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사와 암나사
2024년 7월 12일 아내는 주택 현관문이 고장 나서 여닫기가 불편하니 빨리 손봐야 한다고 알렸다. 이 문은 문고리를 밀어서 여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문과 문고리를 연결하는 볼트(bolt)와 너트(nut)로 된 나사(螺絲)에 너트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문고리가 문에서 이탈된 것이 고장원인이었다. 주택이 지어진 후 17년 동안 하루 평균 최소 10회 이상 총 6만2천 회를 반복적으로 문고리를 밀다 보니 연결 볼트에 너트가 조금씩 풀리며 헐거워졌다가 결국 볼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틈틈이 점검하여 나사를 잘 조였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고였다. 누구라도 잘 열리는 문을 꼼꼼하게 점검하기란 쉽지 않다. 문고리를 분해해서 잃어버린 너트를 찾아보았는데 헛수고였다. 급한 대로 끈으로 문에 문고리를 묶어서 사용했지만 임시방편일 뿐 완전한 해결책이 못 되었다. 그날 이후 현관 출입이 매우 불편했다. 문고리에 맞는 볼트와 너트가 있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인데 이것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매우 간단한 일을 해결할 수 없다보니 하루하루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것이 해결의 전부였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사를 구할 수 없자 이참에 현관문을 통째로 갈아치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는 빈대 잡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어떻게 하든지 나사를 찾아야 했다.
며칠이 지났다. 더 이상 불편하게 문을 사용할 수 없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나사를 찾을 수 있도록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불편하게 지낸 지 팔일 째 되는 날(7월 20일) 열일을 제쳐두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각오와 결기에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가까운 철물점부터 동네 한 바퀴를 뒤져서라도 이 문고리에 맞는 나사못을 찾아볼 요량으로 문을 나서는데 번쩍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순간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확신이 생기고 벌써 이 불편한 문고리를 다 고친 느낌이 왔다. 다름 아닌 20여 년 전에 구입한 공구 상자가 새삼스럽게 내 생각 수면에 떠오른 것이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아서 집안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은 그것이다. 누가 쓰다가 버린 것이 아까워서 언젠가는 사용할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막연하게 모아둔 오만 가지 고물로 가득한 그 상자에 왠지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았다.
부리나케 공구상자를 찾아서 열어보았다. 역시나 쓰잘 데 없는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막상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끼고 있자니 부담스러운 고물의 집합소였다. 여기에 그렇게 요긴한 나사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갑자기 하나님이 생각나게 하셨으니 인내심을 가지고 상자를 샅샅이 뒤져 보았다. 뚜껑을 열면 처음 나오는 상자 3단에는 망치나 벤치, 작은 톱 등 이런 연장이 녹슨 채 내던져 있었고 크기와 굵기가 제각각인 피스들이 많았다. 또 상자 2단에는 더 별 볼 일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이제 남은 것은 맨 아래 상자다. 거기는 깊이가 있어서 좀 부피가 나가는 것들이 있었지만 역시 쓸 만한 것은 별로 없었으니 진정 고물 보관소로 손색이 없었다. 그런데 그 한 구석에 유일하게 수나사(볼트)와 암나사(너트)가 마치 한 몸이 된 부부처럼 짝을 이루고 보일 듯 말 듯 여러 나사못과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자기를 써달라고 실로 오랜 세월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한 쌍의 부부처럼 말이다. 20여 년 전(1998년) 이 상자를 구입하고 이것저것 쓸 만하다는 고물을 죄다 수집했으니 이 나사못이 여기에다 새 둥지를 튼 지도 그 연수와 비슷했다. 묵묵히 기다린 그 세월 동안 주인은 전국을 누비다시피 여러 차례 이사하다가 여기 산골 마을에 정착하기까지 이 나사는 굳세게 따라왔던 것이다. 작아서 쉬 잃어버릴 수 있었고 관심 밖의 존재로 분실의 위험성이 있었지만 끝내 여기에서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은 정말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했던 어떤 사람과 같았다(마 13:44). 그것을 가지고 문고리에 대니까 굵기와 길이가 최상 최고의 안성맞춤이 아니던가? 그 덕분에 그동안 출입의 불편함이 말끔히 씻어졌다.
20여 년 전 당장 사용할 것도 아닌데 무심코 모아놓았던 이 나사못을 보면서 만 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20여 년 후 강원도 산골 마을 어느 집 현관문에 이놈이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 섭리를 보면서 너무나 소름 돋을 만큼 신기하고 놀라웠다. 하나님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거라도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으시며 그 모든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주시는 주권자이심을 새삼 깨닫는다. 물질적 가치로만 귀천(貴賤)을 따지는 인간의 오만은 빨리 버려야 할 백해무일리(百害無一利)한 잣대다. 또 천생연분의 암수 나사가 서로 짝이 되어 있었기에 맞춤형 도구로 귀하게 사용될 수 있었음에 깨닫는 바가 더욱 컸다. 만일 이 둘이 서로 떨어져 있었다면 진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비록 고물 상자 속에 처박혀 있어도 준비된 물건은 절대 고물(古物)이 아니라 보물(寶物)이었다. 세상은 죄인으로 가득한 고물상자와 같다. 예수님은 고물처럼 버려진 그 죄인을 보물로 만드시고자 고물 세상에 오신 구주시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고물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보물로 여기신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그 누구라도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소중한 일꾼임을 명심하고 항상 준비해야 한다. 하잘 것 없던 나사못을 찾으면서 하나님 앞에 서있는 지금의 내 존재의 가치를 돌아보게 된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이사야 48:10).
1998년에 구입한 고물상자나 다름없는 공구 상자
문에 떨어져 나간 문고리를 견고하게 연결시켜준 볼트와 너트 나사못이 자랑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