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반면,
교회가 권위를 잃으면 아무 힘이 없습니다. 권위는 그대로 두면 점차 사라지고,
타락하면 완전히 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
켜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타락하지 않는 거룩한 삶(회개), 평생
겸손한 마음과 섬김, 엄격한 자기 훈련(말씀과 기도로), 비전을 잊지 말고, 매일
하나님 앞에 결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살고, 남을 살리고, 포
항 땅을 거룩하게, 통일 후 선봉에 서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