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정선 이야기13
소망이 담긴 밤마실 이야기, 무엇이 되고 싶나 은나나나나
<밤마실 놀이로 소원을 꿈꾼 옛 정선사람>
“무엇이 되고 싶나 은나나나나~.”
“산신령이 되고 싶다. 은나나나나~.”
이 가락을 들으면, 정말 맘껏 웃는 정선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하하하~”하고 웃음이 절로 납니다. 물론 ‘착착이’이라는 놀이 경험 때문이지요. 제게 그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일생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오래된 영화 필름이 찍찍 물결무늬를 흘리면서 돌아가는 기분입니다. 필름이 찍찍거려도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돌아갔으면 합니다. 그 추억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무엇을 얘기하냐고요. 밤마실 이야기입니다.
추수가 끝난 정선 겨울은 휴식이면서 일터였습니다. 정선사람들은 참 부지런했습니다. 어쩌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겨울이면 농한기인데도 일은 계속 있었습니다. 모든 게 가족경영이니, 놀 사람이 없었습니다. 강냉이 바수고, 삼 삼고, 자리 매고, 가마니 짜고, 나무 패고, 눈 쓸고 …. 왜 그리 일이 많던지요. 물론 이런 일은 밤낮이 따로 없었지요.
그러나 밤이면 특별히 마실 시간이 허용되었습니다. 마실은 가까운 이웃집에 놀러 가는 일인데요. 어머니와 큰 애기들은 삼 삼는 핑계로 삼광주리를 보자기에 싸 들고 마실 가고요. 청소년들은 놀러 마실 갑니다. 남성 어른들은 술 마시려고 농사일 의논 핑계 대고 마실 가지요. 살을 에는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청소년들 밤마실에 얽힌 사연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밤마실은 말 그대로 밤에 마실 가는 일이잖아요. 겨울이면 언제나 정선은 눈밭이었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오로지 ‘착착이’를 위한 일념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왜 그렇게 밤마실을 갔냐고요. 바로 만남이라는 즐거움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당시는 그게 유행이었고, 다른 마땅한 놀이가 없었습니다. 또 남녀가 공동으로 만나 이성(異性)을 느끼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동창생이나 아래위 2~3년 선후배도 놀이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밤마실 놀이가 좀 쑥스럽기도 합니다. 하기야 모든 일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어설프고 잘하지 못하니 부끄럽기도 하잖아요. ‘착착이’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놀아도 예의와 도덕은 철저했습니다. 어떤 불상사도 나지 않았거든요.
<높은 재를 넘는 ‘착착이’ 밤마실>
‘착착이’는 여럿이 모여 놀이할 때 손뼉을 ‘착착’ 부딪힌다고 해서 부른 놀이 명칭입니다. 그 역사도 오래되었지요.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누나, 고모들도 하던 놀이입니다. 우리는 선배들이 하는 모습을 훔쳐보고 배웠고요. 이때만 해도 텔레비전이 마을에 없던 시절이라 사람에 의해 전파되었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단, 정선에서는 청소년들이 보편적으로 행하던 밤마실 놀이였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착착이’하러 마을 원정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원정 거리는 하룻밤에 걸어서 넘을 수 있는 고개 너머 마을입니다. 물론 그 동네 사람과 미리 연락이 된 상태이지요. 어떻게 하냐고요.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연락을 받으면 산길을 걷거나 신작로를 걸어 재를 넘어갑니다. 점심을 먹고 몇 시간을 걸어간 터라 배가 고픕니다. 이를 알고 그 마을에서는 원정 온 친구들을 위해 메밀국죽 같은 음식을 미리 마련해 둡니다. 배불리 먹는 게 중요한 터라 푸짐한 음식이 최고이지요. 그렇게 배불리 먹고 나면 그쪽 마을 사람들과 방에 모여 앉아 놉니다. 어떨 때는 자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밤중에 돌아오기도 합니다. ‘착착이’ 놀이는 그렇게 마을과 마을로 전파되었습니다. 높은 재를 넘어가서 놀 정도로 참 열심히 놀았지요.
<단순한 놀이 형태와 방법>
놀이 방법은 남녀가 여럿이 모입니다. 방안을 빙 둘러앉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이 모일 때도 있지요. 꼭 남녀가 한 명씩 사이에 끼도록 앉습니다. 이는 놀이를 더욱 재미있게 하려는 준비입니다. ‘착착이’를 하는 나이 때가 중·고등학교 때이니, 이성에 막 눈이 뜰 때잖아요.
그러면 누군가 몇 가지 놀이 중에서 무엇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 제안에 따라 놀이는 돌아가는데요. 하나를 하다가 지겨워질 때쯤 되면 다른 놀이로 바꿉니다. 놀이 종류라야 두세 가지니, 다양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충분히 깊은 밤까지 놀 수 있었지요. 놀다가 잠시 멈추고 마을에서 돌아가는 이야기며, 서울 갔다 온 누나나 삼촌이 들려준 서울 이야기도 나눕니다.
놀이를 하다가 박자에 맞춰 제대로 단어를 말하지 못하면 걸립니다. “너 걸렸어.”라고 합니다. 사실 아는 단어는 일정한데 몇 번 돌아가면 생각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이미 누군가 말한 단어는 다시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걸린 사람은 일어나서 노래를 유창하게 해야 합니다. 벌칙이 노래 한 곡 하는 일이거든요. 간혹 손뼉 박자에 맞춰서 춤을 추기도 하고요. 요즘은 “인디안밥”이라 하면서 등짝을 두드리는 벌칙을 주기도 합니다. 벌칙이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놀이는 시작합니다. 그러면 먼저 놀이에서 말한 단어를 다시 말해도 됩니다.
단어를 댈 때도 박자와 동작에 맞춰서 해야 합니다. 두 손바닥으로 양쪽 무릎을 치고, 손뼉을 치고, 오른손 엄지를 치켜들고, 왼손 엄지를 치켜들고를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후렴을 합창으로 말하고, 후렴이 끝나면 해당 사람이 단어를 말하며 돌아가는 방법을 취합니다.
이때 <무엇이 되고 싶나 은나나나나>는 전체 후렴이고요. 해당 사람은 “간호사가 되고 싶다 은나나나나”처럼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직업이나 대상을 말하고 ‘은나나나나’를 외칩니다. <아이 엠 그라운드 ○○이름 대기 착착>은 먼저 후렴을 대고, 이어서 ○○에 해당하는 이름을 대며 “○○착착”이라고 하며 돌아갑니다. ○○이 나무 이름이라면, “소나무가 착착”, “대나무가 착착”하면서 이어서 돌지요.
<은나나나, 아이 엠 그라운드의 의미>
놀이는 보통 세 가지였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나 은나나나나>, <아이 엠 그라운드 ○○이름 대기 착착>, <춘향이 놀이>입니다. 모두 관련 뜻이 있겠지요. <무엇이 되고 싶나 은나나나나>는 당연히 자기의 소원을 담은 얘기입니다. 보통 직업을 많이 대고요. 신선, 산신령, 강물, 설악산 같은 대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후렴의 ‘은나나나나’는 마치 ‘아리랑’, ‘쾌지나칭칭나네’, ‘강강수월래’ 등처럼 의미가 없거나 희석되어 알 수 없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아이 엠 그라운드 ○○이름 대기 착착>은 지식을 드러내는 놀이입니다. 나무 이름, 강 이름, 책 이름, 나라 이름, 도시 이름, 곡식 이름 등 한계는 없습니다. 여기서 ‘착착’은 손뼉을 칠 때 나는 소리를 말로 나타내고 손뼉도 치는 용어이고요. ‘아이 엠 그라운드’는 영어로 볼 수 있는데, ‘I am ground’로 표기할 수 있습니다. ‘그라운드’는 자신의 영역이며 무대를 나타냅니다. 그냥 의미 없는 말일 수도 있지요. 그냥 대중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뽐내는 공연 활동을 나타내는 의미로, 그래서 웃으며 떠들고 노는 놀이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춘향이 놀이>는 강신무의 내림굿 형태를 빌린 놀이입니다. 춘향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두 손을 맞대고 앉아 있고, 옆에서 “남원골 춘향 아씨 생일은 사월초파일 이도령이 오셨으니 솔솔 내리시오.”라고 반복합니다. 그러면 두 손바닥이 벌어지면서 일어납니다. 그때 “춘향아 춤을 춰라”, “땅 짚고 뒤로 돌아라”라고 시키면 다하고요.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 대답하게 합니다. 그러면 모두 맞췄습니다. 미래가 궁금했겠지요.
정선에서는 이렇게 청소년들이 밤마실을 가서 놀면서 한겨울을 보냈습니다. 놀이공동체로서 긴 겨울밤을 보내고, 우정도 다졌습니다. 이 놀이는 시골에 갇힌 자신의 탈출구와 소망을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재미도 함께 했지요. 과연 그렇게 되고 싶은 소망은 이뤄졌을까요.