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맞은 은서에게
은서야, 네가 태어난 지 오늘로 3년이 되는구나. 네 생일 축하한다. 튼튼하게 잘 자라렴.
1년 전에 네 생일을 맞아 축하 편지를 쓴 게 어제 일 같은데 어느새 한 살을 더 먹었구나. 열이 나고 기침하고 콧물을 흘려 종종 병원에 가기는 했지만 큰 문제 없이 잘 커서 고맙기만 하다. 다른 건 어째도 괜찮으니 네가 건강하기만 하면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다.
이제 너는 1년 전과 비교하면 아주 많이 달라졌다. 먼저, 말이 많이 늘어 이야기를 나눌 만큼 되었다. 요번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아줌마에게 인사하고 네 이름까지 알려 줬다고 들었다. 네가 책을 안 보고서도 내용을 하나도 안 틀리고 외우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인간 녹음기라며 감탄한다. 건강한 네 존재 자체로 행복하지만 이런 너를 보는 즐거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기다가 등장인물을 한 사람은 너, 다른 사람은 엄마나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바꿔 이야기하는 걸 들으면 소설가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내 꿈은 대학생 때까지 소설가였다. 글솜씨가 아니라 몇 권 안 되는 독서 체험이 허황된 생각을 품도록 부추겼다. 상을 타기는커녕 글쓰기 대회에 나간 적조차 없다. 다행스럽게 재능이 없다는 걸 일찍 깨달아 접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문학을 읽는 일로 밥벌이하며 즐겁게 지냈으니 내 꿈이 아주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평소에 엄마와 아빠가 많이 읽어 준 덕분이겠지만 무슨 말을 들으면 몇 번씩 되풀이하는 네 습관이 만들어 준 선물인 것도 같다. 또 책을 볼 때는 어른이 곁에 오면 방해가 될까 봐 싫어하는 네 태도도 도움이 됐을 거다.
나는 네가 뭐든지 스스로 하려고 하는 게 맘에 든다. 넌 그전서부터 유아차 타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어디 놀러 가도 걸어다니길 좋아한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네가 싫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더라. 이런 네 고집 때문에 앞으로 엄마와 많이 부딪칠 텐데 걱정이 되기도 한다. 생명은 다 겪어야 할 과정이니 아무쪼록 그때마다 지혜롭게 넘기기를 빈다. 그런데 이번에 미술학원을 그만둔 것은 잘한 일이다. 지금부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네 엄마한테도 말했다만, 내가 부모였으면 밖에서 미끄럼 타고 뛰어노는 일에 그 시간을 더 쓰도록 하겠다. 너는 책도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자는 말만 들어도 신발을 신으려고 문쪽으로 나선다. 다른 아기도 이맘때는 다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좋은 일이다.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그렇게 된단다.
새 어린이집에 잘 다니는 것도 달라진 일이다. 이번에 졸업한 어린이집에는 가지 않으려는 때가 많았다. 가기 싫다며, 엄마 말을 따르면, 대성통곡한 게 여러 번이었다. 그래서 새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많이 걱정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에는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바뀌어서 집을 나서면서 “씩씩하게 갈 거야.”라면서 다짐하듯이 외친다니 다행이다. 맞벌이 부모의 처지를 알아채고 저런 것이 아닌가 하고 애처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밝은 얼굴로 어린이집에 들어서다 돌아서서 손까지 흔든다니 우리도 마음이 놓여 덩달아 웃게 된다.
은서야, 우리는 너를 생각하거나 앞에서 볼 때마다 무슨 복이 이리 많아서 너와 같은 귀한 선물을 받았나 하며 행복해한다.
은서야, 고맙다. 다시, 네 생일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 너와 만나서 같이 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2023년 4월 9일 아침에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은서에게 쓴다.
첫댓글 은서 생일 축하합니다.
교수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어리네요.
귀한 선물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도록 빕니다.
고마워요. 양선레 선생님도 이런 즐거움을 누릴 날이 곧 오기를 빌게요. 또 연예인 옷 입을 기회도요.
은서가 아주 좋은 날에 태어났네요. 책을 좋아한다고 하니 글도 잘 쓸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받았다면 더 그렇겠지요.
은서의 세 번째 생일 축하합니다.
하하, 유전자리니요. 웃고 말렵니다.
그럭저럭 문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문장을 쓰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노력 덕분입니다.
사랑하는 손녀 은서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꿰뚫고 있네요. 멋진 아이로 건강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멋진 글도 써주고 은서는 행복하겠어요. 예쁘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행복한 마음이 듬뿍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즐겁습니다. 저도 손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은서는
행복한 기억이 쌓여 몸과 마음이 아주 건강하게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손녀를 사랑하는 교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공감하며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