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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군복무를 할 때 있었던 일이다. 야외훈련 중에,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목표지점을 향해 밤새도록 행군을 하였다. 그런데 새벽녘이 되어서, 목표지점에 거의 다 왔겠다고 생각되는 시간에, 지도를 보며 행군대열을 선도하던 하사관이 길을 잘못 든 것 갔다고 했다. 행군대열이 멈춰 섰고 팀장과 담당 하사관이 주변 지형과 지도를 면밀히 살펴본 다음 목표지점과 거의 반대 방향으로 왔다고 했다. 야간에 산악지역을 행군하다 보니 북서쪽으로 간다는 게 그만 남쪽으로 행군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밤새 걸은 만큼 되돌아가서 다시 목표지점으로 가야 했다.
우리 인생에서 이런 일들이 적지 않다.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고 달렸는데,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을 향하여 달려갈 때가 있다. 되돌아가서 다시 원래의 목표를 향해 다시 달려가려면 그만큼 시간과 힘이 더 많이 든다. 그러다 보니 잘못 달려왔다는 것을 알고 되돌아간다고 하지만,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에 멈추는 경우도 있고, 잘못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표를 명확히 하고, 목표를 행해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고 힘을 쏟는다. 이 노력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앞으로 이루어야 할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구체적인 목표와 세부 실천 방안으로 나아간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질문하며 그 대답을 찾아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찾는 과정을 지나면서 각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 존재 이유, 삶의 목적과 목표, 삶의 방식 등을 정립해 간다.
질문과 대답 사이의 공간은 각 사람의 삶에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다. 이 공간에는 가정환경, 사회 풍조, 국가이념, 종교, 철학 등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또한 그러한 상황 속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각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존재한다. 어떠한 상황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관(가치관)이 정립된다. 이렇게 정립되는 인생관에 따라 각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 각자 자신의 인생관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상황 및 사람의 선택과 결정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고 각 사람의 평생에 걸쳐 지속된다. 상황도 바뀌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의 생각도 바뀐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관도 바뀌고 삶의 양태도 바뀔 수 있다.
그 옛날 군주국가 시대에는 국가가 국민들의 가치관 형성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특정 종교나 이념이 국가 사회를 지배하고, 각 사람의 가치와 삶이 그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 안에서 각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고 있다. 각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강요에 의해서 가치체계를 형성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인생관을 세워간다. 어떤 종교나 이념, 상황이 개인의 선택과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겠지만 강제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질문과 대답 사이의 상황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질문과 대답 사이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자유, 정의, 평등, 평화, 진실, 사랑 등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이 희박해지고, 원칙과 상식이 실종되고 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사라지고 있다.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한다. 나와 함께 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고 한다. 내가 절대선이고 내 편만 옳고, 나와 다른 쪽은 악인이고 죄인이라고 비난한다. 진실을 거짓이라고 하고, 거짓을 진실이라고 한다. 나라가 온통 뒤죽박죽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게 될지 무척 염려가 된다.
질문과 대답 사이의 상황이 이렇게 악화 되어 있는 책임의 상당 부분은 정치계를 비롯하여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의 잘못된 행태가 하루에도 여러 번씩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보여진다. 그렇다고 정치인들만 잘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종교계는 어떠한가?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종교계는 자유, 정의, 평등, 평화, 진실, 사랑의 실천에 얼마나 앞장서고 있는가? 종교인들이 원칙과 상식을 지키며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가? 원칙과 상식을 파괴하고 선을 악이라 하고 악을 선이라고 하지는 않는가? 종교인들 가운데 정치계에 편승하여 편 가르기를 거드는 이들은 없는가? 종교계에도 책임이 있고, 잘못된 일들을 방관하다시피 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은 물론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모두가 함께 질문과 대답 사이의 상황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질문과 대답 사이의 상황을 원칙과 상식이 바로 서고 자유, 정의, 평등, 평화, 진실, 사랑 등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관이 우리 사회의 바탕에 자리하도록 힘써야 한다.
질문과 대답 사이의 상황이 좋은 내용, 바람직한 내용, 아름다운 내용 등으로 채워지면 그 가운데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대답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각 사람의 인생관이 그러하고, 각 사람의 삶이 그러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행복한 세상, 살기좋은 나라를 꿈꾼다.
출처 : 아산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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