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태초에(뻬레쉬트)”는 언제인가?
- 요1:1의 ‘태초’와는 같은가, 다른가?
① “태초에”의 시점(時點)
a. ‘태초에(히, 뻬레쉬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ⅰ. ‘뻬레쉬트(태초에)’는 창세기는 물론 모든 성경의 첫 단어이다.
ⅱ. 이 단어는 ‘뻬’와 ‘레쉬트’의 합성어이다. ‘뻬’는 영어의 ‘인’(In)에 해당한다. ‘레쉬트’는 시작, 근본, 으뜸 등의 뜻이다. 따라서 ‘뻬레쉬트’는 직역하면 ‘시초에’이다.
ⅲ. ‘뻬레쉬트’가 말하는 시초는 시간(또는 공간)이 이제 막 흐르기 시작한 시간의 원점(原點) 곧, 시간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곧, 시간의 개념이 없는 ‘영원의 어느 한 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시작하심으로써 개시된 ‘시간의 출발점’을 의미한다.
ⅳ. 3세기 알렉산드리아학파의 대표적 신학자 오리게네스(185-254)는 창 1장을 해설하면서 세계가 창조되기 전에는 ‘시간’이 아직 없었다고 말했다.
b. ‘태초에(헬, 엔 알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ⅰ. 창1:1의 ‘태초에(히, 뻬레쉬트)’와 요1:1의 ‘태초에(헬, 엔 알케)’는 확실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ⅱ. ‘뻬레쉬트’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로 이제 막 시간이 시작했던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키는 반면, ‘엔 아르케’는 문맥으로 볼 때 ‘시간 이전’ 곧 하나님(또는 로고스)이 선재(先在)해 계신 영원한 상태를 가리킨다.
ⅲ. ‘뻬레쉬트’가 무로부터 유가 시작됨과 동시에 이제 막 시간이 시작되는 ‘영원과 시간의 접촉점’을 가리킨다면, ‘엔 아르케’는 근본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차원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뻬레쉬트’는 ‘엔 아르케’보다 훨씬 뒤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ⅳ. 70인 역은 창1:1의 ‘뻬레쉬트’를 헬라어 ‘엔 아르케’로 번역함으로 ‘뻬레쉬트’의 의미를 제대로 구별하여 옮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② “태초에(뻬레쉬트)”의 영적 교훈
*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도 먼저 존재하심을 나타낸다.
* 태초 이전에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 시간의 피조성과 상대성을 알려 준다.
* 성경의 창조는 세계의 모든 창조 설화들과 다름을 보여 준다.
* 위의 개념들은, 성경이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계시라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a. 하나님은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도 먼저 존재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만유와 상관없이 스스로 계시며, 선재하시며, 그리고 만유를 뛰어넘어 계시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자존자시며 초월자(시공)시며 영원자이시다.
b. 태초 이전에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ⅰ. 천지 창조는 시간의 원점(原點)에서 발생했다.
ⅱ. 실로 이 세상 만물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만물은 시작이 있으며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
ⅲ. 우리 인생을 포함한 우주 만물은 시공(時空)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존재한다. 오직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그 존재의 시작이 없을 뿐이다.
ⅳ. 우리가 “하나님 이전에는?” 하고 질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의 끝에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ⅴ. 한편 어떤 것에 시작이 있다는 것은 또한 그 끝이 있음을 시사한다.
c. 시간의 피조성과 상대성을 알려 준다.
(a) 시간의 개념
ⅰ. ‘태초에(뻬레쉬트)’ 이후부터 세상에는 비로소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등과 같은 시간 개념이 생겼다.
ⅱ. 이 같은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으며, 또한 과거ㆍ현재ㆍ미래로 구별되며 한정지어진다.
ⅲ. 서방교회 최대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세계는 ‘때(시간)’와 함께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b) 하나님과 시간과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ⅰ.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 없으시면서, 또한 모든 시간(과거, 현재, 미래) 안에 동시적으로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모든 시간이란 것이 ‘영원한 현재’일 뿐이다.
ⅱ.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시간 밖에, 곧 시간을 초월해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는 시간의 개념이 무의미하다. 이것은 인간의 통상적 경험과 사고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시102:25-27).
d. 성경의 창조는 세계의 모든 창조 설화들과 다름을 보여 준다.
ⅰ. 성경만이 우주에 대한 ‘무(無)’로부터의 창조를 분명히 보여 준다.
ⅱ. 이 ‘무(無)’는 창조 이전에는 어떤 피조물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완벽한 ‘무(無)’이다.
ⅲ. 이 같은 ‘무(無)’의 개념은 그 근원이 동양적인 것도 아니고 서양적인 것도 아니며, 오직 성경에서만 가르치는 특이한 개념이다.
e, 위의 개념들은, 성경이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계시라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ⅰ. 대개의 이방 신화들은 창조의 시점(時點)에 대해 말할 때 ‘아주 오랜 옛날에’ 또는 ‘아주 먼 옛날 어느 한 때에’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ⅱ. 이 같은 표현은 이 우주가 본래 저 혼자 스스로 있게 되었다고 하는 소위 자연(自然)발생론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