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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열쇠
정 의 숙
현관문의 도어록이 건전지를 바꿔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건전지를 사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문을 닫으면 닫혔다고 열면 열렸다고 알려주는 도어록이 오늘은 건전지를 바꿔야 한다고 알려준다. 아무리 친절한 현관문이라도 건전지가 없으면 열 수가 없다. 요즘은 디지털시대답게 비밀번호나 자석을 이용한 열쇠를 많이 사용한다. 스마트폰과 연계한 도어록도 있고 지문이나 눈동자, 목소리 등으로 구별하여 문을 열어주는 생체인식 열쇠도 새로 나왔다. 잠긴 문을 열어주는 것이 열쇠의 역할이다. 기왕에 나온 생체인식 열쇠가 심리적으로 잠가진 사람들의 마음의 문까지도 열게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외출을 서두른다.
내 인생의 열쇠는 아버지셨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면 늘 해결해주셨다. 무엇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진로를 찾지 못하여 걱정과 두려움으로 헤매고 있을 때, 친구와의 다툼으로 속상해하고 있을 때도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들어주는 열쇠를 사용하여 해결해 주셨다.
아버지는 우리를 보살피는 열쇠를 가지고 계셨다. 동생들과 나는 아버지의 열쇠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동화책을 원하면 동화책을, 참고서가 필요하면 참고서가 나오게 하는 열쇠의 주인이셨다. 놀이공원에 가고 싶은 날에는 가까운 놀이공원으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셨다. 졸라대기 전에도 우리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계셨다. 그때는 모든 아버지가 자녀들의 마음을 아는 열쇠를 가지고 계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어머니와 아버지의 소통의 열쇠 때문인 것을. 교사의 박봉으로 우리의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기 힘드셨을 열쇠 관리자 아버지의 고통과 고뇌를 나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꿈을 꾸게 하고 꿈을 이루게 하는 열쇠 또한 아버지는 가지고 계셨다. 성장하면서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를 닮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나는 사대 화학과로 진학하여 화학 선생님이 되었다. 아버지처럼 다정하면서도 열정적이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실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고 유능한 교사가 되고자 힘썼지만 제자를 사랑하고 아끼신 아버지와 같은 선생님이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아버지를 따르고 존경하던 제자가 있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동생과 자취를 하고 있던 그 제자를 아버지는 가족처럼 대해주셨다. 우리 가족들과 자주 어울리게 하셨고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 주시려고 애쓰셨다. 선생님을 존경했고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 제자는 결국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아버지를 닮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처럼 그 제자도 선생님을 닮고 싶었다고 했다. 현실의 힘든 것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의 열쇠를 아버지께서 주셨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제자는 우리와 같이 상복을 입고 장례를 지냈는데 그 모습을 본 친척들은 아버지의 혼외자식인가 살짝 의심도 하셨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 자녀들뿐 아니라 제자에게도 삶의 열쇠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열쇠로 잠겨있는 자물통을 따듯 내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신 분도 아버지시다. 어린 시절 나는 주변의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놀던 아이였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쉽게 상처받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던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며 혼자 공기놀이를 하며 지냈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대화가 통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숙제를 벌써 다 했다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아버지는 항상 칭찬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는 관심과 칭찬이며 관심이 없는 칭찬은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만 마음을 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나의 삶을 열어준 아버지의 칭찬의 열쇠의 힘이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많지 않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며,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무엇이든지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마음의 문을 열기를 거절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벽을 쌓고 거리를 두는 이들도 자기 자신과의 소통은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의 정서적 단절이 자기 자신을 열지 못하게 하여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알지 못한다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눈동자 하나로, 목소리 하나로 닫힌 마음을 열게 해주는 생체인식열쇠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온갖 갈등을 풀어야하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 영혼의 위로와 생기를 주는 열쇠가 필요한 시대이다. 혼자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생체인식 열쇠가 주어진다면 힘들고 지칠 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스스로를 위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뜻하지 않게 만난 이 열쇠가 자신의 삶이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면 또 얼마나 큰 행운일까. 내 아버지의 열쇠처럼 인생을 꿈꾸게 해주고 삶의 실마리를 찾아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그런 열쇠 말이다.
현관문 도어록에 건전지를 바꿔 넣었다. 내 삶의 안부를 책임지는 열쇠를 손에 넣었다.
내 최고의 봄꽃
새로운 바람이 불고 햇살마저 따스해지니 너도 나도 밖을 향한다. 봄이 문을 열었다. 긴 시간을 침묵 속에서 기다리다가 얼굴을 들어보니 세상이 온통 환하다. 산에는 벌써 물이 오른 가지 끝에 홍매화의 웃음이 번지고 산허리를 돌아 나오는 바람 속에도 매화 향기가 가득하다. 겨울이 오면서 할 수없이 주저앉아 있던 이파리가 도로 깨어나는 봄. 길가의 납작한 꽃망울도 바뀐 계절을 알고 고개를 내민다.
봄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꽃을 물어보면 어떤 이는 산수유 꽃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매화가 아니냐고 한다. 또 야생화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이 개불알풀꽃이라고 알려준다. ‘고향의 봄’ 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를 노래하고 버스커버스커는 ‘벚꽃엔딩’을 노래한다. 김영랑 시인은 모란이 피기 까지는 봄을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 봄의 꽃은 백목련이다. 백목련은 봄이 한창인 3월말이나 4월이 되어서야 피기 때문에 봄의 전령도 아니다. 꽃이 필 때는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맥없이 주저 앉아버리므로 추하다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 최고의 봄꽃은 백목련이다.
그해 3월.
계절이 지나가고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조금쯤 밝아진 햇살사이로 건물과 나무와 사람들의 윤곽이 뚜렷해지면서 겨울의 두꺼운 그림자도 벗겨져 나가던 그 즈음. 나는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아기를 가지면 누구나 다 겪는 일이니 곧 괜찮아질 거라고 하시는 어른들의 말씀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아기를 갖게 되면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호르몬에 변화가 생긴다. 바로 입덧이다. 아기의 기관이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시기에는 특히 심하다. 이는 아기에게 해로운 음식물을 먹이지 못하도록 미리 막아주는 역할 때문이다. 입덧의 고통은 아기가 엄마와 잘 이어져 있다는 건강한 임신의 신호라고 한다. 그러니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서, 속을 진정시킬 수 없는 구토는 나를 혹독한 시련에 빠지게 했다. 이보다 힘든 고통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먹은 게 없어서 나올 것도 없으니 구토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 서 있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 날도 몸속의 모든 것을 다 밖으로 토해내고 존재의 무력감까지 느끼며 돌아섰을 때, 늘 뒤따라오던 현기증을 넘어 곁에 서 있는 것과 마주했다. 눈물과 콧물 사이로 보인 것은 백목련. 그리고 나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던 한 송이 꽃. 잎도 없는 메마른 가지에 눈부시게 피어난 하얀 꽃. 마침내 하얀 꽃잎을 펼쳐낸 목련꽃이었다. 달려드는 햇빛과 함께 고고하게 나타난 그 한 송이 꽃은 내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없다고. 나를 보라고. 나도 해냈지 않았느냐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늘 거기 그 자리에 서 있어 오가며 매일 스치듯 마주하던 그 나무가 어느 새 아픔을 딛고 꽃을 피워냈는지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언제부턴가 흐르는 시간의 변화와 삶의 막연함 속에서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고 있었던 것이다. 꽃을 피워내려는 열망 하나로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었으리라. 생명을 잉태한 그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딛고 서서 스스로 울타리가 되어 포기하지 않고 결국 꽃을 피워낸 것이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에서 불이 일렁거렸다. 나는 그와 동지가 된 것 같았다. 목련 꽃이 내게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견뎌내자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온 이 아름다운 고통을 정식으로 만나겠다는 마음에 나도 손을 내밀어 꽃 이파리를 감싸 안아주었다. 고통도 함께 하면 가벼워지는지 그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입덧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나는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비바람과 싸워가며 힘들게 피워낸 한 송이 꽃을 볼 때마다 나도 이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리라 마음먹었다. 한 송이에서 두 송이로 더 나아가 꽃그늘을 만들만큼 많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목련과 함께 하며 나도 점점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이 고통을 이겨낸 것이다. 나 혼자 이겨낸 것이 아니라 목련꽃과 나. 각자에게 얹어진 고통의 터널을 함께 손잡고 걸어 나온 것이다. 그 때 그 목련 꽃은 나와 고통을 함께 한 동지이자 버팀목이었다.
살아가면서 힘들고 아팠던 상처를 하나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 상처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자신에게 다가온 시련은 누구에게나 아프고 고통스럽다. 또 각자가 마주하는 크고 작은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견뎌낼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를 응원해 줄 사람을 찾고, 누군가는 지지해주고 밀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키워간다. 목련꽃과 나처럼 서로 함께 한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다면, 자신에게 다가온 삶의 무게를 덜 버거워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바야흐로 봄이다, 이 봄에도 역시 목련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고통과의 정면 대결을 통해 눈부시고 우아하게 피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그늘이 될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 삶의 골목에서 돌아서고 싶을 때 용기를 주고, 한 없이 주저앉고 싶을 때 버팀목이 되는 그런 친구이고 싶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삶에 찔리고 시간에 상처받아 인생의 그늘 속으로 숨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새봄의 꽃들과 함께 희망의 안부를 묻고 싶다.
선물 같은 만남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산다. 그러나 삶의 뒤를 돌아보면 처음 계획한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가끔은 달라지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에도 생각했던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금 일찍 직업을 벗어나기로 계획하며 퇴직 후에 이렇게 살아보겠다고 별러왔던 일들을 새로운 시간과 계획에 따라 수정하거나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믿는 만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 또한 삶이라는 것을 안다. 꼭 소원했던 일들이 아닐지라도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살면 되지 않겠는가.
늘 시간을 쪼개어 쓰며 종종거리던 바쁜 삶을 벗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여유 있게 시간을 배분하는 삶을 살리라 마음먹었다. 악기도 하나쯤 배우고 싶었고,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배워야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싶었다. 외국 여행을 갔을 때 영어를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영어 학원에도 등록하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직업을 놓은 지 몇 달 되지 않아 팔, 다리, 허리, 어깨 안 아픈 곳이 없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팔에 엘보가 왔다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엘보는 팔꿈치를 반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서 주로 발생하는데 가정주부에게도 많이 나타나는 질환이라고 한다. 의사선생님은 살림을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며 당분간은 팔을 쓰지 말라고 하셨다. 병원을 바꿔가며 여기 저기 다녀보았지만 잘 낫지 않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수지침이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계획에 없던 공부였다. 배우는 즐거움을 위해서 공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파서 할 수 없이 시작한 공부인 셈이다.
수지침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론은 상응요법이다. 상응요법은 손에 사람의 전신이 배당되어 있기 때문에 손에 자극을 주면 인체의 장부와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손 운동을 하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많이 움직이면 노화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렇게 손을 이용한 것이 수지침이다. 수지침은 몸이 아니라 손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아픈 곳을 치료할 수 있다. 공부가 조금 깊어지면서 머리나 다리가 아플 때 손의 상응점을 찾아서 스스로 침을 놓게 되었고 내가 놓은 침에도 통증이 점점나아지는 효과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이 새로운 취미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효과가 바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침이 아프기도 하지만 뜸의 온열자극이 마음도 안정시키고 원기도 회복되게 해주는 것 같아 침보다 뜸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게 된다. 나는 몸과 마음을 함께 치유할 수 있는 이 취미에 대해 지인들에게 자주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심신의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한번 해보라고 권하기를 여러 번 했더니 어르신들에게 쑥뜸을 떠드리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어르신들은 살아온 세월의 훈장같이 다리나 허리 어깨 등에 통증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 아직 공부가 깊지는 않지만 쑥뜸은 떠드려도 좋을 것 같았다. 손에만 뜸을 떠 드리니 부작용도 없을 것 같고, 아픈 곳이 빨리 낫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온열효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느 날 부터인가 나는 어르신들의 손에 쑥뜸을 떠 드리는 봉사를 하게 되었다.
내가 쑥뜸을 떠드리는 어르신들은 평균 나이가 80세 정도 되신다. 나는 매주 한번 씩 쑥뜸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인생을 배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만남이다. 뜸을 뜨러 오시는 어르신들을 통해 모든 만남은 인생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나고 스치는 인연들 속에서 새로운 삶을 보고, 새로운 눈을 가지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가 가진 아픔과 그가 가진 그리움과 남아있는 상처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뜸을 떠드리며 어르신들과 나누는 삶의 이야기 속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다져진 따뜻한 영혼들을 만난다. 뜸이 타는 시간동안 평범한 일상이 멈춰지고 뜸의 연기 속에 갈래머리 어린 소녀 시절에 간직했던 꿈 이야기, 시집가서 고생하고 힘들었던 젊은 시절, 자녀들이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는 동안 마음 밭을 어렵게 가꾸어 왔던 지난한 시간들이 함께 타오른다. 이렇게 힘든 터널을 지나왔더니 요즘에는 안 아픈 곳이 없다는 긴 옛날이야기의 결말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이런 저런 이야기 속에서 어르신들은 아프고 고달팠던 길고 어렵던 시간을 위로하며, 공감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 자신에게 얹어진 삶의 무게를 지탱해온 어르신들의 그 시간들을 통해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자신들의 역사이야기 안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게 되고, 연로하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따가울 때가 많다.
여기저기 아픔을 하소연하며 뜸을 뜨러 오시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 마다 나는 이 공부를 시작한 것을 참 잘한 일이라고 칭찬한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이루어놓은 것들을 사용한다. 식품, 생필품, 공부, 문화 등,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이 작은 공부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음이 기쁘다. 욕심껏 움켜쥐었던 나의 두 손을 활짝 열어 그 손이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음이 감사하다.
이 쑥뜸을 통해 뜻하지 않게 여러 어르신들과 선물 같은 만남을 가질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