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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12코스 호암산 코스는 호암산 자락길을 걷는 코스로 높이 385m의 호암산은 서울 시흥동과 신림동, 경기도 안양시에 걸쳐있는 관악산 서쪽 끝 봉우리다.
호암산이란 이름은 산세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여 유래된 것인데, 고려를 뒤엎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1394년)가 개경(개성)을 버리고 서울(한양)로 도읍을 옮겨 와서 주변 지형을 살피니 한강 남쪽에 호랑이를 닮은 호암산과 활활 타오르는 불 모양의 관악산(629m)이 사이좋게 서울을 노려보고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서울을 크게 위협하는 존재로 보았다고 한다.
“또 무너졌구나..”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며 한양에 궁궐을 세우려 했으나 그 궁궐이 밤마다 무너졌다. 전국의 장인들이 모였음에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깊은 어둠 속에서 반은 호랑이, 반은 알 수 없는 형체의 괴물이 나타났다.
태조의 군사들은 화살을 쐈지만 그 괴물은 화살을 아무리 맞아도 끄떡없이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그 날 밤, 침실에 들어선 태조는 절망했다. “한양은 내가 도읍할 곳이 아닌가보다..” 그 때 태조 방 밖에서 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입니다” 깜짝 놀란 태조가 밖으로 나가보니 달빛아래 흰수염의 노인이 서있었다. 그 노인은 한강 남쪽의 한 산봉우리를 가리켰는데 그 산봉우리는 궁궐을 무너트리던 괴물 호랑이의 머리를 하고 한양을 굽어보고 있었다.
“호랑이의 약점은 꼬리이니 저 산봉우리의 꼬리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 태조는 그 곳에 절을 짓기 시작했고 그 절을 호압사(虎壓寺)라고 명하였다.
서울이 한 눈에 들어오는 호암산 정상에 오르고 싶지만 포기하고 호압사로 내려선다. 호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로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당시 산세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 호환이 많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호갑사 또는 호암사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고, 다만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이 상궁 남씨와 유씨의 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한 기록이 있다. 1935년 만월이 약사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호압사를 뒤로 잣나무 삼림욕장이다. 전체크기 50,000㎡에 달하는 호암산 삼림욕장에는 다양한 쉼터와 피크닉장 등이 있어 가족과 함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무장애숲길을 따라 걷는다.
호암늘솔길이다. 호암 늘솔길’은 SNS 시민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름으로,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끄는 보행약자들도 숲을 이용해 정서적 안정과 심신 치유를 누릴 수 있는, 늘 솔바람이 부는 걷기 편한 길이란 뜻이다. 호암산 잣나무 산림욕장의 산림자원을 중심으로 데크로드가 조성됐다.
호암산인공폭포다. 시원한 물줄기는 오늘도 볼 수가 없다. 호암산 폭포는 2011년 여름 집중호우로 산사태로 노출된 자연암반에 만든 폭포라고 한다. 운행시간은 9시 ~ 9시 30분, 12시 ~ 12시 30분, 15시 ~ 15시 30분 하루 세 차례다.
신선길을 걷는다. 신선길은 시흥동 지역에서 기도를 올리던 장소로 유명하다. 우리 민속신앙에서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 땅 위에 산과 들, 바다와 계곡, 마을의 우물, 바위와 고목, 집안의 대들보와 부뚜막, 심지어 화장실과 굴뚝에까지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많은 돌탑이 쌓여 있는 신선길은 우리나라 민속신앙의 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수원이 고갈된 옹달샘 약수터를 지난다. 때죽나무 연리지는 그냥 지나쳐 버린 것 같다. 불로천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해결한다. 이제 끝날 것만 같은 길은 오르내림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긴 내리막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호암산 숲길공원에서 또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든다.
오늘은 어쩌다가 깜박 잊고 디카를 집에 두고 길을 나서는 바람에 영상을 남기지 못해 아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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